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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소란스레 연회장을 뜬 소동백은 그 뒤로 사흘 동안 두문불출했다. 정무 회의 때마다 동백의 자리가 비어 있자, 관료들은 껄껄 웃으며 수군거렸다.
“아이고, 소 장군께서 뒤늦게 불타오르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한창때인 사내가 지금껏 너무 목석처럼 굴기는 했지요. 한때의 조강지처에게 목을 매기엔 소 장군의 청춘이 아깝지 않습니까.”
동탁은 그런 말들을 들으며 알 수 없는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왕윤조차도 어찌 되었든 동백이 초선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웃지 않는 것은 오로지 여포뿐이었다.
정무 회의 후 여포는 치솟는 불쾌한 심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애초에 참는 것하고는 인연이 없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소동백이 입성하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랄이 더더욱 심해졌다.
여포 휘하 사단은 예민해진 여포의 화풀이를 받아 내느라 남아나지를 못했다. 별것도 아닌 걸 트집 잡아 성을 내지를 않나, 갑자기 대련이랍시고 불러내어 두들겨 패지를 않나. 이러다 죽겠다며 부장들 몇이 모여 속닥거렸다.
“왜 또 저러는 게요?”
“소 장군께서 요 며칠 입궁치 않으신다던데, 그 탓인가 보오.”
“아니, 여 장군은 소 장군에게 떡이라도 맡겨 놨소? 소 장군이 안 오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이지 왜 저렇게 오쟁이 진 남편처럼 구느냔 말이오.”
한 부장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바람나 오쟁이 진 남편. 딱 그 짝이었다.
여포의 부장 중 하나인 고순은 묵묵히 침묵하고 있었다. 평소 어지간하면 여포 편을 들어 주는 그였지만, 그조차도 저 말에 반박할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순이 무언의 긍정을 하니 다들 더 신이 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흘렸다.
“소 장군이 동 상국께 바쳐진 가기 하나를 대신 하사받았다던데, 그 때문에 그런 게 아닌지 모르겠소.”
“그 소식은 또 어서 들었소?”
“여기저기서 다 그 이야기뿐이오. 천하의 동 상국이 계집을 하사하였다니 그게 아니 놀랄 일이겠소?”
제 손에 들어온 여자를 품지 않고 부하에게 하사한다니. 없던 여자도 약탈해 가는 동탁의 습성을 생각해 보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보니, 다들 모였다 하면 그 이야기 중이었다. 다른 부장 하나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가기가 동 상국의 입맛에 다소 맞지 않았던 것 아니오?”
“천하절색이 따로 없었답디다.”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동탁이 소동백을 유독 아끼기는 했다. 하지만 여자를 하사한다는 견 별개의 문제였다.
믿기 힘든 것은 소동백이 순순히 그 가기를 받아 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동백이 누구냐. 잘난 미색으로 온 여자를 홀리면서도 손 하나 까닥이지 않는 고고한 미장부. 손만 벌리면 그 품에 안길 여자가 무더기인데도 지금껏 실종된 담 부인만을 그리며 수절해 온 것으로 유명한 이가 아니던가.
그 담 부인과 혼례를 치르기 위해 면죄권까지 걸었던 일이 아니었더라면, 소동백이 고자거나 비역질을 하는 이라는 소문이 돌아도 옛적에 돌았을 것이었다.
하여간 소동백이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큼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유명했다. 과거에야 기루에라도 들락날락하며 얼굴이나마 비쳤다지만, 동탁 정권이 들어온 뒤로는 나날이 바쁘다 보니 황궁과 집, 혹은 전쟁터만 오가는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여포와 동탁의 여자들 태반이 실은 소동백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그들에게 자진하여 안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풍문으로 돌 정도였다.
여포의 부관으로 있다 보면 그것이 아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포는 공사를 썩 구분하는 이가 아니었고, 집무실에서도 여자를 안는 일은 예사였으니까. 부하들도, 동백도 종종 그 꼴과 마주치곤 했다.
여포의 여자들은 소동백과 마주하면 하나같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 장군님, 이라며 소동백의 옷자락 한번 잡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듯 굴었다.
어찌 생각하면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정작 여포는 그런 꼴을 코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족할 만큼 여자를 안기만 하면 별 상관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순정 따위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 장군 집무실에 들어선 여자가 벌써 몇 명째요?”
“셋인지 넷인지 기억이 안 나오.”
