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이 되려는 이무기들(3) >
며칠 후. 박찬익은 이항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무기 설계도들을 빼냈으니 돈을 준비하라고.
그날 저녁. 이항구는 박찬익을 조용한 술집으로 초대했다.
이항구가 미리 잡아 놓은 방에 박찬익이 들어오자 이항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를 반겼다.
“하하! 후배님이 오셨군!”
“쉬쉿! 우리가 만나는 걸 어디 광고할 일 있습니까? 목소리 좀 낮추세요!”
박찬익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모습이 이항구는 만족스러웠다.
저 모습은 누가 봐도 자신의 잘못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으니까.
사실 이항구는 박찬익을 믿지 않았다.
돈만 받고 엉뚱한 설계도를 넘겨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만약 그런 낌새가 보이기라도 하면 바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표정은 진짜지.’
그러나 지금 박찬익을 표정을 본 이항구는 안심했다.
저건 진짜 중요한 걸 몰래 훔친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이었으니까.
사실 이번 일의 성공을 위해 이광이 부른 인기 배우에게서 며칠 동안 배워서 나온 표정이었지만. 이를 이항구가 알 리가 없었다.
“요청한 건 가져왔나?”
“여, 여기 있습니다. 앞으로 교체될 대한제국군의 신무기들의 설계도가 담긴 보고서입니다.”
“흐음······.”
이항구는 박찬익이 품에 꼭 품고 있던 서류철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대한제국군 무기 개발 보고서’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일단 가짜는 아닌 것 같군.’
보고서 안에는 온갖 무기들의 설계도들이 들어 있었다.
일반 소총은 물론 기관총, 전차에 전투기까지. 다 자신과 일본이 원하는 것들이었다.
“앞으로 대한제국군이 쓸 무기들입니다. 만족스럽습니까?”
“흐음. 이 총은 왜 이런 형태인 거지? 기관단총 같은데 양각대와 조준경이 붙어있군.”
하지만 이항구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 또한 사업가였기에, 이런 일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에 박찬익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이항구가 이게 진짜라고 믿을 수 있도록.
“아, 기관단총이요? 양각대와 조준경이 있으면 사격할 때 정확도가 높아지니까요.”
“전차 포탑이 왜 이렇게 많냐고요? 그럼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으니까요!”
“전투기요? 이렇게 만들면 선회력이랑 속도가 장난 아니게 높아진다니까요?”
그리고 박찬익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인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무기에 관해선 거의 문외한인 이항구다.
군대에서 전역한 지도 수십 년이 흘렀고, 평소에 무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전문가인 박찬익의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결국 이항구는 이 보고서가 진짜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빨리 약속한 돈을 주십시오!”
“하하. 급하기는. 여기 있네.”
이항구는 웃으며 일본에서 받은 서류 가방을 건네주었다.
“······꿀꺽!”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본 박찬익은 가방 내부를 물들인 녹색 빛깔에 시선을 빼앗겼다.
달러. 미국의 돈인 달러가 가방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중요한 거래다 보니 특별히 준비한 걸세.”
자신의 돈도 아니면서, 이항구는 선심 쓰듯 말했다.
자신 또한 처음 봤을 때 눈이 돌아갈 정도의 돈이었다.
저렇게 많은 돈은 평생 보지도 못할 공돌이가 가지게 되었으니 기쁘기도 하겠지.
‘이걸로 일본도 꽤 큰 지출을 했다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의 돈인 엔화로 지급하자니 가치가 떨어져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래서 달러 같은 외화로 주어야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로 골골거리던 달러지만, 경기가 살아나며 그 가치가 다시 높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금액이 상당하고, 엔화의 가치가 달러보다 많이 낮다보니 일본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명나라에 연락을 했다. 대한제국 무기 설계도를 원하지 않냐며.
‘명나라는 좋다고 받아들였고.’
일본과 협력 관계인 명나라 또한 이 보고서를 원했다.
