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지배자(3) >
독일의 비행 서커스단을 잡기 위한 두 개의 부대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대공포로 개조된 40mm 포로 무장한 방공포 대대가,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지휘하게 된, ‘유령 부대’라 이름 붙여진 부대였다.
유령 부대라니. 듣기만 해서는 무슨 암살자들로 이루어진 부대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그런 이름과 달리 차출된 병사들은 전혀 암살자답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입대 전 전공이나 직업?”
“목수였습니다!”
“아버지께 용접을 배웠습니다!”
“화가였습니다!”
“전원 합격!”
화가, 목수, 대장장이 등등. 전투와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졌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너희들은 왜 왔냐?”
하지만 이런 직업, 혹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좌진과 김상옥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에이. 한 번 해본 경험자들 아닙니까?”
“한 번 해본 사람들이 다시 뭉쳐야죠.”
피식.
실없이 웃는 둘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하긴 같이 한번 해 본 녀석들이 함께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겠지. 그런데-
“형님은 왜 오셨습니까?”
“김 중위가 재미있을 거라고 해서 놀러 왔다!”
“······.”
···이 양반은 좀 있으면 마흔인데 언제쯤 철이 들까?
전차대대 대대장이란 양반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다른 부대로 놀라오다니.
근래에 전차 부대가 전투에 나설 일이 별로 없어 이검이 심심했나 보았다.
“이 부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몰라!”
“아오씨. 진짜···.”
나이를 먹어도 사람이 변하질 않네.
한숨을 쉰 후 설명을 시작했다.
“렘베르크 근방에 있는 러시아 공군만으론 적 전투비행단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전투기의 성능부터 차이가 나니까요.”
“그렇다고 들었다.”
“그러니 대공포로 선제공격을 해 적 전투기들에 타격을 준 뒤, 피해를 입은 적들을 아군 공군이 격추시킨다는 게 이번 작전의 목표입니다.”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선빵부터 맞고 시작하면 전력을 다하기 힘든 법이지.”
이검은 그럼 아군 피해도 적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비행 서커스단이 강하다고는 하나, 수백 대의 대공포가 동시에 사격한다면 피해를 입을 거다.
몇 대는 격추될 테고, 격추되지 않은 전투기들도 구멍이 숭숭 뚫리겠지.
그럼 전투력도 떨어질 테고, 러시아 공군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이 부대는 뭘 위한 것이냐?”
“적 전투기들이 대공포의 화망에 들어오도록 만들, 미끼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적들을 대공포의 화망 속으로 어떻게 유인하느냐다.
기껏 대공포 수백 대를 준비해 봤자 적 전투기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으니까.
홍범도가 찾은 방법은 바로 대한제국의 포병대였다.
현재 적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바로 대한제국 포병들이다. 아군 포병들이 더 긴 사거리와 강한 화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적들은 하늘에서 공격하여 피해를 주고자 하겠지. 자신들의 자랑인, 비행 서커스단을 동원해서.
“그리고 우린 그들이 공격할 미끼를 만들 겁니다. 가짜 야포들을 설치해서요.”
2차 세계 대전 때도 유령 부대란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고무 튜브로 된 전차와 트럭 등을 사용, 적들을 기만시키는 게 목적인 부대였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지휘하게 된 유령 부대도 이와 비슷했다.
적들이 표적으로 삼을 가짜 포병대를 만든 뒤, 그걸 보고 공격하기 위해 강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화가, 목공, 대장장이들을 모은 것도 다 가짜 야포들을 만들기 위함이었지.
이검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변에는 화망을 만들 대공포들을 숨겨놓고 말이지.”
“예. 대공포들은 땅 속에 넣거나 풀숲 등으로 위장시킬 예정입니다.”
이 시대 전투기들의 현대와 다르게 정확한 폭격이 어렵다.
그러니 기관총을 쏘던, 준비한 폭탄을 떨어트리던 정확하게 명중시키려면 고도를 낮추고 날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를 노리고 땅을 파고 숨어있던 대공포들이 튀어나올 거다. 그리고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적 전투기들을 향해 포탄을 난사하겠지.
