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제국이 이미 너무 강함-14화 (14/213)

< 들켜버렸다 >

녹음기에서 나온 대화는 분명 조지 듀이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였다.

아니, 도대체 이건 또 언제 녹음한 거야?

20세기 초에 이런 소형 녹음기가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다. 집현전 지하 비밀연구소에 가면 컴퓨터도 있을 테니까.

문제는 어째서 조지 듀이를 도청하고 있었느냐다.

“미국의 사절로 왔던 조지 듀이라는 자의 행동이 너무나 매끄럽더구나. 군인보다 외교관에 더 가까웠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날 보며 황제가 씩 웃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확신했지. 도청을 한 것도 그게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서였고. 그런데··· ”

그게 내 아들일 줄은 몰랐구나?

“일 안 하고 놀고먹기만 하고 싶어 평범한 척 연기를 한다라··· 짐의 아들이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일하기 싫어하는 줄은 몰랐구나.”

싱글벙글 웃는 황제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망했네. 미국과의 수교를 위해 조지 듀이에게 적절한 행동을 알려준 것도, 평범한 10살짜리인 척 연기한 것도 다 들켜버렸다.

‘젠장! 조심 좀 할걸!’

이건 전적으로 내 실수다. 국정원도 있는데, 도청 정도야 당연히 할 거라고 예상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 분위기가 완화되고 나서는 나도 긴장이 풀려 조심하지 못했고.

“내년 초에 미국으로 떠날 사절단의 대표를 맡아라.”

“!!!”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년 초에 미국과의 수교를 위한 사절단을 보낼 예정이라는 건 알고 있다.

내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사절단에 포함될 예정이라고. 또한 황족을 대표로 임명할 계획도 들었다.

뭐 실무는 실무진이 따로 하고 대표인 황족은 얼굴마담으로 보내는 것이지만.

···그걸 나보고 하라고?

안 된다. 그러면 최소 몇 년은 일을 해야한단 말이야!

난 바로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폐, 폐하! 송구하오나 소자의 연치가 아직 어려, 그런 중임을 맡기에는 부족함이-!”

“부족하기는. 영악하기로는 네 형들보다 네가 더 나은데. 연구밖에 모르는 첫째와 전쟁밖에 모르는 둘째보다 이런 쪽으로는 네가 훨씬 낫다.”

하지만 황제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뭐, 하지만 그냥 시키기만 하면 열심히 일을 할 동기가 부족하겠지.”

그래도 인재가 보이기만 하면 죽기 직전까지 부려 먹는 어떤 조상님과는 다르게, 황제는 채찍만 쓰지 않고 당근 또한 내밀었다.

“네가 미국에 가서 이뤄내는 성과가 충분하다 판단될 시, 네 소원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도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마.”

“으음···.”

젠장. 황제가 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군. 이렇게 바로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하다니 말이야.

확실히 황제가 약속을 지킨다면 나도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다.

들키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과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짐이 생각하기에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야이씨. 너무 포괄적이잖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소리 아냐?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을은 바로 나니까.

“···명을 받들겠나이다.”

“기대하고 있으마.”

그렇게 내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뭐.

인정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로,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드는 수밖에.

* * *

아시아 함대가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다.

수십 년 전 실종되었던 제너럴 셔먼호의 생존자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전해진 소식은 빠르게 미국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한제국? 그게 어디지?”

“그 왜 부잣집들이 쓰는 그릇 만드는 곳 아니야?”

“아! 코리아?”

미국 내에서도 대한제국의 존재는 꽤 알려져 있었다. 진귀한 보물들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정확히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알았다.

하지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나라라는 것도 알았지.

“러시아가 전력을 다해서 지키는 나라라고 한다던데 사실인가?”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대한제국에 사절단을 보내면 경기를 일으킨다던데.”

“크림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가 귀중하게 여기는 나라라···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군.”

원 역사의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은 패배했었다.

러시아 제국의 확장을 경계한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체결. 이로 인해 러시아 제국이 전쟁에서 크게 패배하며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남겼었다.

하지만 역사가 바뀌면서 대한제국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러시아 제국도 변화했다.

그리고 원래의 러시아보다 더욱 발전한 나라가 되었지.

그로 인해 원래 패배했던 크림 전쟁에서도 러시아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러시아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포함한 발칸 반도의 절반 이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고.

또한 이로 인해 러시아가 이스탄불까지 점령. 러시아 제국의 지중해 진출이 가능해졌지.

이후 유럽은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지중해를 집어삼킬 것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유럽의 생각과는 다르게 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지중해를 통해 무역선이나 보낼 뿐, 더 이상의 전쟁은 원하지 않다는 듯이 그저 조용하게 발칸 반도를 안정화시킬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러시아를 경계하던 유럽도 그게 수십 년간 이어지자 경계를 낮췄다.

그러면서 러시아 제국에게 별명도 붙여주었지.

느긋한 불곰.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모든 걸 파괴하는 불곰 같지만, 별일이 없을 때는 게으르고 느긋한 불곰 같다며.

하지만 그런 느긋한 불곰이 미쳐 날뛰는 때가 있었다.

바로 서구 열강들이 대한제국과 접촉하려 들 때였다.

그들이 대한제국에 사절단, 혹은 함대를 보냈다 하면 러시아 제국은 미쳐 날뛰었다.

자기들과 싸우고 싶은 거냐며.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당장 돌아가라고 외교관이 대놓고 화를 내며 분노했다.

그 후 유럽 열강들은 대한제국과 접촉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저 느긋한 불곰이 미친 불곰이 되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곳이라 생각하고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더 뜯어먹을 게 많은 명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러시아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기도 했고.

