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2) >
“······그렇긴 합니다만.”
유일한의 물음에 답하며 후버는 미간을 좁혔다.
해외 정보는 왜 언급하는 걸까. 설마 해외 기업도 인수하려고 저러는 건가?
하지만 유일한은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일랜드의 일은 들으셨습니까?”
“슬픈 일이죠. 지금도 동부 해안에는 매일같이 난민들이 도착한다더군요.”
영국이 아일랜드를 공격한 지도 이제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영국군은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고, 아일랜드 정부는 저항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저항도 영국을 막겠다기보다, 사람들이 미국으로 피난을 떠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정도였다.
그렇게 떠난 난민들은 미국 동부 해안에 도착. 그 수가 벌써 수만을 넘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러시아 제국과 대한제국과 함께 규탄 성명을 발표했지만. 영국은 들은 척도 안 했지.’
오히려 아일랜드 정부는 반란 세력이며, 자신들은 반란을 진압할 뿐이라며 화를 냈다.
이에 미국이 뭔가 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나왔지만.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더 큰 상태라 정부도 난민만 받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일랜드는 왜요?”
“별건 아니고. 이제 아일랜드인들을 가두는 수용소도 생기겠다 싶어서요.”
“······수용소요? 수용구역이 아니라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수용소라니. 유대인 수용구역들이 생긴 건 들었지만 수용소는 또 처음 들었던 후버는 당황했다.
“아, 모르셨습니까?”
그러자 유일한이 예상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러게 빨갱이들만 잡지 말고 다른 것도 살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현재 독일에는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집어넣는 수용소가 있습니다.”
“······예?”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더군요.”
“!!!”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달은 후버는 경악했다.
저 말은 곧 죄가 없는 사람들을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집어넣는단 소리였으니까.
“그 외에도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집시, 그리고······ 동성애자들도 수용소로 보내진다더군요. 그들 또한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했고요.”
“······.”
“그리고 북아일랜드 쪽에서 그런 수용소를 참고하여 만든 새로운 수용소가 영국인들의 손으로 지어지고 있다죠.”
“······그런 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후버가 잔뜩 경계하며 묻자 유일한은 씩 웃더니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흐음······.”
대답을 들은 후버는 꽤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대한제국의 첩보력은 러시아 제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라 해도 무방했다.
그런 대한제국에서 보낸 정보라면 헛소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고.
“증거는 있습니까?”
“여기 다하우에 지어진 수용소 사진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유럽연맹국에도 이런 수용소가 지어진 상태고요.”
“으음······.”
사진 속엔 딱 봐도 감옥같이 보이는 건물들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민간인들이 찍힌 사진 또한 있었다.
‘수상하군.’
수사관의 직감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 수용소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사진을 내려놓은 후버가 유일한에게 물었다.
“정확히 제게 뭘 부탁하시려는 겁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이 수용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하긴. 인종적 문제가 있으니까요.”
대한제국의 첩보원을 파견하는 건 시작부터 실패할 게 뻔한 행동이다.
첩보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인데, 백인이 가득한 유럽에 동양인이 간다면 바로 눈에 띌 테니까.
“러시아 제국에게 요청하면 되지 않습니까?”
“예전이라면 가능했겠죠. 하지만 요즘 유럽 내에서 일이 많아 바쁘다고 하더군요.”
“······그것보다는 미국이 수용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알아내길 바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런. 들켰네요.”
이에 유일한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을 보니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하께서는 미국이 직접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내셨으면 하십니다.”
“연방수사국은 미국의 기관이지, 대한제국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당연하죠. 그러니 이렇게 부탁드리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하아! 이번에도 뭔가를 들고 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절대 안 됩니-.”
“종신 국장,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
그 말에 후버는 멈칫했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자신이라지만 이 권력이 영원할 수는 없다.
자신 혼자 남들의 약점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럴 것 같았지만. 자신의 약점이 유일한의 손에 들어간 후에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언제 그 약점이 자신의 목을 조여 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종신 국장이라니.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꿈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 후버의 모습에 유일한은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하며 과장스럽게 말했다.
“수용소 안에서 뭔가 벌어진다는 걸 느낀 국장님께서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게 세상에 밝혀진다면?
그럼 세상 사람들은 말하겠죠. 위대하고 정의로운 후버 국장님 덕분에 아무도 모르게 묻힐 뻔한 끔찍한 일을 알게 되었다고!”
“으음······.”
“그럼 사람들은 또 생각하겠죠.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후버 국장님은 믿을 수 있다고. 누구보다 정의로운 그라면 이 미국을 안전하게 지켜 줄 거라고! 그러니 부디 제발 오랫동안 미국을 지켜 주길 바라게 되겠죠.”
그······런가?
후버는 유일한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리고 대통령 각하가 걱정되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유일한은 안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인가하신 사항이니까요.”
“예?”
FDR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란 후버는 황급히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유럽의 수용소를 조사하라는 글과 FDR의 서명을 본 순간, 저 말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째서 회장님이 각하의 편지를 들고 있는 겁니까?”
“저희 황제 폐하께서는 대통령 각하와 막역한 사이십니다.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걱정을 할 정도로요. 그리고 전 황제 폐하의 신하고요.”
“그럼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제게 명령하면 될 텐데, 왜 회장님께 이렇게 편지로 명령을 전단하신 겁니까?”
“왜 그러겠습니까? 백악관에 유럽의 눈과 귀가 있을지 몰라서죠.”
“으음······.”
불가능한 말은 아니다.
