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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8)화 (18/167)

제18화

아아아니그럴필요는없는데요!

하지만 친절한 시스테인은 신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펄럭.

그녀의 옆에 앉은 시스테인이 신문을 펼쳤다.

“기사가 이렇게 났네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너무 신기했었는데…….”

리벨은 필사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의전원까지 협조할 줄은 몰랐습니다.”

안 그럼 슈의 기사를 밀어낼 수가 없었거든요! 죄송합니다!

“근데 인터뷰, 괜찮아요?”

리벨은 슬그머니 물었다. 자신의 정체 다음으로 걱정스러운 게 이것이었다.

일단 시간이 급해서 기사를 올리긴 했는데, 비록 디란타 대공과의 결혼이라고 발표한 게 아니라 해도……. 그와 상의 없이 올린 기사였으니까.

그와 공식적으로 결혼을 발표하고 나면 이 기사도 재조명될 게 분명했다.

시스테인은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이용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용. 다시 그 단어가 리벨을 쿡 찔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너무 비즈니스 관계 같잖아요.”

리벨이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귀 좋은 시스테인이 그걸 못 들을 리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저도 당신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또 이런다, 또! 리벨은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 결혼은 롤란드 디엘렌을 엿 먹이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태후 폐하의 부탁 같은 협박을 받아서도 있지만, 이건 그녀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

이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용이란 단어로 서로에게 선을 긋는 것만큼은 싫었다.

“시스테인 경이 제 뭘 이용하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재산도, 가문의 영향력도, 무슨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대체 뭘 이용한다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혹시 결혼 발표하면 귀찮은 청혼 제의가 안 온다는 그거 하나?

리벨은 침묵하는 그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서로를 이용한다고 하진 말아요.”

그녀가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다고 하면 좋잖아요. 어감도 좋고 기분도 좋고.”

가르치듯 검지를 들고 있던 리벨은 그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는 걸 보고서야 뒤늦게 아차 했다.

재빨리 손을 내린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 생각은 그렇다고요.”

너무 벨 기자처럼 말해 버렸다! 긴장 풀지 마, 리벨! 벨인 거 들키면 사망이다!

다시 조숙한 귀족 영애! 귀족 영애!

“…….”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은 한동안 침묵했다. 너무 귀족 영애 같지 않게 말했나?

리벨이 진땀을 뺄 즈음, 그가 말했다.

“그 표현이 싫으시다면, 알겠습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를 낸 그가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

신문을 읽기 시작하는 그에게, 리벨이 슬그머니 물었다.

“신문, 자주 보세요?”

―사락.

신문을 조용히 넘긴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보게 되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아…… 보통 신문이 그렇죠.”

심심하면 읽고, 세상 돌아가는 꼴 보려면 신문만큼 좋은 게 없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스테인이 훅 치고 들어왔다.

“저에 대한 기사가 나왔던 날부터, 말입니다.”

리벨은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리리리리벨! 진정하자! 진정해!

“기사가…… 났었어요?”

자연스럽게! 뇌에힘줘입에힘줘!

리벨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서 어색해지면 들킬지도 모른다!

두뇌 풀가동!

그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애석하게도 디란타 대공의 밤 능력에 대한 기사는 당시 사교계에서 묘하게 화제가 됐던 기사였다.

당연히 귀족이라면 아예 모르는 건 말도 안 된다.

“아, 설마 그…… 말도 안 되는 그…….”

리벨이 살짝 입을 열었다.

시스테인 대공은 감정이 없다고 소문났지 눈치가 없다고 소문난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아는 체는 해야 했다.

대신 차마 입에 못 올리는 컨셉으로 간다!

“예. 다소, 신경 쓰이는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시스테인이 리벨을 보면서 말했다.

“리벨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엄청 신경 쓰이는데요! 세상에서 최고로 신경 쓰이는데요!

“그게 어떤 내용이든.”

그의 딱딱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사그락.

다시 신문이 넘어갔다.

신문 구석이 구겨져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니겠지? 주름이 저렇게 선명한데? 아까까진 안 구겨져 있었던 것 같은데?

“다행이에요.”

리벨은 말을 받으면서도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뭐가? 뭐가 다행인데? 대공 전하의 밤 능력이 무사해서?

“…….”

시스테인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향했다.

“신경 쓰고 계셨습니까?”

곧 부부 될 사이니 신경 쓰고 있었다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하하하하! 그럴 리가요! 리벨은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걸리면…… 걸리면 뒈진다!

리벨은 펄럭 넘어가는 신문이 마치 제 명줄 같았다.

*  *  *

“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리벨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티를 내서는 곤란했다.

그녀는 애써 멀쩡한 척하면서 마차로 향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어느새 따라붙은 나인이 물었다. 리벨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많이 many 즐거운 시간이었어. 즐거워서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

리벨은 입꼬리가 아파 오려고 했다.

