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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이미 너무 강함-7화 (7/213)

< 미국과 친해지기(4) >

모든 진상을 들은 조지 듀이는 한 10년은 늙어 보였다.

어? 생각해 보니까 조지 듀이 십몇 년 후에 죽지 않나?

이것 때문에 원 역사보다 더 일찍 죽는 건 아니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조지 듀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에 따르면 밀입국을 한 제너럴 셔먼호가 교역을 요청했고.”

끄덕끄덕

“하지만 대한제국이 거부하자 오페르트란 자가 선원들을 이끌고 무덤을 도굴하려 했다?”

끄덕끄덕

“산 사람도 아닌 사람의 유골을 인질로 쓰기 위해서? 그것도 황족의 무덤을?”

끄덕끄덕

“······FXXK! FXXK! FXXK!”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조지 듀이는 계속 욕만 했다.

너무 화가 났는지 원수로서 가져야 할 체면조차도 잊은 것 같았다.

“후우··· 왜 사과를 하라고 했는지 알겠군요.”

한숨을 푹 내쉰 조지 듀이가 손으로 뒷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건드려도 대한제국을-”

조지 듀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상적인 반응이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난 살짝 놀랐다.

원숭이 새끼들 무덤 판 게 무슨 잘못이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 정상적인 반응이 나와서 좀 놀랬다.

인종차별이 당연한 시대. 백인이 저런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힘든데 말이야.

그렇다면 조지 듀이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거나-

‘대한제국이 가진 힘을 어느 정도 안다고 봐야겠지.’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그럼 말이 더 잘 통하겠네. 쓸데없는 짓을 할 가능성이 적을 테니 말이야.

“후우···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제야 사람들이 보인 적대감이 이해되는군요.”

“하하. 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왜 절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당신이 정말 황자라면 미국을 증오할 텐데요?”

“딱히요?”

“예?”

전혀 그런 감정 없다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전 대한제국의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합니다.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 좋잖아요?”

“그,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제국에서도 처음부터 미국을 싫어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죠. 대한제국에게 미국은 좋은 시장이 될 테니까요.

때문에 원래 저희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하필이면···.”

댁들이 트롤 짓을 하는 바람에 망쳐버렸지.

“그러니까 황제 폐하를 만나면 바로 사과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대화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야 대한제국의 적대감을 완전히 이해한 조지 듀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석고대죄라도 할까요?”

“그런 말들도 아십니까?”

“홍콩에 있을 때 중국의 서적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삼국지, 서유기, 초한지 등 웬만한 건 거의 읽어보았죠. 덕분에 사자성어 정도는 압니다.”

맞다. 이 양반 중국 고서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중국 관련 논문도 썼었지.

이러니까 D.C에서도 조지 듀이를 대한제국에 보냈겠지.

대한제국은 중국 바로 옆에 있잖아? 비슷하지 않겠어?-라는 인종차별적인 마인드로.

그 말이 끝나고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지 듀이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난 그러도록 침묵해주었다.

“···그럼 사과를 하면 수교를 맺을 수 있을까요?”

아직 의심스럽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내 말을 들어라도 보는 게 최선이라 판단한 것일까. 조지 듀이가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물었다.

“대화가 전부일 겁니다. 이미 대한제국에서 미국은 무덤이나 도굴하는 도적으로 낙인찍혔으니까요.”

그러니 내가 이렇게 찾아왔지.

이런 조지 듀이의 반응이라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사정을 듣고 나면 바로 사과했을 거다.

하지만 사건이 너무 심각하다 보니 사과만으론 부족했다.

대한제국의 분노를 대신 받아줄 희생양이 필요했다. 난 그걸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거고.

“잘못을 독일에게 덮어씌우십쇼.”

“독일에게요?”

“예. 도굴을 주도했던 오페르트가 독일 출신의 학자더군요. 그래서 그놈이 다른 선원들을 속여 도굴한 거라 말하세요.

순진한 미국은 그저 간악한 독일에게 속아 오해를 받은 게 되는 거죠.

아, 그리고 보상을 요구하는 서신도 원래 그 뜻이 아니었다고 하시고요.”

착하고 순진한 미국은 그게 무덤인 줄 몰랐어.

다 나쁜 독일이 알면서도 속이고 벌인 짓이야.

보상을 요구하는 서신? 아, 그거 중간에 잘못 전달된 거임.

남 탓을 하라는 말에 조지 듀이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괜찮은 방법이라는 건 알았는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그러면 미국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겠군요. 동정은 큰 힘이 되는 법이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바로 친구가 되는 건 무리겠지만 적대감은 줄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럼 독일과의 외교에 어려움이 생길 텐데요?”

“하하. 미국보다야 중요하겠습니까.”

미국 짱짱맨. 대한제국은 미국이 제일 좋아염. 독일? 엿이나 먹어.

하지만 미국의 중요성 때문에 독일과의 외교를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앞으로 있을 세계 대전을 위한 빌드업을 위해서라도 미리 독일에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했다.

언제까지 대한제국이 이렇게 쇄국만 할 수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대전 같은 국제적 사건에도 휩쓸리게 될 텐데. 지는 편에 서지 않도록 미리 여론을 만들어 놔야 했다.

잘못하면 미국도 독일과의 외교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일까.

잠시 고민하던 조지 듀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에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어째서 절, 저희 미국을 도우려는 겁니까? 향후 맺어질 독일과의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요.”

