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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이미 너무 강함-129화 (129/213)

< 행복의 끝(4) >

1928년 말. 미국이 한참 대선으로 바쁠 무렵.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파견을 끝내고 귀국 준비를 마쳤다.

미국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 둘은 내게 인사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찾아왔다.

맥아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합중국은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데 아쉽군. 둘 다 다음에 올 때는 일 때문에 오지 말고 여행하러 오게나.”

“하하!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가족끼리 오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런 둘을 보며 웃었고.

“그럼 잘 가게.”

“안녕히 가세요!”

“빠이빠이!”

내가 인사하자 내 옆에 있던 내 아들 환이와, 환이의 손을 꼭 잡고있는 소녀, 연이가 손을 흔들며 영어로 인사했다.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그런 두 아이들에 아빠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고.

그리고 나는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는 연이가 너무 귀여워서 안아 들며 물었다.

“어이구. 우리 공주님. 영어는 또 언제 배웠어?”

“오빠가 가르쳐 줬어요!”

“흐흐. 그랬어? 벌써 영어도 하고, 우리 연이 똑똑한데?”

“헤헤!”

내 칭찬에 헤실헤실 웃는 연이를 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둘째인 연이는 이제 3살인, 대한제국의 유일한 공주님이다.

대한제국의 공주님이란 것도 특별한데 여기에 제 엄마를 닮아 예쁘기까지 했지.

그래서 그런지 연이는 현재 온 나라의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

얼마 전 생일 때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그걸 본 백성들이 그대로 ‘입덕’해버렸거든.

황제인 나보다도 인기가 더 많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왔지만, 딸바보가 된지 오래인 나는 그것도 좋다고 껄껄 웃을 뿐이었다.

“자. 이제 내려가자.”

웃으며 연이를 다시 내려 주자 환이가 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아. 손!”

“응!”

연이는 바로 제 오빠의 손을 잡았고.

연이보다 3살이 많은 환이는 자기가 동생을 챙겨야 한다며 언제나 손을 잡고 다녔다.

손을 꼭 잡은 채 짧은 다리로 걷는 둘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남매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더니. 우리 집은 아닌 모양이야.’

아냐가 연이를 임신 중일 때 내 스승인 김옥균이 경고했었지.

형제들 간에 싸움도 심하지만, 남매는 진짜 서로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싸운다고.

하지만 환이와 연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 어떤 남매보다 사이가 좋은 게 그럴 일은 절대 없겠다 싶었다.

얼마 전 만난 김옥균에게 이 말을 했을 때 몇 년 기다려 보라며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지만. 난 이번만큼은 그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웃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가 보거라. 이 아비는 또 일하러 가야 하니까.”

“네! 아바마마! 연아, 가자!”

“응!”

환이와 연이가 떠난 후, 난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해 있던 이시영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배웅해 주었네. 이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겠지.”

“그동안 대한제국에 있으면서 정이 들었는데, 돌아가서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면 좋겠군요.”

이시영은 조금 아쉽다며 허허 웃었다.

나도 같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래서. 미국 대선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후버 대통령의 압승으로 예상됩니다.”

내 말에 이시영이 웃음을 지운 채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내게 주며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후버 대통령은 미국을 꽤 잘 이끌었습니다. 정확히는 문제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잘 이끈 것처럼 보였죠.”

“호황이 계속됐으니까.”

난 이시영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버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문제라 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미국인들은 걱정 없이 호황을 즐길 수 있었다. 자연스레 후버가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만큼 후버의 연임은 쉬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이시영이 새로운 자료들을 건네 주며 말을 이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실업 문제도 심해졌으며 자동차 생산과 주택건설에도 정체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아예 모르는 상태고.”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만이 이를 가지고 경고할 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물론, 후버 정부에서도 이를 듣지 않았다.

그들은 가만히 놔두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할 거라며, 자유방임주의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현재 후버 대통령이 선거에서 말한 공약들입니다.”

“역시나 경제 관련 공약은 없군.”

후버가 내세운 공약 중 경제 관련 공약은 없었다.

그냥 현상 유지가 전부였다.

모든 보고를 들은 난 한숨을 쉬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제 곧 시작하겠군.”

역사가 바뀌며 대공황이 조금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거의 똑같은 시기에 벌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후버의 재선이 성공한 직후겠지.

“참 불쌍한 양반이란 말이야.”

난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후버를 위해 묵념했다.

* * *

1929년. 후버는 가볍게 재선에 성공했다.

