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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28)화 (28/167)

제28화

“인터뷰는 제가 다녀올게요. 기사단 일도 바쁘시잖아요.”

리벨이 자신을 에스코트하는 시스테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결국 시스테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만 제가 넣어 두겠습니다.”

“벨 기자에게요?”

“네.”

숨 막히는 대화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리벨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절규했다.

벨 기자를 아직 놓지 못한 거야?

물론 내 커리어 챙겨 주시는 건 고맙지만 이번만큼은 놔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기자를 바꾸자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기사’가 뜬 본인이 벨 기자한테 이번 기사를 내게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려…….

“알았어요. 멋지게 인터뷰하고 올게요.”

리벨은 결국 씩씩한 표정을 쥐어 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람은…… 후회할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런 그녀에게 시스테인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안전을 위해서―”

아니 이 사람, 쿨한 얼굴로 쿨하지 못하네! 리벨은 재빨리 그의 말을 받았다.

“―황태후 폐하의 기사들을 데려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해맑게 웃기! 햇살 같은 미소! 리벨은 필사적으로 웃어 보였다.

“……그들을 말씀이십니까.”

“네. 안 그래도 바쁘신데 일 얹어 드릴 순 없잖아요.”

리벨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렇죠?

곧 중앙 사교계 연회 시즌이라 수도로 들어오는 마차도 많아서 제도기사단 바쁘잖아요?

“……알겠습니다.”

결국 시스테인은 백기를 들었다. 리벨은 환호성을 억누르고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무사히 다녀올게요.”

하하하하! 그러니까 나한테 사람 붙일 생각 접으라구, 하하하하!

“언젠가 만나 보고 싶은 기자였는데, 아쉽군요.”

시스테인이 중얼거렸다. 리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원하는 걸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는 시스테인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황태후 리엔이 이 말을 들었으면 즉석에서 배달 음식처럼 정체를 까발렸을지도 몰랐다.

자, 아들아! 네가 원하던 벨 기자가 사실 얘란다! 우리 아들 생일 선물로 준비했어요!

으아아악, 안 돼! 그런 서프라이즈 프레젠트 엔딩으로 생을 마감할 순 없어!

“만나시면 정정 보도 내라고 하시게요?”

대화가 끊기는 것도 어색하니 리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반쯤은 제 미래를 점쳐 보는 것이었다.

저 걸리면 어떻게 되나요? 혹시 모가지를 뽑아 버릴 예정이신가요?

시스테인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 능력을 입증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굳이, 그 기자에게 입증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그렇게 말하던 시스테인이 리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리벨이 원하시지 않는 한.”

리벨은 벨로서의 위기도 잊고 눈을 끔뻑였다.

“네?”

대체 뭘 어떻게 증명할 상상을 하고 계신 겁니까?

기자 벨이 내가 아니라 딴 사람이었으면 뭐, 뭐 누구 앞에서 뭘 어떻게 하려고?

온갖 빨간 상상들이 리벨의 머릿속을 달구고 지나갔다.

“대, 대체 뭘…….”

“리벨이 인터뷰라도 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증명하려면.”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지. 상식적으론 결혼한 사람한테 인터뷰하는 게 맞지.

리벨은 간신히 마른세수를 했다. 나 혼자 뭘 상상한 거지?

사실 세상에서 가장 썩은 건 내 머릿속이 아닐까요?

리벨이 어디에도 내놓기 부끄러운 자신의 상상을 숨기는 동안 두 사람은 마차 앞에 도착했다.

문제는 마차 앞에 기사 한 명이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다는 것이었다.

“다, 단장님……!”

앳된 얼굴의 기사는 시스테인이 이끄는 제도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시스테인이 미간을 좁혔다.

찾아올 정도라면 그만큼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리라.

아니면, 그만큼 일이 쌓였거나.

“기사단으로 먼저 가 보시는 게 좋겠어요. 저는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리벨은 기사를 보다가 시스테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스테인이 미간을 좁혔다.

“자작저까지 에스코트해 드리지 못하는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신부님.”

그가 짧게 묵례했다. 신부님이라는 호칭이 아니었으면 무슨 군대라도 온 줄 알았겠다. 그만큼 딱딱한 말투였다.

“괜찮아요!”

하지만 리벨은 기뻤다. 얼른 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어!

“얼른 가 보셔요.”

저기 어린 기사님도 기다리잖아요, 응? 리벨은 그리 속살거리며 그의 손을 부드럽게 놓아주었다.

너무 기쁜 티 내면 안 돼!

최대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가 덧붙였다.

“여하튼 기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그런 것도 다 안주인의 일이니까, 제가 해 볼게요.”

디란타 대공가에도 곧 안주인이 생길 텐데, 기사나 이미지 관리는 제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받아라, 일반론!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사히 들어가십시오.”

끝내 리벨 쪽을 돌아보던 시스테인은 어린 기사가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히히힝!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그를 보며 리벨이 땀을 훔쳤다.

와, 정말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스릴이었다.

*  *  *

리벨이 위기를 넘긴 다음 날.

크라이베리 조간신문 1면에는 대변동이 일어났다.

원래 실렸어야 했던 기사들은 주르륵 2면으로 밀렸다. 그리고 1면은 무려 단독 기사가 차지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롤란드 디엘렌은,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제게는 폭탄 같은 신문이 배달된 줄도 모른 채.

