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란의 20년대(2) >
“대한제국도 난리군.”
미국의 호황은 대한제국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작은 윌로우와 거래를 하는 기업들부터였다.
이들은 대한제국에서 생산한 공산품을 미국에 팔기 보다, 윌로우에게 자사 상품의 설계를 팔고 로열티를 받는 식으로 이익을 보고 있었다.
이는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대한제국 공산품이 미국산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났으니까. 비슷한 가격이라면 무조건 대한제국의 상품을 선택할 정도였지.
그렇기에 대한제국의 상품들이 미국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미국 산업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이전에는 부자들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게 팔았다.
이렇게 되면 많이는 못 팔겠지만, 한 개만 팔아도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기업들도 따랐고.
하지만 윌로우가 만들어진 이후 이런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한제국의 기업들이 윌로우에게 자사 상품들의 설계를 팔고, 로열티를 받기 시작했거든.
외국에서 들어온 상품이 자국 산업을 위태롭게 만들면 그건 적대적 행위다.
하지만 미국 기업이 미국 내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고용한 노동자도 모두 미국인이고, 세금도 미국에 내니까.
윌로우에서 생산한 상품들도 다른 미국 기업들의 상품들보다는 비쌌다. 로열티를 주려면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대한제국에서 넘어온 상품들보다는 훨씬 쌌고, 질도 다른 미국 기업보다 훨씬 좋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사람들은 윌로우의 제품을 구매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정복해 가던 윌로우는 광란의 20년대가 시작되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자연스레 대한제국의 기업들이 받는 로열티도 늘었고. 버는 돈이 늘어나자 대한제국 기업들의 주가 또한 올랐다.
그 후 이런 기업들과 거래하는 다른 기업들의 주가 또한 상승. 대한제국에게도 호황이 찾아왔다.
그래서일까. 조회(朝會)에서 대신들의 표정도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대신들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들 산 주식이 꽤 올랐나 보군. 입꼬리가 귀에 걸린 걸 보니.”
“하하. 티가 많이 났사옵니까?”
총리인 이시영도 주식으로 재미 좀 봤는지 싱글벙글이었다.
“예전에 재미 삼아 샀던 주식인데. 지난 며칠 사이 엄청 올랐사옵니다.”
“재미로 주식 샀다는 사람 치고 진짜 재미로 산 사람은 없던데?”
“하하. 이거 들켜 버렸군요.”
조회를 주식 이야기로 시작해서일까. 그 이후에도 대신들은 주식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이번에 자동차 쪽 주식이 많이 올랐다고 하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주식이 오르고 있소.”
“땅값도 많이 올랐소. 내 먼 친척이 은퇴하면 농사나 지으려고 샀던 땅이 글쎄-.”
이런 호황은 대한제국도 처음이었다. 대신들이 저리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그 흥분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기서 막아야 했다.
“그대들은 이 호황이 언제까지 갈 것 같은가?”
“······.”
“설마 앞으로도 쭉 이럴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찬물을 끼얹는 내 발언에 대신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곤 긴장하기 시작했다.
총리인 이시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이런 호황도 곧 끝난다고 예상하십니까?”
“당연하지. 한 10년 안에 끝이 날 걸세.”
“으음······.”
“그리고 그 후폭풍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겠지.”
내 말을 들으며 대신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내 말대로 호황이 끝이 난다면? 과연 ‘에이 좋은 시절 다 갔네’라며 아쉬워하고 끝날까?
아니겠지. 호황동안 오른 주가가 박살 나고 기업들은 파산할 것이며, 수많은 백성들이 직장을 잃고 빚에 허덕이게 될 거다.
그런 미래를 머릿속에 그린 대신들은 경악했다.
호황이라고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러니 대신들은 이를 대비할 방도를 찾아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 후 대신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일하며 대비책을 찾았다.
“기업의 방만한 운영을 막을 수 있게 감사를-.”
“어음 또한 조심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주식에 투자하고자 무리하게 대출을 받지 않도록 규제를-.”
나온 의견들도 괜찮은 게 많아 이 정도면 큰 걱정은 없겠다 싶었고.
‘근데 자기들이 산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까 봐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 아니겠지?’
뭐, 그래서 대한제국의 경제가 망하는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큰 상관은 없겠지.
이후 대한제국은 경제 공황을 막기 위한 정책들을 만들고, 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나라는 대한제국이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대한제국 황실에서 온갖 정책과 규제들을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호황을 아예 막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 둬야 하는 법이니까.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고, 기업들도 안정적인 운영을 한다면 돈을 버는 걸 방해하진 않았다.
황실에서도 돈을 벌 생각이기에 더욱.
“이미 충분히 부자인데, 여기서 더 부자가 되려고요?”
침대에 나와 함께 누워 있는 아냐가 욕심쟁이라며 내 볼을 콕 찔렀다.
“대한제국 내에 가진 재산도 많고, 여기에 미국 최대 기업이 된 윌로우의 대주주이고, 여기에 대한제국의 황제이기까지 한 분이. 여기서 더 벌려고요?”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라도 많이 벌어 놔야 하고요.”
“미래요?”
아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황제가 모든 힘을 독점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
그제야 내 말 뜻을 알아차렸는지 아냐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대한제국은 전제군주제인 나라다.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고 한계 또한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앞으로도 계속될까?
아니겠지. 언젠가는 끝이 날 게 분명했다.
입헌군주제와 공화제가 등장한 이래, 전제군주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시작한 이후 생긴 변화였지.
대한제국과 러시아 제국이야 오랫동안 나라를 잘 이끌어오며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왔기에 그런 일은 없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그들 또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저항하게 될 거다.
그럼 대한제국 또한 선택을 해야 할 거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폭군이 되거나.
