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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490화 (490/522)

동백꽃 490화

“그래서 방법이 뭔가?”

초조했던 여포는 화타를 재촉했다. 여포가 쉬이 물러설 것 같지 않자, 화타는 마지막으로 혹시 모를 우려 사항을 덧붙였다.

“알려 드리지 않겠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생술(養生術)이라고는 하여도 별거 아닌 체조일 뿐이니, 온후께서 들으시고 하찮다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뭐, 동탁 곁에서 보고 배운 게 있어 허투루 여기지 않을 테니 염려치 말고 말하게.”

동탁은 장수하겠답시고 시황제의 불로장생법을 연구하게 했는데, 시황제가 즐겨 먹었다던 수은을 넣은 단약을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내기도 했다. 동탁의 노력은 단약 몇 개 섭취하는 것일 뿐이었다. 고작 그걸로 힘이 샘솟고 오래 살 수 있다니, 곁에서 보면서도 참으로 형편 좋다 싶었다.

그에 비하면 체조 정도야. 본인의 노력도 들어가니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여포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었던 화타는 자신이 고안해 낸 오금희(五禽戱)를 선보였다. 오금희는 호랑이, 곰, 원숭이, 사슴, 새의 동작을 모방해서 만든 도인법(導引法)이었다. 어차피 본인이 꾸준히 해야지만 의미 있는 비법이니, 전수하길 아낄 이유가 없었다.

화타가 움직이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여포가 볼멘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별거 아닌데.”

화타는 가벼운 운동으로 흐른 땀을 훔쳐 냈다. 축복받은 육체를 타고난 여포의 눈에 하찮게 보일 만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명검일지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녹이 슬 수밖에 없다. 화타는 못마땅한 어조를 숨기지 않은 채 받아쳤다.

“별거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문이 여닫는 경첩 달린 쪽은 좀이 먹지 않는 법이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법입니다. 대장군께서 꾸준히 단련하시는 건 압니다만, 무기를 휘두르는 일이란 결국 몸의 한구석만 쓰기 마련이잖습니까? 이걸 매일 꾸준히 하셔서 몸의 구석구석을 움직이고, 술과 식단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특히 기름진 것을 너무 자주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아니, 자제해야 한다고? 덜 먹어야 한단 말이냐?”

여포가 화들짝 놀랐다. 고기라 함은 힘의 근원인데, 그를 더 먹으면 더 먹었지 덜 먹는 것도 장수에 도움이 된단 말인가?

여포의 안색이 시퍼레지든 말든, 화타는 태연히 말했다.

“식사를 정갈하게 가다듬는 것도 장수에 도움이 됩니다.”

“수, 술은? 술은 약주라고도 불리지 않더냐.”

“약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입니다.”

“끙.”

여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면서도 그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굴어 가며 오래 살 생각은 없다 어깃장 놓지는 않는 걸 보니, 화타의 말을 따를 셈이긴 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화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포의 장수에 대한 욕망이 이렇게 클 줄이야!

한 철 인생 즐기기에도 부족하다며, 제가 술과 고기를 줄여 얼마나 더 살겠냐 고래고래 외칠 줄 알았는데…….

하긴, 여포가 평소 소동백에게 얼마나 극진한지와 더불어 소동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생각하면 여포가 어떻게든 오래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소동백은 이립(而立)도 안 된 젊은 나이임에 반해, 여포는 불혹(不惑)을 갓 넘겼으니……. 속에 담아 두는 게 없고 제멋대로 인생을 살아 겉보기에는 젊어 보인다만, 상대가 소 태위면 초조해질 만도 했다.

여포의 진심에 화타의 뾰족했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화타는 여포를 다독였다.

“괴로운 일만 한다 하여 장수하기도 어렵지만, 즐거운 일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균형이 중요한 법이지요. 장군께 즐거움은 충분한 듯하니, 그를 오래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덜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

여포는 폐부에서 끓어오른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바야흐로 장수해 보려다가 예기치 않게 시작된 금주의 첫걸음이었다.

* * *

도화원에 갑자기 여포가 들이닥쳤다. 그거야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여포가 동백이 아닌 안주인 초선을 찾는 것은 기이할 만했다. 몇 년 전, 채염이 등용되었을 당시에나 불쑥 찾아오고 그 뒤로는 항상 동백과 셋이 만났을 뿐이다.

리리는 급작스레 절 불러내어 잘 보고 있으라고 하더니, 다짜고짜 춤인지 뭔지 모를 동물 흉내를 내는 여포를 경멸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애의 춤입니까, 온후? 만약 태위님에게 그 꼴을 보여 주고 멋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신 거라면 꿈 깨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뭔 미친 소리야? 나도 미감이라는 게 있어. 이건 너 보고 배우라고 한 거다!”

