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 2008 - 1 >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가 공동 개최하는 2008 유럽 선수권 대회가 개막했다.
지난 유로 대회의 우승팀인 포르투갈부터 시작해서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체코, 독일, 러시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총 14개의 나라와 개최국 자동 진출로 올라온 오스트리아, 스위스가 합쳐진 16개국이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
다.
유로 2008은 예선부터 영연방 4개의 협회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가 모두 떨어진 것으로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특히 잉글래드는 예선의 톱시드를 받고도 광탈하면서 '안습의 잉글랜드 국대 시절'의 문을 열었다...
앞으로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았기에, 그들의 행보에 미리 눈물을 흘려주기로 했다.
조별리그의 톱시드는 개최국인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유로 2004의 우승팀 포르투갈, 가장 높은 UEFA 계수를 가진 네덜란드가 차지했다.
그 다음 UEFA 계수에 따라서 포트2, 포트3, 포트4를 나누어 각 포트마다 하나의 국가를 추첨으로 뽑아 조별 리그를 치르는 하나의 조를 구성하게 된다.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B조에 배정되어 독일, 크로아티아, 폴란드와 같이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독일만 제외하면 당연히 다 이겨야 하는 나라들.
그런 포르투갈의 첫 상대는 바로 크로아티아다.
'그러고 보니 루카 모드리치가 크로아티아 선수였지.'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명단을 보고 호날두는 모드리치의 존재를 떠올렸다.
지금은 다나모 자그레브에서 뛰고 있지만 곧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서 자신의 진가를 내보일 모드리치.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날두와 같이 여러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되는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다.
모드리치 말고도 이반 라키티치도 있다.
이 재능 넘치는 선수는 훗날 바르셀로나로 이적, 절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비 에르난데스를 대체, 바르셀로나의 역사적인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한 선수가 된다.
두 선수는 훗날 반드시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로 성장할 테지만 아직은 포텐이 터지기 전.
특히 모드리치 같은 경우는 조르제-호날두의 에이전시 영입대상이기도 해서 호날두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외에 호날두의 눈에 띄는 선수는 없었고 상대전적이나 선수층 전력 등을 따져보아도 유로, 월드컵 챔피언인 포르투갈의 압도적인 우위.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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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익-!
포르투갈의 포메이션은 전형적인 4-3-3 .
역시나 측면 공격수 위치에서 가장 강력함을 발휘하는 호날두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전술이다.
뻐엉-!
누누의 롱 패스가 공간을 가르며 전방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그 궤적과 움직임을 잘 계산하던 호날두.
천천히 뛰다가 순간적으로 스퍼트를 올려 침투하며 공격 기회를 열었다.
환상적인 라인 브레이킹으로 크로아티아의 수비진들을 깨트리는 호날두.
관중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그의 움직임은 더욱 신속하고 날렵해졌다.
"젠장! 호날두를 잘 지켜보라고 했잖아!"
“부심! 이거 오프사이드!”
수비수들은 항의하거나 화낼 틈도 없이 호날두에게 달려들었다.
이젠 숫제 모든 팀들이 2~3명씩 개인마크를 붙일 정도로 그라운드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가 된 크리스티안 호날두.
만개한 그의 기량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대단해서 순식간에 크로아티아를 지옥문 근처까지 몰고 갔고, 상황의 위급함 때문에 다른 선수들도 그에게 수비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펠레, 마라도나 등이 그러했듯 크리스티안 호날두도 ‘전체’가 나서야만 막을 수 있는, 그런 반열에 오른 것이다.
무지막지한 돌파를 성공시킨 호날두의 슛은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빗나가며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심장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주 여러 번 뛰었으리라.
휘이이이익-!
“그레이트 플레이!”
“너는 역시 최고야, 크리스티안!”
“우리의 영웅! 우리의 보물!”
비록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포르투갈 관중들은 자신들의 영웅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쏟아냈다.
그들을 보며 호날두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 많이 어려울 것 같아.”
모드리치의 말에 라키티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은 호날두를 향해있었다.
“더욱 철저히 마크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라키티치와 모드리치의 모습이 보인다.
호날두는 이들에게 친히 '축구 교습'을 해줄 생각이었다.
둘 다 미래에나 탈 압박, 키 패스 장인으로 불리지 지금 호날두 앞에서는 꼬꼬마 친구들에 불과했다.
[깔끔하게 터지는 마르세유 턴! 왼쪽 발을 축으로 유려하게 움직이는 호날두 선수의 전용 개인기죠!]
