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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39)화 (39/167)

제39화

긴 신혼의 밤이 끝나자, 디란타 대공저의 사람들은 귀신같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리벨에게, 그들은 새삼 자기소개를 다시 했다.

그들은 리벨이 결혼 전 대공저에 머물 때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대공비 전하의 안전을 위해 대공령에서 직접 사용인들을 불러오라 명하셨습니다.”

“시스가요?”

리벨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스테인은 부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공가의 일은 어색하실 테니, 좀 더 일에 익숙한 자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일의 효율을 위해서요. 덧붙이는 말에 리벨은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요.”

아니, 오다 주웠다도 아니고 그냥 편하라고 배려해 줬다고 하면 되지.

그는 아무래도 감사 인사를 받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대공비 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집사 헬리아입니다.”

이전에 대공저에 있던 집사는 남자였으나, 새로 들어온 자는 여자였다.

뿐만 아니라 저택의 이곳저곳을 관리하는 대부분의 사용인들이 모두 여자로 바뀌었다.

그들과 자주 일할 리벨을 배려한 듯했다.

생각 외로 세심한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리벨이 반짝이는 눈으로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

그는 전투적으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찔러도 안 들어갈 것 같았다.

“고마워요, 시스.”

그래도 리벨은 기어이 말했다.

스테이크를 썰던 시스테인의 칼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움직였다.

*  *  *

디란타 대공저.

정확히는 대공령이 아니라 제국에 존재하고 있으니 디란타 대공 별저.

이곳은 리벨에게 조금쯤 익숙해진 곳이었다. 결혼 전에 얼마간 지냈었으니까.

하지만 신혼 전후로 저택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데다, 무엇보다 리벨은 신혼 날 제 발로 4층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았다.

……아니, 걸어 올라가지 못했다.

리벨은 그러저러한 이유로 새삼 낯설어진 저택을 다시 안내받았다.

“이곳은 이전에 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비상시에 저택을 성의 방식으로 개조했을 때 쓰는 요격용 장소입니다.”

“요격?”

물론 진짜 낯선 장소도 있었다. 집사 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택에 몬스터 혹은 적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저택의 모든 것이 전시체제로 바뀌게 되니까요. 그때는 이 창문을 떼어 버리고 이것을 달게 됩니다.”

헬리아는 방 한구석의 서랍……처럼 생긴 벽돌을 꺼냈다.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아니 무슨 사람 상체만 한 돌을 한 손으로 드세요?

“창문……하고 크기가 똑같네.”

리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용도이니까요.”

“아니, 근데 수도 한가운데에 있는 저택에 무슨 요격용 장소가 있어요?”

설마 이 근처에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장소가 있다거나?

리벨은 떨떠름한 얼굴로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시스테인은 여상스럽게 답했다.

“원래 디란타 대공령은 몬스터가 많은 곳입니다. 그곳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존재하는 것뿐, 몬스터가 쳐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리벨이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시스테인이 덧붙였다.

“그래도 사람이 쳐들어올 가능성을 생각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

사람이? 쳐들어올? 일이? 있을까요?

리벨의 표정이 더욱 떫어졌다. 설마 반역을 할 생각은 아니실 테고…….

리벨은 시스테인을 슬그머니 살폈다.

“그리고 이곳은…….”

헬리아의 안내는 계속 이어졌다.

리벨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저택은 생각보다 낯선 구조물이 많았다.

유사시에 요격용 벙커로 바뀌는 방은 물론이고, 그냥 땅인 줄 알았던 저택 주변에 순식간에 물이 흐르게 만드는 장치도 있었다.

그것도 어지간한 사람은 건너지도 못할 정도로 넓은 폭에, 거센 물길이 흐르도록.

강보다는 좁고 개천보다는 넓은 그런 너비였다.

“……정말 전쟁용으론 쓸모 있겠네요.”

부디 쓸모없어야 할 텐데.

리벨이 세찬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대로 쓰인 적은 없지만 유사시에 쓸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그렇구나. 유사시가 없길 바라야겠다. 리벨은 슬그머니 물길에서 멀어졌다.

그 뒤로도 시스테인은 그녀와 함께 기꺼이 저택을 거닐었다.

헬리아가 설명해 주는 것은 그가 모두 아는 것들일 텐데도, 그녀와 함께 인내심 깊게 설명을 들어 주기도 했다.

물론 그는 말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스테인은 충분히 리벨에게 신경 쓰고 있었다.

“…….”

리벨은 헬리아의 설명을 듣다가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알콩달콩한 신혼은 못 보내 준다면서요?

하지만 이 정도면 이미 충분히 달콤한 신혼이었다.

사용인 배치 등의 사소하면서도 세심한 배려는 물론이고, 달아오르는 밤까지.

