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의 시대 - 9 >
논란이 있었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빠르게 잊혀졌다.
어쨌거나 이들은 프로 선수들.
개인적인 감정과 갈등보다는 팀과 승리를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한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10분 전과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
바로 ‘가능성’.
가능성은 곧 희망이다.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들어서자 올드 트래포드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붉은 저지를 휘날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성적인 응원이 선수들에게 빗발쳤다.
작렬하는 응원가는 맨유 선수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투쟁의식을 일깨웠다.
“공격해! 수비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하라고!”
“X 빠지게 뛰어, 이 새끼들아!”
감독석에 앉아서 껌만 씹고 있던 무기력한 양반은 없다.
터치라인 바로 바깥에서 어느 때보다도 정열적으로 지시하는 알렉스 퍼거슨에게서 마치 푸른 오오라가 보이는 듯 했다.
11 대 10.
비록 한 명의 선수가 부족했지만 10명의 선수들은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압박하며 리버풀을 몰아쳤다.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한 리버풀이 흔들리고 있었다.
One Goal! One Goal! One Goal! One Goal! One Goal-!!
"젠장! 저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 걸릴 것 같네!"
이를 악물고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날카롭게 들어온 크로스를 겨우 걷어낸 캐러거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안심할 새도 없었다.
그 공을 받아낸 선수는 리버풀이 아닌 맨유의 퍼디난드였기 때문이다.
비디치가 퇴장 당했음에도 맨유 선수들은 광기 섞인 투쟁심을 보이며 계속 밀어 쳤고 세컨 볼을 전부 따냈다.
리버풀로써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믿겨지지가 않네요! 10명 대 11명의 대결이 맞습니까!? 10명의 선수가 튕겨져 나온 볼들을 전부 따내면서 점유율을 압도하고 있어요! 세상에, 저는 지금껏 이런 경기를 중계한 적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투혼입니다. 아우렐리우의 프리킥 골이 이번 경기의 쐐기 골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리버풀은 한 치도 방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변화의 주인공은 역시 크리스티안 호날두겠죠. 맨유 선수들이 하나 둘 포기할 때, 호날두 만큼은 끝끝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이 선수의 환상적인 두 번째 골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정신이 맨유를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호날두 다음으로 많은 견제를 받고, 많은 거리를 뛴 루니와 테베즈.
다 지쳐서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에서도, 헥헥 거리면서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했음에도.
마치 이 하나의 경기가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든 선수들은, 한번 공을 잃어도 미친 듯이 달려들어 악착같이 다시 공격권을 따내는, 공에 대한 무시무시한 집착을 보였다.
공격, 공격, 또 공격!
다음은 없다는 듯, 쉴 새 없이 공격에 재공격을 퍼붓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광전사와 같았다.
내일이면 온 몸이 비명을 지르겠지만 개의치 않고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는 맨유의 선수들.
이젠 이 굴러가는 바퀴를 멈출 수 없었다.
바퀴가 박살나던지, 아니면 완주에 성공하던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맹렬한 기세에 질린 리버풀 선수들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것.
희망은 점점 몸집을 불린다.
그 상황에서 요주의 인물, 호날두가 공을 잡았다.
제라드, 알론소, 캐러거 등을 비롯한 모든 리버풀 선수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호날두에게 공이 있다는 사실만큼 리버풀에게 위협적인 일은 없다.
호날두가 패스를 할 낌새를 보이자 일단 다리를 쭉 뻗어 경로를 차단하려 한 제라드.
하지만 그것은 호날두의 페인팅 모션.
황급히 밸런스를 다시 잡은 제라드가 달려들기 전, 유려한 턴으로 압박에서 벗어나는 호날두.
발에서 떨어지려는 공을 다시 챙긴 호날두는 스퍼트를 밟는 척 하면서 리버풀 수비진의 긴장도를 최고로 끌어올렸고 그러면서 무방비상태의 루니에게 패스했다.
제라드를 포함하여 선수 3명을 제끼고 40m를 질주, 또 다시 맨유에게 확실한 공격 기회를 만든 호날두.
한 명의 초월적인 선수가 얼마만큼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
호날두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겠다고 제라드는 아주 잠시 동안 생각했다.
“웨인을 막아!”
“젠장, 또 당했어!”
루니의 위치는 슛을 쏘기 좋은 위치였기에 리버풀 선수들은 대경실색, 빳빳해질 정도로 긴장하며 황급히 몸을 틀었다.
남은 시간은 추가 시간 포함해서 약 2~3분.
이번, 그리고 다음 한 번의 공격만 막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리버풀 선수들 역시 마지막 한계까지 쥐어짰다.
카윗과 스크르텔의 견제와 압박을 견디지 못한 루니는 슛을 차는 대신 한번 접었다.
