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25)

< 투쟁의 시대 - 1 >

발롱도르와 올해의 선수상을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격차로 이 두 개의 상을 모두 수상한 호날두에 대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입방아를 찧진 않았다. 

다만 시상식에서 화제가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첫 번째는 기립박수. 

축구계의 내로라하는 전현직 선수들과 저명한 인사들이 모인 시상식 자리. 

그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온 몸에 소름이 쫙 돋게 만드는 그런 장엄함이 있었던 명장면. 

호날두의 위엄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 말대로 정말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는 대관식과 같은 분위기를, 실시간 중계로 시상식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두 번째는 호날두가 직접 말한 '제자'라는 단어였다. 

- 호날두에게 제자가 있었어? 그가 직접 축구를 가르쳐 준? 

- 호날두 : 축구 제자라고는 말 안했다.... 

 ㄴ 바보야. 호날두가 축구 말고 뭘 가르쳐주겠냐? 

 ㄴ 글쎄... 고양이 목욕시키는 법? 

- 문제는 그게 과연 누구냐는 거야!? 시상식에서 언급할 정도면 한번 봐준 정도가 아니라는 건데... 얘도 호날두처럼 천재려나? 

- 호날두가 완전 ‘크레이지’한 선수라는 것은 알겠지만... 좋은 선수가 꼭 좋은 감독이 되리란 법은 없는 것처럼 글쎄...  

- 호날두가 새싹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을까? 괜히 애한테 부담감만 주는 것은 아닌지. 

- 사서 걱정들 그만하자고! 분명 자기를 놀라게 한 뭔가를 봤기 때문에 그 누군지도 모를 X를 제자로 삼은 것일 테니까. 

- 제자보다는 후원자의 입장이 아닐까? 호날두가 저번에 집안 사정 때문에 축구를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인터뷰 한적 있었는데. 

 ㄴ 오호... 이게 제일 가능성 있는 말이네. 

- 근데 도대체 누굴까? 엄청 궁금하네. 

덕분에 지우는 난감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지우는, 11살임에도 불구하고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아 U-14 팀과 같이 뛰고 있다. 

맨유의 아카데미는 명문 팀의 부속 아카데미라는 자부심과 역사 때문인지 다른 클럽의 아카데미보다 유스 체계가 보수적이고 엄격한 편. 

때문에 정말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라면 월반을 잘 시키지 않는데, 지우는 무려 3살이나 많은 형들과 같이 뛰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자기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어린 지우도 알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지우는 자만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왔다. 

열심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끝까지 노력하고 있는 지우. 

그런 와중에 정신적인 지주이자 최고의 은인인 호날두가, 자신의 존재를 밝힌 것은 그의 뒷머리를 긁적이게 만들었다. 

"진짜 누굴까? 그 호날두의 제자라니... 분명 엄청난 천재겠지?" 

“어쩌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축구 황제 타이틀을 이어갈 재능을 가진 선수 인지도 몰라!” 

“와~ 그렇다면 완전 영화 같은 스토리인데?” 

"에이. 겨우 제자 있다는 한마디 한 것 가지고 다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 아니야?" 

"그럴 만 하니까 그런 거지! 제자라면 호날두가 직접 축구를 가르쳐주겠지? 세상에... 그런 위대한 선수의 축구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에게 축구를 배울 수만 있다면 난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아...!" 

"헤이, 정! 네 생각은 어때? 넌 호날두의 굉장한 팬이잖아." 

지우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그 본인이다라고 소리칠 용기는 그에겐 없었으니까. 

"뭘 물어봐? 호날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이라면 당장 짐 싸고 뛰어가겠지." 

"그... 그렇긴 하죠. 뭐. 히히..." 

"아니야, 정이라면 그럴 시간에 훈련이나 더 받으려고 안간힘을 쓸 거야. 우리 중에서도 알아주는 훈련 중독자이잖아." 

“맞아, 맞아. 호날두랑 똑같은 연쇄훈련마지.” 

지우는 이들 사이에서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고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멘탈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지우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참 약했다. 

"오늘 하루도 빡세게 훈련했으니 몸이 비명을 질러댈 거야. 내일 모레까지 푹 쉬고, 부모님이 만들어준 음식 남기지 말고, 주말 잘 보내서 월요일에 다시 만나자. 자! 모두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싸~ 집에 간다!” 

“야호!” 

