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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이미 너무 강함-19화 (19/213)

< 협상(1) >

“진짜 오지게 넓네.”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달이 바뀌어 5월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D.C.에 도착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쉬면서 오느라 속도가 느린 것도 있었지만. 미국이 진짜 욕 나올 정도로 넓었거든.

아직 미국 땅 대부분을 연결하는 여객 철도 운영기관인 암트랙(Amtrak)도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다.

미국도 대륙횡단철도가 있긴 하지만 미국 전역을 연결하진 못했고.

또한 디젤기관차가 운영 중인 대한제국과 달리 여전히 증기기관차를 이용하는 미국이다.

마차보다는 빠르지만, 증기기관차로는 속도에서부터 느릴 수밖에 없었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렇지 않나 안 대위?”

“예 전하.”

내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안중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런 느린 여행이 썩 나쁘지는 않나 보았다.

“너무 빨리 가면 주위 풍경을 보기 힘들지. 하지만 적당히 느리니 구경하기가 편해 좋군.”

원래 삶에서도 미국은 한 번 와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총기, 마약, 갱,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보여 기피하게 되었지만. 미국의 자연 풍경 하나만큼은 뛰어났으니까.

한 번 미국을 일주하며 자연 풍경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느린 이동도 딱히 나쁘진 않았다.

“미국 부통령 각하의 말에 따르면 이제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 양반도 고생이 참 많아. 미국을 횡단해서 날 마중 나오고 다시 대륙을 횡단해 돌아가다니.”

나이도 꽤 많던데, 이 일이 끝나면 병에 걸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전하,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뭐가?”

“저희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 말입니다.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을 무시한다 들었는데, 그렇다기엔 저들의 태도는 저자세에 가깝습니다.”

안중근의 말이 맞앗다. 지금 미국 정부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저자세였다.

부통령이 대륙을 건너서 마중도 나와, 우리가 묵을 최고급 호텔도 잡아놔, 사절단이 탈 기차의 1등 칸을 아예 통째로 빌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우리 사절단을 국빈으로 예우한다고 봐야겠지.

원 역사의 조선 사절단인 보빙사도 국빈으로 예우해주긴 했지만. 그때보다 더 신경 쓰는 건 확실했다.

“그게 다 우리가 강하기 때문일세. 명나라나 일본처럼 힘이 없었다면 초대조차 하지 않았겠지.”

“힘 앞에서는 저들도 조심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지.”

우리를 옐로우 몽키라고 무시한다? 그럼 미국 서부는 대한제국의 해군에 불바다가 될 거다.

대한제국은 그걸 실현시킬 힘이 충분했고, 지금의 미국은 그걸 막기 힘들 테니까.

조지 듀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힘을 보았으니 미국도 그걸 알겠지. 그래서 우리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거다.

“뭐 가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날뛰는 멍청이들이 있긴 하지만.”

납탄 앞에서는 지능이 상승하게 될걸?

뿌우우우!

시끄러운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 여행이 끝나고,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재필이 협상은 끝마쳤으려나?”

우리 보다 열흘 가까이 일찍 도착했었는데, 거의 끝났겠지.

“난 도장만 찍고 쉬면 되겠네.”

그럼 남는 시간 동안은 백악관 구경이나 해볼까?

하지만 백악관에 도착한 직후, 실무진들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직도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고?”

“소, 송구하옵니다. 미국 쪽에서 관세만큼은 끝까지 양보하지 않으려 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단 부끄러움 때문일까. 서재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끄응··· 고개 들게나. 자네들 잘못이 아니니까.”

이걸 가지고 우리 쪽 실무진들의 협상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 미국 정부 수입 중 관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마어마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대한제국과의 무역이 성사되면 더 많은 관세를 거둘 수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후 팽창주의 노선을 타며 한창 돈이 필요할 때인데, 이를 놓칠 수는 없겠지.

“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백악관에 도착했을 땐 조용한 건지 알겠네.”

관세를 낮추느니 수교를 맺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겠지.

“쩝. 이러면 내가 협상의 전면에 나서야 되겠네.”

편하게 도장만 찍고 관광이나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일을 하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통령 각하께 연락을 보내게.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하자고.”

“예. 전하.”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백악관의 접견실 앞에 도착했다.

끼익

이윽고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동글동글한 외모의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악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합중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이번 사절단의 대표를 맡은 대한제국의 3황자, 이광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나도 맞잡으며 악수했다.

상남자의 표본 같은 사람이라 운동도 좋아해서 툭하면 복싱 연습을 한다더니.

시어도어의 손은 성인치고는 작지만, 바위처럼 단단했다.

거기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까지.

과연 그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구나 싶었다.

‘허 참. 내가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당연히 그가 지금 미국의 대통령인 건 알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게 되니 기분이 또 새로웠다.

‘미국에서는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지만, 한국에서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일로 비판을 받던 인물이니까.’

또한 조선을 비난하며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일뽕으로 가득 찬 멍청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게 미국에 이득이 되니까 일본을 지지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대한제국과 손을 잡는 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면, 우리가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어도 지지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걸 잘 이용하면 협상은 쉽지.’

마침 딱 좋은 게 하나 있었다.

* * *

‘조심해야 합니다.’

