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도전 - 14 >
호날두의 예술과도 같은 플레이, 그리고 화려한 골은 첼시 선수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바짝 독이 오른 독사처럼 첼시 선수들은 호날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정말 친했고 또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었던 동료였던 크리스티안 호날두.
하지만 지금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첼시의 우승을 위해서는 반드시 꺾어야만 하는 적이었다.
"이대로 가면... 절대 못 이겨. 절대 못 이긴다고!"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마치 윽박지르듯이 동료 선수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는 존 테리.
첼시의 라커룸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캡틴의 말에 모두들 반박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보스는 뭐래요? 계속 이대로 진행?"
"전반전에는 무조건 수비. 수비만 계속하다가 후반전 맨유의 체력이 떨어지면 그 때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겠대. 아직도 그 고루한 작전이 먹힐 줄 아나봐."
"Shit! 로마가 그런 식으로 하다가 크리스티안에게 털려버렸는데 우리도 똑같이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고!?"
“겁 많은 거북이처럼 나와서는 맨유를 이길 수 없어. 우리의 똑똑한 보스는 그걸 모르는 모양이야.”
"저... 그럼 캡틴은 보스의 전술을 거스르겠다는 거...야?"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묻는 에시앙의 말에 존 테리, 램파드는 사나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대로 지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그는 틀렸어."
“잘못된 전술을 우리가 따라야할 필요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점골. 우겨 넣자고."
첼시 고참 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감독의 전술에 반기를 들었고, 심지어 경기 중에 다른 선수들을 실시간으로 선동했다.
이미 세계 최고의 감독도 밀어냈던 경력이 이들에겐 있었다.
아브람 그랜트라는 무명의 감독은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눌러놓기 딱 좋은 상대였다.
[첼시가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풀백들의 오버래핑이 활발해지면서 수비 라인을 확실히 올렸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랜트 감독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네요?]
[아무튼 첼시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동점골을 넣는 게 중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첼시는 공격력보다는 수비가 뛰어난 팀이거든요. 결국은 한 골 싸움입니다. 만회를 하지 않으면 후반전에 굉장히 불리한 입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램파드 선수의 크로스! 드록바 헤더어어어! 아! 몸으로 막아내는 비디치! 매우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드록바 선수!]
에시앙과 애슐리 콜이 거침없이 오버래핑을 함으로써 첼시의 양 윙어인 조 콜과 로벤이 조금 더 중앙 공략에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마케렐레도 조금 전진하여 볼 배급을 중앙선에서부터 해나갔고 발락, 램파드도 공격적으로 침투를 시작했다.
표면상으로는 분명 첼시가 공격을 주도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밀어 붙여! 한 골만 넣고 다시 복귀하자고!"
“맨체스터 놈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것은 첼시 선수들의 착각이었다.
=
"허허허, 저 녀석들은 왜 저렇게 라인을 올리는 거지? 우리에겐 크리스티안이 있는데."
그랜트 감독의 전술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알렉스 퍼거슨.
그러나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랜트의 얼굴을 보며 이것이 그가 의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퍼거슨은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결과적으로 맨유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감독의 권위를 개무시하는 선수들을 보는 것은, 그에게는 아주 역겨운 일이었다.
맨유에 저런 선수가 있다면 단칼에 내쫓아버렸을 텐데.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EPL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하는 선수다.
단순히 빠르기만 선수가 아니라 대단한 골 결정력과 볼 컨트롤 기술까지 갖췄기 때문에, 상대가 수비벽을 겹겹이 세워놔도 충분히 위협을 줄 수 있는 선수가 호날두다.
이런 호날두는 두고 저런 식으로 라인을 올린다는 것은 뒷공간을 털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았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서 등딱지 바깥으로 나왔구먼. 기어 나온 놈을 쥐어 패는 것은 우리들 전문이지.’
욕심을 부리면 화가 된다는 것을 첼시의 건방진 놈들에게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휘이익!
퍼거슨은 입에 손을 집어넣고 소리를 냈다.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웨스 브라운이 그것을 들었다.
“보스의 지시가 떨어졌어. ‘롱볼’이야!”
“카운터 전술이군! 오케이!”
“크으~ 역시 우리의 영감님은 상대를 가만 놔두지 않는구만!”
퍼거슨은 첼시의 노출된 약점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척하면 척.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맨유 선수들의 얼굴에는 정말 든든하다는 표정과 미소가 지어졌다.
퍼거슨의 롱볼 축구에 대한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움직임이 변한 것은 에브라, 브라운 같은 풀백들이었다.
이들은 이전보다 높은 크로스를 올리면서 전방으로 공을 돌렸다.
