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의 시대 - 7 >
뉴캐슬까지 잡아내면서 아스날의 14연승과 동률의 기록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EPL 십 수 년 역사동안 수많은 강팀과 우승팀들이 있었지만, 오직 아스날만이 그 주인공이었던 무패 우승과 프리미어 리그 14연승.
그 한 자리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이 공유하게 된 것은,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맨유 팬들에게 더없이 기쁜 일이 되었다.
지난 시즌의 트레블에 이어서 이번 시즌의 굉장한 상승세까지.
요즘 레드 데빌즈들은 정말 살 맛 나는 중이다.
현재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른 팀에게 3번, 아니 10번을 지더라도 서로에게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
절대 이 팀이 잘되는 꼴만큼은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노스-웨스트 더비는 EPL 최고의 더비라 할만 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더비전답게, 경기를 앞둔 양 팀 감독들끼리의 신경전도 장난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사이가 나쁜 감독들, 입에 칼을 들고 상대에게 사정없이 휘둘러댔다.
[알렉스 퍼거슨, '라이벌 전을 앞두고 심정이 어떠냐고? 똑같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을뿐더러 나는 당신의 말이 틀렸기에 정정해주고 싶다. 리버풀은 더 이상 우리의 라이벌이 아니다. 단지 밟고 일어서야 할 대상에 불과하지.']
[라파엘 베니테즈,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클럽이다. 올 시즌 나와 선수들은 분명 가능성을 보았고, 충분히 맨유의 심장에 리버풀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첼시다. 리버풀은 어차피 내려갈 클럽이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베니테즈?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기억도 안날 정도로 무색무취 희미한 전술을 쓰는 그 사내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 마디로 끝내
겠다. 그는 삼류다.']
[라파엘 베니테즈, '알렉스 퍼거슨은 작년 9월에 있었던 경기를 벌써 잊었나보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던 그는 우리 리버풀에게 아주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너무 늙었다. 이제 감독직은 내려놓고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
퍼거슨과 무리뉴는 치열하게 언론전을 벌이면서도 사적으로는 친한 쇼윈도 부부 같은 느낌이었고, 퍼거슨과 벵거는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의 능력만큼은 인정하면서 이젠 미운 정이 든 것인지 디스도 자주 안했다.
하지만 퍼거슨과 베니테즈는 '진짜'였다.
이 둘은 싫어한다는 감정의 크기를 넘어서 진심으로 상대를 혐오했고 목을 비틀고 싶어 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했으며 어쩔 때는 옹졸하기도 한 퍼거슨은 개인적인 감정을 잔뜩 담아서 리버풀 전을 준비했다.
당연히 호날두를 비롯한 맨유의 선수들은 오늘 경기 못하면 정말 죽는다는 심정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다면 팬들에게 멱살 잡히기 전에 퍼거슨의 손에 죽으리라...
[노스-웨스트 더비의 막이 올랐습니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축이죠. 안 그래도 EPL에서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가장 치열한 두 팀인데 이번에는 성적까지 나란히 1,2위입니다. 우승경쟁까지 붙었으니 이 어마어마한 응원열기가 시청자분들도 실감이 나실 겁니다.]
올드 트래포드의 8만석이 넘는 좌석은 당연히 매진.
빈자리 하나 없이 맨유의 붉은색과 리버풀의 붉은색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원래도 적 팀 선수가 공을 잡거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일 때 다 같이 야유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 강도가 다른 일반적인 경기와는 비교를 불허했다.
패드립과 섹드립은 기본인, 선수 개개인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물어뜯는 응원가를 부르면서 자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레드 데빌즈와 콥.
[리버풀이 승리한다면 추격의 불씨를 되살려낼 수 있을 겁니다. 승점 차이가 꽤 있지만 라이벌전에서의 승패는 이후 후반부 시즌을 풀어나가는데 아주 중요하거든요. 선수단 전체의 사기와 직결되는 일입니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맨유가 승리한다면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최다 연승 기록이 세워지게 되겠습니다. 두 번의 트레블 이후에 새로운 역사를 또 하나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승은 확정적이 될 테고요.]
[이러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팬 분들의 응원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탐색전은 이제 이 정도면 됐겠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양 팀 선수들입니다!]
=
홈경기답게 볼을 넓게넓게 돌리면서 비교적 경기를 여유롭게 진행하기 위한 판을 짜는 맨유.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살짝 간만 보던 맨유는 어느 한 순간, 포메이션의 무게 중심 추를 빠르게 이동시키면서 번개 같은 속공을 전개했다.
