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아니, 근데 1달이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 아니 금전이 투입된 거지?
리벨은 뜨악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두 사람과 그림자들이 서 있는 버진 로드에도 당연히 최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밟기 미안할 정도라, 리벨이 슬그머니 구둣발을 뗄 때였다.
“아, 카펫은 신경 쓰지 말고. 결혼식 날에는 새것으로 교체할 테니.”
이것조차 일회용이었습니까?
스케일이 다른 돈지랄에 리벨의 머릿속은 계산을 포기했다.
―또각.
그때 식장 안을 선명한 발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건 시스테인이었다.
귀족적인 화사한 금발과 벽안.
그는 새까만 기사단 정복을 입고 있었지만, 새하얗게 빛나는 결혼식장에서 이미 예복을 입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제가 그렇게 시선을 끄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업무가 있어 늦었습니다, 리벨.”
리벨은 몰랐지만 그는 결혼식을 위해 업무를 앞서 처리하느라 야근이 일상일 지경이었다.
마차를 타고 저택을 오갈 때까지도 그는 서류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하는 데에 빠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전 대공 전하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를 이용할 생각뿐인 저 자신과는 달리,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예의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그녀가 제게 보인 호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그리 생각하였기에 그는 결혼식장을 더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다.
섭섭하실 일이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식장을 둘러본 끝에 시스테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리벨은 눈을 깜빡였다. 뭐가요? 이 돈지랄이?
그때 리엔이 시스테인의 말을 받았다.
“이제 식장을 꾸며야지.”
“예?”
이게 완성판 아니었어? 리벨이 입을 떠억 벌리는 순간이었다.
시스테인이 근처의 테이블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쿵쿵.
그러자 식장의 문이 열리면서, 거대한 순금 샹들리에부터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장식품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으로 벽을 만들고, 거길 돈으로 칠한 다음, 다시 돈으로 장식하고 있어!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 * *
“웨딩드레스? 열 벌쯤이면 되지 않을까?”
리벨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리엔이 10이란 숫자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뭘 하든 최소 10개였다.
그리고 0으로 떨어지지 않는 숫자는 불편해했다.
덕분에 웨딩드레스도 10개였다.
“아니, 제 몸이 열 개도 아니고…….”
“그날 기분이 어떨지 모르잖아. 무엇보다,”
리엔은 리벨 앞에 진열된 10개의 웨딩드레스를 보면서 말했다.
“하나만 고르기엔 너무 아깝잖니.”
그건 그렇긴 한데…….
제국 수도는 물론이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경쟁을 벌여 뽑힌 10개의 웨딩드레스라고 했다.
고르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리벨은 슬그머니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시스는 뭐가 나은 것 같아요?”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간다는 말에 시스테인은 기꺼이 함께 자리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웨딩드레스가 하나씩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었다.
“…….”
10벌의 웨딩드레스 앞에서, 그는 10명의 적군 기사를 마주한 것 같은 진지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렇게 고르기 어렵나?
하긴 어렵긴 하다. 리벨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시스테인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심각해진 거였냐고!
리벨이 웃음을 참는 동안 리엔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세히 봐, 다르게 생겼단다.”
리벨이 보기에도 드레스는 하얀 것만 똑같을 뿐 레이스의 위치부터 장식까지 같은 게 없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의 심각한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내가 검 보면 다 똑같이 생겨 보이는 거랑 비슷한 건가?
결국 리벨이 드레스 2개를 가리켰다.
“2번이 나아요, 5번이 나아요?”
시스테인의 심각한 시선이 두 드레스를 향했다.
그러자 다른 드레스를 들고 있던 자들이 조금씩 물러났다.
“…….”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두 드레스를 보면서 시스테인은 차이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어깨가 드러난 것……도 같고, 단의 길이도 같고, 어깨 부분의 꽃장식도 같은데.
하지만 틀린 그림 찾기에 실패한 그는 결국 말했다.
“둘 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리벨은 왠지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리벨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물었다.
“지금 차라리 드레스 열 개보다는 기사 열 명이 덤비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 말에 시스테인의 표정이 더욱 심각하게 굳었다.
“…….”
하지만 그는 부인하지 못했다.
리벨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좋아. 그럼 열 개 다 사서 당일에 다시 골라 보렴.”
리벨은 모두 챙겨지는 웨딩드레스를 보면서 확신했다.
시스테인은 뭘 입고 나와도 예쁘다고 할 것이다!
“…….”
시스테인은 일생일대의 시험이 끝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짝짝!
그때 리엔이 박수를 쳤다.
“그럼 이제 시스의 예복을 들여와!”
