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의 시대 - 6 >
그의 의지를 읽은 동료 선수들이 있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공을 몰고 오버래핑하자마자 그 빈자리를 바로 메우는 박치성.
탈 압박 능력이 뛰어난 호날두가 턴 오버 당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마저도 막기 위해서였고, 이는 호날두가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호날두와 박치성 사이에는 통하는 것이 있었다.
툭, 툭, 툭, 툭.
대런 플레쳐와의 2대1 패스 플레이로 인테르의 압박을 뚫어내고 다시 전진한다.
산톤과 캄비아소의 거친 몸싸움에도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았다.
상체 페인팅과 이어지는 빠른 턴, 발 기술을 이용한 날쌘 드리블.
뚫렸다!
마치 시종일관 몰아쳐도 틈을 내보이지 않던 인테르의 수비를 뚫어내는 호날두였다.
중계진들이 고함을 질렀고, 맨유와 인테르 팬들의 희비가 엇갈린 순간.
하비에르 자네티.
그가 용감한 기사처럼 호날두를 가로막았다.
“나를 넘어야 할 거다.”
“각오했던 일이야.”
자네티와 박투를 벌이는 호날두.
공을 차지하기 위한 두 선수의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은 축구 경기가 팀 게임이라는 것을 잠시 동안 잊게 만들만큼 치열했고 시선을 잡아끌었다.
먼저 실리를 택한 쪽은 호날두였다.
노련한 수비수, 자네티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 둘의 백업해주는 선수들의 생각의 자유도는 맨유 쪽이 좋았다.
그것이 결국 판세를 갈랐다.
라이언 긱스가 보내는 수신호를 캐치한 호날두는, 자네티에게 승부를 걸 듯 모션을 취하면서, 오히려 긱스 쪽으로 공을 흘렸다.
자네티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인테르 선수들의 시선이 긱스에게 옮겨졌지만... 이것은 약속된 플레이.
긱스와 호날두는 이미 눈을 맞추었고 시그널을 주고받았으며 약속한 타이밍에 바로 반응했다.
툭, 툭, 툭!
한 차례 슛 페인팅 모션으로 인테르 수비진들을 움찔거리게 만든 긱스.
그는 공을 오래 끌지 않고 좋은 위치로 침투하는 호날두에게 바로 패스했다.
긱스의 노련미와 호날두의 위치선정, 순간돌파능력이 더해진 한 수.
공중으로 뜬 공과 그 궤적을 머릿속으로 정확히 그리고 있던 호날두는.
자네티, 캄비아소 등의 물리적인 방해를 뚫고 몸을 띄워 다이렉트 발리슛을 갈겼다.
정확하게 발등에 얻어맞는 느낌이 호날두의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이 느낌이 들 때, 그는 슛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뻐엉-!
호날두가 찬 공은 인테르의 골대 안쪽으로 정확하게 빨려들어갔다.
골이었다.
우와아아아-!!
한 폭의 그림 같은 골.
작렬하는 맨유 원정 팬들의 함성이 쏟아졌고 기쁨에 겨운 맨유 선수들이 고함을 치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이런 득점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호날두는 그저 귀에 손을 올려놓았다.
더 크게, 더 강렬하게 소리쳐 달라.
아직은 환호가 작다!
그런 호날두의 퍼포먼스에 더욱더 맹렬히 소리를 높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원정 팬들.
이 순간만큼은 여기는 네라주리의 경기장이 아닌, 제 2의 올드 트래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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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스코어의 균형을 깨는 ‘한방’이 터진 이후 양측에서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호날두의 멋진 발리슛 득점으로 인테르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였기 때문에 단순한 승리보다는 우월한 득실차에 의한 승리가 더 고팠지만, 세리에 A에서 가장 잘나가는 팀을 상대로 원정경기에서 득점, 무실점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주제 무리뉴, '우리는 단지 1차전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을 뿐이다. 승부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주제 무리뉴, ‘내가 첼시에 있을 때, 맨유와의 상대전적에서 뒤쳐져 본 적이 없다. 아직 우리들의 챔스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리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감 넘치게, 또는 뻔뻔스럽게 인테르를 응원하는 팬들과 선수들을 격려했다.
과거 매일같이 불꽃을 튀었던 퍼거슨과 무리뉴의 신경전이 다시 발발하나 싶었는데 퍼거슨이 응대를 하지 않음으로써 두 감독간의 언론전은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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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인테르와 맨유의 16강 2차전이 있는 날.