그 시간동안 루니에 대한 협력 수비망이 엉성하게나마 형성되자 그제서야 제라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이번 한 번은 막았다! 한 번만 더 막으면 우리의 승리야!'
하지만 제라드는 두 가지를 오판했다.
첫 번째는 루니가 의외로 킬 패스나 스루 패스 등을 이용한 찬스 메이킹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선수라는 것.
두 번째는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오프 더 볼 능력에 대해서 간과한 것.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의 움직임, 즉 온 더 볼에 대한 호날두의 기량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가 공을 잡을 때 일제히 긴장하는 상대팀 선수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호날두의 온 더 볼 움직임은 극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 오프 더 볼에 대한 이해와 기량을 계속해서 가다듬어 왔던 호날두는.
루니의 패스가 뻗어지는 경로를 미리 예상하고 정확히 그쪽으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호날두를 막아-!!!"
식겁한 제라드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호날두는 날아드는 공을 향해 왼쪽 발을 가져다 대는 중이다.
리버풀 선수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위치에 나타난 호날두는 침착하고 정확하게 슛을 쏘았다.
텅!
출렁-!
공은 레이나의 손을 넘어 리버풀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제라드는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야 말았다.
다른 리버풀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환호하고 있는 호날두와 맨유 선수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루니 패스... 침투하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슛-!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어요!! 호날두!!]
[판타스틱- 판타스틱한! 원더풀한 원 터치 슛이 그대로 리버풀의 골 망을 가릅니다!]
[후반 91분 15초! 추가 시간 포함해서 정확히 1분 45초를 남겨두고 터진 기적과도 같은 동점 골! 호날두! 그리고 해트트릭입니다! 리버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립니다!]
[이게 바로 축구지요! 이게 바로 축구입니다!! 온 몸에 소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진짜 이렇게 극적일 수가 있습니까!?]
공이 골네트를 건드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호날두가 한 행동은 뛰는 것이었다.
목표는 바로 올드 트래포드 홈 VIP 좌석 맨 앞.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소중한 보물, 아들 레오카주와 아내 케슬린을 향해서.
맨유 서포터로 위장한 경호원들 속에서 철통 보호를 받으며 경기를 지켜보던 케슬린과 관중석 판넬을 사이에 두고 격하게 포옹하며 키스하는 호날두.
아들 레오는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이 분위기에 놀란 듯 울음을 터트렸지만, 취한 듯 미쳐버린 이 두 남녀는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했다.
"봤지?"
"봤어요."
"내가 끝까지 뛸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레오 덕분이야."
전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한 번 더 진한 키스를 나누는 호날두와 케슬린.
여성 관중들의 호들갑 소리와 함께 아낌없는 박수가 이들에게 쏟아졌다.
팀을 위기에서 건져 올린 그 환상적인 순간에서의 키스라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케슬린의 얼굴이 보였다.
반면 자기한테 달려오는 줄 알고 두 팔을 활짝 벌렸던 퍼거슨은 뻘쭘한 표정으로 이마만 긁고 있는 중.
하지만 뒤이어 뛰어온 루니와 테베즈 등에게 깔려버린 퍼거슨이었다.
쪽팔린 상황이 있긴 했지만 늙은 감독은 웃을 수 있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었다.
삑-! 삐이익-!
와아아아아아아-!!
=
[크리스티안 호날두, 위기에 빠진 맨체스터의 구원자가 되다! 스카이스포츠 일동, 10점 만점에 평점 10점!]
리버풀과 맨유가 훗날 전설이 될 것이 분명한 명승부를 펼친 끝에 3:3 무승부를 거뒀다.
박치성이 얻어낸 PK골로 초반에는 앞서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토레스의 놀라운 골과 더불어서 연이어 3골을 쏟아낸 리버풀은 순식간에 경기를 장악해버렸다.
아마 레드 데빌즈 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수많은 축구팬들이 리버풀의 압승을 생각했을 것이다.
맨유의 위대한 ‘7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는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가 바로 맨유의 축구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선수를 경배해야 합니다! - 경기를 지켜본 맨유 팬]
스카이스포츠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평점을 매겼다.
이 경기의 MOM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최고점인 10점을 받았다.
비디치가 퇴장 당하고 10 대 11의 상황에서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불씨를 피운 장본인.
맨유의 공격 대부분은 바로 호날두의 발끝에서 시작되었고, 리버풀을 위협하는 상황은 대부분 호날두에게서 연출됐다.
그의 플레이는 패배의식에 찌들었던 맨유 선수들을 변화시켰고 후반전, 역동적인 경기 운영의 촉매제로써 흐름을 주도했다.
스카이스포츠의 평론가 짐 헤리슨은 호날두를 평가할 때 '10점이 만점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페널티킥 골, 프리킥 골, 필드 골로 해트트릭 한 것보다 팀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린 것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라는 말을 덧붙이며 극찬하
기도 했다.