때문에 명나라와 일본은 필요한 달러를 반씩 나눠서 준비하기로 했다.
두 나라가 함께 준비하다 보니 부담은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그럼 난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이항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달러를 챙기는 박찬익에게 조언하듯 말했다.
“갑자기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막 쓰지 말고. 그럼 주변에서 의심할 테니까.”
“선배나 입조심 하시오. 내 이름이 나오면 가만 안 둘 테니.”
“큭! 그러던가.”
그 경고에 이항구는 비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부산으로 내려간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 * *
이항구를 만나고 돌아온 박찬익이 웃으며 외쳤다.
“성공했습니다!”
“잘했네. 이걸로 일본 무기들은 겉으론 멀쩡해도 속은 개판인 쓰레기가 되겠군.”
지난 며칠 동안 나와 집현전 연구원들이 고생해 만든 설계도들이 담긴 보고서가 이항구의 손에 들어갔다.
“일본이 잘 속아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면 일본군은 겉으로만 그럴듯하고, 실제론 쓰레기인 무기들로 무장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걸 믿지 않는다면 나와 연구원들의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그러자 박찬익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들은 믿을 것이옵니다.”
“어찌 그리 자신하나?”
“하하. 대한제국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만든 설계도들이옵니다. 실제로 작동도 되는 만큼 저들은 속을 것이옵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서 그 설계도를 따라 만든 무기들이 전장에 나서면,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닫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미 늦은 상태일 거다.
내가 미소를 짓자 박찬익도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한 저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에겐 이득입니다.”
“달러를 대가로 받았으니까.”
집현전 일반 연구원도 아니고, 책임급 연구원 연봉의 20배인 만큼 그 금액이 꽤 상당했다.
그러니 대한제국으로서는 일이 어찌 되든 이득이었다.
문제는 이 돈을 어찌 처리하느냐인데······.
“일단 반은 이번 일을 도운 연구원들에게 주고, 나머지 반은 자네가 가지게.”
“예?”
내 말에 박찬익이 당황하며 눈을 꿈뻑였다.
그리고 이내 깜짝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폐, 폐하! 신은 한 것도 없사옵니다!”
“한 게 없긴. 자네 덕분에 매국노의 존재도 알게 되고, 왜놈들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었지 않나? 그러니 그 정도 포상은 받아야지.”
난 진심이었다. 박찬익은 이 돈을 가질 권리가 있었다.
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다 박찬익이 이번 일을 알려서인데. 당연히 상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그걸로 어디 경치 좋은 곳의 별장이라도 사게나. 가족들이 좋아하겠군.”
“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내가 거절하지 말고 받으라고 재차 말하자 박찬익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앞으로도 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 후 박찬익은 달러가 가득 담긴 가방을 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은행으로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난 피식 웃었고.
“근데 일본이 저렇게 달러를 줄 만큼 돈이 많나?”
아니겠지. 혼자만으로는 부담이 클 테니 다른 나라가 가진 달러까지 가져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달러를 보태 준 나라는 당연하게도 명나라겠지. 명나라와 일본은 현재 가까운 사이니까.
“그럼 보고서를 명나라 놈들 또한 공유하게 되겠군.”
이런 걸 보고 일석이조라 하는 건가?
* * *
“정말 대단하구나!”
보고서를 받은 히로히토는 정말 오랜만에 껄껄 웃었다.
“이걸로 우리 일본 또한 강력한 무기들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늘이 우리 일본의 손을 들어 주려나 보구나!”
“경하드립니다!”
보고서에는 온갖 무기들의 설계도들이 가득했다.
일본이 가지지 못한 무기들이.
이런 설계도만 만드는데도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모된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가지게 된 이상, 이걸 구하느라 쓴 돈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예산을 아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생각에 또 기뻐진 히로히토가 대신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이 무기들의 양산을 시작하도록 하시오!”