[그대로 보고만 있는 라키티치와 모드리치! 두 선수를 체지고 그대로 돌파하는 호날두 선수입니다! 기회죠!]
[어떻게 이렇게 과도한 개인기를 남발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딱 쓰면서 기회를 창출하는지...!]
'역시 협력 수비를 털어버리는 데는 마르세유 턴 만한 기술이 없지.'
피지컬도 탄탄한 호날두는 개인기 도중, 밀치기나 태클이 들어와도 볼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호날두의 재차 돌파를 허용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 생긴 잠깐의 빈틈, 당황.
호날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먼 거리에서 바로 중거리 슛을 때렸다.
뻐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회전이 걸리지 않은 상태로 날아간 공은, 마치 UFO처럼 갑자기 휘어지면서 크로아티아 골키퍼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을 돌파했다.
경기시작 9분 만에 터진 포르투갈의 선제골이었다.
이예예예에에에에-!!
와아아아아아-!!
포르투갈의 자랑, 포르투갈의 영웅이 또 다시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었다.
피구로부터 새로이 주장완장을 받은 호날두를 향해서 포르투갈 축구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화와 같은 환호를 쏟아낸다.
포르투갈에서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거의 하나의 신앙처럼 되었고, 그 어떤 선수들과도 비교 불과할 정도로 커다란 지지를 받는 선수였다.
호날두는 머리 위에서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달려온 동료 선수들에게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니, 내가 돌파 할 때까지 왜 다들 보고만 있어? 와줘서 패스 플레이를 도와주던지, 아니면 오버래핑 해서 위치를 잡아주던지!"
"하하하! 이렇게 맡겨 놔도 네가 알아서 다 하는데 뭘~! 어쨌든 덕분에 좋은 그림 만들었잖아?"
호날두의 과거 팀 동료이자 지금은 절친한 국대 동료이기도 한 콰레스마가 넉살좋게 답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포르투갈로 돌아온 콰레스마는 포르투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피구 등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었다.
"어휴! 어쨌든 다들 잘들 합시다. 크로아티아, 폴란드는 몰라도 독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그때도 이런 식이면 힘들어요."
“알았어, 알았어!”
“주장님 화내기 전에 열심히 합시다-! 하하하!”
반쯤은 장난이 섞였지만 사실 방금 전에 상황에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어서 한 말이었다.
전성기 메시 시절,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메시에게 패스만 하고, 메시가 드리블로 상대 선수들을 다 뚫고 들어가 골 넣는 것을 구경만 하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솔직히 그 장면 보면서 아무리 메시가 대단해도 너무 놔두는 거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자신이 그 대상자가 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호날두였다.
어쨌거나 호날두를 중심으로 단단히 뭉친 포르투갈은 확실히 강했다.
후반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추가골을 만들어내며 2:0, 간단하게 크로아티아를 꺾고 1승을 새기는데 성공하는 포르투갈.
골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력은 ‘역시 우승후보!’ 소리를 들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산뜻한 출발입니다. 저희 팀은 이번에도 우승을 노립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차이를 만드는 선수. 반드시 우승해서 유종의 미 거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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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4일 후에 치러진 조별 리그 경기, 상대는 바로 폴란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도 없던 이 시절의 폴란드는 사실 크로아티아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상대였다.
선수진들 명단을 봐도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선수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깔끔하게 승리하며 2승, 승점 6점으로 8강 진출을 확정지은 포르투갈.
이제 그들의 상대는 바로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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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르투갈이 국제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우승 후보로 부각 받고, ‘최초의 메이저 대회 3연패’가 결코 불가능한 기록은 아니다 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스포츠 베팅 사이트나 여러 평론가들이 뽑는 유력 우승 후보팀은 따로 있었
다.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르스텐 프링스, 아르네 프리드리히, 옌스 레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립 람, 크리스토프 메첼더 등.
독일의 선발 라인업은 정말 상대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답이 안 나올 정도.
왜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팀이 독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준이다.
[...독일의 선수 명단 수준은 정말이지 '이건 너무하잖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군요! 우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의 원맨팀 소리를 듣고 있는 반면, 독일은 모든 포지션에서 약점이 없습니다. 밸런스도 아주 훌륭하고요.]
[신구의 조화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고 평가받고 있는 전차군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 언론지들이 독일을 우승 후보 꼽는 이유죠. 스페인도 정말 대단해보이지만 독일은 그 이상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독일이 크로아티아와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충분히 이변이라 할 만 하죠. 완벽해 보이는 독일도 약점이 없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호날두 선수가 강팀과의 경기에서 유독 강하다는 것은 여러 A매치와 클럽 대항전에서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포르투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호날두’ 입니다. 호날두 선수만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목을 풀면서 경기를 준비하는 호날두의 표정에는 분명 부담감이 새겨져있었다.
