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의 화합(3) >
유럽연맹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 퍼졌다.
“유럽연맹이라······ 나쁘지 않은데?”
“유럽이 오랜 갈등을 뒤로 하고 드디어 하나가 되는 군.”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유럽은 경제 협력 체제를 구축한 상태였다. 그러면서 경기도 회복하는 등 많은 이득을 보기도 했다.
그러니 공식적인 협력 기구를 만드는 것은 그동안 했던 협력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 자연스레 거부감도 별로 들지 않았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연맹 가입국끼리는 국경도 개방한다더군. 관세도 대폭 낮추고.”
“호오. 괜찮은데?”
여기에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긍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져 갔다.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성공적이군.”
그리고 이런 여론을 들은 히틀러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유대인에 맞서 싸우기 위한 초석이 만들어지겠군.”
작년 올림픽에서 대한제국의 황제인 이광에게서 유대인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는 진실을 알게 된 후. 히틀러는 현재의 유럽으론 유대인에게 맞서 싸우기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유대인은 오래 전부터 미, 러, 한 세 나라와 협력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는데, 유럽은 이제 막 반유대를 외치기 시작했으니까.
오랫동안 암약해 온 그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유럽이 지금처럼 따로따로 움직이면 안 됐다.
손을 잡고 힘을 모아 함께 맞서 싸워야 했다.
유럽연맹도 이를 위함이었다.
훗날 유대인에게 해방되기 위한 성전이 시작되면, 모든 유럽이 함께 싸울 테니까.
그러니 그러기 전에 미리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히틀러의 옆에 있던, 히틀러에게서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오른팔인 괴벨스가 말했다.
“현재 유럽연맹이 만들어지면 의장으로 총통 각하가 가장 어울린다는 여론을 만들고 있습니다.”
“잘했네.”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중입니다.”
괴벨스의 보고에 히틀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연맹의 의장 자리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그들의 위협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자신이 의장이 되어야지만 유럽연맹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 테니까.
유럽의 지도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던 히틀러가 괴벨스에게 말했다.
“박사. 어떻게든 유럽연맹을 만들 수 있도록 여론을 움직이게. 유럽연맹이 만들어져야 유럽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예. 각하.”
“그렇게 되면 국제 사회에서도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겠지.”
유럽연맹은 그저 유대인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었다.
유럽이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도 있었다.
‘그동안 명분이란 것 때문에 유럽이 얼마나 괴로웠던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 해도. 명분이 부족하다며 미국이나 러시아가 끼어들어 유럽을 방해하곤 했었다.
간단한 일부터, 식민지 확장과 참전 같은 중요한 일까지 방해를 받았다.
때문에 히틀러는 그들이 유럽을 방해하지 못하는 명분을 만들기로 했다. 그게 바로 유럽연맹이었고.
명분 없는 참전도 전쟁의 당사자가 유럽연맹의 일원이라면 같은 연맹원을 돕기 위한 참전이니, 충분한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럼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의용병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인 식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국민파가 연맹국이 된다면 유럽은 동맹을 돕기 위한 참전이라는 명분을 가지게 되니까.
그렇게 되면 유대인에 맞서 싸우기 위한 행동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다른 나라의 정상들에게도 이걸 꼭 알리게. 그들이 유럽연맹에 찬성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괴벨스가 나설 일은 없었다.
유럽 정상들이 먼저 유럽연맹의 장점을 파악하고 참가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이었다.
“하하! 저희 대영제국은 바로 가입할 것입니다! 국경 개방과 관세 인하만 해도 가입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유럽의 화합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와중에 유럽연맹은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먼저 가입 의사를 밝혔고, 이어서 벨기에와 오-헝 제국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을 들은 스페인 국민파의 프랑코도 가입하고 싶다며 연락했고.
그 외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드디어 유럽이 하나가 되겠군요!”
이런 국가 정상들의 반응에 히틀러는 만족스러워하며 껄껄 웃었다.
“이참에 바로 창설을 발표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렇게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엑스포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발표하는 겁니다!”
“하하! 좋습니다!”
페탱이 동의하자 곧바로 유럽연맹의 창설 소식이 발표되었다. 엑스포가 한참 진행되던 중이었다.
유럽연맹 발족식이 열린 마르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히틀러가 외쳤다.
“유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히틀러의 연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유럽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며, 더 밝은 내일이 올 거라 기대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유럽연맹이 창설된 직후. 연맹국들은 초대 의장을 뽑았다.
다수의 표를 받으며 초대 의장으로 당선된 히틀러가 당혹스러운 척을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보다는 연장자이신 페탱 대통령 각하께서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원했던 결과지만.
정치판에서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면 안 좋다는 걸 알았기에 일부러 겸손한 척했다.
그리고 이건 통했다.
그 모습에서 히틀러가 누구보다 의장에 어울린다고 여긴 페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유럽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독일과 총통 각하 덕분 아닙니까? 당연히 총통 각하가 되야 한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히틀러는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유럽연맹의 의장이 되었다.
“그럼 이 자리에서 바로 의장으로서 첫 번째 안건을 제출하겠습니다.”
벌써부터?
아직 연맹 운영을 위한 기초적인 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안건 제출이라니.
조금 당황한 가입국들의 지도자들을 보며 히틀러가 말을 이었다.
