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둘 다 직속상관이자 책임자인 왕필과 악진에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단단히 주의받았던지라 반상 밑으로 주먹을 꽉 쥐기만 할 뿐 휘두르지는 않았다.
감녕은 그래도 제가 좀 더 어른이니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마초는 그래도 제가 후한의 명장이자 개국 공신인 마원(馬援)의 후손이니 명가의 후손다운 여유를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마초는 소동백에게 충성하기로 하며 지금껏 흰 눈 뜨고 봤던 낯선 장안의 풍습에도 하나둘 정을 붙여 나갔지만, 그와 별개로 저 익주 출신의 양아치는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마초가 좋게 보지 못하는 것이 감녕뿐만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수적과 말 도둑인 두 사람을 정확히 지목하여 질색하니, 도둑을 가려내는 마초의 촉이 가히 기가 막히기는 했다. 물론 도둑 중의 도둑이요, 나라를 도적질하려는 이 장안 최고의 도적인 소동백에게는 진심으로 굴복하였으니 그 촉이 언제나 확실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마찰이 주먹다짐으로 번지지 않자, 왕필은 감격한 얼굴을 했고 악진 또한 표정은 무덤덤했으나 만족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필은 잠시 조용해진 분위기에 불을 지피듯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막내들이 아주 외모가 수려해. 응? 조 장군도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는데, 마 장군은 아주 얼굴에 비단이라도 두른 것 같아. 요즘 애들은 다 저렇게 생겼나? 아주 금마초(錦馬超)야, 금마초.”
잘생겼다는 소리깨나 들었던 마초는 당연하다는 듯 가슴을 내밀었다. 하지만 갑자기 멱살 잡혀 끌려온 조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박했다.
“잠깐, 제가 군에 입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막내입니까?”
“한번 막내는 평생 막내지!”
“언제부터 군에서 나이로 막내를 따졌습니까? 게다가 제 나이가 몇인데…….”
“아이고, 아직도 너보다 어린 장수가 몇 없잖냐.”
조운이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왕필은 당당했다. 실제로 일반병이 아닌 장수 중 조운의 또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조운은 혀를 차며 되물었다.
“나이순으로 따지면 태위님은 어쩌시려고 그러십디까.”
“한번 상관은 평생 상관이라……. 태위님은 예외지.”
왕필은 뻔뻔했다. 그는 한때 부하였던 조운을 골려 먹기 위해서 모든 이론적 무장을 끝마친 이였다. 조금도 막힘 없이 굴러가는 혀는 한평생 괭이질과 칼질만 번갈아 하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여간 잘생겼다고 해 줘도 뭐라 하네. 아니, 저번에 소 태위님이 잘생겼다고 했을 땐 얼굴이 시뻘게졌으면서 말이야. 내가 잘생겼다고 해 주는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막내라는 말에만 기를 쓰고 반박해. 사람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야?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하지만 조운 또한 악진 만만치 않게 왕필과 함께한 시간이 길었다. 조운은 정색하며 받아쳤다.
“그건 수치스러워서입니다. 소 태위님께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 봤자 기만으로밖에 안 들리니까요.”
“뭐야. 그러면 나한테는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도 당연한 거니 언급도 안 한다는 거야?”
“꼭 그걸 확인받으셔야겠습니까? 뻔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조운과 왕필이 아웅다웅하는 걸 다들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는 와중, 그러거나 말거나 악진은 볼이 빵빵해지도록 고기를 욱여넣으며 고기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왕필은 토라진 척 고개를 홱 돌렸다.
“흥, 조자룡이 이거, 이거, 아주 실망이야!”
“지금 설마 소 태위님 말투 흉내 내신 겁니까? 아니죠? 전혀 안 닮았으니까 앞으로는 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제일 잘생긴 장수가 누구냐 물으면 우리 금마초라고 답할 거야. 내 조자룡 자네 이름을 거론하나 보자고.”
“그러시든가요.”
자신의 8척 신장과 흠잡을 데 없이 잘난 얼굴로 외모 자존감이 높았던 조운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정말 잘생긴 사람은 그런 쓸데없는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이었다. 애초에 조운 스스로는 외모에 그렇게 높은 가치를 두는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세간에서 외모만 보고 재능을 판단한다고는 하지만, 조운처럼 몇 번이나 제 가치를 증명한 장수는 예외였다.
오히려 못마땅해하며 끼어든 것은 한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감녕이었다.
“비단 하면 바로 저, 감흥패 아니겠습니까. 비단 금의 호칭을 고작 저런 얼굴에 줄 수는 없지요. 저도 꽤나 잘생겼으니, 따지자면 금감녕이 되어야지 않겠습니까?”
거침없고 수치를 모르는 감녕의 주장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쉬지 않고 입을 놀린 왕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에 감녕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당당히 되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봅니까? 저 잘생겼잖아요?”
그래. 감녕이 못생겼다는 건 아니었다. 사내답게 시원시원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체격이 호방하고…….
하지만 그렇다 속 시원하게 인정하기엔 무언가 간질간질하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음……. 자네는 아무래도 음…….”
“온후랑 비슷한 계열이지.”
