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시아스타에서 축제 같은 결혼식이 진행된 다음 날.
제국 수도 인근에서는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 비슷한 게 열리고 있었다.
그 장소는 당연히 디엘렌 백작 영지였다.
“…….”
“…….”
뭐 씹은 표정의 롤란드 디엘렌과 베니카 알레로는 친지들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장을 둘러보았다.
하객보다 기자가 좀 더 많은 것 같았다.
그것도 굵직한 신문의 기자들이나 유명한 기자들이 아니라, 잡스러운 신문의 기자들과 유명하지도 않은 기자들이었다.
대부분 작은 기삿거리라도 건지러 온 자들.
그리고 자극적인 기사로 어떻게든 이목을 끌어 보려는 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텅 빈 디엘렌 가의 결혼식장은 물어뜯기 좋은 고깃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찰칵!
하객들보다 사진 찍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가운데, 결혼식장 바깥에서 다소 소란이 일어났다.
“?”
설마 시아스타에서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열심히 달려온 건가?
하객들인가 싶어 반색한 롤란드와 베니카는 식장에 쳐들어오는 무장한 기사단의 모습에 당황했다.
“누구냐!”
“이, 이, 이놈들은 다 뭐야!”
순식간에 하객들보다 더 많은 머릿수를 차지한 그들은 모두 짙은 남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감찰기사단 부기사단장 시엘입니다.”
신혼부부 앞에 시엘이 종이 한 장을 흔들어 보였다.
“감찰기사단이 왜……?”
감찰기사단.
그 기사단장이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제국 귀족들이 불법적인 일을 자행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 튀어오는 자들이었다.
황가 직속 단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감찰기사단의 실체를 아는 자들은 없었다.
당연히 피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감찰기사단은 근거 없이는 절대 쳐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
알레로 가 사람들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상단 일을 하면서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디엘렌 가 사람들은 달랐다.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뭐가 걸린 거지?
롤란드와 그 아비의 얼굴이 새파래진 순간이었다.
“디엘렌 백작. 영지민들에게 정해진 비율 이상의 세금을 걷는 것은 제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시엘의 목소리에 디엘렌 백작 부자의 얼굴에 금이 갔다.
“뭐라고?”
당연히 그 사실을 몰랐던 알레로 가 사람들도 난리가 났다.
“야, 특종이다!”
“찍어!”
그리고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기삿거리를 건진 기자들도 난리가 났다.
그리고 다음 날.
[디엘렌 백작가, ‘불법 자릿세’ 징수한 사실 드러나]
신문 기사가 크라이베리 석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면 메인 페이지에는 당연히 디란타 대공과 이벨라 영애의 화려한 결혼식이 자리했지만, 모두가 아는 결혼식 다음으로 주목받은 건 디엘렌 가의 기사였다.
그중 가장 크게 난 건 ‘귀족가의 폭풍’ 벨 기자가 낸 기사.
그리고 그 아래로는 끌려가는 디엘렌 백작과 롤란드 디엘렌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기사가 실렸다.
[달콤할 줄 알았던 결혼식, 파국으로]
[피로연은 감옥에서]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내렸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지난 4일, ‘농담 약혼남’으로 물밑에서 유명세를 탔던 롤란드 디엘렌 백작 영식과 베니카 알레로 자작 영애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그런데 하객석이 대부분 빈 가운데 진행된 결혼식에 뜻밖의 인물들이 난입해 결혼식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불법 자릿세 징수’ 명목으로 디엘렌 백작과 디엘렌 백작 영식을 체포한 감찰기사단 부단장 시엘 경은 인터뷰 요청에 “길을 막으면 공무 집행 방해”라는 말로 인터뷰를 거부했다.]
시엘을 인터뷰하는 데에 실패한 기자들은 알레로 가 사람들에게 몰려들었다.
그 덕에 알레로 가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도 쏟아져 내렸다.
[‘이 결혼은 사기 결혼’…… 알레로 가, 불법 세금 징수 사실 몰랐다]
그 내용은 순식간에 사교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알레로 가가 디엘렌 가에 날벼락 같은 통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알레로 가, ‘결혼 무효’ 선언]
[지난 4일 디엘렌 백작과 백작 영식이 감찰기사단에 체포된 가운데, 디엘렌 백작 영식과 혼인하려던 베니카 알레로 영애가 입장을 밝혔다.