대체 뭘…… 못 해 준다고 한 거지?

리벨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스테인은 정말 연애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옆에 붙어 있었다.

“저택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물론 마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집사 헬리아는 안내를 마치며 말했다.

“저희가 마님의 수족이 될 테니, 얼마든지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는 극진했다. 그녀도, 다른 대공저의 사람들도 유독 그녀에게 극진했다.

그러면서 시선으로 호기심을 차마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이 목석같은(?) 주인과 결혼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게 분명했다.

그것이…… 다 깊은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는 리벨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  *  *

리벨의 목욕 시중을 들어 주는 하녀들 역시 대공령 본저에서 온 자들이라고 했다.

수영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은 넓은 욕조에 녹아 있듯 있다가, 반쯤 흐를 것 같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향유 마사지를 받는 삶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리벨은 순간 제 직업을 잊을 뻔했다.

음, 그냥 대공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새 기사, 기대할게.’

어림도 없지!

리벨은 눈을 번쩍 떴다. 새 기사를 기대하는 사람이 무려 황태후 폐하에 더불어 황제 폐하까지로 늘어나 버렸다.

아주 황송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마님, 마님 앞으로 온 사교계 초대장이 열 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응?”

리벨은 눈을 깜빡였다. 아니, 열 장 쌓일 때까지 안 주고 뭐 한 거야?

리벨의 그 의문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녀장 시안이 말했다.

“모두 목욕하시는 사이에 온 것들입니다. 지금도 오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 신혼도 며칠 지났겠다 슬슬 귀족가 사람들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교계 초대장이 쏟아질 줄은 몰랐다!

리벨은 향유 마사지가 날아가고 골이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나중에 볼게.”

사교계라니. 물론 이벨라 자작 영애로서 참여할 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벨라 자작이 도박 빚으로 이것저것을 내다 팔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사교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때문에 자작 영애일 때에는 사교회에 참여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러면서 귀족가 사람들은 리벨이 없는 듯이 굴었다.

그나마 그들이 말을 걸 때에는 롤란드 디엘렌과 그녀가 붙어 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와, 벌써 피곤하네.”

리벨은 제게 사람들이 몰려들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마를 짚었다.

“관심, 좋지.”

그래, 좋지. 내 기사 많이 봐 주면 좋지. 나 유명한 기자 되면 좋지.

하지만 그건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익명으로 유명할 때의 말이다!

리벨이 머리를 싸맸다. 그녀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 뜨거운 관심의 한가운데에 던져지고 싶지는 않았다.

“으!”

디란타 대공비로서 주목받는 사교회라니.

보나 마나 그녀의 손끝 하나하나가 가리키는 것이 의미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실수 한번 하면 영원히 박제다!

리벨은 끙끙거리다가 손을 내저었다.

“나중에 볼 테니까 일단 모아 놔.”

“알겠습니다.”

리벨은 그 후에 어떻게 몸에 향유 마사지를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번엔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걸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연회가 신경 쓰였다.

안 가고 싶은데, 대공비가 사교회에 영원히 안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 초대장들을 다 씹을 수도 없고!

사교계에서 아무리 예의상 온 초대장이라도 회신을 하는 건 기본적인 예의였다.

그런데 보나 마나 그 회신은 필체 하나하나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 뻔했다.

‘어머, 디란타 대공비 전하께서 주신 회신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게 회신을 주실 줄이야…….’

‘게다가 이런 가는 필체라니요. 아직 저희 가문이 대공비 전하의 충분한 마음을 얻기에 부족한 걸까요?’

벌써 사람들이 떠들 말이 들리는 것 같아 리벨은 고개를 홱홱 흔들어 버렸다.

회신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인데, 이걸 어쩐담?

그런데 그 답은 의외로 시스테인이 가지고 있었다.

―달칵.

묵직한 편지지 뭉치를 들고 신혼 방에 들어선 그녀는 시스테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화로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초대장을 화로에 던져 넣으면서.

―화륵!

아니, 그걸 장작으로 쓰면 어떡해!

리벨은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그, 그거 회신 안 해도 돼요?”

보나 마나 회신 안 하면 씹는다고 난리가 날 텐데!

하지만 시스테인은 그 질문에 장작, 아니, 초대장을 하나 더 던져 넣으며 답했다.

“회신하지 않는다 하여 영지전을 걸어오는 자들은 없었습니다.”

“……그야…….”

그랬겠……죠…….

―드르륵.

리벨은 그의 옆에 의자를 하나 더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편지지 뭉치를 그에게 건넸다.

이벨라 자작 영애일 때에는 회신 안 하면 아니꼽다고 편지 엄청 보내던데.

―휙! 화르륵!

하지만 대공저에서 초대장은 그저 장작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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