< 위대한 도전 - 10 >
첼시 공격을 도맡아오던 호날두가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첼시의 우승 가능성을 낮지 않게 생각했고 그것은 팬들도 다르지 않았다.
첼시라면 4회 연속 우승이 가능하다는 칼럼은 심심치 않게 런던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첼시 팬들의 희망사항으로 남게 되었다.
그들의 우승 기록은 여기 까지였다.
“......”
3회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첼시 팬들.
망연자실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첼시 팬들의 모습은 마치 비극의 한 장면을 엿본 것 같았다.
맨유와의 승점 차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3월부터는 사실상 우승이 힘들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아예 확률상 제로가 된 것은 체감이 다른 법.
심지어 이곳은 스탬포드 브릿지, 첼시의 홈이다.
그곳에서 최대 경쟁팀인 맨유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주게 된 것이다.
눈물을 참는 그들을 향해서 호날두는 속으로나마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한때 같은 클럽에서 뛰고, 같은 클럽을 응원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담아서.
"우리가 우승이야! 우리가 바로 우승팀이라고!! 으아아아!"
"너는 오자마자 우승이잖아, 안데르손! 나는 무려 4년 만에 하는 우승이라고! 이런... 우승 세레머니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벌써 다 까먹어버렸어!"
"헤이! 이 녀석은 울고 있어! 하하하!"
"아, 안 울어 Shit! 누가 운다고.... 킁!"
우승의 기쁨은 평소 조용하던 폴 스콜스마저도 방방 날뛰도록 만들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지난 세월의 한을 푸는 선수들도 있었다.
기뻐하는 맨유의 선수들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 나와서 안기는 코칭 스텝들.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짐을 내려놓고 기뻐할 자격이 있었다.
특히 그 미친 헤어드라이기 세례 때문에 그렇게 감독을 무서워하던 몇몇 선수들도, 오늘만큼은 그 두려움을 잊고 퍼거슨에게 달려가서 안기기도 했다.
기쁨이 두려움을 넘어선 것이다!
언제나 화난 불독처럼 불만이 가득했던 퍼거슨.
지금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물개처럼 연신 박수를 쳤다.
우승을 이룬 이들의 온갖 소희들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첼시 선수들.
이들의 모습은 진정 비 맞은 새처럼 처량했다.
호날두는 그들 중 한명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조, 기분은 좀 어때요."
"...최악이야. 정말 최악이야. 난 우승을 놓친 것이 이렇게 비참한 기분일 줄은 몰랐어. 웨스트햄에서 뛸 때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어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무리뉴와 호날두가 오기 전, 분명 첼시는 우승과는 거리가 먼 클럽이었다.
지난 3년간의 세월은 첼시가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팀이 실패했다.
떨어지는 높이가 다른 만큼 충격도 다른 법이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제가 위로해 줄까요?"
"그러지마... 난 레이디가 아니라고! 어깨에 손 올리지도 마!“
“하하하.”
“이 나쁜 놈. 너 때문에 우리가 우승을 못했어."
그제서야 킥킥거리며 애써 웃음 짓는 조 콜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번에도 우승했구나. 역시 크리스는 굉장해. EPL의 왕다워."
"왕이라는 표현은 쑥스럽네요. 운이 좋았죠, 뭐."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실력이 좋은 거겠지. 만약에 네가 이적하지 않았다면... 이번 시즌 우승은 분명 첼시였을 거야."
IF의 가정은 축구사에서 가장 의미 없고 쓸데없는 소리다.
하지만 호날두는 조 콜의 말에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그만큼 올 시즌 첼시는 제대로 골을 넣지 못하는 득점 부진에 시달렸다.
"4회 연속 리그 우승이라니... 프리미어 리그에서 너와 같은 기록을 세운 선수가 또 있을까? 크리스, 알고 있어? 사람들은 벌써부터 너를 프리미어 리그, 아니 잉글랜드 축구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뽑고 있어. 이제 겨우 EPL 4년차인 너를 말
이야."
조 콜의 음성에는 단지 부러움만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호날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네가 정말, 정말로 부러워.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아. 나는 왜 너와 같이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을까?"
"......"
"물론 지금까지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인내해왔는지 잘 알아! 그래도... 이 치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깨달아 줬으면 좋겠어.... 추하게 들릴 소리를 해서 미안해, 크리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그것도 1부 최상위 팀인 첼시에서 반 주전으로 뛴다는 것.
이렇게까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경쟁과 부담, 견제 등을 뚫어야 할까.
그것을 다 뚫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 콜은 천재의 영역에 발을 담갔다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자신을 보고 부럽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싶다며 소리친다.
호날두는 그런 조 콜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는 ‘정지우’였던 시절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어서 가, 크리스. 저기 네 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들과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나누길 바래. 내가 했던 헛소리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조, 나의 친한 친구이자 옛 동료였던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아요. 그건 오히려 제가 더 잘 알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내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린 모양이네... 정말 미안해. 절대로 너를 비꼬려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의 두배, 세배 이상을 노력 했다는 겁니다. 제가 튀김음식이나 와인, 그리고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보았죠? 사실 축구 선수로 데뷔하고 나서부터는 위와 같음 음식들은 한 번
도 입에 대본적도 없어요. 단 한번도요."
"......"
"스포르팅에서건, 첼시에서건, 그리고 지금 맨유에서도. 저는 언제나 가장 일찍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 트레이닝을 끝냈죠. 남들 다 있는 취미 생활? 저는 제가 했던 경기 영상을 돌려보는 게 취미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 영상에서 부족했던 점들을
찾고 메모했어요. 그리고 반복해서 연습하며 실전에서 써먹었죠."
