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25)

< 종이 한 장 차이 - 3 >

"다들 나를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나한테 너무 밀어줄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플레이를 하세요. 기회가 생기면 내가 알아서 침투하고 결정지을 테니까." 

부상 이후 복귀전인 만큼 호날두는 동료들의 과한 배려를 받았다. 

하지만 슛을 찰 수 있는 위치임에도 자신에게 패스하는 동료들을 보며 호날두는 오히려 단호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남들은 안 밀어준다고 난리인데, 역시 크리스는 달라~“ 

“헙! 우리의 배려를 무시하는 거니, 크리스?" 

루니와 테베즈가 농담 삼아, 낄낄거리며 하는 말에도 호날두는 입 꼬리 하나 올리지 않았다. 

정색한 표정으로 루니와 테베즈를 번갈아 쳐다본 호날두의 입이 열렸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야. 나를 배려해주는 모습은 물론 고맙지만, 팀에 피해가 된다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프로 선수라면.“ 

“......” 

“그리고 나는 너희들의 그런 도움 없이도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어. 너희들의 방금 전 행동은 오히려 날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건 절대 아니야. 불쾌했다면 미안하지만...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오케이. 네 스탠스는 확실히 알겠어. 앞으로는 절대 돕지 않을게. 이러면 만족이지?” 

자신들의 배려가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은 것에 루니와 테베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호날두는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크리스, 진짜로 화난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다만 팀을 위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야.” 

“분위기 너무 빡세게 잡지 말자고. 네가 오기 전까지 맨유는 제대로 된 승리 한 번 못했거든. 쟤네들도 그만큼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큰 걸 거야.” 

“그러니까 더더욱 ‘승리’만을 향해 뛰어야지. 나를 밥을 떠먹여줘야 하는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고.” 

살짝 기분 상한 듯 보이는 루니, 테베즈와 호날두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동료들. 

하지만 호날두는 끝내 자신의 스탠스를 굽히지 않았다. 

이게 옳은 일이니까. 

열렬한 서포터인 롤 헤이스가 보기에 지난 1달 동안의 맨유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맨유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다. 

지난 시즌 정말 대단한 성공과 위대한 업적을 세우긴 했지만, 시즌 개막 이후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불가하다. 

정말 호날두가 없으면 안 되는 팀인가 하는 회의감도 들게 만든 1달이었다. 

[거의 세달 만에 경기를 치르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하지만 그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특히 드리블 돌파는 오히려 더 날카로워진 것 같은데요? 공을 차고 측면으로 돌면서도 오히려 상대 선수를 앞지르는 방금과 같

은 장면도 상당히 눈에 띄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내에서도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유명한 호날두 선수잖습니까? 축구는 몸이 아닌 머리로 한다는 말처럼 역시 그런 정신적인 측면이... 자, 호날두 선수가 공 잡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인기 있는 이 선수는 역시 특별했다. 

공을 잡자마자 상체페인팅에 라 크로게타까지 사용하며 가뿐히 볼튼의 수비수인 개빈 맥칸을 제쳤고 볼튼의 다른, 거친 수비수들과의 경합 속에서도 끝끝내 승리하여 드리블을 이어갔다. 

그토록 바라던 맨유의 화끈한 공격 전개가 호날두를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분명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운 맨유 팬들을 열광시킬 줄 아는 선수였다. 

[폭주기관차 같은 호날두 선수의 드리블! 거친 몸싸움에도 다 뚫어내고 전진합니다!] 

[정말 시원시원하게 돌파하네요!] 

[그대로 슛! 고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골키퍼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깔끔한 슛!] 

[개인 기량으로 돌파 이후에 판타스틱한 골! 이거야 말로 환상적인 복귀전이죠! 부상 후유증을 걱정하는 맨유 팬들 오늘은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우-! 

고유의 골 셀레브레이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이것은 이번 시즌 다시 가동할 득점포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바로 이게 우리가 기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역시 호날두야! 우리는 그가 없어선 절대로 안 돼!” 

“호날두 하나 있으니까 맨유의 공격이 완전히 달라졌네! 역시 G.O.D!” 

“으아아아-! 이게 얼마 만에 나온 선제골이냐!” 

롤 헤이스는 맨유의 서포터지만 호날두의 개인 팬은 아니었다. 

그래서 맨유를 무시하고 호날두만을 띄우는 사람들을 보며 불쾌감을 표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들과 섞여서 호날두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최고의 선수인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환상적인 선수일 줄이야!’ 

변함없는 호날두의 경기력을 보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냈다. 

