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백꽃 (121)화 (121/522)

“대장군의 바지를 벗겨라.”

“뭐, 뭐냐! 뭐 하는 짓이야!”

동백의 이상한 지시에도 군졸들은 두말하지 않고 즉각 따랐다. 저항하는 하진을 단단히 옭아매고 허리춤을 푸니 하진의 흉물스러운 물건이 밖으로 덜렁덜렁 드러났다. 찬 새벽바람을 맞아서인지 공포로 인한 것인지 쭈그러든 볼품없는 물건의 꼴을 비웃는 자도 있었다.

하진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살려 준다 하더니 대가를 받을 거란다. 그래 놓고서 하는 짓이 고작 바지를 벗기는 일이어서야 무슨 대가를 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곧 하진의 의문은 명쾌하고도 단조로운 동백의 말에 의해 까뒤집어지게 된다.

“톱과 인두를 대령하라.”

“……미, 미쳤어. 넌 미쳤어!”

뒤늦게 동백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하진은 눈을 크게 뜨고 악을 썼다. 이것 놓으라며 발버둥을 치니 바지가 줄줄 내려갔다. 장졸이 두엇 더 붙고 나서야 하진은 옴짝달싹 못 하고 입만 놀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죽여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셈이냐! 나에게 얼마만큼의 치욕을 줄 생각이냐!”

“치욕이라는 걸 아는 놈이 적의 발밑에서 목숨을 구걸한단 말인가? 이미 화살은 떠났다. 죽이지 않아. 살려 달라고 한 건 너야. 네가 ‘살려 달라’고 했어.”

동백은 더할 나위 없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동백꽃이 만발하는 듯 화려한 미소를 머금은 동백의 명은 참으로 끔찍하고도 지독하게 그 공간을 갈랐다.

“저 쓸모없는 것을 잘라 내거라.”

“아, 안 돼! 안 돼! 죽여! 차라리……. 으, 으아, 으아아아악!”

끔찍한 하진의 비명소리가 처절히 울려 퍼졌다. 혀라도 깨물면 안 되니 입에 천 뭉치를 쑤셔 박아 넣었다. 침이 줄줄 턱을 타고 내렸고, 훼까닥 뒤집어진 눈은 흰자만을 번뜩여 내비쳤다.

동백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눈앞에서 하진이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그의 양물과 그를 연결 짓던 마지막 살 줄기마저 끊어 내니 몇십 년간 하진에게 붙어 있던 하진의 양물이 바닥에 추락하여 처박혔다. 그것은 마치 하진의 자존심의 꼬락서니와도 같았다.

“지지거라.”

동백의 충직한 부하들은 이어지는 명을 주저하지 않고 실행했다.

퍼덕이는 생선처럼 하진은 경련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살덩이가 타들어 가는, 단백질 태우는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좋아, 그럼.”

동백은 짝, 가볍고 유쾌하게 손뼉을 쳤다.

“그 잘난 꼬락서니로 한번 살아 보라고. 응?”

동백은 히쭉 웃으며 하진에게 말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 때가 있는데, 단지 죽음을 향해 가는 길목인 인생이 바로 그것이다. 동백은 그걸 알았다.

저대로 비탄에 빠져 죽어도 좋고, 동백을 향해 복수심을 갈아도 좋았다. 그것으로 하진의 추잡한 인생이 조금이나마 길어지고 고통 속에 머무는 시간이 지속된다면 어찌 아니 흡족하랴.

한번 그 꼴로 대장군이네, 환관 같은 것들은 모조리 죽여야 하네 한 번 더 말해 보게나. 내 감히 비웃어 줄 용의가 충분하니. 동백의 입가에 고압적이면서도 유려한 미소가 번졌다.

“자, 가자.”

동백은 미련 없는 산뜻한 발길로 뒤돌아섰다. 동백이 물러서니 동백의 군도 동백을 쫓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장양이 죽이라 했건만 그냥 두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소 사마님이 되었다고 하면 된 것이다. 그들은 걱정을 제쳐 두고 장양의 무리와 만나 내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백은 그 자리를 떠나가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박장대소하고야 말았다.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유쾌한 동백의 웃음소리가 장락궁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진으로서는 기절하지 않도록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는 것만이 한계였고 최선이었다. 고통 어린 눈물로 얼룩진 하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광인의 비소를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처참히 끊어내진 양물은 더럽고 비참하게 흙과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진은 그것의 꼬락서니가 자신을 대변한다 생각했다. 거세당한 것은 성기만이 아니었다. 하진의 자존심 또한 저리 잘근잘근 거세당해 바닥에 고꾸라져 박혔다.

하진은 울음을 터트렸다. 고통과 슬픔과 회한과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그런 눈물이었다.

* * *

조조와 원소는 장락궁 문 앞에서 초조하게 하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새벽의 적막해야 할 궁전 안에서 무척이나 희미하게 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청쇄문 밖에 있는 원술의 군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 줄 알았건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장락궁담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죽여! 차라리……. 으, 으아, 으아아아악!”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걸 감지한 두 사람이 시선을 주고받자마자, 안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장을 긁어내는 듯한 고통의 신음에 둘의 안색이 시퍼래졌다. 하진이다. 원소는 그대로 검을 빼어 들어 자신을 막고 있던 환관을 베어 내며 조조에게 외쳤다.

“내 안으로 들어가 하 대장군의 상황을 살펴보고 엄호할 터이니 자네는 얼른 원술을 데려오게! 급하니 무력으로라도 돌파해야겠어!”

조조는 원소의 말에서 꺼림칙함을 느꼈다. 원소는 신중한 인간이다. 하진이 미끼일지도 모르는, 저 안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겁도 없이 홀로 뛰어들다니. 하진과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닐 텐데…….