그 말에 시스테인의 얼굴이 조금 새하얘졌다. 리엔과 리벨은 그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표정 변화가 확연하신데요?
리벨이 시선으로 말했다. 리엔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예복까지 신경 써서 준비할 필요는,”
그 말에 리엔은 경악하는 얼굴로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예쁜 웨딩드레스 옆에 이상한 예복을 입고 설 생각은 아니겠지, 시스?”
리엔의 시선이 리벨을 향했다.
“그럼 우리 아가가 얼마나 슬퍼하겠어, 응?”
그렇게 말하는 리엔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리벨은 깨달았다.
모처럼 온 시스테인의 표정 변화를 그녀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슬프죠.”
리벨은 슬그머니 보조를 맞춰 주었다.
그렇다고 시스테인이 예복을 다 살펴볼 사람도 아니고, 적당히―
“……그렇습니까.”
그런데 시스테인은 의외로 심각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백만 대군 앞에 선 장군 같은 얼굴로 결연하게 말했다.
“준비된 예복을 모두 들여와라.”
“?”
그, 그렇게까지?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그리고 줄줄이 들어오는 새하얀 예복들과 함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가는 시스테인을 보면서 허벅지를 신나게 꼬집어야 했다.
근데 예복은 시스테인과 리벨의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열 개만 엄선되어 올라온 웨딩드레스와는 달리, ‘다 가져오라’는 명령에 예복들은 물밀듯이 들어왔던 것이다.
“……아니, 제도의 제단사들은 분명히 일하고 있었을 텐데.”
그건 리벨도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곧 사교철이라 드레스 만들던 것도 많았을 텐데, 이런 완제 예복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황실에서 수주한 것이니 듣도 보도 못한 의상실에서 만들었을 리는 없었다.
화려하게 번쩍이는 수많은 예복을 앞에 두고, 리엔이 웃었다.
“자, 마음에 새기렴, 아가.”
뭘요? 리벨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리엔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예복들을 가리켰다.
“이건 네가 내 며느리가 된 이상 새겨야 할 것이란다. 품위며 기본이지.”
설마 저 예복들이 품위라고 하는 건 아닐 터였다. 리벨이 눈을 깜빡일 때였다.
리엔이 손을 펴 보였다.
“뭔가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 그건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예?”
리벨이 좀 더 빠르게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시스테인은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예복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품위에 익숙해지렴, 아가. 따라 해.”
리엔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돈으로 못 사는 건 없다. 못 사면, 돈이 부족한 거다.”
그녀가 해사하게 웃었다.
“마음에 새기도록 해.”
그녀의 명언과 함께, 남들은 2년을 준비할 결혼식 준비는 1개월 만에 끝나 버렸다.
그렇게 10개의 예복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신구, 거기에 1달 만에 지어졌지만 메테오 한 방 정도는 막아 낼 수 있다는, 마법 아티팩트로 보호되는 튼튼한 결혼식장까지 결혼식 준비는 모두 끝났다.
* * *
결혼식 당일.
이벨라 자작은 요즘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아스타 섬의 식장으로 향하는 마차에서 그는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 대공가에서 보내 준 이 마차는 그가 일생 동안 타 본 마차 중에 가장 화려하고 튼튼한 마차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도박장에서 만난 친구의 집에 숨어 있을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까지.
“……역시 아무도 안 쫓아오는군.”
분명 도박장에서 이리저리 빌린 돈이 있으니 빚쟁이들이 쫓아와야 했다.
하지만 근래 그의 주변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하긴, 눈치가 보이겠지.”
이벨라 자작은 고개를 쳐들었다.
이쪽은 이제 대공비의 아비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푼돈(?)으로 쫓아왔다가 대공가의 눈 밖에라도 날까 두려운 것이겠지.
“흐흠.”
이벨라 자작의 고개가 더욱 뻣뻣해졌다.
담보는 곧 신용도와 직결되는 것.
그의 머릿속에서는 행복한 꽃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대공비의 아비라는 신분이면 돈을 크게 빌릴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한 방만 크게 벌면……!
“아버지.”
그때쯤 식장에 도착한 마차 앞에는 리벨과 시스테인이 서 있었다.
시스테인은 적당한 예의만 차렸을 뿐 별다른 인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벨은 왠지 옷이 번쩍번쩍해진 이벨라 자작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
이벨라 자작은 저도 모르게 딸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이 아비, 도박 끊었다.”
그래도 리벨의 표정은 불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가 뭐야? 찔려서 그런 거 아니야?
리벨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하객들이 시아스타 섬에 몰려들었다.
성대한 결혼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