여전히 호날두보다는 맨유가 좋은 게 사실이지만... 헤이스는 오늘 경기 때문에 왠지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응원할 맛이 있는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고도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경기를 쉬었던 한을 풀려는 것일까.  

호날두의 득점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반전 끝나기 2분 전에 찾아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트피스 찬스. 

코너킥 찬 공이 날아오르는 궤도를 정확히 예측했는지, 누구보다도 높게 그리고 정확하게 뛰어오른 호날두는, 공중 경합 속에서도 끝끝내 굉장한 헤더 골을 성공시키면서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이자 올 시즌 두 번째 골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레드 데빌즈의 붉은 열기가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적셨다. 

롤 헤이스는 다른 서포터들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호날두! 호날두! 호날두! 호날두!! 

올드 트래포드를 들뜨게 하는 그 이름. 

크리스티안 호날두였다. 

"이게 바로 우리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크리스티안! 넌 정말 최고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해!" 

“맨유에서 종신! 무조건 맨유에서 종신!” 

  

관중석을 스쳐지나가는 호날두를 향해서 레드 데빌즈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냈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어떤 여성은 브래지어도 차지 않은 가슴을 호날두 앞에서 확 까버리며 주목을 사기도 했다.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호날두에게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활력제. 

호날두는 그들을 향해 주먹을 꽉 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팀을 다시 리그 테이블 가장 앞자리로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쉬고 왔는데 공백도 없이 이렇게 날아다니는 녀석은 네가 처음일 거다. 인간이냐 진짜?" 

“다 같은 신의 피조물인데 왜 성능에서 차이가 이렇게 심한거야~!”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동안, 호날두는 루니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극히 단순한 테베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헤헤거리며 웃고 호날두와 어울렸지만, 루니는 아직도 경기 초반에 있었던 호날두와의 껄끄러움이 풀리지 않은 듯. 

‘하여간 터프하게 생겨가지고 속은 제일 좁아요!’ 

“웨인, 이제 그만 뚱한 표정 좀 풀어.” 

“...나중에 얘기하자고.” 

“나중에 언제? 쌓아두면 괜히 분위기만 더 어색해질 뿐이잖아. 나도 말이 너무 거칠게 나간 건 미안해.” 

“알았으니까 머리에 손 좀 떼라고...!” 

아직도 뚱해 있는 루니에게 호날두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아까 영감 표정 봤어? 우리가 말다툼 할 때 그는 물병을 내팽개치면서 노발대발했어. 이대로 라커룸에 들어간다면 경기에 100% 몰두해도 모자를 판에 의견다툼을 벌였다고 엄청 까이겠지?” 

“......”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솔직히 경기 잘 치렀는데 또 혼나긴 싫잖아?” 

결국 루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호날두와 포옹할 수밖에 없었다. 

호날두는 큭큭 거리면서 웃었고 퍼거슨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복귀전을 해트트릭으로 장식한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퍼거슨은 호날두에게 해트트릭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체력 관리라는 명목 하에 후반 65분, 박치성과 교체되어 나가는 호날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칠 만큼 호날두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호날두에게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수고했다라는 한마디만을 남기는 퍼거슨. 

애틋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아끼는 스승과 제자라는 언론의 이미지와 다른 삭막한 광경이었지만, 호날두는 지금 퍼거슨이 만족감을 억지로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기장의 선수들을 정말 끝까지 쪼려고 덤덤한 척 하고 있네. 하여간 더럽게 철두철미하다니까.’ 

괴짜이긴 했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 그래서 왠지 더 믿음이 가는 퍼거슨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드디어 올 시즌 리그의 첫 번째 승리를 가져갑니다! 슬로우 스타터인 레드 데빌즈가 불이 붙었습니다!] 

[트레블의 신화를 이룩했던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돌아왔습니다! 다른 팀들은 전부 바짝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교체로 들어온 박치성의 패스를 받은 루니가 멋지게 휘어지는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3:0,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 맨유. 

만족스러운 웃음꽃이 올드 트래포드에 가득, 활짝 피었다. 

이렇게 깔끔하고 승리는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스퍼트를 올린 맨유는 급격히 상승하리라.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오늘 경기를 지켜 본 사람들은 다시 맨유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보스." 

"왜?" 

"원래 은퇴할 생각 이었다면서요." 

푸흡-! 

물을 먹던 퍼거슨은 괴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쏟아냈다. 

날렵한 호날두는 잔해가 쏟아지기 전에 샥 피했다. 

덕분에 유니폼과 운동화는 무사할 수 있었다. 

