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125)

< 유로 2008 - 5 >

포르투갈과 독일은 이미 서로에게 반드시 꺾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포르투갈에게 패배하여 탈락의 위기까지 겪었던 독일 관중들은 반드시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길 바라고 있었고, 과거 거의 천적 소리를 들을 만큼 독일에게 많이 졌던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서 그것에 대한 만회를 하고 싶었다. 

양 팀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응원 열기를 보였고 선수들 역시 최선을 다했다. 

경기 자체는 굉장히 다이나믹했다. 

서로에게 날카로운 역습을 허용하기도, 또는 선수 개인의 실수로 득점 기회를 내주기도 했다.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 들어가는 플레이는 없었지만, 모두들은 열정적으로 뛰었고 또 치열하게 부딪치며 맞섰다.  

자잘한 실수들의 눈에 띄었고 그것이 다른 선수들의 커버로 무마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수준 높은 축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반 15분 만에 양 팀 합쳐 슈팅이 7번이나 나왔을 정도로 공격의 템포가 빨랐다. 

독일과 포르투갈,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들 조금 천천히 플레이 하도록 해! 굳이 오버 페이스로 뛸 필요 없잖아!“ 

기초체력적인 측면에서 독일 선수들이 포르투갈 선수들보다 우수했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직선적인 경기를 이쪽에서 따라가는 것은, 결국 독일의 전략에 휘말리게 되는 셈이다. 

호날두는 살짝 흥분한 것으로 보이는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주장의 권한과 그의 영향력을 십분 사용하여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호날두의 대처가 먹혀들었는지 포르투갈 선수들의 빌드업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부드럽게 변했다. 

공을 잡은 프티는 침착하게 자신의 탈 압박 능력을 이용해서 전진했고, 굳이 모험을 하지 않으며 호날두에게 공을 넘겨줬다. 

살짝 빠지는 패스였지만 발등과 무릎을 이용한 트래핑 기술로 부드럽게 발밑에 안착시킨 호날두. 

그의 볼 컨트롤 기술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호날두가 공을 잡자 달라지는 공기, 분위기. 

독일 선수들의 표정에서 긴장감과 다급함이 감돌았다. 

자신을 크게 의식한다는 사실이 썩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살짝 미소를 짓는 호날두. 

상체 페인팅으로 람과의 심리 싸움에서 승리, 헛다리짚기로 메첼더를 제치는데 성공. 

몸의 균형이 잡히는 바로 그 순간, 강력한 슛을 때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공은 골대 구석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지만, 옌스 레만은 어려운 슛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호날두 선수가 공을 잡았습니다! 한 선수 제치고! 두 선수 제치고! 드리블 이후 바로 슈우웃! 아- 독일 골키퍼 옌스 레만이 막아냅니다. 아쉬운 순간.] 

[이야- 정말 아쉽네요. 골대 구석을 노려 차는 슛, 저 루트는 모든 골키퍼들이 가장 막기 까다로워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도 역시 ‘독일의 골키퍼’인가요? 그것을 막아냅니다.] 

[올리버 칸의 뒤를 이어서 독일의 수문장이 된 옌스 레만! 적이지만 대단한 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살짝 신체 밸런스가 흔들렸는데 그 순간에도 정확한 유효슈팅을 쏘아 보낸 호날두 선수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슛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모습, 전 세계에서 오직 호날두만이 가능한 슛이죠!] 

'아~ 그걸 막아내네. 완전히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공인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호날두. 

드리블 돌파부터 페인팅 모션까지 완벽했다.  

확실하게 노리고 찬, 득점을 확신할 수준의 정확한 슛인데 그걸 잡아낼 줄이야. 

적이지만 옌스 레만 같은 선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독일 선수들에게 자신을 상대로 함부로 뒷공간을 비워두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려준 호날두. 

이 위협적인 모습에 저들의 파상공세가 조금은 소극적으로 변하길, 그리고 그 시간동안 포르투갈 선수들이 몸과 정신을 추스르길 바라는 호날두였다. 

요아힘 뢰브 감독의 지시가 내려졌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기세는 살짝 잠잠해지고 서로가 눈치를 보는 탐색전이 시작했다. 

경기 초반에 있어야 할 조심스럽게 상대를 알아보는 상황이 중반에 나오고, 중반에 있어야 할 속공, 빠른 템포 역습 등이 초반에 나오는 희한한 축구, 희한한 경기. 

이전과는 색다른 경기 속에서 선수들도, 관중들도 완전히 몰입을 하며 뛰고, 지켜보았다. 

얼마 후. 

롤페스와 슈바인슈타이거 사이로 날카롭게 들어가는 패스 루트를 눈치 챈 호날두는 재빠르게 달려와서 그것을 끊었다. 

와아아아아-!! 

인상적인 플레이에 포르투갈 관중들이 다함께 함성을 질렀다. 

