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25)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1 >

"이야~ 오늘은 선발이 아니네?" 

"하아- 아수 에코토가 너무 잘해서 말이죠... 감독님이 저는 수비력이 부족하다고 선발명단에서 제외시켜버렸어요."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목표가 나라며?”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라운드로 지나가는 터널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호날두와 베일. 

토트넘의 현재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리그 15위다.) 다른 선수들은 완전 굳은 상태로 맨유 선수들과 짧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는데 가레스 베일만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중이다. 

토트넘의 고참 선수들이 눈치를 찌릿찌릿하면서 주는데도 베일의 입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팀 상황이 어떻건, 고참 선수들이 어떻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우상이라 해도 될 만한 호날두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는 것. 

나중에 래들리 킹에게 귀를 붙잡혀서 한 소리 듣기까지 한 베일이다. 

토트넘의 홈인 화이트 레인 스타디움에는 거의 빈 좌석이 보이지 않았다. 

만년 우승 후보에 지난 시즌 트레블의 기적까지 이뤄낸, EPL의 제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팀의 분위기가 최고조여도 이기기 힘든 상대를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만났다. 

이럴수록 결집하는 것은 서포터들. 

스퍼스(토트넘의 팬들)들은 경기 시작부터 열렬한 응원을 펼치면서 토트넘 선수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토트넘의 감독인 해리 레드납의 우묵한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 경기를 무조건 잡고 팀을 반등시켜야 했기에 사력을 다할 것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어!? 나 그거 알아! 어디서 들어봤는데.... 뭐였더라....?”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잖아.” 

“악! 거의 다 떠올렸는데 왜 말해, 크리스!” 

“네가 퍽이나 알고 있었겠냐.” 

언제나 그랬듯이 맨유 선수들 사이에서 욕 받이로 통하는 안데르손을 놀린 호날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적의와 경계 어린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오늘만큼은 절대 마음대로 날뛰지 못할 거다!’ 라며 엄포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 

첼시에서도 그렇고, 맨유에서도 그렇고. 

우승 경쟁 팀, 그 중에서도 에이스인 크리스티안 호날두 대한 견제와 압박은 유무형적으로 늘 있어왔다. 

그것을 견디는 자만이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 법. 

그리고 호날두는 언제나 그것을 극복해왔으며 오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삐익! 

경기가 시작한지 정확히 4분 25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토트넘 선수의 반칙으로 프리킥 찬스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키커로 나선 선수는 당연히 크리스티안 호날두. 

스퍼스들의 야유 소리는 더욱 더 커졌다. 

맨유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할 정도로 오늘 토트넘 팬들은 굉장히 극성이었다. 

토트넘의 뒷통수를 때리고 떠난 베르바토프보다도, 그것은 호날두에게 집중되었다. 

“개새끼야! 골 넣지 마! X새끼야! 골 넣지 마!” 

“크리스~! 너희 어머니가 바로 여기에 있네!? 골 선언 되면 바로 네 엄마 대갈통 후릴 줄 알아!” 

“어제 죽이는 클럽에서 네 와이프와 퍼킹했는데 궁금하지 않아, 크리스!?” 

온갖 저열한 욕설과 조롱 속에서도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욕하는 스퍼스들이 질릴 정도로 냉정했다. 

시끄러운 야유 속에서도 차분히 숨을 고른 호날두가 침착하게 공을 찼지만,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비껴 맞고 골라인 너머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아쉬움에 머리를 긁적이는 호날두에게, 스퍼스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비웃음을 쏟아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10cm 아니, 3cm만 공이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면... 

단체로 침을 꼴깍 삼켰다. 

“...Shit!" 

"방금 프리킥 거리, 34m 맞지? 그 거리에서 저렇게 정확한 슛이 나온다고?“  

“에우렐요 고메스(토트넘의 골키퍼)가 제대로 반응조차 못했어....” 

“맨유 상대 할 때는 절대로 프리킥을 내주지 말라고! 이 멍청이들아!!”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요행이라는 느낌이 주는 선수는 저 7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유일했다. 

토트넘에게 가장 위협적인 선수,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위협적인 공격을 주도했다. 

중앙선에서 볼을 배급받자마자 변칙적인 드리블을 치면서 전방으로 훅 치고 들어가는 호날두. 

화이트 레인 전체가 그에게 야유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특출난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토트넘의 서포터들은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어디 돌파 하나만 위협적인 선수인가? 

월드클래스 선수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능력,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플레이메이킹 역시 호날두는 아주 특별했다. 