이광을 데리고 온 페어뱅크스가 백악관에 돌아오자마자 한 말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심계가 보통이 아닙니다.’

부통령의 진지한 조언을 시어도어는 흘려듣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사절단이 찾아온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조지 듀이가 돌아온 직후 열린 기자 회견도 있었고, 아시아 함대의 해군들과 제너럴 셔먼호의 생존자들이 대한제국에 대한 좋은 말을 많이 한 덕분이었지.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많았다.

<대한제국 사절단의 미국행! 야만인들의 침략일까?>

<미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강제로 억류한 야만인들!>

<백인들이여 일어나라! 미국을 지킬 시간이다!>

아무리 잘 해결됐고, 당사자들이 자신들이 먼저 잘못했다고 하나, 미국인을 강제로 억류시킨 나라니까.

그래서 사절단이 온다는 소식에 반발하는 여론은 꽤 컸다. 대한제국은 미국의 적이라고 주장했지.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그 세를 불려갔다.

하지만 사절단의 대표인 이광이 도착한 직후. 그런 여론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한제국 황자의 극찬! 미국은 최고의 나라다!>

<투쟁심, 개척정신, 민주주의. 이국의 황자는 미국에 반했다.>

<그동안 몰랐던 미국과 대한제국의 공통점?>

이광이 즉석에서 연 기자회견으로 여론은 바로 달라졌다.

여론을 진정시키고 반전시키기까지 하다니. 대통령인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은 고작 11살짜리 소년이 하다니.

시어도어는 이광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측 실무진이 도착한 직후. 감탄은 경계로 변했다.

관세를 낮춰 달라니.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팽창주의 노선을 탄 지금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인데. 그런 돈을 가장 벌기 쉬운 관세를 낮추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런데 여론을 바꿀 정도로 뛰어난 소년이 낮은 관세를 원한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존의 관세로 협정을 맺기 위해 기선 제압에 들어갔다.

이광이 백악관에 도착하면 열릴 예정이었던 행사들도 다 취소하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수교를 맺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이광이 실무진들과 함께 자신을 찾아왔다.

“백악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합중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이번 사절단의 대표를 맡은 대한제국의 3황자, 이광입니다.”

첫 만남은 평범한 악수와 자기소개로 시작됐다.

“오는 길은 편안하셨습니까?”

“각하께서 살펴주신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어도어는 빠르게 이광을 탐색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자신보다도 작은 꼬마다. 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제국의 황자답다고 할까. 자신을 앞에 두고도 긴장하기는커녕 여유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조심해야겠어.’

그렇게 아주 짧은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태평양은 그 어떤 바다보다도 넓습니다. 미국은 그런 태평양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희 대한은 저희 바다를 지키는 것도 힘든데 확실히 미국은 다르군요.”

‘태평양은 우리가 찜했다. 침 흘리지 마라?’

‘우린 태평양 신경 안 써. 우리 앞바다만 지키면 돼. 너희가 태평양에서 뭔 짓을 하든 우리한테 피해만 없으면 됨.’

“미국은 그 크기에 비해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긴 역사를 지닌 대한제국에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역사가 짧다고 나라가 부족한 건 아니죠. 현재 크기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관세를 낮춰달라고? 우리 돈 없어. 절대 안 됨.’

‘허 참. 땅은 그렇게 큰 나라가 속은 왜 이렇게 좁아?’

“가끔 잘 안되는 일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지요. 그 대신 다른 일에 더 집중하는 게 효율이 좋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수교 안 함.’

‘우리도 꿀릴 거 없어. 지금처럼 러시아와 무역해도 돈은 충분히 벌거든.’

대화가 이어질수록 대한제국은 물론, 백악관 쪽 실무진들의 얼굴도 새하얗게 변했다.

두 나라의 대표들은 겉으로는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실제론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두 기사의 혈투에 가까웠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대는 맹수들의 전투랄까.

칼과 총이 아닌 말로 하는 전투였지만. 이 둘의 싸움은 그 어떤 전투보다 살벌했다.

‘미쳤군.’

이광을 계속해서 압박하면서 시어도어는 감탄했다.

‘듀이 원수의 말대로 소년이 아니라 뛰어난 정치인을 상대하는 것 같군.’

자신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모두 다 반격하고 역으로 공격하기까지 한다.

시어도어는 이 수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나오며 이광을 압박했지만.

대한제국의 뛰어난 기술이 탐난 미국으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광 또한 그걸 알고 계속해서 시어도어를 압박했다.

하지만 관세를 낮추는 건 절대 안 된다.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높은 관세는 필수였다.

또한 얻어낼 수 있는 건 다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될 테니까.

시어도어는 어떻게든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또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수많은 작전들을 머릿속에서 만들어갔다.

“젠장. 이건 진짜 꺼내기 싫었는데.”

계속된 협상에 이광도 지친 것일까.

웃고 있던 표정을 찌푸린 이광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모습에 드디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며 머릿속의 작전들을 꺼내려 했다.

“에라 모르겠다. 관세를 3% 미만으로 내려주신다면 소아마비 백신을 무료로 공개하도록 하죠.”

“!!!”

하지만 소아마비 백신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작전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소아마비 백신 앞에서 그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 협상(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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