“그렇게 되면 적들이 가장 취약한 틈을 타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흐흐. 그 후 걸레짝이 된 적 공군을 공격하기 위해 러시아 공군이 나서겠군.”
그럼 짜잔~ 비행 서커스단은 비행 서커스단이었던 것이 될 거다.
“하하하! 적군을 낚는 강태공이 되는 것이로구나!”
우리 부대의 목적을 이해한 이검이 껄껄 웃었다.
“좋다! 내 솜씨를 발휘해 누가 봐도 속을 최고의 가짜 야포를 만들어주마!”
“사고나 치지 마십시오.”
“하하! 걱정마라! 내가 사고를 치면 얼마나 치겠-”
“야 이 미친놈아! 네 부대는 내팽개쳐놓고 여기 와서 놀고 있냐!”
“헉! 들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서일의 등장에 이검은 바로 줄행랑을 쳤다.
“일도 많은데 놀지만 말고 일을 하라고!”
“싫어! 부관인 네가 다 하면 되잖아!”
“내가 네 노비냐!”
그런 이검을 또 쫓아가는 서일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인간은 언제쯤 철이 들까?”
혹시 죽을 때까지 저러는 건 아니겠지?
그 후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나무를 원통으로 깎고 안을 파내고. 그 위에 얇은 철판을 붙이거나 색칠하며 가짜 야포들을 만들었다.
“좀 더 그럴듯하게 생겼으면서 만들기도 쉬운 가짜를 만드는 방법 없나?”
“풍선을 쓰면 되지 않을까?”
“오! 바람만 넣으면 될 테니 딱 좋네!”
육해전에서 나와 함께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는 김좌진과 김상옥은 날 옆에서 도왔고.
이검도 툭하면 찾아와 직접 뭘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수백 대에 달하는 가짜 야포들이 완성되었다.
“다 괜찮네. 역시 예술가들의 손을 타서 그런가?”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졌음에도 가짜 야포들은 그럴 듯했다.
멀리서 보면 가짜인 걸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가짜 야포들 사이에 있는 망측한 물건 하나만 빼고.
한숨을 쉬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이검에게 물었다.
“이건 뭡니까?”
“내가 직접 만든 가짜 야포다. 이름은-”
“폐기.”
“아 왜!”
“꼬라지를 보십쇼. 저게 어떻게 봐서 야포입니까? 언급하기도 남사스러운 물건이지.”
바퀴랍시고 설치한 알 두 개 사이에 세워진 거대한 기둥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긴 게 꼭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뭐시기 포 닮았네.
저런 걸 놔두면 적 전투기 조종사들이 폭격하러 오다가 징그럽다고 도망치겠다.
이검이 만든 흉물을 치운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 이제 와라. 하늘의 지배자들아.”
너희들을 잡을 함정이 완성되었으니.
* * *
“적 포병대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제공권을 빼앗은 독일은 매일 같이 항공정찰을 실시했다.
그렇기에 프레미셸에서 50km 떨어진 곳에 나타난 적 포병대를 발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항공정찰을 하며 찍은 사진을 본 린징겐이 입을 열었다.
“공세를 취할 생각인 건가?”
사진에는 수백 대가 넘는 적 야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빈 땅이었는데. 지난 며칠 사이 빈 땅이었던 곳에는 수백 대가 넘는 야포들이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야포들의 이동이라면 공세가 분명했다.
공세를 펼칠 게 아니라면 야포들을 이렇게 이동시킬 리가 없으니까.
“당장 놈들을 공격해야 하오!”
지휘권을 빼앗긴 후 식객이나 다름없어진 콘라트가 소리쳤다.
“놈들이 더 접근해 저 괴물 같은 야포를 쏘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 하오!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는단 말이야!”
“으음······.”
며칠 전에 저 말을 들었다면 또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 한다며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몇 번 당해본 린징겐은 겉으로 그 감정을 드러내지만 않았지. 속으로는 콘라트와 같은 생각이었다.
저 괴물 같은 야포들이 더 접근한다면 프레미셀이 사거리 안에 들어간다.
그러기 전에 저 야포들부터 치워야 했다.
“당장 제1 전투비행단에게 연락해라.”
