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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33)화 (33/167)

제33화

리벨은 고개를 숙였다.

이건 경고였다.

새삼 얼굴이 새하얘졌다.

황태후 리엔과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생각나서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지금 목이 날아갈 뻔했는데!

아니, 이 집 사람들은 서로 대화도 안 해?

황태후 폐하, 둘째 아들 결혼까지 시키시면서 이 작전(?)을 황제 폐하께는 공유조차 하지 않으신 겁니까?

대화가 얼마나 부족한 거야, 이 사람들?

리벨은 머리를 싸맸다.

그래도 황태후 폐하, 제 목 날아가게 냅두진 않으실 거죠?

‘황가의 비호가 무엇인지 보여 줄게.’

비호해 주실 거죠?

아무리 시스테인이 권력에 관심이 없어도, 황제 카리스가 보기에 아니꼽더라 하면 모가지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찍힌 듯했다.

“……주의하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네가 주로 기사를 내는 신문이 크라이베리라고 했나?”

리벨은 물러가다 말고 넘어질 뻔했다.

“예. 그런데요…….”

설마 보시게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든 리벨과 카리스의 입만 웃는 얼굴이 마주쳤다.

“또 재밌는 기사 기대하지.”

리엔 폐하 아들 아니랄까 봐! 으아아!

“아, 이걸 깜빡했군.”

물러가라는 듯 다시 손짓하던 그가 멈칫했다.

그리고 옆에 소리 없이 서 있던 시종에게 리벨을 가리켜 보였다.

스르르, 유령처럼 다가온 시종이 은쟁반에 담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

[저택 소유권에 관한 문서]

[대상 : 이벨라 영지, 이벨라 가 소유 저택]

으아악! 집문서잖아! 리벨은 눈이 튀어 나갈 뻔했다.

“그건 내가 사 봤어.”

아니, 이걸 폐하께서 왜 삽니까?

“그래도 황가 사람이 될 네가 살던 곳이, 시정잡배의 손에 들어가면 곤란하잖아.”

카리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벨은 뭉텅뭉텅 나뉘어 있는 집 단면도를 보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이 가장 가격이 높은 것도 웃겼다.

리벨은 구역마다 저도 모르는 주인이 생긴 지도를 보면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집을 케이크 자르듯이 담보로…….”

“나도 그런 방식은 처음이라.”

카리스가 여상스러운 어조로 말을 받았다. 리벨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여여여하튼 감사합니다!”

그래도 집 돌려준 게 어디야! 리벨은 은쟁반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시종은 그녀의 손길을 슥 피해 다시 카리스에게로 돌아갔다.

“?”

“너 준다고는 안 했는데?”

“아.”

아, 예. 설마 네 집 내가 샀다고 자랑한 거?

그게 끝? 설마?

리벨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카리스가 말했다.

“내 별장으로 쓸 거야.”

“예?”

저기를? 별장으로? 갑자기? 왜?

“별장은커녕 화장실로도 못 쓰실 텐헙.”

거침없이 나오는 막말에 리벨은 제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카리스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경고는 잘 새기고, 이만 나가 봐.”

아니, 그래서 우리 집은 진짜 왜 사신 거야? 돈이 넘치나?

하긴, 넘치겠지…….

리벨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일단 이 정신없는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  *  *

―달칵.

그녀가 나가고 나서, 알현실 문이 닫히는 아주 작은 소리가 알현실 안을 울렸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울릴 정도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카리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턱을 매만지다가, 표정을 풀었다.

서늘했던 표정이 천진한 청년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근데 원래 기자들은 저렇게 다 통통 튀나?”

진짜 저 여자, 리벨 이벨라는 가진 게 없었다.

가진 거라곤 정말 저 귀족답지 않은 성질머리와 입담뿐이었다.

그게 어머니의 흥미를 끌었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그 얼토당토않은 계획은 그렇다 치고.”

시스테인이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도와? 그게 정말 목표라고?

하지만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가 아니면 어머니가 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시스테인이 저런 취향이었나?”

첫눈에 반할 정도로?

대공가의 후계를 잇지 않겠다는 말까지 번복할 정도로?

정말 저 성격이 이상형이라고?

카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난 진짜 이해가 안 가네.”

그가 짙은 금발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머리를 괸 채 생각했다.

난 키 작은 거 별론데.

그는 키 185cm 이상에, 마치 제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강한 성격의 여자가 좋았다.