원정경기에서 골을 넣었던 만큼 맨유는 인테르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였기에, 퍼거슨은 수비적인 전술을 들고 나와도 충분히 8강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면 퍼거슨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공격을 종용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시즌 챔피언이며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역사적인 팀이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생각은 없어. 모두들 쉬쉬하고 있긴 하지만 내 목표는 지난 시즌과 같다.“
꿀꺽.
퍼거슨이 당당히 트레블을 언급하자 맨유 선수들은 침을 삼켰다.
맨유는 풀햄을 꺾고 FA컵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리그마저 1위를 달리고 있으니 트레블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지만...
2년 연속 트레블이라니...
“왜? 못할 것 같나? 쯧쯧... 야망도 없는 자식들... 최고가 되려면 아예 ‘압도적으로’ 최고가 되는 게 낫지!”
“......”
“이번 시즌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우리 식의 화끈한 축구를 보여줘라. 우리가 챔피언의 왕좌에 다시 한 번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이 경기에서 보여줘! 승리는 이미 너희 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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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의 기합에는 분명 맨유 선수들의 기량을 한층 진일보 시켜주는 무언가가 있음이 틀림없다.
괜히 닳아빠진 스쿼드를 이끌고도 은퇴 직전 시즌까지 끝끝내 리그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니듯.
퍼거슨은 단지 터치라인 바깥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맨유 선수들에게 무한한 버프를 걸어주는 존재였다.
경기 시작 4분 만에 네마냐 비디치의 헤딩골이 나왔고 전반전 끝나기 직전,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프리킥 골로 사실상 인테르와의 16강전을 끝내버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무리 현재 맨유가 대단하다지만 그 무리뉴와 인테르인데...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평론가들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압도적인 경기력.
퍼거슨은 호날두를 비롯한 핵심 선수들을 교체하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무리뉴와 인테르를 농락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주제 무리뉴.
이번 대결은 무리뉴의 완벽한 패배였다.
삑-! 삐이익-!
이로써 맨유는 8강에 진출,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컵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축제 분위기로 변해버린 올드 트래포드.
한 목소리, 한 마음으로 맨유의 응원가를 부르는 이들을 보면 경기에 대한 보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승부욕의 화신, 주제 무리뉴의 표정은 무시무시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유해지는 무리뉴지만 지금은 핏발이 아주 성성할 시기.
호날두는 이를 갈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위로할 수 없었다.
절망하고 있는 인테르의 서포터들의 모습도 보였다.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는 주제 무리뉴까지 데려와서 챔피언스 리그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지만, 3년 연속 16강 탈락이라는 오명만 남기게 된 이들의 심정은 참담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지지.'
물론 호날두, 자신이 있는 맨유를 또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 VS 0 인테르
맨유,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발 한발.
정상을 지키기 위한 맨유의 움직임은 굳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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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의 이긴 경기라도 해도 역전에 대한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분 내에 3골을 넣어 역전한 경기가 실제로 없는 것도 아니고, 무리뉴의 인테르라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는 팀.
그러나 맨유는 경기 종료를 무려 25분이나 남겨 둔 상황에서 핵심 선수인 호날두를 교체했고 다른 주요 선수들도 줄줄이 교체해버렸는데, 이것은 안정을 추구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맨유의 다음 경기 상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으리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원한 숙적, 리버풀.
호날두가 빠진 작년 9월의 맨유는, 이 숙적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리그 순위에서 역전을 함으로써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었지만,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레드 데빌즈들은 콥들의 온갖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내야 했다.
레드 데빌즈들은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고, 갚아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중이다.
리버풀과의 승점차이가 꽤 있었지만 그렇다고 ‘리버풀 전을 설렁설렁 뛰어도 된다!’ 라며 떠들고 다니는 맨유 선수가 만약 있다면... 아마 반드시 피의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
당연히 맨유 팬들에 의해서.
심지어 만약 이틀 후에 있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리그 우승을 하더라도 실패한 시즌일 것이다 라는 글들이 맨유 팬 포럼에 올라올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다른 경기 다 져도, 이 경기만큼은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달링, 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특별한 선물이 왔어~ 내일 모레에 있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꼭' 와주길 바란다면서 VIP 좌석의 티켓을 보냈더라고. 레오도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겠지?"
"하...! 결국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만."
"응?"
