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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6)화 (16/167)

제16화

그가 리벨이 식사를 마쳤음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눈을 깜빡이던 리벨은 뒤늦게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벨은 그가 몸을 돌리기 전, 그 짧은 순간에 그의 눈에서 분명히 감정을 보았다.

‘시스’라는 애칭을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냐고 소문이 파다한 디란타 대공이다. 하지만 리벨은 확신했다.

사람이 감정이 없을 리가.

역시 그는 모종의 이유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웃고 울고 슬프고 즐거워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것을, 억지로 붙잡아 가면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리벨, 자신이 알아내야 할 것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제국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 ‘크라이베리’의 신문 한가운데엔 웬 뜬금없는 의상실 광고가 실렸다.

원래 광고가 들어가는 칸이 아닌데도 그랬다.

“신문을 만들다가 실수한 건가?”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지만 리벨만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급히 슈 기자가 기사를 뺀 것이다.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더 이상하니 뜬금없는 광고를 집어넣었을 거고.

“그런데 크라이베리 신문이면 어지간한 광고는 받아 주지도 않을 텐데…….”

여기는 매주 월요일 오전 열 시에 광고를 넣을 업체를 수기로 기록한다.

정해진 자리는 딱 열 개고, 넘으면 더 기록하지도 않는다.

―펄럭.

리벨은 신문지를 여러 번 넘겨 보며 재차 확인했다.

광고는 뜬금없이 등장한 광고 외에 열 개가 분명히 차 있었다.

그럼 저 광고는 어디서 왔을까?

슈가 자리를 급히 뺐으니 슈가 채웠을 텐데.

“베니카 영애와 의상실이라.”

분명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다. 리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나중에 한번 조사해 봐야겠네.”

리벨은 수첩에 의상실의 광고 부분을 조심스럽게 오려서 붙여 놓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허접한 짓을 했담.”

리벨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의상실 광고를 내려다보았다.

[렐라 의상실! 수도 사교계를 사로잡을 당신, 이곳에서 시작하세요!]

렐라 의상실…… 심지어 처음 듣는 곳이었다. 리벨은 턱을 매만지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보면 되겠지.

리벨은 광고를 다시 툭툭 건드렸다가 웃었다.

아마 슈도 속 좀 쓰렸을 거다.

무려 크라이베리 신문의 첫 면까지 따냈는데 생뚱맞은 의상실 광고나 올려야 한다니.

“저녁에 올리길 잘했네.”

리벨은 아침 신문이 아닌, 어제저녁 신문을 꺼내 들었다.

슈의 ‘제보의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리벨라 영애의 독신 선언 기사 내용은, 어제저녁에 이 기사가 나간 이상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벨 기자]

리벨은 제 이름을 보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기사가 이슈가 된 이유가 있었다.

신문 1면에 당당히 나온 사진에는 황궁 의전원을 배경으로 의전원 사람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좀 새하얗게 나오긴 했네.”

그래도 이만하면 잘 찍혔지.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의전원 사람도 놀랐을 것이다.

‘의전원 사람 한 분만 빌릴 수 있을까요?’

다짜고짜 가서 물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댁은 뭐야?’

이런 반응이 올 거라고도 충분히 짐작했다. 그래서 대공 전하와의 결혼 인가서를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대공비 전하이십니다.’

내 신분 증명은 내 뒤에 서 있던 황태후 폐하의 기사가 해 줘 버렸다.

기사가 보여 준 황태후 폐하의 직인에 의전원 사람의 얼굴은 새파래져 버렸다.

‘모모모목은어디에매달면될까요?’

덜덜 떠는 불쌍한 의전원 사람에게 사진 한 장만 뜯어낸 게 이거였다.

물론 입막음은 기사가 확실히 해 주겠다고 했다.

‘죽이는 거 아니죠?’

그 말에 기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대공 전하께 대공비 전하께서 피를 보는 걸 싫어하신다는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입을 막는 데에는 피를 보지 않는 방법도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난 왜 저 말이 더 무섭지? 새삼 회상한 리벨이 양어깨를 팔로 문질렀다.

“그나저나 어제저녁에 기사가 떴으니까…… 때가 됐는데.”

기자 일 한두 해 하는 거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보통…….

―촤라라락!

리벨은 닫고 있던 암막 커튼을 확 걷었다.

그리고 자작가 담장 바깥에 포진하고 있는 기자들을 발견했다.

음, 장비만 다르지 하는 꼬라지는 똑같군.

그건 어떻게든 특종을 잡으려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었다.

리벨은 저 뜨거운 취재 현장…… 아니, 특종을 잡으려는 몸부림으로 가득 찬 현장의 열기를 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새벽이슬을 맞은 채 서 있었을 기자 후배들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긴 개뿔, 특종 잡으려면 저 정도는 해야지.

―촤라라락!

리벨은 다시 암막 커튼을 닫아 버렸다.

“저런 애들 먹이가 돼 줄 필요는 없지.”

이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사실 사람 없어서 그냥 들어와도 되는데.”

이벨라 자작가가 사교계에 이슈가 된 적이 얼마나 있을까?

가장 최근에 롤란드 그 샤방한 놈이 신통한 기사를 터뜨리지만 않았어도 신문에 올라갈 일 없는 작고 한미한 가문이 이곳이었다.