제 선의를 단단히 오해받았을뿐더러 놀림까지 당한 여포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보통은 여포가 그리 화를 내면 다들 깜짝 놀라 자라처럼 목을 쑥 집어넣는데, 초선 저 계집은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포를 쏘아보았다. 그도 모자라 또박또박 반박하며 여포에게 면박을 주니, 여포의 입이 다물리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천치 같은 짓을 한다 한들 상공께서 절 못났다 여길 일은 없을 겁니다.”

“자랑하냐?”

여포가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조금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소동백의 총애를 과시하는 게 배알이 꼴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배우기 싫으면 말라며 자리를 박차고 싶은데, 목적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저 깐족거리는 계집을 구슬려 배우게 해야 했다.

“매일 이 체조를 꼬박꼬박 하면 건강이 좋아지고 장수한다더라. 화 태의한테 가서 물어 배워 온 양생법이니, 너도 잊지 말고 하라고.”

리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여 공께서는 제가 장수하시기를 바랍니까?”

“당연하지!”

리리는 아까 여포가 이상한 동물 흉내를 낼 때보다도 더 놀라워하며 여포를 보았다. 그러곤 불신 가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제가 먼저 죽고 상공을 독점하길 바랄 줄 알았는데요.”

“흥, 너야 내가 죽으면 그럴 수 있으니 좋아하겠지. 하지만 네가 먼저 죽고 나면 소동백이 하루 종일 널 그리며 슬픔에 잠겨 지낼 텐데, 나보고 그 꼴을 두 눈 뜨고 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본디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거라지만, 죽은 인간 못 이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분명 저 계집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소동백 가슴에 제 존재를 단단히 못 박아 두고 갈 것이다. 절대 빠지지 않게 망치질을 수십 번 내리치고 가겠지.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소동백을 품에 독점하듯 끌어안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지. 의미가 있긴 하지.’

아무렴 소동백을 독점하는 것인데 의미가 없겠는가? 다만 소동백이 축 처진 채 다른 인간만 계속 그리워하느니, 이왕지사 생생하고 파릇파릇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뿐이다.

여포의 말에 리리는 아니란 소리는 하지 않고, 되레 속내가 들켰다는 듯 새초롬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요사스럽기 짝이 없었다. 은(殷)나라를 파멸로 이끈 주왕(紂王)의 비, 달기의 웃음이 저러했을 것이다. 여포는 혀를 찼다.

‘소동백 그놈은 저게 뭐가 그리 이쁘다고…….’

따지고 보면 여포도 독한 여자가 취향이었던 터라, 만약 소동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초선에게 끌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니 끌리기는 개뿔, 미치고 팔짝 뛰다 못해 복장이 뒤집힐 정도였다.

여포의 답답한 속을 비웃듯, 리리는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온후께서 그리 바라시니 해 보긴 하겠습니다. 제가 죽고 아무리 상공께서 저를 그리신들, 저 또한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요. 차라리 오래오래 상공 곁에 있는 게 낫지요.”

“그래. 오래오래 살든가.”

여포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결론을 따지고 보면 여포 본인 좋자고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초선에게도 아쉬울 것이 없는데, 정작 저리 나오는 꼴을 보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초선이 일찍 죽어 나자빠져 시름에 빠진 소동백을 보며 속이 상하는 것보다야 초선의 빈정거림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게 훨씬 낫다. 여포는 그리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시 한번 오금희를 펼쳤다.

“그러니까 잘 보라고. 이게 첫 동작이 호희(虎戱)라고 하는데 말이야…….”

* * *

여포와 리리가 함께 장수하는 인생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동백은 집무실에 처박혀 스스로가 불러들인 업보를 해치우는 중이었다. 주변 이들이 어떻게든 소동백의 수명에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는 것과 달리, 정작 본인은 단명으로 가는 생활을 적극적으로 영위하는 편이었다.

“천거된 인재는 이게 전부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명 목록을 살피던 동백은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물었다. 동백의 곁에 서서 목록에 오른 인사들의 인적 사항에 대해 읊던 가후가 심드렁히 대꾸했다.

“천거된 인재는 물론 더 많지요. 아직 형주의 진 자사가 천거하지 않은 이들도 남았고……. 하지만 쓸 만한 인재가 있느냐 물으시는 것이라면 글쎄요…….”

“내가 수복한 땅이 이리 넓은데 어찌해서 인재 수준은 이전과 대동소이하단 말인가?”

“기실 뛰어난 선비가 많아 유명하기로 노른자위인 땅은 예주와 연주인데, 태위께서는 그곳을 늦게 정벌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사이 조조나 원소가 주워 갔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법이지요.”

“젠장!”

동백은 성을 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내던지듯 기댔다.

본래 이런 인사와 관련된 일은 가후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맡겨 두는 편이지만, 이제 내실을 다져야 하는 만큼 동백도 한 번 더 교차 검증을 해 볼 셈이었다. 그래서 직접 목록을 살피려 했더니 끝이 없다. 온종일 종이만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성과가 나질 않으니, 인내심 좋은 동백이라 할지라도 답답해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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