아니면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며 백성들에게 권력을 돌려준 명군이 되거나.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겠죠. 입헌군주제는 막을 수 없는 변화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되면 황실의 권한은 축소되고, 가진 힘 또한 줄어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황실의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나올 거다. 툭하면 군주제 폐지론이 나온 영국처럼.
하지만 돈이 많다면 걱정이 없지.
자본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현대에서는 돈이 곧 힘이었으니까.
그러니 돈이 많으면 법적으로는 예전보다 약해졌을지 몰라도, 황실은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러니 벌 수 있을 때 벌어 두며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 이유라면 저도 찬성이에요.”
아냐가 지난 몇 달 동안 많이 부른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 자식들이 눈치 보며 사는 건 싫으니까요.”
“걱정 마요. 제가 그런 일은 없도록 만들 테니까.”
“그래서 또 어떤 사업으로 돈을 벌 생각이세요?”
“음······ 아직 생각나는 건 없네요.”
문제는 여기서 또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돈 좀 벌 수 있겠다 싶은 사업은 이미 포화 상태거나,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러니 새로운 걸 해야겠는데, 그 새로운 걸 찾기가 힘들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볼 수 있는 사업이 가장 좋은데······.”
내가 그런 사업 아이템을 찾기가 힘들다며 아쉬워하자 아냐는 킥킥 웃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사기도 잘 당한다던데.”
“찾아보면 진짜 있거든요?”
“예. 예. 누가 투자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투자할 생각 없냐고 물으면 무시하세요.”
아냐는 모르는 어른이 같이 가지고 하면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치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감히 황제를 아이 취급 하다니. 아기가 태어나고 몸이 다 회복되면 잔뜩 혼내줘야겠군.
“사업 제안을 받으면 저한테 검사받고 하세요.”
“끄응······.”
아냐는 그렇게 말하며 옆 탁자에 있던 신문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진짜 대박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투자는 적게 해도 되면서, 이득은 어마어마한 사업이.
“유레카!”
이럴 때는 벌떡 일어나면서 유레카를 외치는 게 국룰이지.
하지만 그로 인해 아냐는 나와 결혼하고 처음으로 인상을 썼다.
“깜짝이야! 애 떨어지면 어떡하려곳!”
“미, 미안해요······.”
“또 이러면 그때부턴 각방 쓸 거니까 그렇게 아세욧!”
아, 안돼. 각방이라니. 내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어도 조용하게 반응할 것을 약속하며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가요?”
“생각 난 김에 바로 하려고······.”
“빨리 갔다 와요. 다른 사람이 채갈라.”
하지만 자식을 위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건 괜찮은지 지금 가는 건 뭐라하지 않았다.
역시 우리 황후님. 이해심이 마리아나 해구 만큼 깊으시다니까?
그 후 침전 밖으로 나온 난 곧바로 당직을 서던 관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기 신문에 단편 소설과 만평을 기재한 작가들을 고용해 오라고.
* * *
대한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을 묻는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대한신문을 뽑았다.
신문은 언제나 정확한 정보만을 담았고 또 대한신문이 가진 오랜 역사 때문이었다.
조선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관보(官報)인 조보(朝報)로부터 시작된 대한신문은, 언제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백성들을 무식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런 신문이 수백 년 동안 이어졌으니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문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역사가 길고, 정확해서 대한신문을 좋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 실린 단편 소설과 만평 때문도 있었다.
이영도 화백이 그린 만평의 수려한 그림체와 번뜩이는 풍자는 사람들이 웃게 만들었고,
젊은 소설가인 방정환이 쓴 단편 소설은 수많은 사람들을 울고 또 웃게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대한신문에서도 이 둘은 금덩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과 만평을 보려고 신문을 구독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대한신문이, 어느 날 갑자기 둘을 회사로 호출했다.
그동안 서로의 작품을 보며 오랫동안 교류를 했던 둘이다. 그러면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고.
갑작스런 호출에 당황한 방정환이 물었다.
“형님. 사장님께서 왜 갑자기 저희를 부르신 건지 아십니까?”
“나도 몰라. 한참 내일 올라갈 만평을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르더라.”
이도영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설명해 줘야 할 신문사도 당황스러운지 사장님의 지시란 말만 할 뿐이었다.
대한신문의 사장, 이상재도 아직 출근하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고.
방정환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설마 해고 통보는 아니겠죠?”
“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대한제국 경제가 역대급 호황으로 순항 중인데 우릴 자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건 그렇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이라서 그런 걸까.
방정환은 이도영의 말을 듣고도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이상재가 도착했다.
“야, 너희들 대박 났다.”
사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두 작가를 본 이상재는 껄껄 웃었다.
“너희들을 엄청 높은 월급으로 데려가겠단 분이 나타났다.”
“예?”
“저흰 이미 여기서 일하고 있는데요?”
갑작스러운 스카우트 제안에 둘은 당황했다.
그리고 인기 작가들을 빼앗겨 안정적인 수입원을 잃게 되었음에도 기뻐하는 이상재에 또 당황했고.
하지만 이어진 설명에 바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너희 둘을 콕 집어서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군.”
“폐, 폐하께서요?”
“그, 그럼 당연히 가야죠······ 그런데 사장님은 괜찮으세요? 저희가 갑자기 빠지면 타격이 클 텐데?”
“흐흐. 걱정하지 마라. 폐하께서 그런 걱정은 아예 안 들게 내게도 좋은 제안을 하셨으니.”
그러면서 남들에게 말하지 말라며 속삭이며 말했다.
“······대충 이만큼 주신다더라.”
“······꿀꺽!”
“그리고 너희들한테는 이 만큼 주신다고······.”
천문학적인 액수에 두 작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 광란의 20년대(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