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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73)화 (73/167)

제73화

“예끼! 그건 농담이었다지 않나.”

“아, 그거요.”

처음 들어왔을 때 옹송그렸던 어깨를 이제는 늘어져라 펴고 있는 롤란드는 찰랑, 잔을 흔들어 보였다.

높은 도수의 와인이었다.

“사실 사귄 거 맞습니다. 근데 아시잖습니까. 그 집안이 워낙.”

롤란드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대화하고 있는 곳은 ‘안쪽’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롤란드가 왔던 첫날 보았던 이벨라 자작은, ‘바깥쪽’에만 머무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 이곳이 그저 도박장이라고만 생각하는 자였다. 이곳에서 가장 정보가 떨어지는 자.

그저 들러리.

롤란드는 바깥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있는 게 없어 가지고. 알레로 가하고 거래를 좀 했죠. 근데 그게 좀 안 풀려 가지고.”

“저런…….”

사람들이 탄식했다. 그 뒤로도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제 남편 이야기는 했나요? 글쎄, 그 사람이 이번에 어딜 갔냐면…….”

“부인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쓰레기란 건 이미 유명한 사실 아니오?”

정말 가족이라는 말처럼 그런 이야기는 당연스레 공유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롤란드는 살롱의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해졌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자신도 ‘상류층 사회’에 진입한 것이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꿨던가?

이전엔 페티아 후작이나 몇몇 가문에 간신히 걸쳐 있던 줄이, 확 넓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후작가에 빌빌 기는 신세도 아니었다.

“지난번엔 내가 미안했네. 응?”

오히려 페티아 후작은 사과까지 해 오며 그와 친해지려고 안달이었다.

“다음부터는 잘 지냅시다, 우리.”

그런 그에게 롤란드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뻣뻣하게 고개를 든 채 하는 그의 말에, 페티아 후작은 거듭 감사해했다.

“고맙네, 고마워.”

이 살롱 안에서는, 바깥과는 전혀 다른 권력 체계가 생겨난 듯했다.

바깥의 작위나 위치와는 상관없이, 오직 이 살롱의 주인과 얼마나 가까운가로 새로운 위치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중 롤란드 디엘렌은 거의 탑이나 다름없었다. 바깥에서 돈 없어 빌빌거리는 백작 영식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만큼은 달랐다.

“그래서 거래 시작은 언제쯤이 좋겠습니까?”

롤란드는 들어온 거래 요청을 모조리 수락했다.

대부분의 거래가 디엘렌 측에선 땅 정도만 내어 주고 돈을 받아먹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꺼낸 말에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꺼낸 건, 북부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는 네아 상단의 상단주였다.

“그래도 ‘눈’에 띄면 안 되니, 모든 거래처들과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거래를 트시는 것이 좋겠소만.”

그 말에 롤란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눈?”

거래하는 것뿐인데, 무슨 눈?

그가 의아해할 때였다. 소리 없이 다가온 하인이 말했다.

“살롱의 주인께서 찾으십니다.”

“오오.”

사람들 사이로 작은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모두 내심 제가 부름받길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롤란드 디엘렌 님, 가시지요.”

그리고 하인의 말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로 탄성이 흘렀다.

“다녀오시게.”

“자, 어서.”

바깥에서는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롤란드 디엘렌의 길을 손수 내어 주었다.

부러움의 시선을 주는 것은 물론이었다.

“크흠. 그럼.”

괜히 헛기침을 한 롤란드는 살롱의 ‘안쪽’에서도 살롱의 주인이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이미 몇 번이고 왔던 곳이었다. 올 때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살롱은 어떤지 등 롤란드가 듣기엔 쓸데없는 것만 물어봐 오던 살롱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어?”

살롱의 주인을 가리고 있던 천은 완전히 걷혀 있었다.

처음에, 롤란드는 아예 다른 방에 온 줄 알았다. 하지만 천이 없는 것뿐, 방은 살롱의 주인과 몇 번이고 대화했던 그곳이 맞았다.

그리고 방 안쪽에는 롤란드도 잘 아는 얼굴이 앉아 있었다.

“필레 공작님이 아니십니까?”

나라에 몇 없는 공작의 이름까지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이자는 현 황제인 카리스의 사촌이자 막대한 권력을 가진 인물.

필레 공작은 롤란드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앉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롤란드의 눈이 튀어 나갈 듯 커졌다. 이 목소리는 살롱의 주인…… 목소리?

그렇다면…….

“설마 공작께서?”

“조용히.”

필레 공작은 제 입에 검지를 대어 보이고는, 롤란드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뜻이었다.

롤란드는 그의 손짓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꿀꺽.

필레 공작과 점점 가까워지던 그는, 마치 성역처럼 천으로 감춰져 있었던 영역에 발을 디뎠다.

“편히 앉고.”

그것도 살롱의 주인, 필레 공작의 바로 옆에.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도 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등조차도 대지 못한 채, 롤란드가 필레 공작을 살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필레 공작이 웃었다.

“그간 지켜본바, 롤란드 디엘렌, 자네에게 내 할 말이 많아.”

