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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72)화 (72/167)

제72화

너 그거 범죄야! 알아? 불량배로 세금 징수도 모자라서 이제 사람 붙여서 몰래 촬영까지 했다고?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내가 대체 어떤 쓰레기를 좋아했던 거지?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지.

“그래서 그 보고를 시스가 들은 거고?”

“예. 기사단에서 들으시자마자 바로 디엘렌 가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퇴근도 안 하시고, 바로?”

“예.”

헬리아의 말에 리벨이 멈칫했다.

행적만 들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내 사진 때문에…… 그랬다고?

화날 일이긴 했다. 그런데…… 시스가?

리벨은 가만히 그를 생각했다.

늘 서늘하게 가라앉은, 잠긴 얼굴만 보여 주던 그가, 리벨 자신에게만큼은 조금이나마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었던 것 같았다.

특히 그 디엘렌 가 연회에서의 얼굴.

리벨은 그날 분명히 보았다. 그는 웃었다. 아주 잠깐이나마.

웃는 그의 얼굴은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세 사라진 것이 아쉬울 정도로.

“…….”

리벨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화낼 땐 화내고, 웃을 땐 웃으시면 좋을 텐데.

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럼 화가 난 상태로 저택에 들어왔다는 거다.

디엘렌 가…… 저택을 이렇게 만든 것도 그일 가능성이 높고.

다들 심기가 불편하다고 느낀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저택을 부술 정도면 어지간히 화난 게 아닐 텐데, 아까 그의 얼굴을 보면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한 게 분명했다.

화를 억누르는 것만큼 안 좋은 일도 없는데…….

웃을 때 웃지 못하는 것도 슬프지만.

“대체 왜…….”

리벨이 뇌까렸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마님.”

그때 문밖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리벨이 손짓하자, 보고하던 헬리아가 문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웬 작은 쪽지 하나를 가져왔다.

“전하께서 전해 드리라 명하셨답니다.”

“시스가?”

조금 정신없어 보였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리벨이 쪽지를 펼쳐 보았다.

[곧 돌아가겠습니다, 리벨. 열흘이면 됩니다. 돌아가면 어머니의 티타임에 같이 가요.]

걱정할까 봐 보낸 걸까? 리벨이 쪽지를 매만졌다.

이 사람이 정말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이면, 내가 걱정할까 봐 이런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겠지.

애초에 디엘렌에 화낼 일도 없을 거고.

리벨이 쪽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시스테인.

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가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는 이유를…… 손만 뻗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결정적인 키를 모르는 느낌이다.

무엇이 그가 제 안에 감정을 가두게 하는지.

그렇게 속에 담아 두기만 하면 속이 썩어 버리기 마련인데.

리벨은 그가 지나갔을 창밖 길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  *  *

롤란드는 오늘도 살롱에 있었다.

렐라 의상실의 지하 통로를 거쳐 도착하는 거대한 곳.

처음 그는 이곳이 그저 도박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곳은 엄연한 사교회였다.

그는 이미 이곳에 여러 번 오가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다.

일단 ‘살롱의 주인’과 여러 번 대면하는 자들은, 좀 더 안쪽의 은밀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도박장은 ‘바깥쪽’이라고 불리며, 그냥 노는 곳이었다. 살롱의 주인이 이곳에 온 자들을 살피는 곳이기도 했다.

반면 중요한 말은 ‘안쪽’에서 이루어졌다. 롤란드가 첫날 불려 갔던 것도 그 안쪽이었다.

“살롱의 주인…….”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처음 살롱의 주인을 본 날.

‘롤란드 디엘렌.’

그는 몇 겹의 천 너머에 있어 실루엣만 보였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롤란드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그 옆에 시중들듯 서 있는 것은 페티아 후작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롤란드는 순간 열이 올랐다.

의전원에 날짜 미뤄 달라고 말 좀 해 달랬더니, 원칙 운운하는 어이없는 소리를 해 가면서 거절했던……!

하지만 따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페티아 후작조차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롤란드는 천 너머의 실루엣을 살폈다. 대체 저곳에 있는 자가 누구이기에?

설마 황제 폐하나 황태후 폐하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구태여 롤란드 디엘렌을 초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만난 첫날 이후로도, ‘살롱의 주인’은 그가 살롱에 올 때마다 그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살롱의 주인을 가렸던 겹겹의 천은 하나씩 걷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디엘렌 영식도 이제 ‘살롱의 가족’이 아니겠소!”

“자자, 이리 와 보시게. 내가 좋은 걸…….”

살롱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건 롤란드가 ‘살롱의 주인’과 여러 번 만날수록 더더욱 심해졌다.

“살롱의 주인께 이렇게 자주 부름받는 건 디엘렌 영식뿐일 겁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황성 부서 사람들이나 이름 있는 백작가, 후작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규모 큰 상단의 주인들까지.

밖에서는 롤란드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달랐다.

