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신혼여행(2) >
“우와아아아!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께서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우리 부부를 맞이한 건 수천 명이 넘는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었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온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날 보기 위해 와있었다.
그걸 본 아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인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흐흐. 제가 이 정돕니다.”
내가 손을 흔들어 주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어린 성자!”
“샌프란시스코의 구원자!”
이제는 추억이 된 내 옛 별명들을 부르면서.
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도왔다.
다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재앙 속에서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성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서부에서 난 인기 스타나 다름없었다.
오랜만의 방문에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진실은 추악하지만.’
지진이 일어날 걸 알았음에도 입을 다물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방치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굳이 알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죽었을 사람들이라 딱히 미안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웃고 손을 흔들며 환영에 화답해 주었다.
그 후 우리는 하룻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렀다가 바로 워싱턴 D.C로 향했다.
미국에 온 이상 윌슨은 한 번 만나야 할 테니까.
하지만 급한 건 없었기에 중간중간 기차에서 내려 주변 구경도 하면서 갔다.
그리고 도착한 백악관.
우리가 도착하자 윌슨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하하! 선남선녀가 따로 없군요!”
팔짱을 낀 우릴 보며 윌슨은 껄껄 웃었다.
근래에 들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어서일까. 윌슨은 이전보다 더 젊어진 것만 같았다.
여기에 이전의 호황은 장난으로 만들어 버릴 호황이 찾아올 예정이다. 그럼 마음 고생을 할 일이 아예 없어지겠지.
아마 임기가 끝날 때까지 뇌졸중은커녕 아주 건강하게 지낼 것 같았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하하. 각하도 축하드립니다. 미국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되셨군요.”
“다 미합중국의 시민들께서 절 좋게 봐주신 덕분이죠.”
내가 3선을 이야기하자 윌슨은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하긴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하지 못한 미국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됐으니 좋을 만도 했다.
거기다 지지도까지 높으니 아마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겠지.
“그리고 이쪽이 이번에 대한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신, 아나스타샤 공주님이시군요.”
윌슨이 아냐에게 인사하곤 자신의 옆에 있던 여인을 가리켰다.
“이쪽은 제 아내인 이디스(Edith Wilson)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주님.”
윌슨과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는 여인이 웃으며 인사했다.
아냐 또한 웃으면서 인사했고.
‘저 여자가 그 여자네.’
나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신기하게 이디스를 바라보았다.
원 역사에서 윌슨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아내인 이디스 윌슨은 대담하게도 남편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했다.
당시 부통령의 승계 원칙이 조금 모호한 것을 이용한 것이었다.
거기다 당시 부통령이던 토마스 마셜이 백악관의 보좌진들과 갈등을 겪기까지 했다. 그래서 부통령을 배제해버리고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했지.
진짜 그게 알려졌으면 윌슨은 뇌졸중 때문에 쓰러진 채로 탄핵되었을 거다.
하지만 이디스는 철저하게 이를 숨겼고, 이는 윌슨이 죽고 나서야 밝혀지며 탄핵은 피했다.
‘무서운 여자지.’
남편이 쓰러지자 바로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리다니.
보통 성격이 아닌 이상 겁이 나서라도 못 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이 세상의 이디스는 아니었다.
윌슨이 멀쩡하기 때문에 그저 영부인으로 남아 있었다.
아냐가 백악관을 구경하기 위해 이디스의 안내를 받으며 나와 떨어진 이후. 난 집무실로 들어가 윌슨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가짜 야포들을 만들어 독일 전투기들을 속였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하하. 예. 다행히도 성공해서 적 전투기들을 잡을 수 있었죠.”
“허어······ 전하께서는 뛰어난 군인이기도 하셨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하하하. 다른 군인들이 도와준 덕분이었습니다.”
전쟁 이야기도 하고, 결혼 생활 동안 필요할 조언 같은 잡다한 이야기들 투성이었지.
하지만 잡담이나 하자고 온 건 아니었다.
윌슨과 나눌 대화가 몇 가지 있었으니까.
“······상임 이사국이 되기는 힘드실 것 같으시다고요.”
내가 국제연맹의 상임 이사국 자리를 양보하겠다 말하자 윌슨은 살짝 아쉬워했다.
“대한제국이 상임 이사국이 된다면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겠죠. 하지만 이탈리아가 상임 이사국이 못 된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이탈리아도 전쟁 동안 큰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그러니 이 자리는 이탈리아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쩝. 그건 그렇죠.”
하지만 이유를 말하자 윌슨도 더는 부탁하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오히려 그런 결정을 내려준 대한제국에게 이탈리아가 감사(?)해할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참 나. 진짜 머릿속이 꽃밭에 있는 아저씨란 말이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절대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어쨌든 그런 사람이니 대한제국으로선 이득이었다.
말만 잘하면 이용해 먹기 쉽다는 소리기도 하니까.
그 후 난 윌슨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이나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더 나눌 이야기도 없었기도 했고.
그리고 저녁때가 됐을 무렵 백악관 구경을 끝낸 아냐가 돌아왔다.
“자기야!”
“백악관 구경은 잘 했어요?”
“네. 영부인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어요.”
팔짱을 낀 아냐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근데 미국은 많이 검소한 나라인가 봐요. 이런 낡은 곳에서 대통령 부부가 살다니, 옛 성현들께선 군주의 검소함을 강조했는데, 미국도 우리 러시아처럼 일찍이 유학을 받아들였나 봐요.”
“하하······.”
······그러니까 백악관이 많이 낡았다는 소리구나.
