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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438)화 (438/522)

그리 이리저리 활개 친 까마귀들은 돌연 한데 모여 용오름 하듯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돌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까마귀 떼의 날갯짓에 사람들은 몸을 쉬이 가누지 못했다.

까마귀들이 사라진 뒤, 이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이 구름에 가려진 듯했다.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 혼미해진 이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그들은 하늘을 가린 것이 구름이 아닌 까마귀 떼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까마귀 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의 까마귀 떼가 청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까마귀 떼가 말하던 천벌이 있다면, 마치 그 자체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 * *

청주의 임치현에서 벌어진 괴이쩍은 일에 대한 소문이 장안까지 도달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다들 자격 없는 자가 칭제하니 하늘이 노해 천벌이 내려진 게 아니냐며 수군대다가도, 정말 동백이 그리한 건 아닌지 흘끔거렸다. 이전에도 동백을 경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많았지만 지금은 수준이 달랐다.

입궁하였으나 결국 자신에게 들러붙는 시선을 견디지 못한 동백은 황궁 내 집무실에 반강제로 틀어박힌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이 여파가 크긴 컸나 봐. 나는 내가 걸어 다니는 석가모니라도 된 줄 알았지 뭐야.”

“사람들이 널 생신(生神)처럼 받드는 게 다 내 덕이다 이거야.”

자오가 우쭐거렸다. 거드름을 피우며 까악거리는 부리에 동백이 요과(腰果)를 넣어 주었다. 견과류 바스러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내가 애들 말하게 훈련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까마귀 구강 구조로 가능한 거랑, 실제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래그래.”

“거기 날갯죽지 부분 좀 더 주물러 봐.”

“오냐.”

동백이 손가락을 세워 자오가 시킨 부분을 긁었다. 긁을 때마다 자오의 고개가 만족스러운 듯 뒤로 젖혀졌다. 늘어진다, 늘어져. 동백은 혀를 차며 물었다.

“반신욕도 할래?”

“좋지. 이 집 서비스 괜찮네.”

동백은 바로 시비에게 대야에 뜨끈한 물을 받아 달라 부탁했다. 집무실에서 일은 않고 돌연 물을 담아 오라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을 텐데도 시비는 되묻지도 않은 채 얼굴에 화색을 띠고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오래지 않아 물을 받은 놋쇠 대야를 끙끙거리며 들고 왔다.

“무거웠을 텐데 용케 혼자 들고 왔구나.”

“아, 아닙니다.”

시비는 고개를 내젓고는 동백의 자리 바닥에 대야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상기된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동백의 앞에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수건도 따로 챙겨 온 걸 보니 동백이 족욕을 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동백은 웃으며 시비를 만류했다.

“내 까마귀를 씻길 것이니 그냥 두고 가면 된다.”

시비의 얼굴에 한순간 실망과 아쉬움이 스쳤으나, 황궁에서 살아가는 자답게 순식간에 그 기색을 감췄다.

동백과 단둘만이 남자 자오가 놀리듯 까악거렸다.

“네 발 씻길 기회가 생겨서 완전 신난 것 같은데, 아쉽게 되었네.”

“내 발 씻겨서 뭐에 쓰려고.”

“리리가 돌아오고 네가 조금도 틈을 안 줬잖냐. 원체 철벽같은 사람이니 이런 기회라도 틈타는 거지. 맨발을 씻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다른 일까지 노리는…….”

자오는 까마귀면서도 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능통한 척 부리를 털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새가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였다. 자오가 저리된 것에는 동백의 지분도 있는 만큼, 동백은 자오의 주책스러운 말도 오냐오냐 들어 줬다.

“그래, 그래. 물 온도는 맞고?”

“아주 살살 녹는다. 이대로 백숙도 되겠어.”

“뜨거워?”

“아니, 딱 좋다고.”

“하여간 말을 헷갈리게 해.”

동백은 툴툴거리면서도 부드러운 손길로 자오의 근육을 안마했다.

대야가 크긴 했지만 자오가 완전히 담길 정도는 아니었다. 꽁지깃과 날개깃 끝이 대야 밖으로 빠져나왔다. 자오가 기분 좋은 듯 발을 까닥일 때마다 물이 첨벙첨벙 튀어 동백의 옷자락을 적셨다. 자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덧붙였다.

“그래도 조조 그 새끼한테 복수하고 싶어 한 애들이 많아서 그나마 할 만했어. 이야, 조조 걔가 연주 사는 까마귀 싹 죽인 거 까마귀들 사이에서 유명하더라고.”

“그래?”

“어. 조조 엿 먹인다니까 애들이 좀 의욕적으로 나서더라고. 사실 그거 아니었으면 실패했을지도 몰라. 하여간 이래서 말이야, 사람은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해, 어? 어디서 까마귀를 박대하고 말이야.”

자오는 이죽거렸다. 사람도 하찮게 여기는 이가 미물을 아끼겠는가. 까마귀를 죽이며 까마귀가 이리 복수할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하후연에게 화살을 맞았던 부분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기분 때문인지 아직도 비가 오면 뻐근한 듯했다. 이번에 한 방 먹여 속이 다 시원했다.

* * *

그렇게 한참이나 자오의 시종 노릇을 한 동백은 시간이 되었다는 호위의 말에 의관을 가다듬었다. 사람 눈을 피해 잘 쉬었으니, 이제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자오는 몇 겹이나 쌓인 푹신한 비단 방석 위에 누운 채 잘 다녀오라며 날개만 까닥였다.

문무백관들과 황제가 정전에서 동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권을 지닌 동백은 환관이 관직과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허리춤에 칼을 매고 당당한 걸음으로 황제의 어전에 입조했다. 그러고는 태연히 황제를 보며 눈웃음쳤다.

“소신이 늦었군요.”

“아니다. 짐도 방금 도착했다.”

헌제는 냉큼 말했다. 사실 헌제가 도착한 지는 한참 되었으나, 그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청주의 사건에 대한 진위가 궁금하여 견딜 수 없는 기색이었다. 특히, 제한이라 자칭하는 괴뢰 정권에 한발 걸칠 의지가 가득했던 이라면 더더욱. 그들은 소동백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눈을 되록되록 굴렸다.

황제의 앞에서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이, 동백은 단상 위 자리에 느릿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청주에서 벌어진 괴이쩍은 일에 대한 소문은 나 또한 들었네. 한의 정당한 황제가 여기 계시거늘, 폐제가 감히 부당함을 주장하며 칭제했다지? 천벌이 내려 마땅한 일이로군.”

동백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연덕스레 운을 뗐다. 어찌나 오리발을 잘 내밀었는지, 전말을 대충 아는 이들은 가까스로 웃음을 삼켰다.

“까마귀는 옛적부터 서왕모의 뜻을 전하는 하늘의 전령이었지. 까마귀 떼가 그리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아 천벌이라 말하였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동백이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치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숨 막힐 듯 고요한 침묵이 정전에 맴돌았다. 동백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는 인정치 않고 내가 까마귀를 부려 분탕 쳤다고 주장하던데, 하하, 아무리 나라 하여도 까마귀에 말을 하라 시킬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내가 서왕모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하, 농도 심하십니다, 태위님.”

“저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할 생각이 없으니 애꿎은 태위님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동백의 농담에 부하들이 맞장구치듯 소리 내 웃었다. 제일 크게 웃은 건 여포였다. 그러면서도 문무백관을 향해 눈은 번들거리는 것이, 분위기 맞추라는 듯 으름장 놓는 게 훤한 기색이었다.

몇몇 이들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고, 몇몇 이들은 낯빛이 좋지 못했다. 안색이 어두운 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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