"너, 그 소리는 또 어디서 들었냐?" 

"뭐 여기저기서... 그래서 그게 사실인가요?" 

“하여간 귀와 오지랖은 버킹엄 궁전만큼 넓구나, 쯧쯧.” 

호날두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여는 퍼거슨.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축구 감독은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일이고, 이제 나도 나이가 있어 그걸 견디는 게 버겁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곧 생각 바꿨다. 네놈이 나갈 때까지는 무조건 이곳에 있을 거야. 네놈이 주는 꿀, 열심히 빨면서 역대 최고 감독 

자리에 한 번 올라보자." 

자신을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감독으로 만들라는 퍼거슨의 ‘당당한’ 말에 호날두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웃어?” 

하늘같은 같은 감독님이 말하는데? 

갑자기 정색 때리는 퍼거슨 때문에 억지로 그것을 참아내는 호날두. 

“크흠... 제가 만약 이곳에서 종신한다면 어쩌실려고요? 축구 선수를 은퇴할 때까지 전 적어도 10년 이상은 뛸 건데, 그 때까지 감독하실 건가요?" 

“임마, 그건 당연하지!” 

“맙소사! 80살까지 감독하실 겁니까?” 

"안될 건 뭐가 있냐? 이제부터는 100세 시대인데. 네가 주는 꿀, 남김없이 빨아먹을 거다. 그리고 내가 선수빨 받은 감독이 아닌, 네놈이 감독빨 받은 선수로 만들 거다." 

껄껄거리면서 웃는 퍼거슨. 

뭐, 진담은 아닌 것 같지만 퍼거슨이 그렇게 오래 남는다면, 확실히 맨유에 있는 것도 좋은 선택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실패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래,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가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귀신이네, 귀신이야. 

"얼굴 표정에 다 드러난다, 이놈아! 언론들은 나보다 더 교활하고 집요할 텐데, 표정 관리 하나 못해서 이런 일 터지면 어떻게 견디려고. 쯧쯧... 다음 시즌에는 마드리드로 갈 생각이냐?" 

"음... 조금 고민 중이긴 합니다. 그 쪽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주급을 제시했기도 하고... 어머니가 레알 마드리드의 열렬한 팬이셔서요. 꼭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제 모습을 보고 싶다 하십니다." 

“어머님의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현재 호날두가 맨유에서 받고 있는 주급은 약 20만 파운드. 

하지만 부상에 대한 재활 치료 중이던 호날두에게 레알 마드리드는 무려 26만 파운드의 주급을 제안했다. 

이 시대에 주급 20만 파운드는 정말 엄청난 금액이었고, 호날두가 이런 주급으로 맨유에 이적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축구계를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지금도 압도적인 세계 최고의 주급이었는데 레알은 그보다 6만 파운드를 더 올린 것이다. 

정말 현실감각이 없는 금액이다. 

물론 아직 맨유를 떠날 생각이 없었던 호날두는 거부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언젠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을 생각이었다. 

"나는 너와의 약속을 꼭 지킬 거다. 네가 원한다면 어느 클럽이든 보내주겠다는 그 약속 말이야. 정 레알 마드리드로 가고 싶다면 보내는 주겠지만... 글쎄. 지금은 가지 않는 걸 추천한다." 

"그렇습니까?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네 커리어를 생각해봐라. 그 놈들, 회생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릴 거다. 쓸 데 없이 스타 선수들만 잔뜩 주워모으면서 오히려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니, 그 후유증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는 안 봐도 훤하지. 가는 순간 너는 개고생 확정이야. 

죽을 둥 살 둥 뛰면서 똥 치우는 기계가 될 거다. 

역시 퍼거슨의 안목. 

자신처럼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닌데, 레알 마드리드의 현 상황과 이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저도 16강 마드리드 소리나 듣고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리그나 챔스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보여야겠죠.“ 

"하지만 절대로 헐값에 팔아넘기지는 않을 거다. 구단 대 구단으로 만나서 정식 이적 제의도 하지 않은 채, 선수와 먼저 접촉하는 비열한 짓을 했겠다? 제 놈들이 가격대를 맞추지 못하면 이적은 꿈도 꾸지마라고 전해줘!" 

"물론이죠. 그들이 충분한 이적료를 내지 못한다면 제 이적도 없을 겁니다. 맨유에서 우승 트로피나 신나게 들죠, 뭐." 

"껄껄껄! 그거 듣기 좋은 소리구나. 암! 우승하기에는 레알보다 맨유가 낫지!" 

   

퍼거슨은 호날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웃었다.

< 종이 한 장 차이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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