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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5)화 (15/167)

제15화

시스테인이 담담하게 답했다.

“대공가에서 데려온 요리사가 직접 위생 및 영양 관리까지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려 대공가 요리사였습니까?

그럼 이 상황이 이해 가기는 했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니 디란타 대공은 여기서 한두 번 식사를 한 게 아닌 듯했다.

대공 전하께서 직접 입에 대시는 음식인데 질이 안 좋아서는 곤란했겠지.

“잘 먹겠습니다!”

이 세계에 빙의해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는 것 같아, 리벨은 들떴다.

“……예.”

그 덕에 튀어나온 한국식 식사 예절은 시스테인을 잠깐 멈칫하게 했다.

아차, 여긴 잘 먹겠습니다 같은 거 안 하지.

리벨은 접시를 내려다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비록 통통한 게살 위에 붉은 양념이 올라와 한 입만 베어 물어도 바다의 향과 매콤한 향이 어우러져 입 안을 즐겁게 해 줄 것 같지만 흥분해서는 곤란했다.

비록 껍질 하나 남지 않은 깔끔한 새우볶음에 군침이 돌아도 흥분해서는 곤란했다.

진정하자! 맛있겠다!

머릿속이 온통 어지러운 그녀가 수프에 먼저 스푼을 뻗었다.

후추가 충분히 들어간 양송이 수프는 그녀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신선한 양송이가 자잘하게 썰려 들어간 수프는 풍미도 좋았다.

“맛있어요!”

이런 맛 앞에서 진정하는 건 사치다! 리벨은 아쉬운 눈으로 양젖 치즈와 빵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저것도 가져왔어야 했나?

그사이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신다면 식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예? 식사를 보내 줘요? 리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 포장 배달도 돼요?”

“……?”

시스테인은 의아한 듯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 너무 한국식으로 말해 버렸다.

흥분을 진정하기 위해 게살을 포크로 찍어 올린 리벨이 물었다.

“그러니까…… 식사만 따로 가져오는 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것은 없습니다.”

시스테인은 곧바로 답했다.

원래 사람은 세 번은 사양하는 거랬지만 이런 식사 앞에서는 사람이길 좀 포기해도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런 고급 식단에 입을 댄 이상 자작저에서 먹던 반쯤 삭은 음식은 넘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거절하기엔 너무 맛있는 식사다!

“물론입니다.”

식사하던 시스테인이 리벨을 올려다보았다.

리벨의 접시는 벌써 반쯤 동나 있었다.

원래 식사 속도가 빠르신 편이군.

짧게 결론 내린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영애.”

“네.”

리벨이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그 위로 시스테인의 침착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리벨은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아쉽지만 남 얘기하는데 와구와구 먹고 있을 순 없지.

“어떤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시스테인은 더욱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저는, 다른 영식들처럼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

그 말에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

시스테인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침묵 끝에 리벨은 되물을 뻔했다.

혹시 하실 심각한 말씀이 그게 끝?

근데 정말 끝인 듯했다. 시스테인은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벨은 결국 손사래를 쳤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디 다른 데서 먼저 청혼한 남편 놈이 저런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하면 불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리벨은 오히려 좋았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하!

“어차피 바쁘신데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순 없잖아요!”

리벨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암암, 그렇고말고!

달콤한 신혼부부가 됐답시고 하루 종일 붙어 있다간 기자 벨의 직업 인생은 그대로 끝이었다.

신경 못 쓰는 게 차라리 나았다.

최고의 남편!

리벨이 엄지 척을 하기 직전에 시스테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아차. 너무 좋아하면 안 되지.

리벨은 필사적으로 어휘력을 총동원했다.

“그,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음, 그러니까.”

리벨이 손을 펴 보였다.

“때로는 성인 남녀 사이, 부부 사이에도 개인 시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죠. 부부 사이에 너무 서로를 속박해서는 곤란하다는…….”

시스테인은 줄줄이 이어지는 말을 표정 변화 없이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결혼한다고 해도 각자의 생활이 있겠죠.”

기사들이 멀찍이 앉아준 덕에 조용한 두 사람의 주변을, 그의 여상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밤 생활과는 별개로.”

“쿨럭!”

리벨은 먹던 걸 뿜을 뻔했다.

