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제국이 이미 너무 강함-35화 (35/213)

< 귀국 >

일본과의 수교는 성공적으로 성사되었다.

열혈 청년들에게 죽고 싶지 않았던 이토는 억지로 미소를 지은 채 조약서에 서명했고.

일왕의 재가까지 받으며 임진왜란 이후 3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 두 나라가 다시 교류를 하게 되었다.

“잘해보자고 총리대신.”

“하, 하하하···.”

내가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자 이토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이제 할 일도 다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도고 제독과 따로 불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형님을 제치고 내가 황태자가 된다면 확실하게 보상하지.”

“저희 일본 해군의 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형님을 돕기로 한 일본 육군은-”

“저희가 최선을 다해 막도록 하겠습니다.”

육군이란 말에 도고 제독이 전의를 불태우며 대답했다.

이제 일본 해군도 일본 육군이 이검과 손을 잡았다는 걸 알았다.

자신들을 공격한 게 그것 때문이라는 것도.

그 후 해군들이 육군의 공격에 사망하며 육군은 해군의 원수가 된 상황이었다.

장작만 계속 집어넣어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지.

“얼마 후 양국의 우호를 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약속한 배들이 보내질 걸세. 이순신급 전함은 아니지만, 배가 부족한 일본 해군에겐 도움이 꽤 될 걸세.

날 도와주기로 한 해군에게 주는 선물이니 잘 쓰도록 하게.”

“가, 감사합니다!”

선물이란 말에 도고 제독은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

돈이 없어 해군이 배가 부족한 일본 해군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겠지.

이런 선물을 더 받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육군과 많이 싸워줄 게 분명했다.

뭐 배라고 해봤자 낡고 작은 고속정이나 어뢰정이 전부고, 금방 고장도 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검 또한 일본 육군과 함께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항구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다시 사이가 나쁜 척 연기를 하며 배에 올랐다.

부우우우우!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순신급 전함들이 요코하마의 항구를 떠났다.

올 때처럼 반강제로 끌려 나온 수많은 일본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일본행이 막을 내렸다.

“으. 드디어 집에 가네.”

선실에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 위에 누웠다.

“흐흐. 고생 많았다.”

이검이 실실 웃으며 뒤따라 들어왔다.

“미국과의 수교를 맺은 걸로도 모자라 대한제국을 미국의 친구로 만들고, 일본을 내부에서부터 망가뜨리다니. 아바마마께서도 자랑스러워 여기실 거다.”

“그럼 휴가 좀 보내달라고 해주세요. 고작 12살밖에 안 된 꼬맹이를 왜 이렇게 부려 먹으시는지.”

내가 궁시렁거리자 이검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만큼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조금만 더 뛰어났다간 과로해서 쓰러지겠습니다.”

“하하. 그래도 걱정마라. 돌아가면 푹 쉴 수 있을 테니.”

“그렇다면 좋겠지만···.”

우리 황제 폐하. 내가 충분한 성과를 쌓으면 놀고먹기만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 지키주겠지?

항구를 떠난 전함들은 빠르게 부산으로 향했다.

요코하마를 벗어나 시코쿠와 규수를 지나,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허가 되어 무인도가 된 대마도를 지났다.

그리고 도착한 부산.

“3황자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미국의 구세주!”

“3황자 전하 만세! 대한제국 만세!”

항구에는 일본에서처럼 수많은 백성들이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이라면 일본과 달리 정말 날 마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온 점이었다.

“허 참. 저렇게 반겨주니 좋으면서도 당황스럽네.”

“에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다른 것도 아닌 맛있는 열대 과일과 콜라를 가져다주었는데.”

내가 예상 밖의 함성에 당황스러워하자 이검이 킬킬 웃었다.

아, 그게 있었지.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줬는데 저렇게 좋아할 만도 하지.

통닭은 있으나 콜라는 없는 대한제국이었다.

기껏해야 식혜나 과일 주스와 마시다가 내 덕분에 콜라가 들어왔으니 저리 좋아할 만도 했다.