“하지만 전하. 간악한 대한제국에서 저흴 속이기 위해 잘못된 설계도를 넘겨줬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인지 확인부터 하는 게 맞다고 사료되옵니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잔뜩 만들어 놓고 설계 자체가 잘못된 무기들이라면 큰일이니까.
그러니 확인부터 하는 게 옳았다.
잠시 고민하던 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일단 이 전투기부터 확인하도록 하지. 그 어떤 무기보다 뛰어난 기술을 요구하는 게 전투기인 만큼, 이게 문제가 없다면 다른 것도 다 잘 작동하겠지.”
“하잇!”
그 후 전투기의 설계도가 병기창으로 보내졌다.
“으음······ 일단 설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어. 이런 설계가 가능하다니.”
설계도를 본 공학자들은 감탄했다.
이런 아름다운 설계라니. 자신들로서는 제작이 아예 불가능한 설계에 바로 빠져 버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히로히토는 바로 전투기의 제작을 명했다.
“빨리 그 전투기를 만들어라! 일본의 하늘을, 일본의 손으로 지배하는 거다!”
“하, 하지만 저희가 전투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만들 수 있을지······.”
“상관없다!”
지금 당장은 못 만들어도. 만들고자 노력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성과가 나올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일본, 아니 대일본제국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타고 아세아(아시아)를 넘어, 태평양까지 지배하는 용이 될 수 있겠지.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자가 있었지.”
행복한 상상을 하던 히로히토는 이항구를 기억해 내곤 손뼉을 쳤다.
“스스로 우리 신민이 될 것을 자처하며 공을 세웠는데, 제대로 보답해줘야겠지! 그에게 자작위를 내리겠다!”
“하잇!”
그렇게 이항구, 아니 리노이에 고큐(李家恒九)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
그 후 병기창에서는 전투기 제작에 돌입했다.
조금씩 만들어지는 전투기를 보며 히로히토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흐음. 마음 같아서는 전투기뿐만 아니라 모두 다 만들어 보고 싶은데 말이야.”
전투기 뿐만 전차는 물론, 소총과 기관총까지도 다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설계도들을 빼온다고 이미 너무 많은 돈을 쓴 이후기에 더욱.
또한 전투기를 만드는 데에도 큰돈이 들어갔기에 지금 일본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럼 저희가 만들 여유가 없는 무기들은 명나라에서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좋겠군!”
신하의 말에 히로히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멈칫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명나라가 이런 현대 화기를 만들 공업 능력이 있을까?”
“음······.”
대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으음······ 대한제국의 무기라······.”
명나라의 대학사, 손덕명은 일본에서 건너온 보고서의 복사본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현재 아국의 무기보다 뛰어난 건 확실하군.”
현재 명나라가 쓰는 무기는 대전쟁 때 쓰던 무기들이다.
그에 비해 보고서에 있는 무기들은 그 이후 연구된 무기들이다 보니 확실히 더 뛰어나 보였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만들 수 있느냐지.”
현재 명나라의 공업 능력을 떠올린 손덕명은 한숨을 쉬었다.
대전쟁 당시, 수십만의 백성들을 용병으로 유럽에 팔며 명나라 또한 여러 공장들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나라의 공업 능력이 발전했다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명나라는 남들이 지어 준 공장을 돌릴 줄만 알 뿐. 직접 공장을 세울 능력조차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무기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업 능력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현재 명나라는 이 중 그 어떤 무기도 만들 수가 없었다.
“일단 공업 능력부터 키워야겠지.”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손덕명은 명나라의 힘으로 이 무기들을 만들 계획을 세워 갔다.
최소 몇 년이 걸릴 계획이었지만. 이게 성공한다면 명나라 또한 진정한 산업화를 이룩하리라.
“당장 이 전차들을 만들도록 하시오!”
“······.”
하지만 명나라 황제 주윤덕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 용이 되려는 이무기들(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