하지만 호평은 여기까지.
냉정하게 호날두를 제외한 맨유 선수들 대부분은 극적인 무승부를 거둔 것치고는 상당히 형편없는 평점을 받아야 했다.
호날두 다음으로 높은 평점을 받은 선수는 치성 팍,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난드, 카를로스 테베즈로 이들의 평점은 6점이다.
이건 10점과 6점 사이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에드윈 반 데 사르, 파트리스 에브라가 5점, 나머지는 그 이하의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최악은 당연히 비디치.
토레스에 의해 첫 번째 골을 내주고 제라드에게 불필요한 반칙을 가함으로서 퇴장까지 당한데다가, 리버풀에게 세 번째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찬스까지 주었다.
스카이스포츠는 그에게 1점을 부과하면서 맨유가 이렇게 힘든 경기를 치르게 한 원흉이 누구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혔다.
평론가 리차드 조나탄은 비디치의 실수를 보며, '이 선수는 유독 리버풀에게 약하다. 하지만 오늘은 약함을 넘어선 죄악이었다.'고 혹평했다.
이어서 '맨유 선수들은 후반 80분까지 호날두에게만 의지했다. 호날두에게만 공을 주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라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세계 최고의 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라고 평가했다.
한편 리버풀에서는 제라드와 토레스가 각각 8점으로 팀 내 최고 평점을 받았다.
리버풀 선수들은 그 외에도 7점, 6점, 5점을 받은 선수들의 분포도가 고른 편.
선수들의 평균 평점 역시 맨유보다 리버풀이 더 높았다.
이것은 비록 경기는 비겼지만 선수들 전체적인 경기력은 원정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리버풀 쪽이 더 우세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인 것이다.
맨유는 15연승 도전에 실패했고 리버풀은 원정임에도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따진다면 이 한 경기는 맨유에게 웃어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
현재 27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맨유의 승점은 66점으로 28경기를 치른 리버풀의 58점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만약 리버풀이 맨유를 잡아냈다면 리그 막판 역전의 스퍼트를 올릴 수 있었겠지만, 맨유는 무승부를 통해서 그것을 확실히 저지하는데 ‘어쨌든’ 성공한 것.
기록 달성에는 실패한 맨유였지만 첼시, 리버풀의 추격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하는 팬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댓글
- 오늘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지켜 본 자가 진정한 승자다!! lol!
ㄴ 자매 품으로 채널 돌리지 않고 끝까지 본 사람이 승자!
- 우리가 호날두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오늘 경기 안에 다 들어있다. 크리스티안, 너는 정말 신이 맨체스터에 보내준 보물이야!
- 호날두와 그의 연인의 키스씬 본 사람?
ㄴ 기가 막힌 명장면을 놓칠 리가! 둘 다 너무 섹시했지.
ㄴ 정말 어제 경기는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아.
- 이런 선수를 맨유에게 뺏긴 런던의 푸른 팀은 대체...?
ㄴ 영원히 고통 받는 첼시...
ㄴ 호날두가 가고 싶어서 간 거야 ㅠㅠ 우리는 당연히 붙잡고 싶었지!
ㄴ 글쎄... 호날두 필요 없다면서 욕하던 블루스들 한두 명이 아니었는데.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레알 마드리드가 호날두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기사가 또 떴네. 가서 맨유 팬들의 힘을 보여주자고!
https://www.dkdltlfntm.com/fpdkfakemflem/ghskfen/aoscptmxjdbskdlxlem/
ㄴ 갈락티코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야~ 16강에서 또 탈락했다며? 이제 세계 최고의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
ㄴ 응, 리버풀과 3:3 무승부한 팀.
ㄴ 화난 콥들... 진정해! 사실은 사실이잖아. ㅎㅎ
- 콥으로서 오늘 경기는 매우 실망스럽다. 유리함을 왜 끌고 가지 못한 걸까 아직도 의뭉스러워. 팀이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도 삽을 푸니 힘이 빠지네.
ㄴ 초반 10경기 무패 달릴 때는 정말로 우승 하나 싶었는데... 쩝.
- 올 시즌도 맨유의 우승이 확실하겠군... 그나저나 이번에 맨유가 우승하면 호날두는 EPL 5연속 리그 우승 기록을 세우는 거 아니야?
ㄴ 그렇네. 첼시에서 3번, 맨유에서 2번...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건너 온 이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놓치지 않았어!
ㄴ 호날두를 잡은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한다. EPL의 또 다른 법칙이 만들어졌군.
ㄴ 4년 연속 EPL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것도 엄청난 기록인데... 진짜 어디까지 성장하려나, 이 선수는.
< 투쟁의 시대 - 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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