조지 듀이는 진심으로 날 경계하고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을 황자라고 소개한 꼬마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것도 미국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 이상한 상황이 의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만약 의심하지 않았다면 원수의 수준이 이 정도냐며 오히려 내가 실망했겠지.

난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국이 가진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능성. 말이십니까.”

“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테니까요. 그러기 전에 미리 친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농담이시죠?”

하지만 그 말에 조지 듀이는 기뻐하기는커녕 황당하단 반응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같은 반응이겠지.

어쩌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2류 열강에게 넌 나보다 더 강해질 거라 말한다? 당연히 믿기 힘들겠지.

꿈으로 가득한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현실을 배우게 된 어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희망을 품기보다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겠지.

하지만 난 진심이었다. 미래를 알기에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오히려 의심만 더 커진 조지 듀이를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대륙을 아우르는 광활한 땅, 넘쳐나는 자원, 이민을 통해 늘어난 엄청난 인구.”

“하지만 그건 다른 나라들도···.”

“나라가 세워진 지 아직 3백 년이 채 안 됐음에도.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열강들과 경쟁을 할 정도로 빠른 발전 속도를 가진 나라.”

“······.”

“그런 나라가 언제까지 2류에 머무를까요? 어느 순간이 되면 진짜 열강이 되고, 또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강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국이란 그런 나랍니다. 제게는요.”

차가 있었으면 이 타이밍에 한 모금 마시는건데.

살짝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미국과 미리 친분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제 의견에 최대한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지 듀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믿기 어렵겠지. 고작 10살짜리가 하는 말이니까.

그런 꼬마가 2류 열강에 불과한 미국이 유럽을 제칠 거라는 데 믿을 수 있을 리가.

하지만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은 대한제국과 수교를 맺길 원하고, 조지 듀이는 그걸 성공시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난 그게 가능하게 만들어 줄 방법을 알려주는 중이다.

조지 듀이로서는 이게 튼튼한 동아줄인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살려면 잡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생각을 끝낸 조지 듀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정말 이 나라의 황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당신의 말에 따르도록 하죠.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조지 듀이가 손을 맞잡았다.

“딜?”

“딜.”

그렇게 방법도 다 알려줬겠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 만남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십시오. 황제 폐하한테도요.”

“예?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오신 게 아닙니까?”

“아니요. 황제 폐하는 제가 여기 온 것도 몰라요.”

아마 지금쯤 날 찾는다고 병사들과 나인들을 달달 볶고 있지 않을까?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절 찾아온 겁니까?”

“말했잖아요. 미국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그래야 제 꿈을 지킬 수 있거든요.”

“꿈이요? 그게 무엇입니까?”

“일할 필요 없이 놀고 먹기만 해도 되는 백수 라이프요.”

“······.”

황제의 막내아들이겠다, 진짜 미국하고만 친하게 지내도 그런 행복한 삶은 80% 정도 보장되거든.

“그런데 안 나서면 그러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나선 겁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들켜도 망할 것 같으니 비밀로 해주십쇼.”

“······.”

나 같아도 나 같은 아들 있으면 부려 먹겠다.

일 잘하고 능력도 좋은데 죽을 때까지 부려 먹지.

그리고 놀고 먹고 자고 싶을 뿐인 나로서는 그런 삶은 거절이다.

황당해하는 조지 듀이를 뒤로한 채 영빈관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전하!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서. 헤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방으로 돌아갔다.

대한제국, 그리고 미국아.

세계관 최강자인 너희 둘을 친구로 만들어 준 나한테 고마워해라.

그 대신 난 놀고 먹고 자기만 할 거다!

* * *

“먼저 저희 미국의 상선이 대한제국에서 일으킨 사고에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다음 날. 대전에서 처음 황제와 만난 조지 듀이는 먼저 사과로 대화를 시작했다.

“밀입국과 도굴이란 명백한 범죄 행위에 저희 미국이 관련되었단 사실에 통탄을 금치 못하며-”

“보낸 서신 또한 명나라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번역할 때 잘못 번역되는 바람에 생긴 사고로-”

“저희 미국은 결코 대한제국에 시비를 걸 목적이 없다는 걸 분명히 밝힙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는 아주 정석적인 사과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아는 황제 이현은 살짝 놀랐다.

원래 나라들끼리는 자존심 문제도 있고, 국내 여론 문제도 있어서 잘못을 해도 제대로 사과하는 법은 없다.

그저 유감이라고 표현하며 우회적으로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조지 듀이는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사과인지, 아니면 미국이 하는 사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태도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진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뻔뻔한 나라는 아니었군요.”

“명나라나 왜놈들에 비하면 훨씬 났습니다그려.”

“어느 정도 도리는 아는 나라였나 봅니다.”

조지 듀이가 대전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찢어 죽이려던 대신들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시작되자 통역을 들은 대신들은 꽤 진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사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원인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희 미국은 대한제국과 문화가 달라 무덤의 모양도 달라-”

“이를 모른 선원들의 무지로-”

“하지만 이런 차이를 알면서도 순진한 선원들을 속인-”

잘못은 했는데 이게 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또한 그걸 알면서도 순진한 속이고 선원들을 범죄에 참여시킨 오페르트 잘못이다.

‘재미있군.’

미국과의 수교가 성사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이현은 고민했다.

‘누가 저렇게 말하라고 알려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군인 머리에서 나온 생각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 미국과 친해지기(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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