"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노력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조. 이런 저를 단순히 운이 좋았던 선수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 이면에는 이러한 끔찍한 고통들을 견뎌야했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줘요."
조 콜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왠지 그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등을 두드려준 호날두는 이제 자신의 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재능의 한계를 느꼈을 절망스러웠던 그 기분, 그 열등감을 자신이 왜 모르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지우는 그 벽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혹독하게 노력했고 아낌없이 몸을 내던졌다.
단지 그것이 차이일 뿐이다.
“내 우상, 크리스티안 호날두도 분명 엄청난 노력파였지...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할 정도로 노력했고 스스로를 시험했어. 그렇기 때문에 그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거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몸에 취해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덜 노력했던 적이 있었냐고.
호날두는 네버(Never)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당당했다.
이것은 노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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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의 엄명 하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 퍼레이드는 리그 종료일인 5월 11일 직후가 아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끝나는 5월 21일 이후로 정해졌다.
행여나 일부 야심 없는 선수들이 리그 우승 트로피 하나에 만족하여 기강이 흐트러질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뜻.
또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축하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데빌즈들은 당연히 그 의도를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
FA컵 결승 진출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유력
꿈에만 그리던 트레블.
클럽 축구 커리어의 끝판왕이라는 트레블이 이들에게 성큼 다가왔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을 오가는 수험생의 어머니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절대 호들갑을 떨지 앟았다.
그저 경기장에서 온 세상의 기를 모아(...) 응원할 뿐 설레발을 최대한 자제했다.
올드 트래포드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Again 1999'의 문구 역시 조심스럽게 사라진지 오래.
조금이라도 부정탈만한 요소는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이들은 경건한 고승의 심정으로 팀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2008년 4월 29일, 바르셀로나와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
절대 상대에게 득점을 내주지 않을, 철저히 수비위주의 전술을 들고 나온 퍼거슨.
덕분에 맨유는 바르셀로나의 파상공세를 효과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발 빠른 호날두의 역습 전개는 살아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우측면을 파괴하며 질주하는 호날두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크로스를 침투하는 스콜스에게 배달했다.
세컨 톱에서 뛰던 옛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 스콜스의 환상적인 득점으로 오히려 앞서나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앙리-에투-메시의 막강한 쓰리톱을 자랑하는 바르셀로나였지만, 레드 데빌즈의 열화와 같은 응원 속에서 대단한 결의를 품고 맞서는 맨유의 골문을 열어 제치기는 힘들었다.
그대로 경기는 종료되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 2차전 도합 3:0 스코어로 바르셀로나를 격파, 구단 역사상 3번째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진출을 이뤄냈다.
커다란 TV를 통해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맨체스터 거리는 이미 환호의 도가니, 광란의 도가니였다.
[돌아온 누 캄프,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8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한 좌석은 바로 이들의 차지입니다!]
[9년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력으로 맨유가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다시 한 번 위대한 업적에 대한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입니다!!]
===
[첼시가 리버풀을 꺾고, 3시즌 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복귀합니다!]
[정말 치열한 승부였습니다! 첼시와 리버풀!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첼시였습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첼시가 승리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특히 더 강한 디디에 드록바는 이날 무려 2골을 몰아넣으면서 첼시의 결승 진출에 1등 공신이 되었다.
TV에서 오늘 경기를 지켜본 호날두는 말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역시 자신이 개입되지 않은 판은 본래의 흐름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벌써부터 그의 핸드폰은 난리였다.
반드시 꺾어버리겠다는 옛 동료들이 보낸 문자메세지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절대 안 질 거지만.'
원래대로라면 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페널티킥까지 가는 초접전 끝에 존 테리의 실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리하게 된다.
존 테리가 실축하는 명장면(...)을 다시 보고 싶긴 했지만... 그런 불확실한 승부까지 경기를 이끌고 갈 호날두가 아니었다.
반드시 연장도 가기 전에 경기를 끝내리라.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것이다.
호날두가 첼시에 있었기 때문에 챔스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첼시에 호날두가 있었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첼시는 강해. 리그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선다.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크리스.’
“오케이,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고요. 참고로 저는 결승전에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램파드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는 호날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온 몸이 흥분에 젖었다.
빨리 축구를 하고 싶었다.
=
삑-! 삐이익-!
[프리미어 리그 38라운드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올 시즌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맨유가 이길 것이라 예상했기에 오늘 결과는 그렇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다만 호날두 선수의 득점력은 정말 경이롭기 그지없군요! 전반기에 날아다니다가 후반기에 퍼지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인데 이 선수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리
그에서만 38골이라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 기록이군요! 게다가 이 선수의 본질은 드리블러가 아닙니까? 최고의 드리블러가 이런 득점력까지 갖춘 것은 솔직히 반칙이라는 생각까지 드네요!]
[이로써 호날두 선수는 자신이 세운 EPL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하는데 성공합니다! 무려 3골이나 더 넣어서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EPL의 왕 다운 모습입니다!]
위건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골을 넣은 호날두는 올 시즌 리그에서만 38골을 넣으며 압도적인 격차로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05-06 시즌 이후 세 시즌 연속 득점왕이었고, 그가 넣은 38골은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 될 전망.
그 스스로가 이 한계를 깨트리지 않는 이상 아무도 이 기록에 닿을 수 없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주장하고 있었다.
경기에서 패배한 위건 팬들마저도 기립박수를 치며 이 경이로운 선수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표현했다.
호날두는 그들의 박수에 대한 화답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모든 리그 일정이 종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FA컵,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다.
< 위대한 도전 - 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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