바로 호날두처럼 빠르고 강한 윙어들이 다이렉트로 그 공을 받아서 역습에 나설 수 있도록.
짧은 패스 대신에 길고 공격 지향적인 패스.
천천히 공격을 풀어나가는 지공 대신 선수들의 스피드를 살리는 속공.
선수들끼리의 충돌을 피하지 말고 거칠게 나서서 볼 경합을 하라는 지시가 지시가 연이어 내려왔다.
경기 상황이 바뀔 때마다 최고로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퍼거슨 맨유의 최고 강점.
맨유 선수들은 그것을 충분히 따랐고 결과로 증명했다.
뻥-!
바뀐 전술은 바로 첼시의 목을 조여 왔다.
반 데 사르가 골킥으로 찬 공이 롱 패스 마술사 스콜스에게 닿았다.
스콜스의 롱 패스와 호날두의 전방 침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장 강력한 공격 옵션 중의 하나.
때마침 첼시의 왼쪽 측면 공간은 텅 비었고 이것은 첼시에게 엄청난 위기로 다가왔다.
“그렇지! 달려라, 이 자식아!”
껌을 씹으면서 그라운드 위의 상황을 지켜보던 퍼거슨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질렀다.
호날두가 스퍼트를 올리면 따라 잡을 선수는 없다.
아르옌 로벤처럼 호날두의 속도를 비슷하게나마 쫓아갈 수 있는 풀백이 있으면 모를까, 로벤은 풀백도 아니었고 공간상 정반대편에 있었다.
호날두를 막을 선수가 없었다.
완벽한 침투, 완벽한 기회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삐익!
"말도 안 돼! 이게 오프사이드라고!?"
=
어이가 상실한 호날두가 부주심에게 다가가 거칠게 따졌다.
분명 속도를 내기 전, 최종 수비 라인보다 안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스콜스가 공을 차자마자 바로 라인을 깨면서 질주했고 오프사이드 룰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달릴 수 있었다.
"내가 오프사이드라고요? 나는 분명히 존 테리 선수보다 밑에 있었습니다! 폴이 공을 차자마자 달렸고요!"
"오프사이드 맞아. 내가 분명히 확인했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소리하지 마세요. 잔디 라인을 통해서 오히려 제가 분명히 확인하고 뛰었습니다!"
우우우우우-!!
“저 항의 소리 들리시나요? 당신이 잘못된 판정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중계카메라로 다시 확인해주시죠?”
"쓸데없는 항의하지 말고 너의 자리로 돌아가. 계속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고 경기 진행을 방해한다면 주심에게 말해 카드를 주도록 하겠어."
“...젠장!”
'분명 제대로 보지도 못해놓고서, 단지 판정을 번복하기 싫어 우기는 거겠지! 이 빌어먹을 새끼!'
호날두는 딱 눈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망할 놈의 부심은 자기가 순간적으로 잘못 판정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저렇게 우기는 것이다.
호날두는 욕이 나올 것 같았지만 결국 참아냈다.
호날두의 뒤를 이어서 맨유 선수들이 하나같이 부심의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부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맨유 선수들에게 돌아가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 부심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호날두와 맨유 선수들.
하지만 주심이 카드를 꺼낼 기세라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가제는 게 편이라더니 주심은 부심의 편을 들었다.
선수들이 이 정도였으니 퍼거슨의 분노는 당연히 그 이상.
씹던 껌도 내뱉은 채 퍼거슨은 붉어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뭐? 오프사이드!? 빌어먹을 X새끼들이! 그게 오프사이드라고!? 눈깔을 그냥!”
“지, 진정하세요, 보스! 일단 판정이 내려졌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빨리 보스를 말려! 또 퇴장 당하실라!”
맨유의 코칭 스텝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퍼거슨은 들소처럼 달려 나갔으리라.
맨유의 팬들도 분노한 것은 마찬가지.
TV중계에서는 리플레이 화면으로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까지 시켜줬다.
억울한 판정이라는 것이 확인되니 더욱 열이 열불이 솟구쳤다.
“오프사이드 아닌 거 맞잖아! 그냥 뒤져, 이 쓰레기새끼야!”
“로만한테 뒷돈 처먹었냐!? 벌레 같은 놈!”
“주심, 부심! 니들 얼굴 딱 봐놨어! 집에 불나면 우리가 한줄 알아라!”
“니들이 그러고도 결승전 심판이냐!?”
우우우우우-!!
단체로 일어나서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대한 야유와 저주, 경멸을 퍼붓는 레드 데빌즈.
골키퍼와 거의 1대1 상황, 정말 훌륭한 득점 찬스를 얻었는데 그걸 한순간에 날려버리게 만든 주심, 부심에 대한 증오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특히 그 선수가 레드 데빌즈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인 크리스티안 호날두라면 더더욱!