“이제 자작저로 돌아가자.”

그녀가 기지개를 쫙 켰다.

휴, 그래도 오늘의 공포의 일정은 끝난 셈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씻고 푹 자는 거야. 그럼 오늘의 공포도 잊을 수 있다!

―히히힝!

그녀의 안도감을 담은 마차가 기사단 건물을 나섰다.

“하암…….”

긴장이 풀리자 잠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해 질 녘이지만 저녁 식사고 뭐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오늘 밥차 오는 건 패스해 달라고 하면…….

……그래도 엄청 맛있는 식사인데.

언제부터인가 대공가의 요리사는 그녀의 리액션을 즐기기 시작했는지, 내일의 메뉴까지 슬그머니 마차에 붙이고 나타났다.

그리고 하필이면 오늘 저녁의 메뉴는 그녀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였다.

그것도! 남이 뼈 다 발라 준! 생선!

“이건 포기할 수 없지!”

리벨이 결국 눈을 번쩍 뜨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밥은 먹고 자자.

그래, 한국인이 굶으면 안 되지!

―덜컹!

그녀가 그렇게 재차 결심을 다쳤을 때였다. 조금 흔들린다 싶던 마차가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아직 도착 안 했는데?”

뭐람?

리벨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양옆에 풀숲이 있는 마찻길이었다.

그때 창문 옆으로 말을 탄 나인이 다가왔다.

“맞은편에 마차가 있습니다.”

“아.”

하필 좁은 길에서 마주쳐 버렸으니 한쪽은 비켜야 했다.

이런 경우 신분이 낮은 쪽의 마차가 비켜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풀숲에 닿은 마차가 다소 지저분해지겠지만 별수 있겠는가.

리벨은 마차 앞쪽의 천을 슬그머니 걷어, 마부 너머의 상대편 마차를 살펴보았다.

이벨라 자작가가 별로 힘이 없는 가문인 이상 대부분은 길을 비켜 줘야겠지만, 그래도 상대 확인은 해야 하니까.

“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천을 걷어 보았던 리벨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넌 또 왜 여기서 나와? 오늘 하루 고됐던 내 일정 끝난 거 아니었어?

맞은편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디엘렌 가의 마차였다.

디엘렌 백작 부부는 아파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계시니 마차를 타고 나올 건 한 놈밖에 없었다.

“로오오올란드…….”

리벨이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어찌할까요?”

그때 창문 너머에서 나인이 물었다. 리벨은 창문을 살짝 열었다.

불퉁한 얼굴의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원래 백작가 마차가 상대라면 당연히 비키는 게 맞았다.

하지만 롤란드인데? 그 롤란드 디엘렌 앞에서 내가 비켜야 할까?

“굳이 비켜 줘야 할까?”

리벨의 말에 나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명령만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스테인이 아니었으므로 얼굴만 봐도 대충 뜻은 짐작이 갔다.

그의 뻔뻔한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왜 비켜야 합니까?

그러게.

“우리가 왜 비켜야 하지?”

리벨은 팔짱을 끼었다. 내가 저 싸가지 없는 놈 길까지 비켜 줘야 돼?

게다가 난 곧 대공비가 될 터다.

굳이 비켜 줘야 할까?

물론 대공비가 되기 전에 한낱 백작가에 길 비켜 준 거 가지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진 않겠지만 그냥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백작가, 아니 하다못해 남작가에는 길 비켜 줄 수 있어도 저놈만은 안 돼!

“…….”

“…….”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결국 디엘렌 가의 마차 문이 먼저 열렸다.

―달칵.

문틈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무려 느끼하게 머리를 뒤로 싹 넘긴 롤란드 디엘렌이었다.

“우와우.”

전생에 먹은 곱창볶음이 넘어올 것 같아! 리벨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한심한 꼴도 모자라서, 그는 한껏 느끼한 움직임으로 마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는 건, 무려 베니카 알레로 영애였다!

“오…….”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뻔뻔한 표정으로 내리는 꼴이 아주 볼만했다.

“크흠.”

리벨이 있는 쪽 마차로 다가온 롤란드 디엘렌은 마차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탓.

그런 그를 나인이 제지했다.

“주인님, 마차 문을 열까요?”

롤란드는 한낱 자작가의 기사에게 가로막힌 게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벨라 자작가에 이런 기사가 있었던가?

롤란드의 시선이 나인을 훑어볼 때였다.

―달칵.

리벨은 마차 창문을 열었다. 문 열고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랜만이야. 반갑다, 리벨.”

눈이 마주치자, 롤란드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기름을 반짝반짝하게 바른 머리였다.

리벨은 그 꼴을 보고 생각했다. 불붙이면 잘 타겠다.

“난 하나도 안 반갑거든?”

너라면 반갑겠니? 리벨이 해사하게 웃을 때였다.

“하.”

롤란드 디엘렌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추하게 왜 그래, 리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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