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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53)화 (53/167)

제53화

시스테인이 돌아오기로 한 건 사흘 후였다.

그 전까지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리벨은 출장 가는 시스테인을 배웅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준비에 착수했다.

“일단 이번 소금값 인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단은 니아 상단하고 틸라 상단이야.”

리벨은 턱을 매만지면서 정보를 훑어보았다.

시스테인이 출장을 간 시기는 아주 좋은 시기였다.

[루이나 상단 정보]

리벨은 나인과 다른 그림자들이 조사해 온 정보를 훑어보았다.

이전 같았으면 좀 더 조악한 방법으로 잠입했을 텐데, 확실히 정보가 많아지니까 좀 더 안정적인 방법으로 잠입할 수 있게 됐다.

“이쪽 일행으로 들어가는 게 확실하겠지?”

이번 투라 영지 일대의 소금값 인상을 주도하는 건, 총 네 개의 단체다.

일단 뒤를 봐주는 게 분명한 두 개의 가문. 어디인지는 틸라와 니아 상단도 모르는 바람에 가서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소금 거래를 손에 쥐고 있는 틸라 상단과 니아 상단.

이제 거기에 루이나 상단은 새로 끼어들려고 하고 있었다.

리벨이 잠입하려는 건, 그 다섯 가문의 비밀 회동이자, 틸라 상단과 니아 상단, 루이나 상단이 두 귀족 가문을 접대하는 자리였다.

“그럼 그렇게 준비할까요?”

나인이 물었다. 리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제가 한 말이 무슨 사달을 낼지 모르고 무심코 한 말이었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인은 뜬금없이 그녀에게 누군가의 프로필을 내밀었다.

[리 루이나]

그건 웬 여자의 프로필이었다. 성이 루이나네? 아까 그 상단 이름도 루이나인 것 같았는데?

“아, 잠입할 상단 일행 정보야?”

“예.”

나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로 변장하시면 됩니다.”

“?”

무심코 프로필을 보던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녀로? 리 루이나로?

“……상단주로?”

리벨이 눈을 깜박였다. 이 사람 일행으로 숨어드는 게 아니고?

“예. 이미 채비하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채……비?”

잠깐. 리벨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번쩍 손을 펴 보였다.

“자자잠깐만. 그럼 진짜 리 루이나는?”

나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잠들 예정입니다.”

아니, 이걸 이렇게? 혹시 잠들었다는 게 영면? 아니 잠입을 이렇게 평화롭지 못한 방법으로 한다고?

이거 취재 맞아?

“그…… 이 사람 일행은? 내가 변장한다고 못 알아보지도 않을 텐데?”

“같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니 수면의 왕이세요? 리벨은 머리를 싸매고 결국 물었다.

“설마, 죽인 건 아니지?”

나인은 그 얘기에 조금 고개를 들었다. 지금 뿌듯해하는 거?

“대공비 전하께서 그들의 목숨에 손대는 건 싫어하실 것 같아 일단 재워 두기만 했습니다.”

……오, 뿌듯해해도 돼. 리벨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맞아. 사람 목숨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응응.”

리벨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면서 나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잘했어.”

리벨의 말에 나인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뭘? 불면증 치료 클리닉을? 리벨은 슬며시 그의 등에서 손을 뗐다.

잠입 취재가 아니라 더 거한 무언가가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잠입 준비는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다.

어느 가문이 틸라와 니아, 루이나 상단과 함께 소금값을 올리고 있는지, 알아보고 기사로 뻥 터뜨려 버릴 것이다.

“어느 걸로 가지.”

리벨은 변신할 수 있는 외형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단주면 그쪽이 낫겠지? 변장하기도 쉬울 것 같고…….”

리벨은 변신할 외형을 정하면서 리 루이나의 사진을 보았다.

화려한 깃털 장식의 챙 넓은 모자를 즐겨 쓰는 그녀는,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와인색 드레스를 입은 채였다.

“흐음.”

루이나도 어차피 소금값을 같이 인상하려던 자들이었다.

세 상단과 두 가문이 배를 불릴 동안 수많은 평민들이 죽어 가는 걸 좌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은 기사로 한 대 후려갈겨 주는 것이 상도덕인 법이다.

리벨은 어깨를 으쓱했다.

*  *  *

감찰기사단은 철저히 계획에 맞추어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검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줄 알지만, 그보다 다른 것에 더 재능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연기나 변장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들은 잠입 수사를 할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란 의외로 공평해서 그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은 없다는 것이었다.

―쿵, 쿠당탕!

“으아악!”

그걸 시스테인이 느끼게 된 건, 이번 잠입 수사에서 잠입을 위해 동행했던 감찰기사가 숙소의 계단에서 굴렀을 때였다.

“……바로 치료받는 게 좋겠군.”

잠입 및 연기 담당 감찰기사였던 루이스는 손목이 부러진 채로 숙소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귀족가로 위장해 들어온 감찰기사단이 통째로 빌린 호텔이었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루이스는 침대에 누운 채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연기며 변장, 임기응변에는 뛰어났지만 몸치인 감찰기사였다.