여기에 바나나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들도 들어오게 되었으니 나 같아도 마중 나왔겠지. 대한제국의 사람들에게 먹는 건 중요하니까.

그렇게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기차에 올라타고, 한양으로 향했다.

이제 좀 푹 쉴 수 있겠지?

* * *

“허어··· 엄청나군.”

이광과 이검이 대한제국으로 돌아오기 전. 이검이 적은 보고서가 먼저 경복궁에 도착했다.

보고서를 읽은 황제 이현은 감탄했다.

“혹시나 해서 시험 삼아 시킨 일이었는데. 내가 준 몇 가지 단서만으로 모두 파악하고 성공시키기까지 하다니.”

현재 일본은 대한제국보다 훨씬 약하고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일본은 위치상 대한제국에게 큰 위협이 되는 나라였다.

임진왜란처럼 또 언제 갑작스럽게 기습하며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때문에 일본군의 내부에 갈등을 심는다는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다. 미리 약화시켜두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들고, 쉽게 이길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시도해보려고 했다.

동시에 아들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그리고 얼마나 정치에 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단서만 주고 직접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둘째 이검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셋째 이광은 몇 가지 단서만으로 자신의 계획을 파악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성공시켰지.

“엄청나지 않소? 이제 고작 12살밖에 안 된 아이가 이리 뛰어나다니.”

“대한의 복이옵니다.”

대한제국의 총리 최익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총리의 대답에도 이현의 감탄은 멈출 줄 몰랐다.

“이것만으로도 천재라 불리기 모자람이 없는데, 미국에서 얻은 성과는 또 어떠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관세로 조약을 체결하고, 이순신급 전함의 판매로 국내 조선업을 부흥시켰다.

또한 필리핀에서 열대 과일들을 싼값에 사와 백성들의 먹거리를 풍족하게 만들었고, 신형 권총의 라이센스까지 따와 싼값에 생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권총을 만든 존 브라우닝이란 뛰어난 총기 장인을 데려오기까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건만. 이광은 더 큰 일을 해주었다.

“미국이 우리 대한을 친구로 여기게 되다니.”

대한제국의 예상으로 미국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나라다.

그런 나라와 친구가 됐다는 건 매우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백인들이 중심인 나라라 힘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진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는 방법으로 친구가 되다니.

“특히 가장 잘한 건 바로 이 콜라는 음료의 독점 판매권이란 말이지.”

이현이 얼음이 들어간 잔에 든 콜라를 마시며 웃었다.

“캬하-! 이 청량감은 진짜 대체 불가라니까.”

“그래도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전하께서도 설탕이 많이 들어가 너무 많이 마시면 이가 썩고 살이 찔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걱정말게. 이번에 집현전에서 설탕이 아닌 다른 인공감미료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 설탕이 안 들어간, 비교적 건강한 콜라 또한 곧 맛볼 수 있을 거라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제 아들 자랑을 하던 이현의 웃음이 멈추었다.

들고 있던 콜라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은 이현이 최익현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지 않은가? 이광이야말로 황태자에 누구보다 어울리는 아이야.”

“충분합니다. 너무 충분해서 문제일 정도입니다.”

최익현 또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뛰어나신 분이 황위 계승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게 문제지요.”

“젠장. 어찌 세 아들 다 뛰어난데 황제 하고 싶다는 놈들이 없는지.”

다른 나라들은 왕자들끼리 자기가 왕 되겠다며 싸운다는데. 어째 자신의 자식들은 싸우기는커녕 다들 하기 싫어했다.

첫째는 연구한다고, 둘째는 군인이 더 좋다고, 셋째는 놀고 먹기만 하고 싶다면서.

“일단 돌아오면 설득해봐야지. 젠장. 황제가 되어달라고 설득해야 한다니.”

조선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왕자들은 선택권이 거의 없었다.

능력이 뛰어나다 싶으면 세자로 되고 새로운 왕이 되거나, 왕실을 위해 일을 할 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왕자들에게는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었다.

왕실을 위해 일하거나, 아니면 왕이 될 뿐이었다.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잉여인간이 되어 살아가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시간이 지나며 황자들 또한 많이 바뀌었다.

