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S 바르셀로나 - 4 >
"나는 그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다. 리오넬, 너는 조금도 잘못하지 않았어. 너를 욕하는 사람들은 아마 생각이 없거나 화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일거야. 다만... 바르셀로나가 욕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이건 당연한 거야."
[역시 크리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음.... 제가 사람들의 반응을 너무 의식하는 건가요? 하지만 클럽과 저를 따로 생각하기가...]
"바르셀로나와 너를 동일 시 하지 마. 너는 바르셀로나에서 계약해서 그 소속으로 뛰고 있는 한명의 선수일 뿐이잖아?“
[......]
“그들의 잘못에 네가 죄책감을 느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만약 맨유가 지금 바르셀로나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언제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진짜 욕먹어야 할 사람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스럽게 나선다.
역대 최악의 심판 오브레보처럼 말이다.
“난 네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만큼 단단한 정신력도 보유하고 있다 생각해. Why are you so serious? 넌 충분히 버틸 수 있잖아."
[고맙습니다, 크리스. 당신에게 위로를 받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네요. 사실... 그 경기를 몇 번 되돌려 봤어요. 경기 중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확실히 첼시 쪽에서 많은 손해를 봤더라고요. 그들이 경기 후 그토록 분노한 것이 이해가 갑니다.]
“양심이 있으면 다들 너처럼 말해야겠지. 제라르드(피케), 그 자식은 얼마나 뻔뻔스러운지 ‘내가 뭘?’ 이라는 표정이라더고.”
[아하하하. 그는 저희들 중에서도 좀 그런 편이긴 해요.]
호날두는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메시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들의 안부부터 시작해서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들까지 망설임 없이 꺼내놓는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그 리오넬 메시와 이렇게까지 친해진 것이 신기하다.
아직까지도 잘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쩌면 메시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가 될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친근하게 굴었던 것일 수도...’
속물근성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메시 같은 선수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모든 축구 선수들, 축구 팬들의 꿈과 같은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우리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승리한다면 이 논란을 가라앉힐 수 있겠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메시의 말.
여기에 꿈틀하지 않으면 호날두가 아니다.
"어이, 리오넬. 결승전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결승 상대... 아! 크리스의 유나이티드였죠. 하하하! 미안해요.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사과드리죠. 하지만 최선을 다해 싸우고 그리고 이길 겁니다.]
"그래, 말 뿐인 사과 잘 받았다. 너희가 강한 팀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유나이티드는 그 이상으로 강한 팀. 우리는 잉글랜드 내에서 이미 정의의 사도가 되었으니까. 악당(바르셀로나)를 물리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거든."
[...논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저희도 결승전에 오르긴 했잖아요? 자신감 있게 도전장을 던지고, 최선을 다해 겁니다. 펩 과르디올라는 아주 뛰어난 감독입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매일매일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 니들이 얼마나 강한 지는 내가 더 잘 알지.
"결승전에서 만나자고."
[최고의 경기를 펼치자고요.]
===
08-09 시즌 프리미어 리그가 어제부로 폐막했다.
구단의 연승 신기록이자 EPL의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세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 이후 예기치 못한 패배와 무승부를 거두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질주하며, 안정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지난 시즌에 이은 2회 연속 우승이었으며 구단 역사상 17번째 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맨유의 위대한 선수들.
현재 잉글랜드 1부 리그 최다 우승클럽은 18회의 리버풀이었는데, 어느새 그 기록을 바로 목전에 두게 된 맨유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하루 빨리 리버풀의 기록을 깨버리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전통과 커리어를 지닌 클럽으로 거듭나길 레드 데빌즈들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콥들을 조롱할 건덕지가 하나라도 더 늘어날 테니까!
08-09 시즌 프리미어 리그 순위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9승 5무 4패 승점 92점
2위 리버풀 24승 12무 2패 승점 84점
3위 첼시 25승 8무 5패 승점 83점
4위 아스날 20승 12무 6패 승점 72점
5위 에버튼 17승 12무 9패 승점 63점
6위 아스톤 빌라 17승 11무 10패 승점 62점
이번 시즌만큼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큰 꿈을 꾸었던 리버풀.
실제로 전반기 때는 뭇 클럽들을 제치고 단독 선두를 달리기도 하면서 콥들의 희망을 잔뜩 부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그들의 특성이자 패시브 스킬인 ‘의적본능’, 그것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맨유, 첼시, 아스날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대단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점을 쟁취했던 리버풀.