오늘의 훈련을 끝낸 지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남아서 따로 개인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지우를 보며 몇몇 아카데미 학우들은 질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또 남아서 훈련이야, 정?” 

“하아~ 이 환상적인 금요일에도 정의 일관성은 그대로네.” 

지우는 말없이 웃었다. 

남아서 따로 꼭 추가 훈련을 받고 가는 것.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부터 시작한 지우의 버릇이다. 

지우는 호날두나 코치에게 개인 교습만을 받아서 팀플레이가 조금 서툴렀고 또한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작아 피지컬도 약했다. 

그 외에도 지우가 이곳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쳐나가야 할 점들이 있었지만, 첫 시작은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텃새였다.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력으로 학우들에게, 코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나날들, 이들은 모를 거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훈련을 지금은 하루하루 실력 느는 재미에 멈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축구화 끈을 다시 단단히 묶고, 추가 훈련을 위해 일어나려는 지우.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흰 얼굴에 갈색 머리의 학우. 

주근깨가 난 얼굴이 인상적인 존이었다. 

"아, 존! 무슨 일이에요?." 

"음... 이걸 말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었는데... 그..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저께... 그걸 봤는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인 치성 팍과 네가 그, 그라운드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말이야...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응? 언제부터?"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맨유의 트레이닝 센터와 이곳 아카데미가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박치성은 가끔 와서 지우를 봐주면서 교정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 농담 식으로 호날두 버리고 자기한테 오라고 할 정도로 친해졌는데.  

어쨌거나 박치성과 같이 축구하는 장면을 존이 본 모양. 

그래도 자신이 소문의 그 제자라는 것이 들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박치성 선수는 저와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죠." 

"아, 그랬었구나! 완전 부럽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EPL 최고의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하늘 위의 하늘, 동경의 대상. 

금세 존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나, 나도 치성 팍 선수와 한번..." 

"어! 코치님이 부르신다! 헤... 죄송해요. 개인 트레이닝 시간이 되서..." 

치사하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우는 애써 무시하고 그대로 달렸다. 

영원한 우상인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물론이고 박치성도 절대 다른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지우에게 아주 소중했으니까. 

"후... 아무래도 들킬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쩝, 주목받는 것은 싫지만 어쩔 수 없네. 이럴수록 더 열심히 훈련 받아야지!" 

자신의 우상이자 은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는 것이 지우의 최종 목표. 

언론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해도 이 최종적인 목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꼭 그와 같은 무대에서, 그라운드에서 뛰어보고 싶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지우. 

그의 꿈이 정말로 실현될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지우의 노력과 인내는 그의 우상인 누군가를 정말 쏙 빼닮아 있었다. 

=== 

연례행사처럼 2008년 필름 투자회사인 '미론도'의 투자 실적에 대한 보고서를 받게 된 크리스티안 호날두. 

분기별로 받던 보고를 연말에 몰아서 한 번에 받는 것으로 바꿨는데 뭐, 좋았다. 

오히려 알아보기 더 편해졌고 눈에도 쏙쏙 잘 들어왔다. 

흥행 순위부터 실질적인 수입까지 쭉 나열된 것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호날두. 

작년 한해도 참 풍년이었다. 

영화이름(투자금액, 수익) 

<다크 나이트> (5000만 달러, 1억 4150만 달러)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2000만 달러, 4500만 달러) 

<쿵푸 팬더> (2000만 달러, 5400만 달러) 

<핸콕> (1600만 달러, 3200만 달러) 

<맘마미아!> (1200만 달러, 7200만 달러) 

<마다가스카2> (1100만 달러, 2200만 달러) 

<007 퀸텀 오브 솔러스> (1000만 달러, 1700만 달러) 

<아이언맨> (3300만 달러, 7090만 달러) 

<월-E> (1100만 달러, 1900만 달러) 

...중략... 

<007 퀸텀 오브 솔러스>처럼 거의 본전치기 수준의 낮은 수입을 거둔 영화도 있었지만,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고 또 많은 수익을 냈다. 

또한 확실한 흥행 보장이 있어서(그리고 호날두의 사심도...) 최대한 많은 투자를 감행했던 <다크 나이트>가 역시나 대박을 치면서 흥행가도를 달렸고, <아이언맨>도 기대 이상의 쏠쏠한 수익을 남기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문을 열게 되었다. 