맨유의 투톱으로 나온 베르바토프나 테베즈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주는 것은 언제나 호날두였고, 어쩔 때는 직접 중거리에서 위협적인 슛을 때렸다. 

슛 한번 한번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그때마다 토트넘 서포터들은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풀기를 반복해야 했다. 

[양 팀, 아직까지 득점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토트넘의 홈임에도 전체적으로 맨유가 경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는 역시 크리스티안 호날두이군요!] 

[그가 한번 번득일 때마다 토트넘 선수들과 서포터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이는 지 중계석에서 아주 잘 보이는군요! 호나우두 선수의 전성기가 대단하다 말들이 많았지만, 이 선수만큼이나 위력적이고 꾸준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대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그저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선수고요!] 

호날두가 한번 번득일 때마다 토트넘 선수들은 여지없이 제처졌고 수비라인은 허물어졌다. 

골대를 맞는 천운과 골키퍼 고메스의 신들린 선방 덕분에 아슬아슬한 0대0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토트넘 팬들은 수명이 짧아지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저 선수가 만약 우리 선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쉴 새 없이 호날두에게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토트넘 서포터들의 내면에는, 위대한 선수를 가진 맨유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숨어있었다. 

이 그라운드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그가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그렇다보니 크리스티안 호날두에게 토트넘 선수들의 반칙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주심! 이거 반칙! 반칙이야!" 

"반칙 아니야! 헐리웃 액션! 엄살 부리지마!" 

자기가 두 팔로 그냥 밀어놓고 헐리웃 액션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아수 에코토를 노려보자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시선을 피했다. 

아수 에코토가 헐리웃 액션이라며 선동(?)했지만 호날두는 정말 웬만해서는 헐리웃 액션을 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런 자신의 성향을 이제 알만한 심판들은 다 안다. 

그렇다보니 경합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주심도 호날두의 편을 들어 아수 에코토에게 구두 경고를 주었다. 

"휘익~ 저 놈들, 작정하고 네 다리를 노리고 있잖아?“ 

“조심하는 게 좋겠다, 크리스. 그러다 또 부상을 당할 수도...“ 

"날 이런 식으로라도 안 막으면 제대로 털린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거겠지. 걱정하지 마. 부상이 무서웠으면 축구선수 안했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결국 이런 시련도 극복해야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거다. 

또 다시 찾아온 프리킥 찬스. 

호날두는 이것을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프리킥을 차기 전, 호날두는 박치성에게 소곤거렸다. 

"치성, 나는 반대편 사이드에 있는 너에게 공이 가도록, 강하게 감아 찰 거야. 너는 그것을 받고 베르바토프나 테베즈, 둘 중 패스 주기 용이한 녀석에게 패스를 주도록 해." 

"오케이. 그 외의 상황은 내 임의대로 정하면 되지?" 

"응. 대신 원터치로 패스하지는 마. 오히려 투톱이 수비수들에게 견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니까. 둘 다 탈 압박이 좋은 스타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크리스, 너였으면 그냥 찔러 넣어줘도 알아서 다 했을 텐데.” 

“...아무튼 토트넘 선수들의 시선이, 공을 잡은 너에게 충분히 집중시킨 다음 패스를 날려." 

박치성 최고의 재능은 두 개의 심장이라는 체력도, 헌신적인 플레이와 엄격한 프로의식도 아닌, 축구 지능이라고 생각한다. 

박치성이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라 믿고 호날두는 약속된 플레이를 펼쳤다. 

뻥-! 

골문 정면 쪽으로 날아가는 가 싶더니, 공중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며 휘어지는 호날두의 프리킥. 

바나나 모양을 그리며 휘어진 슛은 정확히, 사이드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치성의 발밑에 떨어졌다. 

중계진이며 관중들이며 전부 호날두의 정확하고 감각적인 킥에 감탄하는 순간. 

공을 받아든 박치성은 살짝 헛다리짚기를 펼치면서 뚫어내려는 척 하다가 좋은 위치를 잡고 있는 테베즈에게 킬 패스를 뿌렸다. 

골문 앞, 명당자리. 

좋은 득점 기회에서 슛을 때린 테베즈. 

하지만 골키퍼의 놀라운 선방에 막히면서 이 기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오늘 토트넘의 골키퍼는 정말 날 잡았나보다. 

"괜찮아! 괜찮아! 좋은 시도였어! 바로 앞에서 막아낸 골키퍼가 미쳤던 거지." 

“환상적인 슛이었다, 테베즈....를 번역해줄래, 크리스?” 

“흐, 알았어요.” 