“아버지도 아니고 제게……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근래 가문의 사업을 그가 주도했다고 해도 엄연히 가문의 주인은 디엘렌 백작이었다.

공작이나 되는 사람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가문의 후계자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필레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디엘렌 백작이 아니라 자네에게.”

놀라는 롤란드에게 공작이 웃어 보였다.

“어차피 다음 세대 가문의 주인은, 자네가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뭔가를 요구하려면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제 아버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롤란드가 필레 공작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필레 공작이 웃었다.

“나는 자네와 자네의 영지가, 이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해 주리라 믿고 이 자리에 불렀네.”

그 말에 롤란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온갖 짓을 다 해 왔고, 사고도 많이 쳤지만, 그래도 제힘으로 찍어 눌러 후처리를 끝낼 수 있는 상대에게만 장난을 치는 사람이었다.

가령 리벨 이벨라 같은.

물론 그녀를 가지고 논 건 정말 의외의 변수에 의해 실수가 되어 버렸지만.

“나라를 위해……라 하시면?”

롤란드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그 ‘나라를 위해’란 말 때문이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그라지만, 귀족 사회에 있는 사람인 만큼 그도 알고 있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말은 한낱 귀족이 할 말이 아니었다. 황족이 해야 할 말이다.

귀족이라면 황제 폐하를 위하여 등의 말이 나와야지, 나라를 위한다고?

그 묘한 어감을 그가 다시 뇌까릴 때였다.

필레 공작의 웃음이 짙어졌다.

“디란타 대공에게 단단히 잘못 보였다지.”

그 말에 롤란드가 멈칫했다. 필레 공작이 손을 펴 보였다.

“현 상황에서, 그런 자네는 이 사교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걸세. 이대로라면 디란타 대공비 리벨이 사교계를 주름잡을 거고, 자네는…… 다른 사람보다 더한 바닥으로 처박히겠지.”

꿀꺽. 롤란드가 침을 삼켰다. 맞는 말이었다.

공작의 말이 이어졌다.

“특히, 그녀의 뒷배와, 그보다 더한 뒷배를 생각하면 말이야.”

대공과 황태후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롤란드의 입술이 완전히 바싹 말랐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 아니겠나.”

필레 공작이 롤란드에게 속삭였다.

“권력의 주체를 바꾸는 것. 그들의 권력의 근원을 없애는 것.”

일반적인 상황에선 입 밖으로 내어서도 안 될 말이었다.

반역.

롤란드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살롱’의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보지 않겠나?”

그런 그에게 필레 공작이 제안했다.

*  *  *

대공령에 간 시스테인은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대공령에서 무슨 일이 있다면, 이곳까지 연락이 오지 않을 리가 없으니.

리벨은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녀의 걱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대공령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소식을 전해 왔다.

물론 이곳 별저와 대공령 간의 거리가 있는 만큼, 실시간으로 소식을 받아 보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래도 소식이라도 꾸준히 전해 오는 게 어디인가 싶어, 리벨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 소식을 들었다.

“이번 연락도 몬스터를 소탕 중이시라는 연락입니다.”

헬리아의 보고가 이어졌다. 벌써 며칠째였다.

“……적당히 쉬면서 하고 계시겠지?”

“지금껏 대공령에 가신 동안 무리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리벨의 걱정에 헬리아는 가볍게 답했다. 리벨의 표정이 그제야 좀 풀렸다.

근데 정말 몬스터가 샌드백이었던 건가? 롤란드 대신 몬스터를 패는 건…… 아닐 테고.

“열흘이면 오신다고 했지?”

“예. 지금까지도 대공령에 들르실 때마다 열흘 내로 돌아오셨습니다.”

“좋아, 열흘.”

리벨이 기지개를 쫙 켰다.

그가 없는 사이, 리벨은 대공비답게 별저를 지키고 있었다.

그사이 사교회도 몇 번 갔다. 당연히 무려 쪽지까지 받았으니, 황태후 리엔이 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간 건 물론이었다.

‘그건…… 리엔 황태후 폐하의 목걸이 아닙니까?’

‘아니에요, 모양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한 쌍의 펜던트 같은데요?’

그리고 귀부인들에게 목걸이의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리벨만 모르는 목걸이의 정체였다.

아니, 내가 커플 목걸이를 시스도 아니고 리엔 폐하랑?

‘세상에. 황태후 폐하의 총애가 얼마나 크시면.’

그날 1년 치 시선은 다 받은 것 같았다. 이런 물건이면 일찍 말씀을 해 주셨어야죠!

그 후로 목걸이는 상자에 다시 곱게 넣어 두고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이미 사교계에는 그녀가 사교계의 실세라는 소문이 쫙 나 있었다.

황태후의 비호는 물론이고, 디란타 대공이라는 남편까지.

사교 시즌의 그녀는 화려한 꽃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

이런 관심, 노땡큐 노감사. 원하지 않았어요……☆

편한 건, 그 덕에 디엘렌 가는 물론이고 알레로 가까지,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따가운 시선을 받고 알아서 찌그러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디엘렌 가에서는 웃기는 짓까지 저질렀다.

[지난 일에 대한 회고]

그건 크라이베리 신문 2면에 커다랗게 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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