고기를 먹는 것에 집중하던 악진이 툭 던진 말에 그전까지 안개 낀 듯 막연했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며 혀끝에서만 맴돌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재수 없는 인상이 굉장히 익숙하다 싶었다!”
“아니, 내가 그 인간하고 어디가 닮았습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그러하다 고개를 끄덕이니, 장강의 여포라는 말에 두드러기가 나는 감녕이 펄쩍 뛰며 부정했다.
“하지만 무인 중에 그렇게까지 자기주장 확고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이는 내 온후밖에 보지 못했네. 얼굴도 좀 닮은 듯하고.”
“그런 싸구려 취향을 어찌 저에게 비비십니까? 제가 안목이 얼마나 높은데요! 이번만 해도 소 태위님에게 도움이 딱 된 거 보면 모르십니까?”
감녕은 용선의 붉은 비단의 품질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 한빈의 죽음에 일조한 전적을 거론하며 거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누가 모르겠나. 그 덕에 자네가 소 태위님 저택에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각이 혼잣말하듯 나직이 탄식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포와 닮았다며 기피하더니, 감녕이 소 태위의 저택에 드나든다는 이야기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감녕을 바라보았다. 감녕이라면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다 여기는 마초와 소동백 밑에서 잔뼈가 굵은 왕필마저도. 기껏해야 조운과 악진 정도만 덤덤할 뿐이었다.
소동백의 저택에 아무 때나 오갈 수 있는 것은 큰 특권이었다. 그것이 비단 그 저택에 머무는 손가의 차남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도 매한가지였다.
감녕도 자신이 얻은 게 귀한 기회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소동백을 자주 보며 눈도장 찍을 기회라는 게 어디 흔한 것인가? 게다가 저택이라면 사적인 공간이니 신뢰의 증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소동백 저택에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건 감녕의 생각보다도 훨씬 얻기 힘든 보상이었다.
소동백과 동고동락한 왕필을 비롯한 소동백의 책사 가후조차도 소동백의 저택에 들어설 때는 대문에서 허락을 받아야 했고, 소동백이 없는 저택에는 감히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때 소동백과 같이 장양의 저택에서 머문 적 있는 조운 정도나 마음 편히 문지방 넘는 게 가능할까. 악진은 원체 고지식하기에 소동백이 그냥 들어오라 해도 꼬박꼬박 보고를 올리는 인간이었다.
물론 이 모든 상황에서 소동백의 집을 제집처럼 여기는 여포는 논외였다.
소동백의 저택이 그러한 성지가 된 것에 소동백의 의도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원래는 그냥 평범한 세도가의 저택이었다…….
물론 리리와 재회 후 소동백이 여포를 견제하느라 저택 방비에 유난히 예민하게 굴기는 했다. 사람도 쉬이 들이지 않고, 항시 병사를 세워 방비하게 하고……. 그래도 그때만 잠시 그랬을 뿐, 동탁까지 해치우고 난 뒤에는 제법 느슨해졌다 여겼다.
다만 그 이후에 여포가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동백의 집에 들어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꼬장꼬장하게 군 게 문제였다. 가끔은 집에 소동백이 없는 데도 그랬다.
〈뭐야, 소동백이도 없는 집에 불쑥 찾아와서 뭘 하려고. 어? 아주 수상쩍어…….〉
그건 이쪽에서 물을 말이었다! 소동백도 없는 집에 집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딱 버티고 서서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아니다. 집주인도 아니고 딱 집 지키는 개였다. 물론 집 지키는 개도 여포보다는 게으를 듯싶었다.
그랬다. 소동백의 저택에 아무 때나 오가기 위해선 소동백의 허락만큼이나 여포의 허락 또한 필요했다. 그리고 여포는 허락이라는 걸 모르는 편협한 인사였다.
조운이야 여포와 기 싸움을 하는 걸 피하지 않으니 여포의 허락 따위는 아랑곳 않았고, 악진은 애초에 급한 업무가 아니고서야 불쑥 들이닥치는 일이 없다는 걸 여포 또한 알고 있었기에 허용되었다. 가후는 여포와 마주치는 위험을 감수하고 소동백과 사적 친분을 쌓을 정도로 열의가 넘치는 이는 아니었다.
그 외의 이들은 차마 여포와 마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소 태위의 저택 문턱이 그렇게 높은 것이었다.
소동백은 여포의 행태로 인해 제 저택의 대문을 허락 없이 넘는 일이 측근들에게마저 특권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따로 여포를 말리지는 않았을뿐더러 내심 그런 소문을 방치하기도 했다. 왕필을 비롯한 순박한 측근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여포가 사천왕처럼 제집 문을 지키고 있다는 악명 덕에 번거로운 일이 확실히 줄긴 했다.
하여튼 그런 상황이니만큼 소동백이 이번에 감녕에게 내린 특권에 다들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하물며 감녕은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았던가. 동백이 허락한 것보다 여포가 별말 안 한 게 기이했다.
사실 이번에도 여포는 투정을 부릴 대로 부렸으나 소동백이 들어먹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몰랐다.
그저 여포가 감녕을 내심 소동백의 또 다른 측근으로 인정한 게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만 할 뿐이었다. 여포가 알면 억울해 뒈질 생각이었다. 감녕이라 하여 알아서 기뻐할 생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