상대 선수들이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공격은 맨유가 자랑하는 공격 전개 방식.
그 와중에 테베즈의 스루 패스가 박치성을 향해 들어온 것을 본 호날두는, 일부러 리버풀 수비진들이 자신을 경계하도록 동작을 크게 하며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접근했다.
“칫!”
리버풀 선수들은 페이크인 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호날두에게 공이 갔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
덕분에 박치성은 슛을 찰 수 있는 좋은 각도를 점할 수 있었다.
삐이익-!
[주심! 페널티킥! 페널티킥입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페널티 지점을 찍는 주심! 토레스와 스크르텔이 격하게 항의하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박치성을 막기 위해서 과하게 들이댔던 레이나 골키퍼는 결국 속도를 이기지 못해 박치성과 충돌했다.
심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공을 먼저 차고 부딪쳤으면 그나마 참작의 여지가 있었을 텐데, 레이나는 박치성의 발목을 먼저 건들었다.
누가 봐도 확실한 반칙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번 경기는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경기 시작 5분도 안 돼서 페널티킥이라뇨!?”
“한번만 다시 확인 좀 해 주세요!”
“상황 다 봤어! 더 이상 무의미한 항의를 하지 말도록!”
“...Shit! 야비한 노랑 원숭이 새끼한테 다 놀아난 거라니까!”
같은 리버풀 선수들조차도 헙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분을 이기지 못한 페르난도 토레스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주심은 토레스를 노려보긴 했지만 뭐라 따지지는 않았다.
주심조차 이런 발언을 묻어줄 정도로 동양인은 잉글랜드에서 정말 못한 대우를 받았다.
호날두도, 박치성도, 맨유 선수들도 모두 그의 말을 듣지 못했지만... 이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잘했어, 지성! 그런 태클은 굳이 버텨줄 이유가 없다고!"
"내 덕분에 한골 더 추가한 거다? 고마워하라고 크리스."
"크~ 그래, 알았어. 일단 성공부터 시키고."
“당연히 성공시켜야지!”
맨유의 페널티킥 키커는 당연히 호날두였다.
못하는 게 없는 호날두는 당연히 PK도 잘 찼다.
골문과 레이나를 노려보는 호날두는, 마치 공을 던지는 투수의 심정으로 침착하게 슛을 쏘았다.
그의 슛 준비동작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지지 않은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했고, 그랬기 때문에 레이나가 호날두의 슛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왼쪽 사이드로 예리하게 파고드는 슛을 레이나는 막지 못했다.
이예예예예예예예-!!
맨유 팬들이 일제히 질러대는 괴성이 첫 번째였고, 달려와서 안기는 웨인 루니가 두 번째였다.
맨유 선수들은 이윽고 호날두의 주변에 모여서 다 같이 산뜻한 출발을 기뻐하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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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아-!!
“꺄악! 레오! 아빠가 골을 넣었어!”
“우와아아~! 아빠!”
VIP룸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케슬린과 레오는 호날두의 골에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사실 케슬린은 좋아하는 레오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헤벌쭉한 것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다운 대단한 담력입니다, 호날두 선수! 레이나 골키퍼가 몸을 날릴 줄 알았다는 듯이 공을 찼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는데요!]
“엄마~”
“우리 레오, 왜?”
“아빠가 최고야? 세상에서 가장 축구 잘해?”
“당연하지! 크리스보다 더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없어. 너희 아빠는 정말로,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란다.”
“와아~ 아빠 최고!”
그럼, 최고고 말고.
케슬린은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호날두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VIP 룸에서는 중계카메라가 비추는 장면도 볼 수 있었는데,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호날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케슬린이 첫 눈에 반했던 그 모습 그대로, 호날두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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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전의 승리가 목전 앞에 다가왔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5분 만에 뒤집히고 말았다.
롱 패스를 받은 토레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긴 했지만 인성과 실력이 비례하는 경우는 드문 법.
빠른 스피드와 감각적인 터치로 비디치를 제끼고 순식간에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만드는 토레스.
첼시 시절 토레스라면 몰라도, 리버풀의 토레스는 골키퍼 하나만 달랑 남은 상황에서 골을 못 넣을 선수가 아니었다.
[원더플 토레스!! 원더플! 말이 필요 없는 원더플한 골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무서운 기세를 잠재우는 페르난도 토레스의 환상적인 골!]