베니카 알레로 영애와 알레로 자작 부부는, 지금까지 “디엘렌 가와 알레로 가 사이에 오가던 모든 약속은 무효로 돌아갔다”라고 선언했다.
알레로 자작은 “롤란드 디엘렌 영식이 감찰기사단에 체포된 것은 결혼반지를 교환하기 전”이라며, “디엘렌 가와 알레로 가는 아직 혼인으로 연을 맺지 않았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감찰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는 디엘렌 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감찰기사단에 잡혀간 덕에 디엘렌 가가 기사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 * *
제국의 결혼 풍습은 한국과는 당연히 달랐다.
신혼여행은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게 아니라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 후에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거지, 일단 결혼 직후에는 저택행이었다.
그런데 리벨은 제가 예상한 곳과 다른 곳으로 마차가 향하자 당황했다.
“대공령으로 가는 게 아닌가요?”
당연히 디란타 대공령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시스테인은 고개를 저었다. 결혼식장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키스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원하신다면 대공령으로 가겠습니다.”
리벨은 왠지 이 사람의 화법도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다,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대공령에 뭔가 문제가 있나요?”
이 사람이 원하면 가겠다고 말하는 건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시스테인은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몬스터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간혹 창문에 몬스터의 피가 묻어 있기도 합니―”
“제국의 대공령 별저도 무척 정경이 아름답더라고요.”
리벨은 필사적으로 그의 말을 막아 버렸다.
시스테인은 별 표정 변화 없이 하던 말을 그만둬 버렸다.
리벨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대공령에 몬스터가 많다는 설정이 있었던 것 같긴 했다.
확실히 제 땅이 있는 디란타 대공이 주로 제국에 머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
리벨이 진땀을 흘리며 창밖을 열심히 쳐다볼 때였다.
시스테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공령에 가지 못해서 아쉬우십니까.”
“아아아아니요?”
전 몬스터랑 진한 인연을 만들고 싶진 않거든요? 리벨은 고개를 홱홱 흔들었다.
그 말에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시스테인은, 마차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
멀리 있는 제국의 대공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신혼을 방해받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가 저택을 가리켰다.
리벨도 결혼 직전까지 머문 저택이기에, 그가 가리킨 저택이 뭔가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
일단 저택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이 없었다.
“?”
그뿐만 아니라 안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어야 할 사용인들은 하나도 없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어?”
저택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오는 길에 기사들이 보이는 것 같더라니, 다 저택에서 거리를 두고 나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저택 경비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적어도 저택에서 보이는 곳에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덜컹!
리벨이 그 사실을 알아챘을 즈음에는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내 저택 앞에서 마차를 세운 마부는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곧장 저택 본관에서 멀리멀리 멀어져 갔다.
“……?”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달칵.
그러는 사이 시스테인은 마차 문을 직접 열고 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택에는 우리 둘뿐입니다.”
리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제국의 관례상 신혼부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사용인들이 저택을 적당히 비워 준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저택에서 씻은 듯이 사라지는 줄은 몰랐는데?
주인 부부가 머무는 층에서만 사라지는 게 아니었나?
조금 당황한 리벨이 그의 손을 잡았을 때였다.
시스테인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겨 마차에서 내려 주며 물었다.
“그래서, 원하십니까?”
“뭘요?”
또각, 새 신부의 하얀 구두가 바닥을 내딛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리벨의 되물음에 시스테인은 그녀를 저택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답 대신,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
그리고 그 손짓에, 야릇한 느낌이 되살아나자마자 리벨은 불쑥 깨달아 버렸다.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그…….”
리벨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음, 신혼 첫날이고, 결혼을 했으면 의무가 있으니까…….”
사실 의무를 가지고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리벨은 슬그머니 눈을 굴렸다.
의무고 뭐고 사실 싫지 않았으니까.
슬쩍 그녀가 시스테인을 살필 때였다. 시스테인의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있었던 듯했다.
“!”
눈이 마주쳤다. 그때 리벨은 그의 얼굴에서 표정의 잔상을 보았다.
아주 살짝, 그가 웃는 것 같았다.
……아닌가?
“술이 필요하십니까.”
그때 시스테인이 불쑥 물었다.
“네?”
술은 갑자기 왜?
리벨의 질문에 시스테인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긴장한 신부들에게는 술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아.”
있으면 분위기 있고 좋죠.
리벨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스테인이 훅 치고 들어왔다.
“당신과 나의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