그그그런걸이렇게공개적인곳에서아무렇지않게말해도괜찮은걸까요?

“그…… 밤 생활도 하시는, 하시는 건가요?”

리벨이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말에 시스테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아주 살짝.

“혹시 제 밤 생활에 대한 소문을 걱정하신다면―”

“아아아닙니다!”

그 소문 이야기는 우리 하지 맙시다! 제 모가지가 지금 달랑달랑하거든요!

리벨은 손사래를 쳤다.

“직접 봤는데 어떻게 소문을 걱정하겠어요! 하하하하!”

당황한 덕에 쓸데없는 말까지 해 버렸다.

시스테인의 표정이 조금 떫어졌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

“기억이 나십니까?”

리벨은 그 말에 바로 답했다.

“아뇨.”

“…….”

“…….”

막 던진 말이란 건 3초 만에 들통나 버렸다. 잠시 침묵 끝에 시스테인이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하겠습니다.”

리벨은 순간 그가 뭘 말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밤에!

“아마도…… 원하신다면.”

그가 재차 덧붙였다. 그답지 않은 애매한 대답이었다.

리벨이 포크로 게살을 폭 집으며 눈을 연신 깜빡였다. 곤란할 때 하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건 좋긴 한데……. 그녀가 흘끗 시스테인을 보았다.

단정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겹쳐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그건 밤의 흥분에 기대어 상기되어 있던 그의 얼굴이었다.

그와의 밤이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좋았던 것은 분명했다.

“흠흠.”

그렇다고 차마 ‘좋아요, 합시다!’ 하고 우렁차게 외칠 수는 없으니 리벨은 곱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결국 포크도 내려놓고 연신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게살 양념처럼 얼굴이 새빨개져 버렸다.

“여하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리벨이 작게 말했다.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식사를 다 해가는 그는 리벨을 바라보았다.

“결혼은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리벨은 멈칫했다. 평소와 같은 어투였다.

분명히 이 사람은 아무런 감정 없이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이용……이요?”

서늘한 단어가 마치 그와의 사이에 벽을 세우는 듯했다.

원래도 벽을 허문 사이는 아니었지만, 뭔가 더 차가운 얼음벽이 들어서는 느낌이다.

“예.”

리벨은 그렇게 답하는 시스테인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살짝 비쳤다고 생각했다.

여상스러운 어투였지만,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정말…… 이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그자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시스테인의 조용한 말이 이어졌다.

“롤란드 디엘렌, 그자에게.”

“그건.”

얼떨결에 결혼하게 된 건 맞지만, 결혼하게 된 이상 디란타 대공과 함께하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리벨은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난 복수를 넘어서 행복해질 거라고.

“그것만은 아니에요, 대공 전하.”

시스테인은 냅킨을 접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롤란드는…….”

리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아주 나쁜 새X다.

사람을 그렇게 갖고 노는 놈은 한바탕 당해 봐야 한다.

권력에 취해 사는 그런 놈에게는 더한 권력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결혼한 것도 맞았다.

물론 황태후 폐하께서 목을 쥐고 흔들고 계신 탓도 있지만.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롤란드 그놈은 제 인생에서 이미 스쳐 간 놈이고, 제 삶은 계속될 거잖아요. 그리고 대공 전하와 결혼하게 된 이상, 전 대공 전하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리벨의 또렷한 시선이 시스테인을 향했다.

“저도, 대공 전하도요.”

정말 얼렁뚱땅 황가의 며느리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까진 나쁜 건 없었다.

거절할 수 없는 청혼이었다고 해도 나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전하.”

리벨은 결국 냅킨을 접어 버렸다. 식사를 마치겠다는 뜻이었다.

“이 결혼을, 단지 이용하려고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건 제 인생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사실 대공 전하의 감정을 드러내게 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지만, 그것 역시도 리벨 자신의 인생에 있는 일이지, 롤란드 디엘렌에 대한 복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은 아니었다.

“복수와 결혼 생활은 완전히 별개라는 것.”

리벨의 말이 두 사람 사이를 울렸다.

잠시 침묵하던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시스테인.”

“?”

갑자기 자기 이름은 왜?

눈을 깜빡이는 리벨에게 시스테인이 재차 말했다.

“시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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