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슈 기자의 악행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진짜 가지가지 했다.”
리벨은 성실한 업계인이었다.
한마디로 제국의 주요 이슈는 물론이고 유명한 기자들은 꿰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리벨이 전혀 몰랐던 사건들에도 슈는 연루되어 있었다.
가짜 기사를 익명으로 제보받은 척 써서 올렸다가, 정정 기사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작은 칸에 정정 기사를 올린다거나 하는 건 언급할 거리도 되지 못했다.
“진짜 이러니까 기레기 소리가 나오지.”
없는 소문 만들어 내기는 기본. 특히 힘없는 작은 가문이나 평민을 대상으로는 거침없이 선정적인 기사를 만들어 냈다.
[수도 서부 주택가에서 금괴 100개 무더기 발견…… 충격!]
[귀족가 기사단장에게 은밀히 닿은 편지의 주인, 알고 보니…… 충격!]
[브랜딜 자작, 결투 도박장에서 열 번 연속 호재…… 비결은?]
정말 한국이었으면 인터넷 뉴스 기사 밑에 달렸을 광고들처럼 저급한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야…… 심지어 기자명이 두 개야?”
좀 될 만한 건 슈로 터뜨리고, 자잘한 건 ‘멜리’라는 이름으로 올려서 고료를 짭짤하게 벌어먹은 모양이었다.
“이런 애 때문에 우리가 욕먹는다니까!”
리벨이 보고서 한쪽을 꽈악 쥐었다.
근데 지금 신경 쓸 건 슈의 과거 행적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 기고 기사 : ‘리벨 이벨라, 독신 선언’]
“내가 언제 독신 선언을 했어?”
리벨이 시선을 내려 보니 기사가 올라오는 건 내일 아침 신문이었다.
“어이가 없네?”
물론 이렇게 쪽팔리게 롤란드에게 걷어차인 상황에서, 나 같아도 대공 전하만 아니었다면 독신 선언을 했을 것이다.
차라리 결혼이고 뭐고 안 하고 말지!
“하지만?”
이걸? 네가? 올리면? 내가? 아주? 빡치지 않겠니?
리벨이 인자하게 웃었다.
슈…… 아니, 베니카 영애한테는 아주 안타깝게도, 저 기사는 올라올 수 없을 것이다.
―사락.
서랍에서 가볍게 종이를 꺼내 든 리벨이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농담 같은 파혼’ 이벨라 영애, “곧 놀랄 만한 소식 전할 것”]
음, 기사 제목 좋고.
[지난 4일 디엘렌 영식과 베니카 영애의 깜짝 결혼 발표 이후 리벨 이벨라 영애는 외부와의 소식을 끊고 저택에 칩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6일, 돌연 모습을 드러낸 리벨 이벨라 영애는 “젊음의 꽃은 사랑이죠. 결혼을 포기할 생각은 절대 없답니다.”라는 말로 화려한 사교계 귀환 소식을…….]
기사를 써내려가던 리벨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나 하나, 그러니까 리벨 이벨라만 인터뷰해서는 주목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저 그런 기사로 신문 저 뒷면 어딘가에 처박혀 버리겠지.
그럼 일단 시선을 끌 사진이 필요했다.
―쿵쿵.
리벨은 제 방문 앞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노크했다.
“낮인데…… 있겠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밖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으셨습니까?”
문을 살짝 열어 보니 깍듯하게 묵례하고 있는 기사가 보였다.
리벨이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대공 전하와 식사할 때까지는 좀 시간이 남았으니까 할 게 있어서요.”
그 말에 기사는 멈칫하다가 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말씀을 부디 낮춰 주십시오. 감히 제가 대공비 전하가 되실 분께 존대를 받을 순 없습니다.”
엄청나게 곤란해하는 게 보였다.
하긴, 내가 존대하는 걸 리엔 황태후 폐하가 보셨다간 저쪽은 존대받은 대가로 존재가 날아갈지도 몰랐다.
황태후 폐하는 이런 종류의 예의에 까다로운 분이니까.
“알았어.”
리벨이 그렇게 답하고 나서야 기사는 몸을 일으켰다. 리벨은 그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혹시, 황궁 의전원 사람들이 출근했을까?”
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황가 기사하고는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을 텐데, 반말을 하고 명령까지 하게 된 걸 보니 역시 권력이 좋긴 좋았다.
“물론입니다.”
기사가 다시 깍듯이 답했다.
“좋아. 기사단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리벨은 수도의 지리를 떠올렸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황성에 들렀다가 기사단에 들르면 시간이 딱 맞겠다.
“의전원으로 가자.”
“바로 채비하겠습니다.”
기사가 복도 한쪽에 손짓하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다른 기사 한 명이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대체 여기에 황태후 폐하의 기사가 몇 명이나 파견된 거야?
당황도 잠시 리벨은 소리 없이 웃었다.
리벨 이벨라의 인터뷰만으론 파급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인터뷰는커녕 만나기도 힘든 의전원 사람의 사진이 실린 기사라면?
주목받는 데에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게다가 이건 오늘 저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게 될 것이다.