사실 밖에선 기사라고 부르기도 뭐한 수준이었다.

“……사고는 어쩔 수 없지.”

시스테인이 이야기를 듣는 사이, 감찰기사들이 루이스의 방에 모였다.

한 감찰기사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단장님, 계획에 차질이 있을 것 같습니다.”

표정 없이 돌아보는 시스테인에게 감찰기사가 보고했다.

“미리 준비한 ‘페티아 후작가 대리인’ 역에 맞는 체격을 가진 자가 동행한 기사 중에 없습니다.”

“…….”

시스테인은 그 말에 미간을 좁혔다.

제국법을 어기는 귀족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감찰기사단.

그들은 교묘하게 증거를 숨기는 귀족가를 잡기 위해 잠입을 주로 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쳐들어가서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 귀족가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들을 먼저 불태우기 때문에 잃는 것이 많아진다.

때문에 감찰기사단도 최대한 잠입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었다.

그 잠입은 일반적인 정보 길드 등에서 준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분장할 상대의 체격과 목소리 등까지 고려하여 가장 비슷한 자를 골라 훈련시킨다.

그렇게 준비해 온 건데…….

“……죄송합니다.”

루이스가 다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팔이 부러진 채로 위장해서 들어가도 다쳤다고 하면 일단 그만이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는 대비할 수 없을 터였다.

시스테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 없나? 단 한 명도?”

그 말에 보고하던 감찰기사가 멈칫했다.

“있……긴 합니다만.”

시스테인이 살짝 눈썹을 움직였다.

“그럼 그자가 바로 준비하도록. 시간이 없으니.”

감찰기사단 본부에 적절한 기사를 다시 요청해 데려오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조사하는 ‘세 상단과 두 가문의 회동’은 불과 내일 열리는 것이었으니까.

“그, 그게.”

그런데 감찰기사는 난감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시스테인의 서늘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문제가 있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시스테인이 눈가를 좁혔을 때였다.

감찰기사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조건에 맞는 분이 딱 한 분, 단장님뿐이십니다.”

“…….”

그 말에 시스테인도,

“…….”

누워 있던 루이스도,

“…….”

다른 기사들도 모조리 침묵했다.

잠시 침묵하던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별수 없지.”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하지만 같은 방 안에 있는 감찰기사들은 모두 담담할 수가 없었다.

“그, 최대한 말씀을 줄이십시오.”

“대리인 프로필은 가지고 왔습니다. 원래 말을 잘하는 자가 아닙니다.”

“걸음만 조금 무겁게 걸어 주시면 됩니다.”

“이번 연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감찰기사들의 말이 갑자기 우수수 쏟아졌다. 시스테인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그래도 가면을 쓰고 들어가는 연회라 다행입니다.”

처음 보고했던 감찰기사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력, 두뇌, 외모, 가문, 권세 그 어떤 것도 꿀리는 것 없는 시스테인이 단 하나 하지 못하는 것.

그건…… 연기였다.

“여기, 검은 가면입니다.”

침대에서 끙끙거리며 일어난 루이스가 슬그머니 가면을 건넸다.

입만 내놓은 검은 가면을 보던 시스테인이 제 얼굴에 가면을 걸쳐 보았다.

―사아아…….

약간의 마력을 받은 가면이 그의 얼굴에 맞는 크기로 조절되었다.

이렇게 정교하게 마력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대륙 전체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감찰기사단과 시스테인에게 필요한 건 연기력이지 마력이 아니었다.

감찰기사단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최대한, 노력해 보지.”

시스테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마력은 들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 주인이 아닌 척하려 해도, 마력은 그의 긴장하는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마력이 폭주해서는 곤란하다. 마력이 폭주해도 되는 곳은 대공령 한가운데뿐이었다.

‘이번 대공령 방문 일정은 늦춰도 될 것 같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부기사단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한 달마다 들렀던 대공령. 벌써 두 달째 대공령에 들르지 않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마력을 충분히 소모하고 왔어야 했다.

그런데 리벨 옆에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너무 오래 미룬 모양이었다.

“…….”

조금만 흥분해도, 조금만 흔들려도 마력이 흔들린다.

그는 눈을 감았다. 짧은 숨이 터졌다.

이 일을 빨리 끝내고 리벨 옆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폭주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

“프로필부터 숙지하십시오.”

감찰기사들이 슬그머니 ‘페티아 후작 대리인’의 프로필을 내밀었다.

그들의 얼굴엔 근심 걱정이 아주 가득했다.

정말 괜찮을까?

가면을 벗고 프로필을 보는 그에게, 한 감찰기사가 굳은 결심이 선 얼굴로 말했다.

“여차하면 그냥 때려 부수고 나오십시오. 저희가 돕겠습―”

읍읍! 시스테인이 돌아보니 다른 기사들이 그 기사의 입을 막고 있었다.

아무리 단장님이 발연기란 걸 모두가 안다지만 대놓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읍읍읍!

진실의 입이 막힌 가운데 감찰기사단의 머리 위를 가린 먹구름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파란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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