[네마냐 비디치!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 리그 톱클래스 수비수마저도 바보로 만드는 환상적인 볼 터치에 침착한 마무리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골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이 시대, 압도적인 최고의 선수이긴 하지만, 토레스는 그 뒤를 맹렬히 뒤쫓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죠! 그에 대한 도전처럼 보입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호날두조차도 잠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골을 성공시키는 페르난도 토레스.
빠른 돌파와 테크닉으로 월드 클래스인 맨유 수비진들을 농락하는 토레스는 왜 자신이 작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는지를 증명했다.
토레스와 호날두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표정을 굳힌 토레스는 이내 한쪽 입 꼬리를 쭈욱 올렸다.
비웃음.
‘뭐야, 저 자식?’
어이가 없어하던 호날두.
그런 그를 스쳐지나가던 제라드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이겼으면 이제 한 번 질 때가 되지 않았어?”
“...글쎄요. 저와 맨유는 욕심이 많아서...”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하는 호날두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툭툭 치고 가는 제라드.
라이벌 팀의 핵심 선수에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제라드는 호감이 간다.
저 자의식 과잉인 노란머리 스페인 녀석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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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리버풀은 또 다시 한골을 넣을 찬스를 맞이했다.
페널티 라인 안쪽에서 행해진 파트리스 에브라의 태클에 스티븐 제라드가 걸려 넘어진 것.
맨유 선수들은 이번에도 페널티킥을 선언한 심판의 판정에 격렬히 항의했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루니는 거의 대들듯이 심판을 몰아붙이면서 열을 올렸지만 호날두는 나서서 그를 말렸다.
"페널티킥 맞으니까 그만해, 다들."
"하지만...!"
"시간 끌면 끌수록 우리에게 좋지 않아. 전반전 끝나기 전이라도 만회골 넣을 생각을 해야지."
"크리스의 말이 맞아. 팬들도 우리가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리버풀이 항의한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결국 똑같은 수준이라는 취급을 받을 거야."
평소 조용하던 박치성까지 나서자 결국 분을 식히면서 물러나는 루니.
제라드는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리버풀 마크가 박힌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레머니를 선보이는 제라드.
1:0 상황에 내리 두 골을 넣으며 적진의 진영에서 멋진 역전극을 선보인 리버풀 선수들에게, 콥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베니테즈 감독과 신경질적으로 물병을 집어 던지는 퍼거슨 감독이 대비된다.
호날두를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리버풀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열리지 않았다.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스코어는 1:2
믿을 수 없게도 리버풀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리드를 하고 있었다.
=
퍼거슨은 자신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으로 라커룸 대화의 방향을 잡았다.
무승부만 거둬도 사실상 우리가 이긴 것이라며, 딱 한골만 넣으면 된다고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정확히 45분 전만하더라도, ‘승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던 퍼거슨이지만, 그가 말을 바꾼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홈에서 역전당한 이 상황에서는 무작정 윽박지르는 것은 하책.
호통도 선수들의 심리를 잘 읽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쳐야한다는 것을 퍼거슨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실수를 했을 뿐이야. 경기 시작하고 첫 득점까지의 상황은 굉장히 좋았잖아? 차분히 그 때를 복기해. 볼 점유율, 기회 창출, 패스 성공률과 유효슈팅 숫자까지! 모든 경기력의 지표에서 우리가 우위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맨유의 저력을 저 빌
어먹을 콥들에게 보여주자고."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심기일전한 맨유 선수들은 후반전을 치르게 되었다.
퍼거슨의 발언이 먹혀들었는지 이들의 플레이는 신중하면서도 단단해서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리버풀 선수들과 원정 콥들의 응원열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맨유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골’이었다.
‘케슬린과 레오가 보고 있어. 절대 여기서 멈출 수 없지!’
호날두의 드리블이 터졌다.
마치 뱀이 이동하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명칭, ‘뱀 드리블’.
호나우두의 장기이기도 한 이 기술이 호날두의 발아래에서 재탄생되었다.
어느새 그를 가로막던 리버풀 선수들은 제쳐진지 오래.
맨유 팬들의 눈빛이 동료들을 닮아갔다.
마치 너밖에 없다는 표정들.
호날두는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잔뜩 경계하며 덤벼들고 있는 제라드와 눈을 마주쳤다.
“언젠가 질 때도 있겠지만 오늘은 절대 아닐 겁니다.”
그의 패스가 그라운드를 갈랐다.
제라드의 눈이 커졌다.
< 투쟁의 시대 - 7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