하지만 유럽 열강들에 비해 식민지가 부족했던 미국은 아니었다.

더 큰 시장이 절실했던 미국은 러시아가 항의할 걸 아는데도 아시아 함대를 보냈다. 하루라도 빨리 2류 열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었지.

또한 유럽 열강들의 생각과 달리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고 판단도 있었다.

만약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 테니까. 하지만 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식민지도,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그러니 잘만 파고들면 대한제국과 수교를 맺을 방법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마침 미국에겐 제너럴 셔먼호의 실종이라는 명분도 있었고.

그리고 얼마 후. 모두가 실패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조지 듀이 원수가 대한제국과의 수교를 성사시키고 돌아왔다.

이 소식에 미국은 물론이요 유럽까지 깜짝 놀라 황급히 외교관을 급파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항구에는 원수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는 물론, 아시아의 엘도라도에 대해 듣고자 기자와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까지 몰려왔다.

그리고 조지 듀이 해군 원수는 발언은 전 세계를 충격에 터트렸다.

“엘도라도는 실존했다. 남미가 아닌, 아시아에. 대한제국이란 이름으로.”

“대한제국은 유럽 열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들은 황금보다 더 귀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일부만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도 미국은 유럽을 이길 수 있다.”

특히 유럽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유럽의 아류라는 평가를 듣던 자신들이다.

그런데 유럽을 이길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다.

하지만 조지 듀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장 대한제국으로 떠나고 싶게 만들 온갖 말들로 미국을 유혹했다.

거기다 수십 년 만에 돌아온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의 발언까지 더해졌다.

“허 참. 호텔방이 왜 이렇게 추워? 대한제국은 겨울에도 집에만 들어가면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웩! 뭐가 이렇게 짜? 아니, 무슨 음식이 짠맛밖에 없어? 대한제국 음식들은 이렇게 안 짜도 다 맛있었는데.”

“아니, 이걸 약이라고 주냐! 이건 독약이라고! 사람이 먹으면 죽어! 쯧! 대한제국의 약들은 진짜 제대로 된 약이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대한제국은-”

‘대한제국은’

제너럴 셔먼호의 생존자들은 말끝마다 대한제국은 다르다는 말을 했다.

분명 죄수로 그곳에 있었다고 했건만.

그들은 대한제국과 미국을 비교하며 언제나 대한제국을 칭찬했다.

그런 반응이 계속 나오자 기자들이 물었다.

“아니, 정말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강제로 수감되었던 것 맞습니까?”

혹시 이들이 잡혀있는 동안 세뇌를 당한 건 아닌가 싶어서 한 질문이었다.

또한 자극적인 기사를 원했던 황색 언론들은 대한제국에 대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어진 대답에 당황했다.

“그랬지. 체포되고 다들 오랫동안 수감되었었지. 그 후 풀려나고 나서도 일정 지역에서만 거주해야 했고.”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말만 하시는 겁니까?”

“진짜 더 살기 좋은 나라니까.”

“예?”

당황하는 기자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

“모든 먹거리들이 안전해 먹다가 아플 걱정이 없는 나라.”

“죽거나 다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나라.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확실하게 보상해주는 나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돈이 들어가는 일들이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저런 것들을 실제로 다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정말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은 말했다.

“사실 우리가 감옥에 수감된 것도 그럴 만했고.”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오페르트란 독일놈에게 속아서 황족의 무덤을 도굴했었거든. 그러니 감옥에 간 것도 당연했지.”

그 발언으로 제너럴 셔먼호의 나포로 부정적이던 인식도 줄어들었다.

당사자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고 시인하니 대한제국을 욕하기도 뭐 했고.

또한 아시아 함대의 선원들 또한 대한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퍼트렸다.

“진짜 거긴 최고야. 무슨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발전한 나라 같았어.”

“양념통닭? 치킨? 어쨌든 그게 엄청 맛있었지.”

“진짜 한번 먹어보면 절대 안 잊혀질 걸?”

조지 듀이와 제너럴 셔먼호 선원들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았던 그들은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 자신들을 썰을 풀었다.

특히 양념치킨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후기를 남겼는데, 마침 양념치킨 양념을 대용량으로 구매했던 선원 하나가 주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미친! 그냥 기름에 닭을 튀기고 양념을 발랐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다니!”

“와아. 대한제국에서는 이걸 매일 먹는 거야?”

“이건 돈이 된다! 빨리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야 해!”

어느새 미국 전역이 대한제국 열풍으로 가득해진 이때.

워싱턴 D.C.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이게··· 사실인가?”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는 눈앞의 보고서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14인치 초대형 함포들을 단 초대형 전함을 최소 다섯 대는 가지고 있다고?”

“예. 각하. 대한제국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속국 같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대한제국의 저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조지 듀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기차도 유럽보다 수백 년 일찍 만들고, 다른 모든 것들을 이미 오래 전에 이미 만들어낸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욱 발전시키며 이미 유럽의 기술력을 넘어선 나라였습니다.”

“주여. 그런 괴물이 수백 년 동안 숨어 있었다니···.”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에 의용기병대를 직접 이끌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복싱을 즐기며 상남자라 부를 수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하지만 그런 그도 조지 듀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난 그런 나라에게 무력을 써서라도 수교를 맺으라는 멍청한 명령을 내린 것이고.”

한숨을 푹 쉰 시어도어가 물었다.

“그들이 보내는 사절단은 내년에 도착한다고?”

“예. 내년 봄에 보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때까지 제대로 준비해야겠군.”

영국과도 싸워 이겼던 미국이, 대한제국에게 멸망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 들켜버렸다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