그는 이른바 센 누님 취향이었다.

리벨이 들었다면 ‘그거 딱 리엔 폐하 같은 사람이네요.’ 했겠지만, 그런 진심 어린 충언(?)을 할 사람은 그의 옆에 없었기에, 그 자신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여하튼, 어머니와 저 여자의 ‘거래’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티타임을 준비해.”

그가 손짓했다.

*  *  *

한편 롤란드 디엘렌은 그날 저녁 안 좋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뭐라고?”

“쫓, 쫓겨났습니다.”

그건 아버지인 디엘렌 백작이 페티아 후작에게 보낸 기사가 한 말이었다.

의전원 연줄로 어떻게든 결혼을 미뤄 보려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대체 왜?”

롤란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알기로도 페티아 후작가와 디엘렌 백작가는 대대로 사이가 좋았다.

게다가 이번 대에 들어 공동 사업을 추진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우리가 잘되면 페티아 후작도 좋은 건데, 왜?

하지만 기사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지금 황성에서 내려 주신 날짜를 거부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내려 주긴 뭘 내려 줘?”

내려 준 게 아니라 이쪽에서 정하고 물어보면 허가만 해 주는 건데!

롤란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본인 결혼도 앞당겼으면서……!”

게다가 롤란드가 알기로 페티아 후작의 결혼 자체도 의전원에 연락해서 며칠 앞당겨 치러진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오버하면서 충성스럽게 나온다고?

대체 뭐지?

“아니, 하필 디란타 대공 전하와 겹칠 게 뭐냐고!”

―쾅!

롤란드가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물론 그런다고 미래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 쓰.”

주먹을 쥔 그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면서 외쳤다.

“아니, 결혼 겹치는 집안이 없으면 그쪽도 이득 아닌가?”

그 자아 비대성 발언에 기사는 멈칫했다. 그는 차마 ‘대공 전하는 신경도 안 쓰실 듯’이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롤란드가 머리를 싸맸다.

“리벨 이벨라, 그게 대체 왜 디란타 대공 전하하고…….”

설마 그게 날 골리려고 결혼 날짜를 겹치게 해 달라고 졸랐나?

그럴 리가 없지.

감정이 없다고까지 소문난 목석같은 대공을 어떻게 꼬셨는지는 몰라도, 아직 대공비가 되기도 전에 의전원까지 주물럭거리면서 결혼 날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순 없을 터였다.

아니, 그럼 대체 왜?

“대체 왜 안 미뤄 주는 거야?”

롤란드 디엘렌이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의전원도, 페티아 후작도 그게 황태후 리엔의 명령이었다는 걸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그 덕에 조용히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디엘렌―알레로 가의 결혼식과 디란타―이벨라 가의 결혼식 준비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  *  *

한편 리벨 쪽의 결혼식 준비는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황가의 일이니만큼 황가의 안주인인 황태후가 직접 지휘하니 일이 늘어질 턱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리벨은 옷을 입어 보기만 해도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가봉된 옷도 아니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옷으로 핏을 보다니, 얼마나 많은 재봉사들이 갈려 나갔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건 좀 가슴이 조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덕에 옷을 제대로 입어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럼 폐기하겠습니다.”

그녀를 모시던 디란타 대공가의 하녀가 말했다.

리벨은 기겁했다. 아아아니 저게 얼마짜린데!

“아니, 잠깐, 그걸 왜 버려?”

한 번밖에 안 입어 본 옷이다.

게다가 버진 로드를 걸을 때 입을 웨딩드레스도 아니고 하객들을 만날 때 입을 이브닝드레스들이었다.

“어찌 귀하신 분께서 입으셨던 옷을 다른 자에게 넘길 수 있겠습니까? 입지 않으시면 불태우라는 명이셨습니다.”

하녀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아아아니지, 잠깐만.”

리벨은 하녀를 붙들었다.

“다시 보니까 사교계 연회 때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옷장에 넣어 두자.”

그 말에 하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짓을 한 지 이틀째.

리벨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아니, 정확히는 이벨라 자작가의 옷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옷이 더 이상 들어가질 않습니다.”

하녀들이 곤란해할 때쯤이었다.

―콰직!

리벨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옷장은 이내 명을 달리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옷장을 뒤로하고 자작가의 방 하나가 드레스룸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면서 대공가에서 건축 전문가가 급파되었다.

하지만 건축 전문가는 자작가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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