호날드의 마음을 읽었는지 때를 놓치지 않고 누누 고메스가 전방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고메스에게 '대지를 가르는' 킬 패스를 뿌려주는 호날두. 

단단한 독일 수비진의 조직력을 깨트리는 킬 패스는 호날두가 생각하시에도 상당히 괜찮게 들어간 공이었지만 그는 곧 인상을 찌푸리고 만다.  

이미 필립 람이 고메스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기 때문.  

도대체 언제 저기까지 간 것일까. 

어떻게든 드리블로 제치려는 고메스에게 속지 않고 기가 막힌 태클로, 몸끼리의 부딪힘조차 없이 공만을 쳐내는데 성공하는 람. 

고메스가 철퍽 넘어졌음에도 항의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태클이었다. 

‘와- 이걸 이런 식으로 막아?’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역시 대단한 선수다. 

[보싱와, 볼 잡았습니다! 오버래핑 합니다! 좋은 위치로 쭉쭉 파고드는 조제 보싱와!] 

[크로스 올렸습니다! 좋아요! 호날두에게...? 아니, 바로 시망에게로! 시망 슛! 아~ 아쉽게도 벗어나고 맙니다.] 

[뻥 뚫려있는 좋은 찬스였는데 아쉽네요. 조금만 더 침착했으면 선제골을 기록할 수 있었을 텐데...] 

호날두와 고메스의 공격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세는 이쪽으로 넘어왔다. 

잘 짜여진 팀플레이, 개개인의 유려한 테크닉 등은 바로 포르투갈 대표팀의 장기.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 물론 보는 사람 입장에서 재밌겠지만, 치르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승부보다는 확실히 꺾는 것이 좋은 게 당연지사. 

보싱와의 크로스가 자신이 받기에는 너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호날두는, 아예 손대지 않고 머리를 숙여서 반대편 시망에게 보내버렸다. 

독일 선수들이 호날두만 잔뜩 경계하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압박과 견제가 덜한 시망은 좋은 찬스, 정말 꿀맛 같은 찬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침착함이 결여된 그의 슛은 아쉽게 골대를 벗어났고 그것은 분명 독일에겐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아, 진짜... 잘 좀 차지, 좀!’ 

문전 앞, 확실한 찬스를 놓친 시망. 

내게 그 찬스가 왔으면 확실히, 100% 넣었을 텐데! 

원래 사람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 

호날두가 보기에 자신을 제외한 대표팀 선수들의 결정력은 많이 미흡했다. 

올라오려는 짜증을 참고 플레이에 집중하는 호날두. 

계속 몰아치다가 결국 골을 못 넣는 팀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고 있는 호날두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제골은 독일에게서 나오고 말았다. 

메첼더의 높은 크로스를 투박한 볼 터치로 용케 받아서 질주하는 루카스 포돌스키. 

그에게 페페와 보싱와가 따라붙어서 뒷문 수비를 해주었지만 이미 가속이 붙은 포돌스키는 굉장히 빨랐고, 또 노련했다. 

위기감을 느낀 스콜라리 감독이 고함을 질렀다. 

'젠장! 아예 패스 루트를 끊었어야 했었는데!' 

상황의 심각함을 느낀 호날두가 질주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측면을 타고 돌면서 골 에어리어 안쪽까지 깊숙한 패스를 찔러넣는 포돌스키. 

페페와 보싱와의 다리가 허공을 갈랐고, 볼은 그 사이로 휙 지나갔다. 

그것을 노리고 질주하여 강하게 공을 찬 선수는 바로 슈바인슈타이거. 

슈바인슈타이거가 기습적으로 찬 공은 히카르도가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출렁-! 

으아아아아-!!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슈바인슈타이거는 두 팔을 길게 내뻗고 질주하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삼색의 독일국기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한 골 정도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이러한 역전극을 수도 없이 많이 해냈고, 그것이 바로 호날두를 상징하는 스타성이기도, 많은 팀의 팬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포르투갈 선수들은 아니었다.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서의 실수와 실점, 그리고 완전히 균형이 깨진 분위기, 희비가 갈린 관중들까지. 

이 속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탄탄한 멘탈을 지닌 선수들은 프로의 세계에서도 극히 드물었고 이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긴장한 것이 눈에 보이는 프티가 과한 태클로 파울을 유발, 독일에게 프리킥을 내주었다. 

바로 슛을 때리기에는 먼 거리라고 자위할 수 있었지만 세컨 볼을 이어나가기에는 무서운 위치. 

슈바인슈타이거는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포르투갈의 골문 앞까지 공을 올려 보냈고, 그것을 미로슬로프 클로제가 헤딩으로 우겨넣으면서 골. 

2:0, 벌써 2점차로 앞서나가는 독일이었다. 

모두 조금만 침착했으면 막을 수 있는 실점이었다. 

"정신들 똑바로 차려! 전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부주장인 누누 고메스가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조차도 바짝 굳어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경기 전, 호날두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를 해준 고메스였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2점을 내줄 줄은 그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호날두는 굳은 표정으로 주먹만 꽉 쥐었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내가 해결해야 한다.' 