“옛!”
잠시 후 그 사진은 괴링에게도 전해졌다.
“드디어!”
괴링은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부대원들을 소집했다.
“적 포병대가 프레미셀에서 40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한 걸 발견했다! 모두 전투 준비!”
“함정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금 더 확인이라도 한 후-”
“로타어! 계속해서 패배주의로 가득한 발언을 하는데, 그러고도 네가 붉은 남작의 동생인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했던 로타어가 다시 발언했지만. 괴링이 죽은 형을 언급하자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그 후 예순 대에 달하는 포커 D.VII 전투기들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작전은 간단했다.
전투비행단은 우회하여 적들의 측면을 공격. 적 포병대에게 타격을 준다는 게 이번 작전의 목표였다.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괴링도 괜히 나선 게 아니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무기 또한 발달했고, 전투기 또한 발전했다.
그러면서 전투기도 폭격기처럼 폭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종수가 직접 폭탄을 떨어트리던 방식에서, 전투기 바닥에 설치한 폭탄을 버튼을 눌러 떨어트리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봤자 겨우 가벼운 박격포 포탄 몇 개를 떨어트리는 게 전부고 명중률도 낮지만. 그것만으로도 적 포병대에게 타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하늘로 날아오른 전투기들은 빠른 속도로 목표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평야에 세워진 수백 문이 넘는 야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쭉 나열되어 있는 야포들은 위협적이면서도 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다.
땅에서는 저 야포들이 지배자일지 몰라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격엔 너무나도 약할 테니까.
게다가 자신 같은 전투기들을 막기 위한 대공포들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직 설치하기 전인가 보았다.
척!
괴링의 수신호와 함께 전투기들이 일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로타어 또한 자신의 옆에서 날던 사촌, 볼프람과 눈을 마주치곤 선회했다.
예순 대의 전투기들이 일제히 선회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움과 위압감을 동시에 품은 채 길게 세워져 있는 야포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잠시 후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전투기들은 선두부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너무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트리면 명중률이 낮아져 목표를 맞추기 어렵다.
정확한 명중을 위해서라도 고도를 낮춰야 했다.
그리고 딱 적당한 거리까지 내려오자, 포병들로 보이는 병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제일 선두에서 날던 괴링은 웃으며 버튼을 눌렀다.
쾅! 쾅!
두 발의 박격포탄이 야포들 위로 떨어지며 폭발했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뒤따라오던 전투기들도 폭격을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떨어진 포탄들이 폭발하며 야포 옆에 있던 포탄들도 함께 폭발했다.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불꽃에 괴링은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들이 다 사라지겠군.’
격추 기록도 대부분이 사기다. 전임 지휘관이 사고로 죽어 어부지리로 지휘관이 되었을 뿐이다.
이런 소문들이 도는 걸 괴링 또한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 승리로 인해 그런 말은 쏙 들어갈 것이다.
대신 위협적인 적의 포병대로부터 아군을 지킨 창공의 수호자로 알려지겠지.
행복한 상상을 하며 다시 고도를 높이려던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엔진소리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에 땅에서 나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건만.
괴링은 분명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야포들로부터 떨어진 땅을 파고 숨어있던 수십 문의 대공포들이 위장 천막을 걷고 튀어나왔다.
“사격 개시!”
함정을 중심으로 사방에 숨어있던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발견하고 튀어나오듯. 대공포들이 일제히 조준하고 사격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투투!!!
화망에 들어온 전투기 몇 대가 피격을 당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뭐, 뭐야!”
괴링은 경악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수백 문이 넘는 야포들을 미끼로 써가면서?
말도 안 된다. 야포도 결코 싸지 않은데. 거기다 다른 야포들은 장난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가진 야포들이다.
그런 야포 수백 문을 미끼로 쓰다니.
아무리 자신들을 잡기 위해서라고 해도 야포 수백 문을 희생시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그러니 직접 보고, 당하고 있음에도 괴링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무 말이 안 됐으니까.
“뭐냐고 이건!”
걸레짝이 되어 가는 자신의 전투기와 부대를 보며, 괴링이 소리를 질렀다.
< 하늘의 지배자(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