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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75)화 (75/167)

제75화

“다들 즐겁게 이야기하는 도중이라 정말…….”

리벨은 일부러 곤란한 척 거듭 말했다.

“세상에, 아닙니다! 디란타 저택과 여기가 얼마나 먼데요. 이렇게 귀한 걸음 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기쁩니다.”

루엘라 후작 부인은 고개를 홱홱 저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긴 말을 혀도 안 꼬이고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영광이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사교회가 열릴 때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이에요.”

다시 올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저리 가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웃는 얼굴로 리벨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문이 닫히고, 창문을 내다보니 루엘라 후작 부인을 포함한 다른 귀부인들이 배웅하는 게 보였다.

“다음에 또 뵈어요!”

그렇게 아쉬워하는 귀부인들을 뒤로하고, 리벨의 마차는 루엘라 영지를 떠나……는 척했다.

“주변에 따라오는 사람 없지?”

리벨의 질문에 나인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마차는?”

리벨이 다시 물었다. 그녀가 말한 마차는 이 화려한 대공가의 마차가 아니었다.

이건 저택으로 돌아갈 거고, 그녀가 탈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짐마차였다.

귀족가에 흔히 오가는 짐마차.

그것도 연회 중인 귀족가라면 더욱 흔하다.

“명하신 대로 준비하였습니다.”

“좋아, 가자.”

―우웅!

리벨의 몸이 마력으로 뒤덮이면서 서서히 변화했다.

이번에 그녀가 변신한 외형은 평범한 여자의 외형이었다. 루엘라 가의 하녀복은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그녀가 연회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택을 수색하던 나인과 그림자들이 챙겨 둔 것이었다.

잠시 나인이 나가 있는 사이, 옷을 갈아입은 리벨이 창문을 열고 물었다.

“수상한 곳은 찾아봤어?”

말을 탄 채 마차 뒤를 따르던 나인이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예. 저택 내에 사람들이 기이하게 모이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연회 내내 그곳에 들어가는 자들은 있었으나 나오는 자들은 없었고요.”

그 말에 리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저택 최상층의 왼쪽에서 네 번째 문이야?”

그 말에 나인이 멈칫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리벨은 그 말에 화로에서 간신히 구해 냈던 루엘라 가의 초대장을 꺼내 보였다.

조금 탄 자국이 있는 초대장에는 ‘별장 최상층, 왼쪽에서 네 번째 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혹시 다른 곳이 있나 하고 수색하라고 한 거야.”

그녀의 말에 나인이 묵례했다.

“연회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자들이 그곳으로 모여든 것은 확실합니다.”

“좋았어…….”

리벨이 초대장을 하녀복 주머니에 잘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건 리벨이 빙의 전, 후배 기자들을 교육시킬 때 썼던 방식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캐야 할 때. 다각도로 접근해야 할 때.

일부러 그녀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오픈하지 않았다.

그럼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정보를 물어 오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라면 리벨이 가진 정보와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보의 다양성과 확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나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어가는 데에 신분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랬겠지. 나인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준비하라고 했잖아, 하녀복.”

리벨이 제가 입은 옷을 가리켜 보였다.

“귀족들이 모이는 곳에 사용인이 없을 리가 없지.”

그럼 가장 눈에 안 띄게 들어가는 방법은 하녀로 변장하는 것이다.

―탁.

잠시 후, 루엘라 별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차를 세운 일행은 마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리고 저택 뒷문으로 돌아 들어갔다.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작고 초라한 문으로 오가는 하인과 하녀 차림의 그들을 의심하는 자들은 없었다.

“이쪽입니다.”

저택에 무사히 잠입하자마자 나인이 리벨을 이끌었다. 저택 최상층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저택 최상층.

“이 문인가?”

왼쪽에서 네 번째라고 했지. 리벨은 거듭 수를 세어 보았다.

초대장에서 가리켰던 ‘저택 최상층 왼쪽에서 네 번째 문’은 근처의 다른 문들과 별 차이도 없어 보였다.

“…….”

리벨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문고리를 살짝 잡아 돌려 보았다.

―달칵.

문이 쉽게 열리는 것도 그랬다. 비밀 장소 같은 거면 문부터 잠가 놔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다음 순간, 문 안의 모습을 본 리벨은 당황했다.

“이건…….”

방은 아주 좁았다. 그리고 방 안에는 문 하나밖에 없었다. 양쪽으로 미닫이로 열리는 문의 모습이 어딘가 원래 있던 세계의 물건을 생각나게 했다.

“엘리베이터야?”

리벨이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우웅……!

그녀의 주머니 속에 있던 초대장과 문이 반응했다.