하지만 이 가련한 존재는 자신들보다 못한 상대, 당연히 이겨야 하는 상대 약팀들에게 무패(무승부, 패배)행진을 이어가며 아낌없이 승점을 퍼줬고, 결국 맨유에게 승점 8점이나 뒤쳐진 상태에서 리그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의 단기 후임으로 들어섰던 거스 히딩크의 첼시는 맨유, 리버풀의 뒤를 이은 3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챔스에서 역대급 오심의 피해자가 된 이들은 현재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누가 하든 아무 관심이 없었고 오직 바르셀로나에 대한 저주만 퍼붓고 있는 상황.
아스날이 4위로 다음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겨우 확보했으며 그 뒤를 에버튼과 아스톤 빌라가 이었다.
시즌 중반, 맨유의 기세가 한창 치솟을 때, 잉글랜드 축구 리그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전관왕(리그, 챔스, FA컵, 리그컵)'을 노리겠다며 호언장담한 퍼거슨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접어야 했다.
맨유는 리그컵 준결승전에 올랐지만 리버풀에게 패배함으로써 결승 진출이 무산되었고, FA컵 역시도 준결승전에서 에버튼에게 패배하여 4강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년 연속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챔스 결승전에 올랐다는 점이 더해져서 지금 맨유 팬들은 최고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리그컵에서는 리버풀이 토트넘을 꺾으면서 오랜만에 우승컵을 들었고, FA컵에서는 첼시가 에버튼을 제압하면서 무관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프리미어 리그 일정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잉글랜드 내에서의 축구 열기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준결승전에서 완벽히 악역으로 재탄생되면서 마찬가지로 결승전에 진출한 바르셀로나의 대결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퍼거슨을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응원한다. 반드시 바르셀로나 놈들을 정의구현 시켜서 스포츠의 의미를 되새겨주길 바란다. (아스날 팬)
- 나도 위에 사람과 같다. 세상에! 내가 맨유가 이기길 소망하는 날이 올 줄이야! (에버튼 팬)
- 끔찍하고 역겨우며 뻔뻔스러운 카탈루냐 놈들! 반드시 박살내버리길! (첼시 팬)
- 그래도 우리는 맨유가 지길 바랍니다. (리버풀 팬)
- EPL 팬들이 이렇게 대동단결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ㅋㅋ
ㄴ 콥들을 빼고 말이지ㅋㅋ
- 첼시 팬인데 어린 시절부터 맨유 싫어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응원하는 중이다. 특히 크리스! 반드시 골을 박아서 바르셀로나를 무너트려줘!
- 위에 사람들 말처럼 정의는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니까!
맨유 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잉글랜드 클럽 팬들의 공공의 적인 맨유.
그런 맨유가 이렇게까지 응원을 받은 적이 또 언제 있었나 싶었다.
레드 데빌즈들은 이 상황에 오히려 어리벙벙했다고 한다.
"나는 익숙하지 않아... 닭살이 돋는 이런 관심은 익숙하지 않다고!"
웨인 루니가 벌써부터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을 북북 긁으면서 소리쳤다.
방금 아스날 저지를 입은 팬이 루니에게 '제발 더러운 꾸레놈들을 박살내주세요!' 라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평소 타팀 팬들이라면 맨유에게 쌓인 게 많을 수밖에 없어서, 선수들을 보자마자 'Fuck you'를 날렸을 텐데.
이 어색하고 간질간질거리는 상황은 악동 루니조차 난감한 것이었다.
루니 뿐만이 아니다.
퍼디난드는 에버튼 팬들에게 '바르셀로나 멸망!' 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각반을 선물 받았고, 반 데 사르는 '꾸레 놈들이 매수해도 절대 골 넣지 못하도록 만들어 줘!' 라는 말을 무려 맨체스터 시티 팬들에게 들었다.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서로의 팀을 얼마나 저주하고 혐오하는지는 이들이 더 잘 안다.
잉글랜드 국적의 국가대표 선수라도 클럽이 다르다면, 거침없이 패드립을 할 수 있는 잉글랜드 축구 팬들의 ‘인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대통합을 이뤄낸 오브레보와 바르셀로나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크리스티안. 우리는 '그 날' 당신을 가장 열성적으로 응원하기로 했어요!"
"꼭 그 더럽고 치졸한 놈들을 박살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제발 옛 정을 잊지 말고 친정팀의 복수를 해주세요!"
호날두가 떠날 때 그렇게 비난하고 저주했고, 첼시 원정 경기에서는 험한 말과 함께 단체로 야유를 퍼부었던 블루스들이, 안면을 싹 바꿔 고개를 숙이면서 복수를 부탁했다.