그가 살롱의 주인과 여러 번 독대할수록 그와 대화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이건 제가 이번에 얻은 귀한 옥인데……”

“디엘렌 영식, 이번에 제가 하는 사업이 있는데 한번…….”

그리고 그와 어떻게든 인연을 맺고 싶어 했다. 덕분에 구겨진 디엘렌 가의 살림이 피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니, 이 돈이 다 어디서 들어오는 게냐?’

디엘렌 백작은 당연히 놀랐다. 하지만 롤란드는 살롱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

굳이 아버지가 아니라 내게 초대장이 온 건,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알고 있겠지만 디엘렌 영식, 이곳의 존재는 비밀입니다. 모두가 짐을 내려놓고 즐기는 공간에 이물질이 침투하길 원하지 않으니.’

살롱의 주인이 직접 그렇게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롤란드는 제 아비에게까지 거짓말을 했다.

‘그냥 뭐. 인맥이죠. 이전 사교계 인맥들.’

‘네게 이런 인맥이 있었다고?’

디엘렌 백작은 의심스러워했지만, 그가 진실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롤란드는 백작저에서도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디엘렌 본저가 박살 난 것도, 결혼식이 파투 난 것도 모두 롤란드 디엘렌 그 때문이었지만, 이후 가문의 부흥에 더없는 보탬이 되고 있으니 디엘렌 백작도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그러자, 가문 내의 권력 흐름에 민감한 사용인들이 먼저 반응했다.

그들은 이전엔 ‘꼴통 도련님’으로 부르기도 했던 그를 아주 극진히 모셨다.

어쩌면 디엘렌 백작보다 더.

그게 최고조에 이른 건, 이전에 연회를 여느라 빌렸던 빚을 그가 청산했을 때였다.

청산한 방법은 롤란드 디엘렌 자신이 느끼기에도 어이가 없을 저도로 간단했다.

“오, 자네! 드디어 만나는구만!”

살롱에 몇 번 정도 출입했을 때였다. 웬 모르는 인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했다.

“난 모르 상단의 상단주 알이라고 하네.”

“모, 모르 상단?”

롤란드는 그 순간 도망가고 싶었다. 그 상단에 진 빚이 얼만데!

게다가 그 빚은 아직 반은커녕 반의반의반도 갚지 못한 상태였다.

“그…… 빌린 돈은 제가,”

그가 쩔쩔맬 때였다. 알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난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닐세. 인연도 있는데 이렇게 안면이라도 트길 바랐던 거지.”

모르 상단주 알은 롤란드의 손을 잡고 흔들기까지 했다.

“‘가족’끼리 준 돈이 대수인가? 내 디엘렌을 도운 대가로 살롱의 주인께서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 주셨으니, 자네는 그 돈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네?”

롤란드는 입을 떠억 벌렸다. 그럼 살롱의 주인께서는 내가 돈을 빌려서 연회를 연 것도 이미 알고 계셨단 말인가?

대체 누구이시기에?

저도 모르게 살롱의 주인에게 존칭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롤란드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한두 푼이 아니지 않습니까. 상단주님.”

롤란드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되물었다.

하지만 모르 상단주 알은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괜찮네!”

그는 연신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주고, 선물까지 쥐여 주고는,

“또 보세!”

다시 보자는 말을 강조하면서 가 버렸다.

정말…… 이 대화 몇 마디로 그 태산 같던 빚이 사라졌다고?

[본인, 모르 상단주 알 모르는 금일부로 모르 상단과 디엘렌 백작가 간에 있었던 채무 사실이 모두 해결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게 거짓말이 아니란 듯이, 다음 날 벼락같이 서류 한 장이 날아왔다.

모르 상단주 알의 사인이 되어 있는 그 종이는 틀림없는 진품이었다.

“이, 이게 대체……!”

디엘렌 백작은 당황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게냐?”

아버지의 말에 롤란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사람들을 좀.”

이전 같았으면 한심한 놈이라며, 또 연애질이나 하는 거냐며 얻어터졌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디엘렌 백작은 그의 출타 길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했다.

그가 더 큰 것을 집어 오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그사이 롤란드 디엘렌은 바빠졌다. 물론 살롱에서.

그가 매번 살롱에 들를 때마다 살롱의 주인과 이야기한다는 건 이제 살롱 ‘안쪽’의 모두가 알았다.

그 덕에 롤란드 앞으로는 온갖 거래 요청이 다 들어와 있었다.

유명한 상단과 이름 있는 몇몇 귀족들은 디엘렌 가가 지금까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요청해 왔다.

“우린 ‘가족’ 아닙니까?”

그 말과 함께.

그 덕에 롤란드는 정말 살롱의 가족이 되어 갔다.

여러 거래로 얽혀 빼도 박도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처음 들어올 때 긴장했던 것도 풀린 그는 조금씩 입이 가벼워졌다.

“근데 자네, 진짜 현 대공비 전하와 염문이 있었나?”

그러던 중 그에게 들어온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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