다시 말해, 이곳 사용인들 사정이 어떤지 기자들이 알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눈치는 보이겠지.”

리벨은 어깨를 으쓱했다.

무려 황가 의전원의 사진과 함께 ‘사랑을 계속할 것’ 같은 인터뷰를 올렸으니 당연했다.

의전원 사람이 직접 인터뷰해 줄 정도면 꽤 높은 직위의 귀족과 혼인을 할 예정이라는 뜻이니까.

리벨은 물론 그게, 아직 디란타 대공이라는 걸 밝히진 않았다.

그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이런 건 원래 한 번에 터뜨리면 파급력이 적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기사를 터뜨리는 걸 허락을 안 해 주실 것 같지도 않고.”

대공 전하…… 아니, 시스라고 부르라셨지.

시스…… 는 아마 신경 쓰지 않으실 거다.

그 결혼 발표에 그가 고자라는 내용만 들어가 있지 않으면!

“으흐흐흐흐으흑!”

쾅! 리벨은 벽을 짚고 울부짖었다.

왜 인생은 이렇게 힘들고 괴롭단 말인가?

하필이면 왜 편집장 놈은 대공 전하가 라이아 약초를 구하시는 걸 알아내서 그딴 기사를 쓰게 했단 말인가?

아니면 하필 왜! 그날 세이프티 바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것이 대공 전하였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하필 어째서! 내가! 그날 밤에! 대공 전하께 청혼을 해서!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받냐고오오오오!”

리벨은 아직도 디란타 대공의 속을 알 수 없었다.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편해! 마음이 불편해! 미래가 불편해! 모든 게 다 불편해!

발광을 하던 리벨이 우뚝 멈췄다.

이 집구석에 사용인이 있을 리가 없는데?

―끼익.

의문에 찬 눈으로 문을 슬쩍 열어보니 보이는 건 황태후의 기사였다.

“아.”

하긴, 곧 결혼 발표가 나면 이쪽에도 시선이 쏠릴 테니 항상 호위기사가 필요하긴 할 거다.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앞의 기자들을 모두 치울까요?”

기사가 공손한 얼굴로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리벨은 손사래를 쳤다.

“아아아니, 쟤네들은 별로 신경 안 쓰여.”

치워 달라고 하면 세상에서 치워 줄 것 같았다. 기사는 리벨의 말에 곧바로 묵례했다.

“그럼 감시만 하라 전하겠습니다.”

저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이 저택엔 이제 사용인(?)들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밥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그럼 잠시만.”

이제 집에 사용인이 있으니 잠옷만 입고 나가는 건 좀 곤란했다.

리벨은 옷장을 뒤져 대충 낡은 드레스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 외출 일정이 있으십니까?”

바로 뒤로 따라붙은 기사가 물었다.

“아니, 식사하러 가려고.”

그 말에 기사가 아주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벌써 가십니까?”

“그럼 일어나서 식사해야지, 뭐 해?”

곧 해가 중천인데? 리벨이 복도의 창밖 하늘을 가리켰을 때였다.

―다그닥! 다그닥!

“오오오오오!”

“마차다!”

“무슨 마차지?”

“어느 가문의 마차야? 가문 문양이 없는데?”

우르르 양쪽으로 갈라지는 기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웬 무늬 없는 마차 한 대가 저택으로 들어섰다.

“저 마차는 뭐지?”

딱 보기에도 막돼먹은(?) 가문에서 보낸 마차는 아니었다.

“대공 전하께서 식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침 시간에 맞춰 보내주셨군요.”

기사의 말에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벌써 나가냐는 말이 그 뜻이었어?

졸지에 밥차(?)의 기운을 느끼고 달려 나간 사람이 된 리벨은 몇 번 더 눈을 깜빡였다.

“근데…… 왜 마차가 와?”

식사를 뭐 얼마나 거하게 보내면 마차가 온단 말인가?

하긴 식사거리 머리 위에 이고 지고 말 타고 오는 것도 웃기긴 한데…….

고개를 갸웃거린 리벨은 저택 본관의 뒷문으로 향했다.

“!”

그리고 가는 길에 이벨라 자작과 마주쳤다.

그는 놀라 소리 없이 제자리에서 튀어 오르더니, 후다닥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어제의 살벌한 기억이 그를 괴롭히는 듯했다.

―히힝!

저택 뒤편으로 나오자 마침 마차도 그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청 큰데?”

그리고 가까이에서 본 마차…… 아니, 밥차는 생각보다 컸다.

일단 이벨라 자작가에서 쓰는 낡은 마차보다는 훨씬 컸다.

―덜컹!

그리고 그 마차 안에서 웬 요리사 모자를 쓴 남자가 내렸다.

“?”

리벨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마차가 해체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펼쳐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에 준비되기 시작하는 건, 다름 아닌 뷔페였다.

아니 무슨 연예인 밥차 조공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아침 식사는 가벼운 소고기 스튜와 남부식 밀빵…….”

이 설명 톤, 어디서 들었는데?

요리사 얼굴을 살펴본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저 사람 기사단 식당에 있던 사람이잖아! 대공가 요리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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