그저 황제가 되거나 황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황자들은 굳이 황제가 될 필요가 없어졌다.

그동안은 그래도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황자들이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아예 없을 정도로.

“특히 광이처럼 뛰어난 아이라면 굳이 황제가 될 필요도 없지. 사업을 해도 성공할 테니까.”

“설득이 잘 되길 바라옵니다만··· 하지만 전 여전히 조금 걱정이 됩니다.”

“뭐가 말인가?”

“그렇게 마음이 선하신 분께서,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대한을 잘 이끌어 나가시겠습니까?”

“음···.”

안중근이 들었다면 ‘그건 또 무슨 개소리이옵니까?’라는 말이 나올 법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현재 대한제국 내에서 이광의 평판이 그랬다.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수많은 사람들을 보살핀 착한 황자.

미국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들은 대한제국 또한 이광을 선한 마음을 가진 착한 황자라며 칭찬했다.

자연스레 형들에 비해 거의 알려진 게 없었던 이광의 이미지 또한 좋아졌지.

하지만 이런 ‘착한’ 아들을 둔 아버지는 걱정일 따름이었다.

“총리도 알다시피 이제 곧 세상이 불타오를 걸세.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생긴 갈등이, 세계 전쟁으로 번지겠지.”

이건 이현만의 망상이 아니었다.

대한제국 밖의 사정에 밝은 모든 조정의 고위들 또한 그렇게 예상하였다.

“과연 이런 세상 속에서 광이가 대한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평화로울 때의 성군이 난세에는 암군이 되기도 하는 법.

영악하기는 하나, 본성은 착한 아들이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임무를 마친 아들들이 함께 귀국하고,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린 날 밤.

안중근에게서 따로 보고를 들은 이현과 최익현은 경악했다.

“···뭐라고? 광이가 뭘 어쨌다고?”

“지진이 일어날 걸 집현전을 통해 미리 예측하시고, 이를 이용해 큰 피해를 입은 샌프란시스코를 도우며 미국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지진을 예측했다는 말에 이현과 최익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집현전에서 그런 연구도 했사옵니까?’

‘묻지마. 나도 몰라.’

온갖 신기한 연구들이 이루어지는 집현전이다.

현재 하는 연구들 중에는 날씨를 예측해보려는 연구도 있고.

하지만 그중 어떤 연구 중에도 지진을 예측하는 방법은 없었다.

지진을 예측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광이 집현전에서 예측한 지진을 이용했다니. 웬만한 건 거의 다 아는 둘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이광이 그 지진을 이용해 미국의 마음을 얻었단 것이었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걸 알았음에도, 일부러 이를 알리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절망이 가득할 때 손을 내밀어주며 미국이 대한제국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그리고 이런 행동 덕분에 미국이 대한제국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는 말에 둘 모두 경악했다.

고작 12살 소년의 계획이라기엔 너무 잔인해서.

그러고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는 말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광이가 죽인 건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들을 죽게 내버려 뒀다면 죽인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잔혹하나 효율적이다.

재난을 이용해 사람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다니. 황제인 이현조차도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으음.”

“괜찮으시옵니까?”

최익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이야기대로라면 이광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이현은 웃고 있었다.

“안 대위. 광이가 다른 나라의 백성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대한제국의 백성들만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고?”

“예 폐하.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천이 넘는 다른 나라 백성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얻고자 하지만,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하하! 무조건 황태자로 책봉해야겠군!”

이현이 껄껄 웃자 최익현이 당황하며 물었다.

“폐, 폐하 어째서 웃으시는 것이옵니까?”

“아들이 누구보다 황제에 어울리니까 웃지. 적에게는 잔혹하나, 자신의 백성에게는 따뜻한 것이야말로 황제에게 어울리는 덕목이니까.”

이 정도면 자신이 뭘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이광은 완성된 황제나 다름없었다.

“내일 광이가 집현전에 간다지? 짐도 가야겠군.”

대한제국의 황태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집현전의 비밀들을 알려줘야 할 테니까.

< 귀국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