“아하.”

초대장이 일종의 열쇠이자 출입증이었던 모양이다.

―달칵.

문의 잠금쇠가 알아서 풀리고, 살짝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틈으로 보이는 건 빛 하나 없는 우주 같은 공간이었다. 당연히 바닥 같은 것도 없었다.

“……?”

리벨이 멈칫할 때 나인이 말했다.

“마법으로 이 문 너머와 다른 공간을 일시적으로 연결한 것 같습니다.”

그럼 어디로 통할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 리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귀족들이 저 알아서 들어갔으니 위험한 곳일 가능성은 적지만, 그들은 초대받아서 간 거고, 나는 초대받은 손님이 아닌데.

“일단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탓.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로 그림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미엘이었다.

“제가 그동안 전하를 호위하겠습니다.”

지난번 호위에 공백이 있었던 게 충격이 컸는지,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예. 이 문은,”

나인은 건너가려다가 멈칫했다.

“……일방통행인 듯합니다. 그러니.”

그가 리벨을 돌아보았다.

“만일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면 제가 먼 곳으로 다른 자들의 이목을 끌겠습니다. 그사이 미엘과 탈출하십시오.”

그는 더없이 진지했다. 리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인이 묵례하고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스르르…….

잔상을 남기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렇게 잠시 방에 침묵이 흘렀다.

“괜찮겠지?”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 오는 곳인 데다, 리벨이 초대장을 불태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때문에 이게 함정일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 저희가 목숨을 걸고 호위하겠습니다.”

미엘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뒤로 하녀 복장의 그림자 두 명이 더 나타났다.

대체 몇 명이 어디에 더 숨어 있는 거야?

“다시 주신 기회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호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들은 리벨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었다.

“알았어.”

후우, 짧게 숨을 내쉰 리벨이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우주 같은 공간만 있을 뿐이었다.

“저와 함께 들어가시지요.”

미엘이 리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좋아.”

꽈악. 리벨은 긴장에 숨을 내쉬었다.

이거 우주같이 생겼다고 숨도 못 쉬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 전에 디딜 바닥은 있는 거겠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리벨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여기 온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에라 모르겠다! 리벨은 미엘의 손을 잡고 그대로 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파앗!

그 순간 리벨의 온몸을 마력이 휘감았다.

*  *  *

“……지 않나! 하하하!”

“이번에는 내가 다 걸고 반드시 이겨 보이겠네!”

“예끼, 자네 전 재산이라고 해 봐야 이 금화 하나가 전부 아닌가?”

“그럼 뭐! 저택이라도 걸까?”

리벨이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들은 건 왁자지껄한 소리였다.

카드나 칩, 동전 같은 것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눈을 뜬 리벨은 당황을 감추기 위해 애써야 했다.

“……?”

도……박……장?

설마 그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마법까지 쓰면서 초대한 게 이런 도박장이었어?

아니 물론 불법 도박이면 은밀하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아는 얼굴이 연달아 둘이나 발견됐던 것이다.

“이번 판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자아.”

그렇게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의 칩을 쓸어 가는 놈은…… 다름 아닌 롤란드 디엘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칩을 쓸리고 있는 사람 역시 안타깝게도 리벨이 아는 사람이었다.

리벨은 순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저건 이벨라 자작이잖아!

도박 끊는다며, 이 인간이!

물론 못 끊을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마주치는 건 또 느껴지는 괘씸함의 정도가 달랐다.

저걸 확!

리벨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에서 등짝을 두들겨 패서 끌고 나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도박장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때 미엘이 뒤에서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트레이까지 끌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물건을 끌고 온 듯했다.

리벨은 와인과 잔이 올려진 트레이를 같이 끄는 척하며 물었다.

“왜?”

“공간이 두 개로 유리되어 있습니다. 이곳과 보다 안쪽의 은밀한 공간으로요.”

미엘이 시선을 주는 쪽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두껍게 늘어진 붉은 천 한 장. 그 천에 뭐라도 묻은 것처럼 근처를 오가는 자들도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허락받지 않은 자는 입장할 수 없는 곳이다.

천 틈으로 뭐라도 보일까, 그곳으로 리벨이 시선을 줬을 때였다.

―펄럭.

천이 젖혀지고 나오는 사람을 보면서 리벨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다름 아닌 쥬리 백작 영애였다.

대공비가 한낱 백작 영애에게 긴장할 일이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었지만 리벨은 긴장할 이유가 있었다.

원작에서 그녀는 필레 공작과 눈이 맞아 함께 반역을 일으켰던 인물이었으니까!

볼이 살짝 상기된 채 나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서서서설마? 여기가? 리벨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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