그런 그들의 부탁을 호날두는 거절하지 않았다.
"결승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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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 '이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10년 내에 있었던 모든 대회의 결승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경기로 남을 것이다.']
맨유의 영원한 수호신, 알렉스 퍼거슨은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언론에 대고 이렇게 평가했다.
스페인 리그 최초의 트레블을 노리는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 사상 최초 챔피언스 리그 2연패(개편 이후)를 노리는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 어떤 결승 대진보다 화려했으며 여기에 수많은 스토리와 헤게모니가 들어있다.
괜히 퍼거슨이 가장 위대한 결승전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한 한 게 아니다.
'참고로 내가 이끄는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 자부한다. 스페인의 축구에게 잉글랜드의 자존심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그들은 무척 공을 잘 찬다. 유기적인 전술에 선수들끼리의 호흡도 척척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우리를 이길 확률은, 리오넬 메시가 호날두처럼 점프해서 헤딩골을 넣을 확률과 같다. 당신네들이 만약 돈을 걸어야 한다면 어디에 걸겠는가?
우리에게 걸지 않겠는가?'
'하지만 누가 이기던 이 승부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자세를 바로한 채 이번 경기를 지켜봐 달라. 아주 깜짝 놀라게 해줄 자신이 있으니까.'
자신만만한 퍼거슨의 표정에서는 강자의 오만, 탑독의 여유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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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호날두는 미뤄왔던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허락을 구하고자 맨유의 매니저실, 퍼거슨의 방에 방문한 호날두.
"무슨 일이야? 왜 왔어?"
이미 큰 틀의 전략과 전술, 포메이션 등은 다 짜두었지만 퍼거슨의 일은 끝난 게 아니다.
끊임없이 상대 팀 경기들을 돌려 보면서 철저한 분석을 하고, 머리털 빠져라 쥐어 짜내서 전술의 세심함을 다듬는 작업은 필수.
특히 그것이 챔스 결승전이라면 수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서 일말의 변수조차 차단하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의무였다.
알렉스 퍼거슨은 노구의 몸으로도 며칠 째 집에 가지 않은 채 이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애제자 호날두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욕설을 뱉으며 내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럼 하면 되지!"
"상대팀을 자극할 수도 있는 내용이거든요. 첼시와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 왜 네가 해?"
"미우나 고우나 친정팀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첼시에 있을 때가 첼시의 전성기이기도 했고요."
"웃기는 소리, 네 친정은 이제 맨체스터야! 그 놈들이 너 가고 나서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알긴 아냐?"
"압니다. 그래서 허락해주실 건가요?"
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호날두는 피하지 않았다.
"괜히 적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첼시전의 오심에 대해서 묻는 기자들과 언론들이 수두룩했음에도 그에 대해서 입도 뻥긋 하지 않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신이 우리를 돕고 있다.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축구 팬들이 맨유를 응원하고 있어. 이 일로 우리가 얻게 될 유무형적인 효과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린 영웅이고 용사라고!"
"제가 더 잘할 자신이 있으면요?"
"그건 무슨 소리냐?"
"제가 이 인터뷰를 함으로써, 결승전에서 더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한쪽 눈을 치켜 뜬 퍼거슨에게 호날두는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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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자신을 묶어두었던 고리를 풀고 싶었다.
호날두는 첼시에서 3년을 뛰었고 그곳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3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챔스 우승을 이뤄냈다.
그 선수가 같은 리그의 최대 경쟁팀으로 갔다.
보드진의 삽질이 어쨌건 간에 첼시 팬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 분노, 증오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반갑습니다, 호날두 선수. ‘위클리’의 기자인 하스티 테이먼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하스티라고 불러주세요."
"네, 저도 반갑습니다. 하스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결승전을 앞둔 이 중요한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와의 단독 인터뷰라니! 그야말로 꿈만 같은 상황이군요. 아주 큰 경기를 앞두고 매우 바쁘신 걸로 아니, 사설 없이 바로 인터뷰 진행하도록 하겠
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잔뜩 들뜬 것이 보이는 하스티를 보고 호날두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늘 호날두는 폭탄을 하나 떨어트릴 것이다.
이 폭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어디가 될지 호날두도 잘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호날두의 '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을 거야.'
자신이 옳다하는 정의를 관철시킬 힘과 명성이 있었기에.
호날두는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었다.
< VS 바르셀로나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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