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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34)화 (34/167)

제34화

몬스터와의 잦은 전투 탓에 무너지는 일이 많은 대공령의 건물들.

그 덕에 디란타의 건축 전문가 메스는 나름 건물의 재건축과 리모델링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는 자작가의 저택을 보고 결론 내렸다.

“그냥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게 빠릅니다.”

그는 대공비가 될 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매우 송구스러웠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저는 건물을 새단장하는 사람이지 다 무너진 건물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벨라 자작은 기겁했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라니! 이 저택 담보로 빌린 돈이 얼만데!

그가 저택을 삿대질했다.

“내 친구가 멀쩡하다고 했다고!”

“그분이 어느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저는…….”

하지만 메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이곳은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한 상태였다.

“예비 대공비 전하께서 이런 집에서 사셨다는 것이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외쳤다.

“이 저택은 근처 지반이 조금만 흔들려도 천장부터 쩍쩍 갈라져 무너져 내릴 겁니다!”

그럼 당연히 이걸 일찍 잡아내지 못한 자신도 몸이 쩍쩍 갈라져 바닥에 묻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보고는 시스테인과 리엔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히히히힝!

그렇게 리벨의 옷장이 박살 난 지 하루 만에 이벨라 자작가에 화려한 육두마차가 들이닥쳤다.

하나는 황성에서, 하나는 기사단에서 온 것이었다.

“히끅.”

이벨라 자작은 다시 극심한 소화불량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각각 마차에서 내린 시스테인 대공과 리엔 황태후를 본 직후부터였다.

“아니, 직접 오실 줄은…….”

물론 정신없는 건 리벨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일도 없으십니까? 이렇게 갑자기 등장하신다고요?

“위험한 상태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는 자작가 건물을 보면서 말했다.

“……낡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러게. 너도 나도 아가도 땅에 묻힐 뻔했지 않니.”

리엔 황태후는 지난번에 이곳에서 식사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이벨라 자작의 얼굴이 푸르뎅뎅해졌다.

“그, 그,”

리엔은 이벨라 자작을 상대하는 대신 리벨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결혼 전까지 머물 집을 찾아야겠구나. 이런 위험한 곳에서 머물게 할 순 없지.”

그러는 사이 시스테인은 직접 확인해 보려는 듯, 자작저의 벽으로 다가갔다.

그는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다가, 건물 외벽을 힘주어 밀어 보았다.

―콰지직!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건물 일부에 금이 가는 걸 보면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헐.”

물론 심각해진 건 리벨도, 자작저에서 잠들어야 하는 이벨라 자작도 마찬가지였다.

리엔이 하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물론 황태후 휘하의 그림자 중 하나였다.

“이 근처에서 아가가 살 만한 안전하고 품위 있는 저택을 찾아보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그 말에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집이 얼만데! 수도권 집이 얼마나 비싼데!

“저저저는 그냥 있는 집 아무 데나,”

소시민에게 고작 한 달도 안 쓸 집이 턱턱 주어지는 건 너무 스케일이 컸다.

하지만 리엔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귀한 아이가 아무 데서나 자게 할 수는 없지. 이런 저택보다는 차라리 황성 나무 아래가 안전하겠어.”

그야 황성이면 나무 아래가 아니라 땅 밑이라도 여기보단 안전하지 않을까요?

그때 시스테인이 좀 더 위태로워진 저택을 뒤로하고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왔다.

“새로 저택을 구매하는 게 부담스러우시다면 제 저택에 머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대공저에요? 리벨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시스테인은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예. 어차피 짧은 기간이니 이사하시기도 번거로우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리벨은 곤란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혼인 전에 저택에 머무는 건 좀,”

“―혼인을 물리실 생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 말에 시스테인이 곧바로 물었다. 리엔의 눈에 흥미롭다는 듯한 광채가 깃들었다.

리벨은 당연히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설마요.”

미쳤습니까, 제가?

시스테인은 그녀의 말에 손을 펴 보였다.

“디란타 대공비가 되실 분께서 디란타의 별저에 머무는 것을 문제 삼는 이가 있다면,”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디란타 가에 제 이름을 걸고 직접 문의해야 할 겁니다.”

그냥 이름이 아니라 모가지를 걸라는 뜻 아닌가요?

“시스의 저택이라면 안심이지.”

리엔 황태후의 눈이 반짝였다.

리벨과 시선을 마주한 그녀가 예쁘게 웃었다.

“어때?”

“그…….”

리벨은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렇게 시집살이를? 아니, 시집살이라고 하긴 뭐한가?

“그…….”

리벨이 말을 더듬거릴 때 리엔 황태후는 못을 박아 버렸다.

“시스의 저택은 불만족스럽니? 그럼 황실은 어때?”

리엔이 화사하게 웃었다.

“황후를 위한 방이 아직 비어 있단다. 첫째 아이도 그 방이 아직 공실이니 머무는 것도 이해해 줄―”

“아아아아닙니다!”

무슨 오해를 만들려고! 리벨은 두 손을 펴 보였다.