풀이 죽은 테베즈에게 동료들의 전언을 스페인어로 바꿔서 격려해주었다. 

여러 번의 득점 기회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맨유의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격언을 기억하며 호날두는 더 열심히 뛰었다. 

볼을 잡은 토트넘 선수들이 오랜만에 역습을 나선다. 

토트넘의 신성, 아론 레넌은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드리블 스킬을 이용하여 화끈하게 질주,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한 수를 준비한다. 

생쥐처럼 민첩하고 빠르게 맨유 선수들을 제치며 돌파하는 아론 레넌.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예전 스포르팅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호날두. 

피지컬적인 능력이 부족했던 과거의 호날두는 오직 속도만을 이용, 미꾸라지처럼 상대 진영을 휘젓는 선수였다. 

'꽤 빠른데? 하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 

속도로 자신을 제치려 하다니. 

호승심이 생긴 호날두는 발목과 무릎에 힘을 주었다. 

속도를 더 올렸다.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두 개의 그림자. 

달리고 달려 끝끝내 레넌의 속도를 따라잡은 호날두. 

“어딜 가려고? 안 되지!” 

화들짝 놀란 그가 공을 툭 차놓고 자신을 제치려고 하자, 호날두는 다리를 쭉 뻗는 깔끔한 태클로 공만 따내는데 성공했다. 

로벤과 리베리도 막았던 호날두다. 

속도전에서 레넌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미, 미친!” 

귀신 보듯이 쳐다보는 레넌.  

이럴 때마다 드는 우월감을 이제는 꽤 즐길 줄 알게 된 호날두는 그에게 한번 웃어주었다. 

그리고 마치 드리블 돌파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라는 식으로 제대로 시범 강의 들어갔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단독 질주, 순식간에 무려 45M를 주파한 호날두는, 베르바토프에게 정말 꿀이 덕지덕지 발라진 패스를 꽂아주었다. 

이걸 놓치면 바보, 병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완벽한 타이밍! 

그러나 귀족 같은 볼 터치의 백작 같은 이 선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소녀 슛을 쏘아 보내며 호날두를 비롯한 맨유 선수들, 맨유 서포터들, 퍼거슨 감독까지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스퍼스들이 그런 베르바토프를 미친 듯이 조롱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 

아까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달려줄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테베즈 때와는 달리 방금 전은 정말 1대1 단독찬스였고, 심지어 골키퍼 고메스는 호날두, 테베즈를 경계하느라 우측으로 치우쳐있기까지 했다. 

그냥 차도 들어가는 것을 소녀 슛으로 심지어 골키퍼 쪽으로.... 어휴, 진짜. 

베르바토프는 원래 토트넘 선수였지만, 그를 좋아하는 토트넘 팬들은 아예 없다. 

맨유의 관심에 태업성 플레이까지 하면서 아주 꼴사나운 이적 시위를 벌인 베르바토프. 

그 여파로 실수를 할 때마다 토트넘 팬들은 그를 놀리고 비웃으며 야유를 퍼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베르바토프의 멘탈이 그걸 견틸 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것. 

야유와 조롱이 심해질수록 베르바토프의 플레이는 점점 더 실망스러워졌다. 

심지어 그의 장기인 볼 터치에서도 어이없는 실수가 발생, 토트넘에게 공격권을 내주기까지... 

"디미타르! 정신 차려! 관중들 신경 쓰지 말고 네 플레이를 하란 말이야!" 

그의 뻘짓을 보다 못한 긱스가 호통을 쳤지만 별 효과는 없어보였다. 

좋은 찬스를 놓친 선수는 테베즈도 있지만, 이 때는 고메스의 선방이 미쳤던 거지 그가 못한 게 아니었다. 

또 테베즈는 맨유의 공격 전개를 위해서 많이 뛰고 많이 움직여서 실수를 만회하는 중.  

알다시피 베르바토프는 활동량도 좋지 못했고 몸싸움도 싫어했기에, 그 빈자리를 호날두를 비롯한 맨유의 다른 선수들 메워야 했다. 

그런데 결정력뿐만 아니라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그의 플레이 전체가 맨유 선수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니, 오늘 화이트 레인에서의 욕받이는 누가 봐도 크리스잖아? 크리스가 탱커 역할 제대로 해줬는데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퍼디난드의 말에 호날두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 내가 잘해야지... 내가 잘해야지! 젠장!' 

왜 미래의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레바뮌’ 같은 클럽에 몰리는지, 가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팀 동료가 똥싸는 건 정말 감당하기 싫다.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1 > 끝

ⓒ 아이시루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