데 이게 또 사실이었다. 백악관은 지난 세월 동안 불에 타기도 하고, 일부가 무너지기도 했거든.
거기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이 원하는 걸 설치하고 또 제거하며 상태가 더 안 좋아져 갔다.
오죽했으면 트루먼 대통령 시절에 2층에 있던 피아노의 다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갔을 정도였다.
만약 조금만 더 낡았다면 1층에 있던 사람들은 피아노에 깔려 죽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백악관이 일찍이 유학을 받아들인 러시아 제국의 공주님의 눈에는 검소한 걸로 보였나 보다.
하긴 일국의 지도자가 지내는 건물이 이렇게 낡았다면, 차라리 검소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그럴듯하겠지.
“아, 그리고 구경하는 도중에 어떤 신기한 할아버지를 보았어요.”
“할아버지요?”
“예. 큰 키에 수북한 수염이 인상적인 할아버지였어요. 분명 복도 끝에 서 있는 봤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사라졌더라고요!”
“······.”
“혹시 오흐라나 요원 같은 비밀 요원인 걸까요?”
그 말에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것 참. 오랜만에 소식을 듣네요. 링컨 전 대통령 각하.
아직도 성불 못하고 백악관에 남아 있었군요.
‘진짜 트루먼식으로 퇴마(물리)해야겠네.’
안 그럼 백 년은 더 있을 게 분명해.
그리고 백악관이 귀신 소굴이 된 것도 낡아서가 분명했다.
안 그럼 귀신이 이렇게 대낮부터 나올 리가 없잖아?
그렇게 또 링컨을 만나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하룻밤을 보낸 후. 우리는 D.C.에서 나와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 있는 중요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우리가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온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냐 또한 그게 누군지 많이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천재’라고도 할 수 있겠죠.”
“천재요? 엄청 똑똑한가 보네요?”
“이 사람은 똑똑함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우와······.”
내가 이 정도로 극찬하는 건 처음 봐서일까. 아냐의 눈이 커지며 진심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네요.”
“음. 기대해도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해야 할지······.”
“??”
얼마 후. 우리는 뉴욕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높고 화려한 것이 딱 봐도 하룻밤만 보내는 데도 많은 돈이 들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최상층에 위치한 이그제큐티브룸(Executive Room) 앞에 도착했다.
“여기입니다.”
호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방 앞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뭐랄까. 이런 호텔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공장 냄새와 동물 사육장 냄새가 동시에 난달까?
안 그래도 매니저의 표정이 안 좋은 게 이런 냄새가 난 게 하루 이틀이 아닌 듯했다.
“불러.”
쿵쿵쿵!
내가 명령하자 함께 온 안중근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쿵쿵쿵!
그러나 안중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한 오십 번쯤 두드렸을까.
더 이상 못 참겠던지 안쪽에서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요한 연구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있네. 열어.”
“예.”
방 안에 있음을 확인한 나는 매니저에게 문을 열라고 시켰다.
매니저는 드디어 사장의 허락을 받고 진상을 쫓아낼 수 있게 된 알바생처럼 기쁜 마음으로 열쇠를 꺼냈다.
달칵.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푸드득!
날갯짓 소리다. 절대 화장실 소리 아니다.
문을 열자마자 수십 마리의 비둘기 떼가 날아올랐다.
······미친. 비둘기 키우는 게 취미였다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면 애니멀 호더급인데?
호텔방 내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개판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렸다.
한쪽에는 비둘기의 집들이 벽에 달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무슨 실험을 한 것인지 실험 도구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청소는 언제 한 건지 바닥에는 비둘기의 똥과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걸 본 매니저가 비틀거렸다. 안중근이 잡아 주지 않았으면 진짜 기절한 채 쓰러질 뻔 했다.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안쪽에서 얼굴에 짜증이 한가득인 노인이 씩씩대며 나왔다.
그 노인을 본 아냐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오······ 오?”
아냐는 진짜 내가 말한 천재가 저 사람이냐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관리를 안 해 떡져 있는 수염과 미치광이처럼 하늘 높이 솟은 머리. 폭죽 앞에서라도 서 있었는지 불똥이 튀어 군데군데 구멍이 난 옷까지.
천재는커녕, 거지가 더 어울리는 노인이었다.
우리를 본 노인이 버럭 소리치며 화를 냈다.
“당신들은 누구야! 누군데 내 방에 함부로 들어와! 이거 주거 침입-!”
“난 이광이라 하오. 대한제국의 황태자지.”
“······예?”
하지만 내 이름을 들은 순간, 분노는 사라지고 당혹스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황한 나머지 말도 다 잇지 못한 노인, 아니 니콜라 테슬라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을 후원해준 후원자이기도 하고.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군.”
“······.”
테슬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내 시선을 피했다.
니콜라 테슬라.
근대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세계적인 천재.
동시에 거대한 건물 전체를 흔들고, 도시 전체를 정전시키는 등.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대표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직접 본 테슬라는 둘 모두와 거리가 멀었다.
그것보다는 상환 기한이 다 되었는데도 돈을 갚지 못해 겁에 질린 빚쟁이에 가까웠다.
테슬라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지, 진짜 대, 대한제국의······ 황태자시라고요?”
“그래. 동시에 아까 말했든 자네의 후원자였고.”
“그, 그렇군요······.”
그러면서도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는 게 진짜 빚쟁이 같았다.
그리고 이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그럼 차라도 한 잔 하, 하시겠습니까?”
“그건 됐고.”
고개를 젓곤 테슬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돈 갚을 시간이네. 돈 갚게.”
진짜 빚쟁이었거든.
< 바쁜 신혼여행(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