진짜 의외는 <맘마미아!>였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예전부터 많이 들어 본 영화였기에 일단 낯이 익었고, 미론도의 유능한 직원들의 평도 좋아서 일단 투자를 감행했는데, 그게 올 한해 제작비 대비 가장 굉장한 흥행을 해낸 영화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이 굉장히 좋아했다는 후문을 마이클 홀랜드는 덧붙였다. 

이제는 거의 돈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갑부가 된 호날두지만, 자신이 좋아했던 유명 영화들과 이렇게 미처 알지 못한 명화들을 투자하는 ‘재미’에 눈 뜬 호날두는, 이제 이 행위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 외에 자잘한 영화들도 쏠쏠한 성공을 거뒀으며 덕분에 ‘미론도’가 세워지고 최초로 한해 3억 달러 고지를 넘어서게 됐다. 

매출이 아니다. 

투자금과 인건비까지 제외한 ‘순수익’만 3억 달러를 넘었다는 뜻이다. 

“투자할 돈이 없어서 런던 은행에 빌려, 발품 팔아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1년에 수억 달러를 버는 투자자가 되었구나. 참 격세지감이야.” 

하지만 미론도에 대한 보고 중에는 좋은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의 총 수익 상승률은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미론도가 세워진 이래 기록한 가장 낮은 수치의 연년 성장률이었다. 

실제로 미론도의 성장은 서서히 정체되고 있는 추세였다. 

"이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겠지. 할리우드도 바보가 아니니까." 

만들어진지 몇 년 채 되지도 않은, 정체 불분명한 필름 투자회사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래의 흥행 영화들을 꿰고 있는 호날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과연 그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굉장한 주목을 받는 것이 당연했고 경쟁이 붙고 견제가 심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또 정말 성공이 보장된 영화, 무조건 대박칠 것 같은 영화는 다른 투자회사들이나 배급사에서도 모를 리가 없는 법. 

일단 배급사 몫으로 상당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제작비와 홍보비를 제외한 몫을 미론도는 다른 투자회사들과 나눠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래 예지 가깝게 흥행 영화를 때려 맞춘다 해도, 수익 창출의 한계점은 반드시 생기게 된다. 

실제로도 다크 나이트나 아이언맨 같은 경우, 위 내역서에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투자를 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배급사를 차리지 않는 이상 이 이상의 수익은 무리라고 마이클이 말했었나. 그렇다고 배급사를 인수할 수는 없으니 아쉽긴 하네." 

                                           

몇 년 사이 '미론도'는 다른 투자회사들에게 질투의 대상이자 공공의 적, 그리고 무조건 따라붙어야 하는 회사가 되었다. 

마이클 홀랜드가 아무리 은밀하게 제작사와 배급사에게 접촉하여 거래한다 해도, 눈치를 깐 사람들은 반드시 속출했고 결국 경쟁이 따라 붙는다. 

미론도가 찍은 영화는 반드시 다른 투자가 쏠리고 결국 나눠야 할 파이는 작아진다. 

미론도의 성장은 앞으로도 ‘멈추지는’ 않겠지만 이전처럼 기록적인 수익 증가율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마이클 홀랜드가 직접 덧붙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1년에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어디 있겠나. 

그저 옛 영화들이 자신이 투자함으로써 재탄생된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돈은 이제 충분하니까. 

                                                                                                               

그 외에도 호날두는 마이클 홀랜드로부터 2009년에 개봉될 예정인 영화들의 목록까지 전해 받았다. 

퍼거슨이 주도한 ‘공포의 합숙 훈련’도 끝났겠다 다음 경기일까지 스케줄이 널널했던 호날두는 영화 목록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홀랜드가 보내준 보고서에는 개봉 예정 영화의 제목과 촬영 감독, 출연 예정인 배우들, 개략적인 시놉시스와 줄거리, 어떤 영화는 아예 시나리오가 통째로 들어있기도 했다. 

시나리오까지 보낸 영화는 그만큼 투자금이 절박한 영화겠지. 

일단 영화제목 목록부터 쭉 훑어본 호날두는 마지막에 있는 영화 이름을 보고 전율에 휩싸였다. 

                                                                                                        

아바타(Avatar) - 제임스 카메론 

                                                                                                                

전 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1위에 빛나는 전설적인 영화. 

3D 영화의 시작이며, 최초이자 최고의 사례로 남아, ‘영상 혁명’까지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투쟁의 시대 - 1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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