영웅이 되느냐, 역적이 되느냐의 극단적인 평가. 

한 팀의 에이스가 된 자로서의 피할 수 없는 숙명. 

이미 그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 호날두에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날두는 아무리 힘들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 역전해 낼 수 있는 선수가 바로 진정한 에이스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증명할 차례였다. 

"프티,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하지만, 크리스! 두 번째 골은 분명히 오프사이드였다고!"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어요. 심판에 대한 평가는 이 경기를 보고 있는 전 세계 축구팬들이 해줄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심판에게 항의하려는 것을 호날두는 엄한 표정으로 말렸다. 

솔직히 그 장면을 정확히 일직선상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항의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 그리고 선수들의 사기 측면에서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프티, 높은 크로스든 공간을 격하는 키 패스든, 일단 저에게 공을 몰아주세요. 아무래도 제가 해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언제나 우리의 해답은 너구나." 

원톱 스트라이커인 누누 고메스의 컨디션은 나빠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독일의 두 센터백들이 워낙 대단한 폼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번번이 막히는 중이다. 

일단 피지컬에서 이 둘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고메스.  

그렇다고 번득이는 테크닉으로 압박수비를 벗겨내는 유형의 선수도 아니다보니, 이번 경기에서 거의 지워지다시피 하고 있었다. 

        

호날두에게 임무를 부여받은 프티는 곧 정신을 차친 듯. 

역시 사람은 무언가 명확한 일거리가 생기면, 그것에 몰두하며 이전의 감정들을 잠시 잊는다. 

다른 선수들도 이와 같았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호날두조차 득점에 실패한다면... 그 실망은 바로 파멸로 이어질 것이다. 

그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이유이다. 

                                                                                       

호날두! 호날두! 호날두! 호날두! 호날두!! 

[전반 종료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포르투갈 관중 여러분은 모두 호날두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언가 해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모습입니다...! 이제 의지할 대상은 그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모든 포르투갈 국민들이 그것을 바라고 있을 거예요. 이 위대한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이 반드시 올 겁니다! 그는 바로 ‘크리스티안 호날두’이기 때문이죠!] 

[기다렸다는 듯이 호날두 선수에게 공이 옵니다! 높은 타점으로 받아내는 호날두! 가슴으로 트래핑! 질주합니다! 호날두의 질주입니다!] 

공과 발이 살짝 잘못 맞았는지 프티의 크로스는 측면보다는 중앙 지역에 가깝게 시도되었다.                                                                   

하지만 호날두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위치선정 능력과 높은 헤딩 타점, 그리고 독일 센터백들과의 몸싸움을 견뎌낼 수 있는 피지컬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 

                                      

'드록바의 포스트 플레이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있었지!' 

가슴으로 트래핑하며 공을 바로 앞에 떨어트린 호날두. 

하지만 이를 노리고 람의 태클이 들어왔고 메첼더와 메르테자커의 거친 몸싸움이 더해졌다. 

일단 등지고 공을 받으면서 메첼더, 메르테자커와의 몸싸움을 견뎌내는 호날두. 

이후 공을 공중으로 한 번 살짝 띄움으로써 람의 태클에서도 벗어났다. 

오오오오-! 

1~2초의 순간, 독일의 철통같은 수비진을 깨트리는데 성공한 호날두는 독일의 심장부로 들어섰다. 

분노한 람이 사자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쫓는 것을 확인, 마지막까지 한번 공을 위로 올려 람의 제공권 바깥에서 사정권을 둔 호날두는, 내려오는 공을 향해서 강하게 발리슛을 갈겼다! 

옌스 레만이 멍한 표정으로 반응조차 하기 힘든, 굉장한 골을 뽑아내는데 성공하는 호날두였다. 

                             

우와아아아아-!! 

                                                                                         

[크리스티안~~! 호나아알두우우우~~~!!]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기적의 만회골! 포르투갈 1천만 국민들이 기대하고 기대해왔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언제나 이 선수는 저희를 놀라게 합니다! 언제나 이 선수가 차이를 만듭니다! 이제 한 점 차, 따라붙었습니다! 희망이 느껴집니다!] 

[동점골은 아닙니다! 하지만 2:1의 스코어! 이제는 충분히 해볼 만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호날두 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중계진들의 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환상적인 골을 넣은 반동으로 이성을 상실한 호날두는,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호우-! 를 외치면서 이 미칠 듯한 짜릿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차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1점차지만 현재 상황은 분명히 포르투갈이 뒤지고 있다. 

몇 초의 시간이라도 더 아껴서 공격을 하지 못할망정, 단지 멋진 골을 넣었다고 좋아라하며 세레머니를 펼치다니! 

                                                                                                               

'젠장! 내가 이렇게 겉멋에 찌든 놈이었었나?' 

갑자기 엄청나게 쪽팔렸다.

< 유로 2008 - 5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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