슈의 기사보다 훨씬 먼저, 말이다.
* * *
리벨이 황가 의전원에 들렀다가 기사단 건물에 도착한 건 딱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달칵.
식사 시간으로 다소 활기가 도는 기사단 한가운데에 자작가의 마차가 멈춰 서니, 기사들의 의아한 시선이 꽂혔다.
“저 마차는…….”
“오늘 외부인이 들를 일정이 있었나?”
기사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마차에서 내린 리벨에게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기사단장님을 뵈러 왔어요.”
“아, 혹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으셨습니까?”
리벨을 상대하던 기사가 뒤에 서 있는 다른 기사에게 손짓했다.
“오늘 방문자 명부 가져와.”
방문자 명부엔 안 쓰여 있을 것 같은데. 리벨이 저 기사를 말려야 할까 고민할 때였다.
“명부는 찾지 마라. 내가 모시지.”
다른 기사가 나타나 리벨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부기사단장 에테르입니다. 단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려 부단장님께 말씀해 놓으신 모양이다. 이렇게 황송한 대우는 또 리벨 이벨라로 살면서 처음이었다.
‘권력에 익숙해져.’
……하긴, 이제 익숙해져야 할 터였다.
리벨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쯤 되면 기사가 에스코트를 하려고 손을 내밀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테르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제가 단장님 앞에서 감히 에스코트할 수 없음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이 사람은 이미 대공 전하와 그녀 사이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작가하고 대공가 사이에 오간 마차가 몇 대인데 눈치가 빠르면서 대공과 가까운 사람이면 알 법도 했다.
“괜찮아요.”
에스코트 없이 못 걷는 것도 아니고. 리벨은 오히려 없는 게 더 편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에테르가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리벨은 기사단을 반짝이는 눈으로 둘러보았다.
기자로 왔을 땐 당연히 취재할 수 없었던 기사단 내부였다.
물론 앞으로도 ‘기자 벨’로서는 올 일이 거의 없겠지만,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를 노릇이다.
원래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녀가 눈을 빛낼 때였다.
“……해서 오른쪽으로…….”
“아니지, 그럴 땐 등이 비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목소리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정신을 차린 리벨이 본 전방의 광경은 대단했다.
수백 명의 기사가 줄 서서 배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와.”
설마 여기서 점심을? 이렇게? 아니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데이트를 학교 점심시간같이 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영애.”
지나가는 기사들은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도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부단장이 모시는 손님이라고 해서 제 할 일을 안 하진 않는 줏대 있는 모습이 믿음직……한 게 아니라.
리벨이 머리를 싸맬 때였다.
“오셨습니까.”
문제의 원흉이 그녀의 옆에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일을 처리하다 온 듯 가벼운 셔츠 차림에 손목을 풀며 다가오는 건 당연히, 디란타 대공이었다.
“단장님, 어서 오십시오!”
기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인사했다. 덕분에 시선도 한 번 더 리벨과 그에게 쏠렸다.
리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정말 여기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실화냐?
심지어 부단장 에테르는 그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다른 기사들은 마치 두 사람 주변에 무형의 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둥글게 두 사람만의 공간을 피해 이동했다.
“……원래 이런가요?”
리벨은 비어 있는 공간을 가리키며 물었다.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영애를 배려한 것 같습니다.”
이런 배려 필요 없어! 더 눈에 띄어!
이대로라면 먹던 것도 체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식당 같은 비주얼이라니, 다시 학교 온 것 같아서 기분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밥이 영양만 가득하고 맛대가리는 없을 것 같았다!
“?”
하지만 그건 편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리벨은 접시를 들고 나서 1분 만에 알게 되었다.
“오늘 점심 식사는 해물 정식입니다. 푹 삶은 게 위로 매콤한 양념을 곁들여 풍부한 맛을 낸 서부식 요리와 가재 요리, 커다란 새우의 살을 발라 볶은 동부식 요리가 메인입니다.”
무려 식사를 안내해 주고 게살을 발라 주는 요리사까지 있었다.
손이나 칼끝에 뭐라도 달았는지 삶아진 게들은 그의 손끝에 닿을 때마다 통통한 속살을 드러냈다.
“해산물이 내키지 않으신다면 수도 근처에서 올라온 최상급 양젖 치즈와 부드러운 흰 빵, 스테이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시 기사들은 매일 이런 식사를 먹나요?”
혹시 사람 온다고 오늘만 이러는 거 아니야?
리벨은 한국 출신답게 의심했다.
아무리 위에서 식사 예산을 늘려도, 중간에서 조금씩 해 먹다 보면 김치와 밥, 묽은 소고깃국밖에 남지 않는 건 군대뿐만 아니라 식사가 배급되는 곳이라면 학교든 어디든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제 아니던가?
분명 여기에도 비리가 있을 것이다!
손님이 왔으니 거하게 차렸을 것이다! 아니, 대공 전하께서 드시니까 거하게 차렸을 것이다!
마치 집에 친구 데려오면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으렴’ 하면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주시는 어머니의 상차림처럼!
하지만 그 의심도 5초 만에 날아가 버렸다.
“예. 매일 이런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