그만큼 독일과의 경기는 그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경기.
포르투갈은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그래도 이번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허투로 치를 수는 없었다.
토너먼트에서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한 독일을 떨어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원래 이번 대회 우승팀은 스페인이지.‘
무적함대 스페인은 유로 2008, 2010 월드컵, 유로 2012에서 모두 우승하며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를 해낸다.
하지만 호날두는 그걸 두고 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과 맞붙을 것이다.
독일을 떨어트리는 것도 그 과정 중에 하나.
훗날 앞길을 막을 강적 하나를 미리 치우는 것이다.
현재 유로 B조 상황은, 중위권들끼리의 8강 진출을 놓고 박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
포르투갈은 2전 2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독일은 크로아티아에게 비김으로써 2전 1승 1무, 크로아티아는 2전 1무 1패.
현재 폴란드가 2전 2패로 탈락 확정인 가운데, 만약 크로아티아가 폴란드를 이기고 독일이 포르투갈에게 진다면 골득실을 따져서 8강 진출 팀이 가려진다.
독일은 무조건 무승부 이상의 승부를 위해 죽기 살기로 이번 경기를 치를 것이 분명했다.
"페페! 나이스 태클!"
공만 정확히 따내는 깔끔한 태클로 포돌스키의 공을 쳐내는 페페.
우리가 아는 그 페페가 맞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정상급 센터백 페페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포르투갈 혈통이었고, 주전 경쟁이 편한 포르투갈로 귀화하여 포르투갈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귀화해서 해당국가의 대표팀을 뛰는 선수들이 적지 않지만 호날두 세대의 포르투갈은 페페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살짝 대표팀 내에서 텃새가 있는 편이지만 그의 실력을 알고 있는 호날두는 주장으로서 페페를 잘 챙겨주는 편이다.
경기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수인 것은 맞지만... 어쨌든 기량만큼은 확실한 선수니까.
"아까 수비는 정말 좋았어. 포돌스키가 아무것도 못한 채 공을 빼앗겼는데 네가 그 곳에 없었으면 분명 위험한 상황이 나왔을 거야."
"칭찬 정말 고마워, 크리스. 더 열심히 해볼게!"
"그래, 내가 볼 때 지금 독일은 눈이 돌아간 상태야. 선수들이 어떻게든 득점하기 위해 직선적으로 들이치지. 패스도 안정감이 떨어지는 스루 패스 위주로 계속하는 것을 보니 과도한 압박보다는 지역 방어 위주의 위치 선정이 더 나을 것 같아."
호날두의 전술적인 안목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많은 경기 영상들을 돌려본 경험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서 전술 이해도와 축구 지능 등은 동 나이 대는 당연하고 그 윗세대들보다도 낫다.
루이스 피구 같은 노장선수들도 호날두의 안목에 여러 번 감탄과 칭찬을 거듭했으니까.
페페는 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오케이. 히카르두에게는 내가 말해 둘게."
“그래주면 고맙지.”
페페의 말을 뒤로한 채 호날두는 독일 팀의 약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워낙 조직력과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팀이다 보니 도저히 틈이 없었고, 뭐라도 찔러보자는 심정에 일단 공을 잡고 무작정 드리블을 치거나 크로스나 스루 패스를 날리면서 수비 상황을 두드렸다.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며 호날두의 맞상대 역할을 맡은 필립 람이 그런 호날두조차 질릴 만큼 집요하게 따라 붙으면서 그를 귀찮게 했지만 말이다.
'딱 보니까 페이크 모션 같은 잔머리는 절대 안 통하겠고... 괜히 무리하게 드리블 치다가 공 뺏기고 턴 오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네. 아무래도 파울을 유도해서 프리킥 득점으로 꽂아 넣는 것이 제일 가능성 있겠는데?'
완고해보이기까지 한 필립 람의 표정을 보면서 호날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드록바 같은 선수가 있으면 크로스를 올려서 포스트 플레이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포르투갈의 국가대표의 원톱 자원은 언제나 아쉬운 수준이었기에 언감 생심.
일단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심판의 성향 파악을 통해서 파울의 정도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일 듯 싶었다.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차근차근 그것을 해나가는 호날두였다.
< 유로 2008 - 1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