그러자 리엔 황태후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시스 저택에서 머무는 것으로.”

“앗.”

리벨은 말려든 기분이었다. 반짝이는 리엔 황태후의 눈을 보니 거의 확실했다.

일부러 처음부터 이러신 거다!

물론 황태후 폐하 입장에선 내가 시스테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좋으시긴 하겠지만…….

리벨의 머릿속에 슬슬 과부하가 걸릴 때였다.

시스테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편하시다면 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방을 정리하라 명하겠습니다.”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그의 얼굴에서 상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 아니지?

아니야, 그렇게 섬세한 사람이었으면 황태후 폐하께서 걱정도 안 했겠지!

하지만 양심이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불편한 건 아니거든요!

결국 리벨이 두 손을 들었다.

“이왕이면 가까운 방이 좋죠! 하하하하!”

이런 갑작스런 관심,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그렇게 리벨의 사면초가 결혼 준비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결혼식은 점점 스케일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걸 리벨이 알게 된 건 결혼식을 불과 1주일 남긴 시점이었다.

*  *  *

결혼식은 날치기지만 날치기가 아니었다.

24시간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신없는 결혼 준비는 리벨이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성큼성큼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벨은 거기서 더 스케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자, 이곳이란다.”

결혼을 1주일 남긴 시점.

디란타 대공저에 벼락같이 쳐들어온 리엔 황태후의 마차는 리벨을 낚아채듯 태우고 시아스타 섬으로 향했다.

시스테인과 리벨의 식이 올려질 섬이었다.

그리고 그 섬 한가운데에는 누가 봐도 새로 지어진 것 같은 번쩍번쩍한 건물이 있었다.

“저건,”

“새로 지었단다.”

“네?”

설마?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설마 결혼식 용도로 지으셨다는 건…….”

“맞아.”

맞는다뇨! 리벨은 머리를 싸맸다.

혹시 MADE IN CXXNX? 결혼하다가 건물 무너지는 거 아니야?

“아니, 이거 너무 급하게 지어진 것 같은데요.”

리벨은 난감한 얼굴로 건물을 살폈다.

1층으로 구성된 건물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벨라 자작저보다 더 튼튼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디란타 대공저로 가서 목석같은 결혼 (전) 생활을 하는 사이, 이벨라 자작은 하루하루를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다가 결국 친구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이벨라 자작저는 비어 있었다.

“…….”

리벨은 떨떠름한 얼굴로 지난 대공저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회상은 아주…… 간단했다.

시스테인은 저택에 손님이 없는 것처럼 벼락같이 출근하고 벼락같이 퇴근했다.

아니, 물론 손님이 있다고 출퇴근을 안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섭섭하다기보단 황당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아예 시스테인이 그녀가 없는 것처럼 구는 건 아니었다.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퇴근을 하고 돌아와 그녀를 살피는 것은 물론, 그녀와 함께 저녁까지 들었다.

하지만 신혼 직전의 커플 사이에 있을 만한 알콩달콩한 일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리벨은 슬슬 제 옆방에서 잠드는 것이 호텔리어인지 예비 신랑인지 헷갈리려고 했다.

“서두르다니, 한 달 정도면 충분하지.”

그녀가 회상하는 사이, 리벨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 리엔이 말했다.

“헉.”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오로지 식장용으로만 만들어진 것 같은 이 건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컨테이너 박스나 가건물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호화로운 홀은 손님 수백 명은 넉넉하게 수용할 것 같은 넓이였다.

“이걸 한 달 만에 지었다고요……?”

리벨은 어안이 벙벙해 물었다. 리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 있으면 뭐든 안 되는 게 없지.”

“하지만…….”

아무리 마법이라도 사람이 쓰는 거잖아요?

리벨은 불안한 마음에 기둥을 슬그머니 밀어 보았다.

―…….

물론 그녀는 시스테인이 아니었으므로 기둥이 우지끈 꺾어질 일은 없었다.

좀 더 자신감이 생긴 리벨은 있는 힘껏 기둥을 밀어 보았다.

이얍!

―…….

효과는 미미했다! 정말 기둥은 튼튼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부실 공사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동안 리엔 황태후가 웃음을 터뜨렸다.

“부실 공사 아니야. 그렇다고 임금을 적게 준 것도 아니지. 그래 봐야 공사에 투입된 평민들의 반감만 살 뿐이니.”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야근 수당은 철저히, 안전 수당도 철저히, 제정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복지는 물론이고 시간당 교대도 철저히. 물론 황가의 일인 만큼 품위에 걸맞은 수당을 챙겨 줘야 하지.”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품위에 걸맞은 수당이요?

리벨은 눈앞에 돈이 쏟아지는 환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게 제대로 일을 시키는 방법이지. 그래야 투자한 만큼 결과물이 나와.”

사실 폭군은 한국에 많은 게 아닐까요?

최저 시급에 야근 수당도 안 주면서 최대한의 뽕을 뽑으려던 수많은 사장님들을 생각하면서 리벨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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