“진짜 어지간하구려. 이게 군인지, 아니면 청루(靑樓)인지…….”
“하지만 어쩌겠소? 가서 말릴 사람이나 있소?”
부관들의 입이 딱 다물렸다. 여포에게 차마 하지 말라 대들 용기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집무실에 계시는 게 낫지. 보아하니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도 않은데, 만약 저 상태인 여 장군의 눈에 띄었다가는…….”
과거를 떠올린 모두가 몸서리쳤다. 안 그래도 상사가 집무실에서 여자를 안는다는 일에 불만을 품었던 그들은 일찍이 소동백에게 넌지시 부탁했었다.
〈여 장군의 사생활이 군 기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차라리 집무실에 계시지 않는 쪽이 좀 더 도움이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차마 그리 말을 올리자니 두려워……. 여 장군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 장군의 말만은 귀담아들으시지 않습니까. 부디 한 말씀 전해 주십시오.〉
당시 소동백은 곤란스러운 듯 눈썹을 찡그렸지만,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들의 건의는 바로 받아들여졌다.
〈도대체 왜 갑자기 안 된다 그러는 게야!〉
〈자네는 너무 자제를 몰라. 당분간 근무시간에는 방사를 삼가게.〉
〈내가 자제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바로 여봉선인데!〉
〈그래. 자네는 여봉선이지. 단지 그뿐이야. 천하에 무예로 자네를 따를 자가 없지만 그게 자제하지 않을 이유는 아니 되네.〉
소동백은 그리 말하며 쌩하니 뒤돌아섰다. 여포가 득달같이 달려가서 동백을 낚아챘지만, 동백은 여포의 손을 떨구고 고고히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부관들은 모두 환희했다. 그게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인 줄도 모르고.
여자를 품지 못하게 된 여포는 난리를 쳤다. 어찌 그리 기력이 차고 넘치는지, 대련이다 뭐다 하며 주변 부하들을 아주 묵사발을 내 놓았다. 그게 한 소대, 두 소대, 점점 늘어 갔다.
평소에는 술렁술렁 잘 보아 넘기던 것도 다 꼬투리를 잡았다. 그렇게 약해 빠졌는데 무슨 백부장이냐며 부관들을 쪼아 대고, 살아 있을 가치가 없으니 아주 죽으라 괴롭혔다. 부관들은 다시 동백에게 가서 사정했다.
〈이러다 저희 죽겠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기강을 다잡을 터이니, 여 장군 좀 어찌해 주십시오.〉
그들이 동백의 발에 매달려 데굴데굴 굴고 나서야 동백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동백이 여포를 불러내고 나서야 그들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여포를 말릴 수도 없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소동백이 사태의 근원이었으니까. 그게 바로 그들의 문제였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마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부장 하나가 질린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여 장군께서 질투하는 게 아니겠소?”
천하절색의 여자를 소동백이 받았다 하니 여색에 욕심을 부리는 여포가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동탁은 단 한 번도 질리기 전까지는 제 여자를 양도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동탁에게 둘 있는 양아들 중 명백히 한쪽을 편애하는 양상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포와 소동백의 사이를 생각하면 그 또한 탐탁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당연히 여포가 소동백을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여포군으로서는 여포가 소동백에게 얼마나 치대는지를 알고 있었다.
소동백이 다쳤다고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던 여포의 모습이란! 재미난 놀거리라도 생기면 여포는 일을 전부 내팽개치고 소동백에게로 달려갔다. 그런 여포를 끌고 돌아와 다시 집무실에 앉히는 소동백의 표정은 늘 싸늘했다.
여포가 진짜 하기 싫었다면 집무실을 전부 들어 엎고 소동백을 패대기쳤을 터이나, 무슨 약속을 한 것인지 여포는 다소 불량스럽기는 해도 소동백의 말대로 주어진 일을 처리했다. 여포군에게 있어 소동백은 귀인이었다.
여포군이 봐 온 소동백과 여포 사이의 관계는 명백했다. 일방적인 여포의 호감이었다.
반면 여포가 세끼 식사하는 것보다도 여자 안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 여자 하나하나에게 정을 준 적은 없었다.
그런 여포가 여자 때문에 소동백을 질투한다? 다른 부장 하나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구를 말이오?”
“……그러게 말이오.”
부장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 모두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답을 내리고 난 뒤에 기다리고 있을 진실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