"아니, 아니야. 왠 재수 없는 영감의 얼굴이 떠올라서."
부진했던 호날두가 단지 가족이 이곳에 와있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펄펄 날았고 경기를 뒤집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퍼거슨이 이걸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지.
케슬린과 레오를 부른다는 것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호날두에게 배수의 진을 치라는 의미였다.
하여튼 이 영감탱이 잔머리 하나는 진짜 끝내준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달링~! 축구 선수 와이프가 언제까지 경기장에 안갈 수 있겠어? 레오도 아빠가 뛰는 모습을 꼭 실물로 보고 싶을 거야."
"그래도 거기는 완전 짐승들 밖에 없다고. 만약 흥분한 상대팀 팬들이 자기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이게 바로 호날두가 케슬린과 레오를 경기장에 오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였다.
심지어 케슬린은 호날두 때문에 잉글랜드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모델이었고, 수많은 파파라치들 덕분에(?) 아들 레오의 얼굴도 상당히 많이 팔린 편이다.
과거에 비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영국 훌리건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악랄한지 알고 있는 호날두로써는 걱정이 앞섰다.
"일반 좌석과는 완전히 분리된 VIP석이라고 하니까 괜찮을 거야~ 안전요원들도 원하면 붙여준다고 했으니까.“
“...글쎄... 썩 믿음이 안 가는데.”
“뭣하면 경호원들을 고용하면 되지."
케슬린은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호날두에게는 제법 솔깃하게 들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경호 업체를 부르는 호날두.
특공무술을 마스터한 일급 경호원들을 줄줄이 세워놔야 조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오! 엄마랑 같이 외출할까요?"
"어디로 가요, 엄마~?"
"아이, 귀여워라~ 아빠 뛰는 거 같이 보러가자! TV 속의 축구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거야!"
와, 신난다! 하면서 제자리에서 아장아장 뛰는 레오.
엄마를 닮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 머리와 흰 피부를 가진 레오카주는, 호날두 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 전부가 사랑하는 천사였다.
귀여운 아들의 모습에 헤벌쭉한 표정으로 레오의 손을 조물조물 만지는 호날두를 보면서 케슬린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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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호업체에 의뢰했다.
최고의 경호원들, 최고의 대우까지 맞추자 돈을 너무 물 쓰듯이 한다며 케슬린의 잔소리를 들었지만, 이런 씀씀이에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될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호날두는 간단히 무시했다.
경호원들과 꼭 붙어 다니라고 케슬린에게 신신당부까지 마치는 호날두.
과보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불안감이 들었지만 어린 망아지처럼 좋아하는 아내와 오동통한 두 손으로 연신 박수를 치는 아들을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누구 와이프, 누구 아들인지 몰라도 걔는 정말 복 받았다.
"달링, 힘내! 레오, 아빠에게 응원해야지."
"아빠 달려~"
치명적인 귀여움을 이기지 못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꼭 껴안아주고 버스에 오르는 호날두.
먼저 맨체스터의 구단 버스에 타고 있던 동료들이 짓궂은 휘파람을 불어대며 마지막에 탄 호날두를 반겼다.
"와, 네 와이프, 실물로 보니까 엄청엄청 예쁘다! 사진보다 훨씬 예뻐!"
“여신이다... 여신이야... 어억...!”
"호날두 놈... 우리가 클럽가자고 아무리 꼬셔도 절대 안 넘어가는 이유가 있었어! 이 배신자! 이제부터 어디 껴주나 봐라!"
뭐가 배신자냐.
침까지 떨어트리는 테베즈와 헛소리 해대는 루니를 가볍게 무시하면서 짐을 실은 호날두.
맨유 선수들의 뻘소리에는 면역이 됐기에 간단히 씹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 긱스가 한 말은 도무지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크리스, 음... 와이프가 굉장히 아름다운데 나이가 어떻게...?"
"...저보다 한살 어려요."
"내 조카뻘이네~ 아일랜드 모델이라고 했지? 정말 멋진 여성이야."
"미안한데 라이언, 그런 말은 자제부탁해요."
"하하하, 알았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남의 와이프를 품평하는 것은 아무리 농담이라도 기분 나쁜 일이 분명하지만... 긱스에게는 불쾌감보다는 다른 느낌이 먼저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건실하고 가정적인 남자로 알고 있는데 ‘진실’을 알고 있는 호날두는 끝까지 경계를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 투쟁의 시대 -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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