아마 이들의 손에 총과 총알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주심, 부심을 일렬로 세워놓고 쏘았으리라!
“오심은 맨체스터의 전통이잖아, 이 얼간이들아!”
“본인들은 퍼기-타임으로 이득 볼 거 다 봐놓고 이제 와서 열을 내네!?”
“오프사이드 맞는데? 멍청한 Fucking-데빌즈 놈들!”
이럴 때 놀리지 않으면 경쟁 팀 팬들이 아니다.
마치 잘됐다는 듯 웃통을 벗어제끼며 웃고 떠들고 조롱하는 블루스들.
데빌즈들은 이를 갈면서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양 팀 팬들 간의 신경전과 갈등은 이미 선을 넘어섰다.
만약 경기장의 응원벽이 이들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분명 패싸움이 벌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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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보스가 자신의 전술대로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승은 없다고..."
로벤이 살짝 눈치 보면서 하는 말에 존 테리는 터치라인 바깥에서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랜트와 눈을 마주했다.
감독과 주장은 마치 기 싸움하듯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물러난 쪽은 존 테리였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감독은 감독이라 이건가? 뭐, 그가 그렇게 하자고 한다면 선수로서는 따라야겠지."
존 테리도 호날두의 매서운 돌파 시도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여기서 한 골 더 먹힌다면 첼시는 확실하게 무너진다.
모험을 하기에는 호날두가 너무 무서웠다.
우승을 위해 존 테리는 잠시 동안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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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가 다시 움츠러들며 ‘무한 수비 모드’에 들어서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말도 안 되는 오심 때문에 잔뜩 짜증난 맨유 선수들이었지만, 퍼거슨부터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선수들을 다독였는데 이들이 화를 참지 못해 날뛸 수는 없다.
맨유의 선수들은 다시 냉정한 자세로 경기에 임했고 덕분에 득점 찬스를 여럿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골은 나오지 않았다.
[루니의 롱 패스! 크리스티안 호날두에게 닿았습니다! 드리블 치면서 쭉쭉 나아가는 호날두! 어마어마한 전진 드리블이 마치 마라도나의 전성기 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전방의 테베즈에게 패스!]
[테베즈 슈팅! 와우-! 체흐가 또! 막아냅니다. 대단합니다, 페트르 체흐! 오늘 존 테리, 애슐리 콜과 함께 이 선수 혼자서 몇 개의 골을 막아내는지 모르겠군요!]
[비록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호날두의 스루 패스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카르발류와 마케렐레의 사이 빈 공간을 뚫고 정확하게 테베즈 발 앞에 들어가는 패스였죠.]
[슛을 쏘는 능력뿐만 아니라 찬스 메이킹까지도 대단히 능한 호날두 선수입니다. 예전부터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이 바로 이런 다재다능함을 갖췄었죠!]
[하지만 골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경기를 주도하는 것은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지만 첼시의 방패는 과연 유럽 최고입니다. 두 팀 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걸 맞는 클래스군요!]
과연 주제 무리뉴의 유산답게 첼시의 짠물 수비는 정말로 대단했다.
맨유의 공격진인 루니, 테베즈, 호날두는 세계 어느 클럽과 비교하더라도 첫 손에 꼽힐 만큼 막강한 공격진이었지만 첼시는 이들을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었다.
1:0으로 스코어 상 앞서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임하는 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팀은 첼시였다.
퍼거슨은 언제나 공수 균형을 중시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또 수비하는 형태의 경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는 그것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맨유 선수들은 세컨 볼을 더 효과적으로 따내기 위해서 포지션을 유기적으로 바꿨고 점점 수비 라인을 끌어올렸다.
이것은 점유율과 공세 유지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피지컬 위주의 팀이나 직관적인 공격 루트를 가진 팀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드록바 선수가 몸싸움 끝에 볼 경합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가로막는 맨유의 미드필더 선수들. 하지만 끝끝내 밀리지 않고 버티는 드록바! 대단한 피지컬입니다. 로벤이 가세합니다.]
[첼시 선수들은 공격수들까지 수비 능력이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윙어로서 수비 센스가 좋다고 평가받는 호날두 선수도 첼시 출신이죠. 괜히 유럽에서 가장 단단한 방패라고 평가받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첼시는 수비에 대한 일가견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공격이 그만큼 약하다는 상대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첼시는 빨리 만회골을 넣어야 합니다. 아! 말씀드린 순간, 아브람 그랜트 감독이 승부수를 던지는군요! 교체카드를 사용합니다.]
이 교체카드가 첼시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위대한 도전 - 1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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