이런 말을 남들 보는 곳에서 하기는 부끄럽지만, 후버는 당연한 결과라 여겼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4년 동안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으니까.

때문에 사람들은 딱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이대로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한 번 후버를 뽑았다.

그리고 후버는 4년 동안 지냈던 백악관에서 4년을 더 보내게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각하!”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각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후버는 껄껄 웃었다.

당연한 결과라곤 해도 재선이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후버는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선거 때도 말했듯이, 이번서도 정부의 목표는 현상 유지가 될 것입니다.”

후버의 말을 들은 각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정부가 가장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현상 유지다.

그래야 지금의 호황이 계속 이어질 테니까.

때문에 후버는 물론, 대부분의 각료들은 뭘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각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경제에 안 좋은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안 좋은 조짐이요?”

“예. 현재 미국 경제에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산시장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으음······.”

그 말에 후버는 침음을 흘렸다.

자산시장이 붕괴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다.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뜻했다.

그렇기에 후버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호황을 타고 대통령이 되고, 재선에서 성공했는데, 그런 호황이 끝나고 경기 침체가 올 거라 경고하고 있었으니까.

“그 말이 사실입니까?”

“일단 연방준비은행과 몇몇 경제 전문가들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중입니다.”

“그럼 일단 확정된 건 아니란 소리군요.”

그래서일까.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버는 애써 외면했다.

마치 그런 일을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것처럼.

하지만 후버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미국은 몇 년째 이어진 호황에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

부동산 열기는 살짝 꺼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경기 침체가 올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며 뭔가를 한다?

그러다 뭔가 잘못되어 주식 시장이 타격을 입는다면? 그리고 주가가 조금이라도 떨어진다면?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레임덕에 걸리겠지.

이제 막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후버는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경고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 문제가 생겨도 시장은 알아서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부가 경제에 손을 대면 안 되는 법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알아서 잘 돌아가니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경제 이론을 후버는 다시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옳은 선택인 듯 보였다.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는 봄이 끝나고, 여름 또한 끝이 나고 가을이 다가왔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어느 정도 경제 상황을 지켜봤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휴우. 다행히 별일 없군.”

경고했던 경기 침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가는 이전보다 더 올랐고 호황은 끝을 보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후버는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런 호황은 계속되겠다고.

하지만 9월에 들어서며 상황은 그 기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각하. 주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가가 심할 정도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주가에 후버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런던 증시의 대폭락으로 주가 폭락의 공포가 저희 미국에도 번진 게 큽니다.”

“이로 인해 매일같이 어마어마한 양의 주식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주여······.”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후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저 시장이 이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길 바랄 뿐이었다.

이런 후버의 방치 속에서, 미국 경제는 더욱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리고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 1929년 10월 말이 되었다.

<주가 대폭락!>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투자자들!>

<검은 목요일!>

갑작스런 증시 대폭락에 전 미국이 경악했다.

갑자기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기에 계속 오를 줄만 알았던 주가가 폭락했단 말인가?

이에 깜짝 놀란 월가의 중개인들이 황급히 나섰다.

여러 상장사의 주식들을 비싼 값에 구매하며 폭락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실제로 얼마 동안은 그 방법이 통하는 듯 보였고.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가 다시 폭락하며 헛수고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각료들을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쳤다.

“투자자들이 허드슨 강에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시장에 돈이 완전히 말라 버렸습니다!”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맙소사······.”

연이어 들려오는 비보에 후버는 후회했다.

진작 경고를 듣고 뭐라도 할걸 하고.

동시에 절망했다.

도저히 이걸 해결할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대공황’에, 사람들은 절망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유일한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곤 예상 못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괜찮다.

윌로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를 대비하고 충분한 현금을 쌓아 놓은 상태니까.

“지금이 기회입니다!”

하와이에서 열심히 일하며 어느새 부회장의 자리까지 올라온 이승만이 소리쳤다.

“주가가 폭락한 지금 다 쓸어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 경제를 저희 대한제국의 손에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아직입니다.”

하지만 유일한은 시기상조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덜 떨어졌습니다.”

“······이미 대폭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떨어졌는데, 여기서 더 떨어진단 말씀이십니까?”

그 말을 들은 이승만은 경악했다.

유일한은 분명히 더 떨어질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니 우리는 기다립시다. 더 떨어져, 주식이 휴지보다 더 싸질 때까지.”

그리고 그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 거다.

< 행복의 끝(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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