“유럽연맹의 첫 번째 안건은, 국제연맹 탈퇴입니다.”
“!!!”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국제연맹 탈퇴라니. 유럽연맹 창립 회원국 중 모두가 국제연맹에 가입된 상태인데, 그런 국제연맹을 한꺼번에 탈퇴한다면 국제연맹의 존립은 위태로워질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지도자들은 이내 표정을 고쳤다.
국제연맹이 망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창설된 이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긴 커녕 매번 하려는 일들을 방해만 한 국제연맹이다.
나라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해도, 국제연맹에서 막으면 싫어도 따라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 분담금은 또 내야 해서 부담만 주고 이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번 안건을 기회로 보았다.
국제연맹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국제 활동을 할 기회로.
“찬성합니다.”
“저희 프랑스 또한 찬성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모든 가입국들이 찬성한 걸 확인한 히틀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만장일치로, 첫 번째 안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하하! 드디어 그 망할 놈의 국제연맹 눈치를 안 봐도 되겠군요!”
처칠이 껄껄 웃자 다른 정상들 또한 같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히틀러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유럽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
* * *
“휴우······ 요즘 들어 조용하군.”
미국의 전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오랜만의 고요함을 느끼며 침대에서 눈을 떴다.
“지난 몇 년 동안 시위대 때문에 너무 시끄러웠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윌슨의 표정엔 씁쓸함이 가득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윌슨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스페인 독감을 막고, 대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 호황까지 찾아오며 윌슨은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3선 대통령이라니,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하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업적을 꼽으라면 바로 국제연맹의 창설이었다.
국제연맹을 통해 수많은 갈등을 전쟁 없이 말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 평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업적은, 대공황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신의 후계자였던 후버와 자신을 대공황의 원인이라 비난했다.
자연스레 윌슨은 미국의 영웅에서 미국의 악당으로 추락해 버렸고.
그 후 매일 같이 시위대가 찾아와 집 밖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윌슨은 화 한 번 내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이 맞았으니까. 경제에는 무지하여 아무런 대비조차 못했던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그래도 이젠 경기가 회복되서인지 시위도 뜸하군.”
그랬던 시위도 시간이 흐르고 경기가 회복되자 점차 사라졌다.
시위대 대부분이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었는데, 경기가 회복되며 일자리가 생기니 일터로 돌아간 것이었다.
후버는 나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감사 편지라도 써야겠다며 커피를 따랐다.
커피를 만들고 남은 커피 찌꺼기를 치우려던 윌슨은 순간 멈칫했다.
“······날 보는 것 같군.”
윌슨은 커피 찌꺼기가 마치 자신처럼 느껴졌다.
과거에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귀한 원두였으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가고 버려질 일만 남은 찌꺼기 같다고.
그런 찌꺼기를 잠시 바라보던 윌슨은 찌꺼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직 국제연맹은 남아있어.”
자신이 쌓은 업적들이 대공황으로 인해 모두 무너졌지만. 국제연맹은 아니다.
국제연맹은 여전히 남아 세계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자신을 욕할 때도 윌슨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국제연맹은 자신이 잘못만 한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좋은 일도 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향이 좋군.”
커피향을 음미하며 윌슨은 한 손에 오늘 아침에 들어온 신문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뭐?”
하지만 신문 1면 기사의 제목을 읽는 순간,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쳐버렸다.
<유럽 열강들의 국제연맹 탈퇴!>
“유럽 열강들이······ 단체로 국제연맹을 탈퇴했다고?”
한두 개의 나라도 아니고, 평범한 나라도 아니고. 유럽 열강들이 단체로 탈퇴하다니!
지금까지 여러 나라가 국제연맹을 탈퇴했지만, 그 나라들과 유럽 열강은 다르다.
가입된 열강이 많을수록 국제연맹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발언권 또한 강해지니까.
하지만 유럽 열강들이 한꺼번에 이탈한다면?
당연하게도 국제연맹의 가치는 낮아지고, 영향력 또한 약해지겠지.
그리고 그건 윌슨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곧 자신의 최대 업적인 국제연맹이 무너진다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가, 갑자기 왜 유럽이 이러는 거지?”
당황한 윌슨은 다급하게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맹 창설!>
국제연맹과 비슷하면서도 유럽에 더 이익이 되는 유럽연맹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럴 수가······.”
신문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세, 세계 평화라는 내 꿈이······.”
이제 늙은 윌슨이지만, 유럽연맹이 뭘 뜻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세계 평화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겠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익만을 챙기는 유럽연맹이 과연 세계 평화를 위해 이바지할까?
절대 아닐 거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조차도 불사하겠지.
원래부터 그랬던 나라들이니까.
“아, 안 돼. 무조건 막아야-”
하지만 어떻게?
이제는 모두에게 욕만 먹는 자신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제발 다시 생각해 달라고 부탁해도 유럽은 물론, 같은 미국인들도 무시할 텐데?
“으윽!”
그 순간.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듯한 통증과 함께 윌슨의 숨이 턱 막혔다.
노쇠한 혈관이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을 버티지 못한 것일까. 가슴을 부여잡은 윌슨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쿵!
눈앞이 점점 흐려지기 전, 윌슨은 보았다.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못한 자들로 인해 세계 평화가 깨지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미래가.
그리고 그걸 끝으로, 윌슨의 숨소리가 멈추었다.
< 악의 화합(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