평소의 원소였다면 둘로 쪼개지느니 같이 원술에게 합류하자 주장했을 확률이 높았다.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원소가 검을 빼어 들고 먼저 말하니, 시급한 와중 그것을 지적할 여유가 없었다. 조조는 뒤통수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불쾌한 기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대로 청쇄문을 향해 달렸다.

원소는 조조가 청쇄문을 향해 떠나는 것을 보며 장락궁 문을 지키는 환관들을 베어 내었다. 대여섯 명의 목숨이 순식간에 원소의 검 아래 스러졌다.

원소는 경비가 없이 자유로워진 장락궁 문 앞에 섰다. 거대한 문은 건장한 남자 혼자서 열기엔 상당히 무거웠지만, 원소 또한 무예를 부지런히 갈고닦은 이였다. 원소는 어깨를 문에 기댄 채 힘을 주어 밀었다. 두꺼운 장락궁 문은 끼이익, 경첩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런 원소의 뒤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청쇄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천의 고함. 조조가 원술에게 도달한 모양이었다. 원소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장락궁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 적이 대기하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건만, 장락궁 안은 황량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새 썰물 빠지듯 사라진 모양이었다. 신출귀몰하기 그지없었다.

장락궁의 광장에는 단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바닥에 웅크려 덜덜 떨던 그 사람이 천천히 원소를 돌아보았다. 허리춤을 잡은 채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그는 바로 하진이었다.

장락궁에 들어선 이가 원소임을 알아채자마자 하진은 희색과 고통이 뒤범벅된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워, 원본초 왔는가……!”

평소라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원소에게 갖은 패악을 부렸을 테지만, 지금의 하진은 원소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하진의 모든 증오와 분노가 동백을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장락궁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급히 바지를 추슬러 올린 하진은 혹여나 원소가 제 꼴을 눈치챌까 덜덜 떨었다.

이 초라한 꼬라지를 절대 들킬 수 없었다. 일국의 대장군 된 자가 거세되었다는 사실은 추문이다. 그의 위엄이 곤두박질치고 땅바닥에 짓이겨질, 그런 엄청난 추문이다.

대장군은 이 제국의 모든 군을 통솔하는 자다. 그런 자가 양물 없는, 사내도 아닌 반쪽이가 되었다? 어디에 위엄이 서겠으며, 어디에 군림하겠는가. 다들 비웃을 거다. 조롱할 거다. 상하 체계가 엉망이 되고,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하진은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질 것이다. 대장군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 해서 계속 군에 있을 수 있는가? 그 치욕을 당하고? 그렇다고 조정에? 무식한 백정 놈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나마 제가 있을 수 있는 곳은 군이었다. 그곳밖에 없었기에 훈련에 매진했고, 이제 천하를 손에 넣은 찰나였다. 그것을 소동백 그놈이……!

이 치욕을 갚으리라. 반드시 갚으리라. 똑같이 갚아 준 뒤 돼지우리에 던져 넣어 짐승에게 범해지게 하리라. 먹이로 제 아비를, 그 부하들을 다져 만든 고기를 주고 그 꼴을 보며 비웃어 주리다! 나를 살려 둔 것을 후회하게 만드리라!

하진의 눈이 타는 듯 이글거렸고,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하진은 저에게 달려온 원소에게 이 일의 원흉이 동백과 장양임을 말하고 당장 쫓을 것을 명했다.

“원본초, 소동백 놈이 장양과 꾸민 음모네! 저쪽으로 도망갔으니, 어서 군을 이끌고 쫓아! 죽이지는 마라, 내 이 치욕을 갚, 컥……!”

목이 타는 듯 괴로웠다. 하진은 제 목을 뚫고 들어간 것을 내려다봤다. 검이었다. 피가 울컥, 치밀어 오르며 눈에 경악이 가득 찼다. 하진의 목을 꿰뚫은 검의 끝은 원소의 손과 이어져 있었다.

하진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배신당했다는 분노 때문인지, 너무나 괴로운 고통으로 인한 육체적 반응인지 알 길이 없었다. 원소는 마차에 밟혀 찌부러진 개구리를 바라보는 듯 하진을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장군.”

“원, 소……. 네 이놈……!”

“저희는 이제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배신감 어린 하진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하진의 혀가 말려 들어가 기도를 막았다. 아니, 사실 그 전부터 하진은 숨을 쉴 수 없었다. 호흡이 불가능한 괴로움 속에서 하진은 저를 뻔뻔스레 내려다보는 원소의 멀끔한 얼굴을 증오스럽게 노려보았다. 원소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얼핏 보면 그렇게 온화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당신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원소는 그 잘생기고 부드러운 얼굴에 일말의 미동도 없이, 담담히 하진에게 죽어줄 것을 부탁했다.

“부디, 대의를 위해 희생해 주시옵소서.”

원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원소의 검이 하진의 목을 베어 내었다. 원소를 노려보는 부릅뜬 눈, 그 상태 그대로 그의 머리가 땅에 나동그라졌다.

하진을 살려 준 동백은 하진이 이리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죽을 줄 몰랐으리라. 그녀는 하진이 살고 살아서, 그 비참함에 몸부림치기를 바랐고 손가락질당하기를 바랐다. 평생을 비웃음당하는 착각 속에서 허우적대며 끝내기를 기원하며 그를 살려 준 것이었건만, 만약 이리될 줄을 알았다면 동백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조조와 원소의 군대에 맞닥뜨리는 편이 있더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진을 오체분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천하를 호령하길 꿈꾸던 하진은 원소의 검 아래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8월 25일. 하진의 죽음과 함께 벌어진 십상시의 난의 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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