유럽에서 스파이를 심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유럽에 조국의 정보를 팔 매국노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니 이렇게 정계와는 거리가 멀고 유럽의 스파이짓을 할 일도 없는 유일한을 통하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대통령까지 함께 한다는 말에 결국 후버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사관들을 보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후버가 손을 내밀자 유일한은 그 손을 잡았다.
* * *
미국에 있는 유일한에게 연락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오랫동안 밥을 준 동네 개가 드디어 사냥개가 되었군.”
후버가 조사를 하기로 했다는 말에 난 미소를 지었다.
아직 CIA는커녕 OSS(미국 전략사무국)도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라 FBI가 해외 정보 수집까지 맡고 있는 시기다.
그렇기에 이번 일엔 FBI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큰 문제없이 진행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종신 국장이 달려 있으니 후버도 더 열심히 하겠지.”
이러지 않아도 어차피 종신 국장이 될 후버지만. 본인은 그걸 모르는 만큼 종신 국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꽤 혹할 거다.
그럼 어떤 방법을 써서든 우리가 원하는 걸 찾으려 들 테고, 성과를 내겠지.
하지만 그렇게 종신 국장이 된다 한들 원 역사처럼 날뛰지는 못할 거다. 우리가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후버도 나중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들으려나?”
자의는 아니더라도 선은 지키는 종신 국장이라. 호의적인 평가가 늘어날 건 확실할 것 같았다.
“그럼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린 전쟁 준비를 해야겠지.”
편지를 내려놓은 난 곧바로 태산처럼 쌓인 서류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2차 세계 대전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봐야 하는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전쟁이 발발할 시 병사들의 목숨과 연관된 일들이라 대충 볼 수도 없었고.
여기에 내가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중요한 일들도 있었다.
이게 다 끝나면 아마 전쟁이 발발할 테니, 앞으로 몇 년은 쉬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럼 일단 공군부터 확인해 볼까.”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서류를 들며 중얼거렸다.
공군이 처음 만들어지고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처음 탄생했기에 공군은 처음에는 힘든 점이 많았다.
전투기 자체는 뛰어나지만 공군에 소속된 군인이 적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며 이제 육군과 해군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공군이 만들어졌다.
병력만 10만이 넘는, 항공기의 숫자만으로 따지면 현대의 한국 공군보다도 더 강한 공군이.
전쟁에 대비한 인사이동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음······ 공군 참모총장은 계속 김종림을 앉혀야겠군.”
김종림은 공군이 만들어진 이래 아직까지도 참모총장 자리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처음 공군이 만들어질 당시 다른 장성들이 지원하지 않자 혼자 지원한 그를 소장으로 진급시키고 참모총장 감투를 씌워주었지.
그 후 오랫동안 공군을 육성하며 지금의 공군을 만들어 냈고, 이젠 대한제국의 공군의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 공으로 4성 장군까지 되었고.
그런 만큼 전쟁 동안에도 계속 참모총장 자리에 앉혀 놓을 생각이었다.
아직 나이도 젊겠다, 그동안 잘한 만큼 전쟁 때도 잘할 테니까.
난 곧바로 김종림을 불렀다.
그동안의 공을 치하하고, 앞으로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하지만 경복궁에 도착한 김종림은 내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그······ 폐하.”
김종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장은 이제 전역하고자 하옵니다.”
“뭐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김종림이 전역하고 싶어 하다니. 공군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라 앞으로도 쭉 공군에 있을 줄 알았던 그였기에 전역이란 말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건강이라도 안 좋아진 것인가? 그렇다면 짐이 최고의 의사들을 붙여 주도록 하지.”
“하하. 아니옵니다. 그저 제 능력으론 부족하다 느껴졌기에 그런 것이옵니다.”
“대전쟁 당시에도 공군을 잘 이끌었다 평가받은 자네의 능력이 부족할 리는 없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황공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론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 의문일 따름입니다.”
김종림은 여기까지가 자신의 한계인 것 같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대전쟁 때보다 항공기들은 더 빨라지고 강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전술들이 만들어졌고 또한 이를 파훼할 전술들 또한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김종림은 깨달았다.
머리가 굳어 버린 자신이 참모총장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면.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 저보다 젊고, 실력도 좋은 새로운 사람을 참모총장에 앉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우······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맙군.”
참모총장이란 영광스러운 자리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더 적합한 사람에게 주고자 하다니.
숭고한 이유인 만큼 나도 매달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맡아 주게나.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공군을 키워온 자네이니 누구보다 뛰어난 조종사들을 키워낼 수 있을 걸세.”
“하하.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김종림은 그건 자신 있다며 허허 웃었다.
“그럼 자네 후임으로 추천할만한 사람은 있나?”
“로타어는 어떻습니까?”
“로타어? 흐음······.”
나쁘지 않은 추천이다.
에이스 파일럿 출신에다 김종림과 더불어 지금의 공군을 있게 한,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니까.
독일 출신인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대한제국에서 살며 대한제국인과 결혼하고 자식까지 본 그이기에 피부와 외모만 다를 뿐, 모두가 그를 대한제국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계급이 아직 대령이라는 건데. 사실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한제국에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좋은 예가 있으니까.’
원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승진했었다.
현대로 치면 중령이 1년 만에 중장을 단 셈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타어는 이제 곧 준장으로 진급할 예정이다. 그런 그가 그 방법을 쓴다면 4성 장군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로타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장은 별을 달 생각이 없습니다.”
이놈은 또 왜 이래?
< 준비(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