“흐음, 역시 아침은 향기로운 남부산 모닝커피지.”

산미가 끝내준다니까.

가운을 입은 롤란드는 우아하게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잔을 기울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침이었다.

“흐흐흠~ 코끝을 감도는 이 향기가, 아주 부드러워.”

여유로운 아침을 한껏 즐긴 그는, 하인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조간신문으로 시선을 내렸다.

분명 결혼 관련 소식을 흘렸으니 기사가 슬슬 올라올 때가 됐지.

“어디 보자, 내 기사가―”

무심코 시선을 내린 롤란드는 괴이한 것을 발견했다.

[디란타 대공-리벨라 영애, 전격 결혼 발표]

대문짝만한 헤드라인 아래에 실린 건, 분명히 이벨 리벨라와, 시스테인 폰 디란타 대공의 사진이었다.

“푸웁!”

콧노래고 자시고 코로 커피를 뿜어 버린 롤란드가 멍하니 신문 1면을 내려다보았다.

얘가 여기서 왜 나와?

신문에 실린 리벨과 디란타 대공의 사진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걸로 헛소문이 돌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벨’이라는 기자는 확실히 리벨 이벨라 본인을 인터뷰했다.

[사교계에 놀라운 파장이 들이닥칠 예정이다. 지난 11일 오후 리벨 이벨라 영애는 기자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차기 디란타 대공비가 될 리벨 이벨라 영애의…….]

리벨이 미치지 않고서야 대공과의 결혼을 가짜로 꾸며 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사랑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던가? 관련 기사까지 내지 않았었나?

‘의전원 사진 못 봤어?’

롤란드는 얼마 전에 마찻길에서 길도 안 비켜 주던 리벨 이벨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자작 영애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한때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지만, 어차피 그건 이제 소문으로 치부될 뿐이고 디엘렌 가와 리벨 이벨라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게다가 디엘렌 백작 부인이 될 베니카 앞에서 그렇게 버릇없는 언사라니.

‘사교계에서 톡톡히 망신을 줄 거예요!’

촥! 베니카가 그날 부채를 펼치며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대공비라고? 그 리벨 이벨라가?

“말도 안 돼.”

중얼거린 롤란드가 저도 모르게 신문 읽기에 열중했다.

[……하여 시스테인 폰 디란타 대공은 ‘이후 디란타 대공가의 대는 끊어질 것’이라는 발언을 번복한 셈이 됐다.

이에 대해 황가에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시스테인 폰 디란타 대공과 리벨 이벨라 영애의 결혼은 내달 3일로 예정되어 있다.]

“뭐라고?”

그리고 기사 마지막 줄을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쿵! 와장창!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커피 잔이 테이블에서 떨어져 깨져 나갔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꺄악!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우르르 들어온 사용인들에게 롤란드가 손을 내저었다.

“지, 지, 지금 당장 알레로 가에 연락해.”

“예?”

“신문 보여 드리고 결혼 미루자고 해.”

롤란드가 빠르게 말했다. 사용인들이 어리둥절해 그를 살폈다.

“도련님, 결혼식은 이미 4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그니까 그 결혼식 미루라고! 의전원에 당장 연락해!”

어떻게 하필이면 내 결혼 전날이야!

게다가 그들이 식을 올린다는 섬 ‘시아스타’는 이 디엘렌 영지와는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도 하루 반 이상 걸리는 먼 거리였다.

한마디로 하객들은 대공가의 결혼식에 참여하거나, 디엘렌 가의 결혼식에 참여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롤란드 디엘렌 자신이라도 디엘렌 가의 결혼식에는 오지 않을 터였다.

“아, 알겠습니다.”

“의전원을 왜……?”

―촤악!

우왕좌왕하는 사용인들에게 롤란드는 신문을 집어던졌다.

허공을 팔랑팔랑 떠서 내려오는 신문 1면을 본 사용인들의 얼굴이 일제히 새하얘졌다.

하필 대공가의 결혼이랑 시기가 겹치다니!

“빠, 빨리 연락해!”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은 사용인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그러는 동안 롤란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 하필이면 내 결혼 전날이지?

아니 그 전에, 정말 이게 사실이라고?

‘이벨라 영애-디란타 대공, 전격 결혼 소식 발표’

그 말이 롤란드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리벨 이벨라가 대체 어떻게 대공을 만나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난 거지?

……나랑 사귈 때 바람피웠나?

리벨이 들었으면 쟁반으로 머리를 후려갈길 생각이었지만 롤란드는 뻔뻔하게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랑 사귈 때 바람피운 게 아니면 어떻게 벌써 결혼할 남자를, 그것도 디란타 대공 같은 거물을 붙잡는단 말인가?

“아니, 리벨 그걸 대체 디란타 대공 전하께서 왜?”

애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촌스러운 분홍색 머리에 막말이나 하는 계집애를?

―탕!

롤란드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 저 신문 기사 확실히 알아봐.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진짜 리벨 이벨라가 대공을 물어 버린 게 맞는지!

온갖 저급한 상상을 한 롤란드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당장 다 알아 와! 하나도 빠짐없이!”

“예, 옙!”

그의 진노에 백작가 사용인들이 정신없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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