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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91)화 (91/167)

제91화

전통적으로 황가에는 초대장이 발부되지 않는다.

황가에는 어느 사교회에든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암묵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감히 초대장을 보내는 것 자체가 결례라고들 했다.

초대장을 보내는 건 연회의 주인이 수신인에게 ‘이 연회에 오는 걸 허락하겠다’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감히 어떻게 황가 사람에게 ‘허락’을 하겠느냐는 의미에서 황가에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 게 매너가 됐다.

그리고 리벨은 당연히 그 매너에 충실하여, 리엔 황태후나 황제 카리스에게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근데 댁이 여기서 왜 나와?

“황, 황제 폐하께서 드십니다!”

당연히 황제 카리스를 막을 수 없는 디란타의 하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참석을 알렸다.

“뭐라고?”

“폐하께서?”

그리고 귀족들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아무리 시스테인과 카리스가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카리스가 직접 연회에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리벨도 마찬가지였다.

“…….”

리벨이 저도 모르게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시스테인은 별로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시종일관 담담한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이 연회의 세 번째 문제, 아니, 카리스 황제의 참석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아니, 그런 거 알면 나도 좀 알려 달라고!

리벨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뒤늦게 이 700명씩이나 되는 규모의 연회가 황제 카리스에게 어떻게 보일지 짐작이 간 탓이었다.

원작만 생각하느라 일어난 대참사였다.

‘앞으로 시스테인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보도록 하지.’

카리스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그에게 리벨은, ‘시스는 절대 권력에 관심이 없다’며 자신했다.

그야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권력에 관심 없다던 시스테인이 700명 규모의 연회를 열었다?

그것도…… 대공가 별저에서?

OH…….

리벨의 아련한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끼이이……

연회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덕에, 문이 열리는 아주 작은 소리가 연회장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황가의 예복 차림의 카리스.

그가 제국의 주인이라는 걸 알려 주는 두 가지 보물 중 하나, 황가의 검이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리벨은 저승 문이 열리는 걸 본 기분이었다.

*  *  *

연회에 예상치 못한 귀하디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따로 자리를 만들어 모시는 것이 맞았다.

리벨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 나라 예의범절이란 게 그러했다.

덕분에 리벨은 연회장 옆에 따로 준비된 응접실에서 카리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벽 대신 설치되어 있는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연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번거로운 예를 취하는 건 대공비로 충분해.’

‘연회에 찬물을 끼얹으러 온 것이 아니니. 시스테인과 다른 귀족들은 연회를 즐기고 있었으면 좋겠군.’

게다가 카리스는 저런 말로 따라오려는 시스테인을 물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함께 뵙는 것이 예가 아니겠습니까.’

시스테인은 그답지 않게 카리스의 말에 반기 아닌 반기를 들었다.

카리스는 그 모습에 진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나라의 예인데, 네가 다른 잣대라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두 사람 가까이에서 오간 대화였기에, 그 말을 들은 건 시스테인과 리벨 두 사람이 전부였다.

리벨은 시스테인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걸 보았다.

리엔 황태후에게 갔던 첫날, 나가 보라는 리엔의 말에 쌩하니 나갔던 그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같이 있어 주려는 마음은 감동스러웠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카리스는 지금 명백한 의심을 띠고 온 상태였다.

여여여여기서 더 따지면 없던 형제애도 증발이다!

‘시스, 괜찮아요.’

리벨이 두 사람 사이를 간신히 중재했다. 그 후에 들어온 방이 이곳이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신지…….”

리벨은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카리스가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

“그야 동생이 가주가 된 이래 처음으로 이런 규모의 연회를 열었으니,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는 게 맞지 않겠나.”

느긋한 말이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말한 그는 소파에 팔을 걸친 채, 리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입가와는 달리, 눈은 서늘하기만 했다.

누가 봐도 경계하고 있잖아!

완전 고슴도치 인간 버전이잖아!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는 얼굴이잖아!

그의 시선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연회를 열었는지 소상히 말하지 못할까?

“일단!”

리벨은 말을 들은 것처럼 슬쩍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황제가 있는 쪽을 훔쳐보는 간 큰 놈은 없겠지만, 혹시나 연회장 측에서 보일까 싶어서였다.

“저저절대이상한생각으로연게아니거든요.”

물론 말은 안 들릴 테니까 기자 벨 버전으로 말해도 상관없었다.

카리스가 팔짱을 낀 채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안 하던 짓을 한 이유가 뭐지?”

그가 손끝으로 제 팔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정무가 바쁜 틈에, 굳이 이런 연회를 열어서 내 심기를 어지럽힌 이유가 뭔지 말해 봐.”

하필 정무도 바쁘셨습니까? 설상가상이었다. 리벨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이이일단 이건 제가 열자고 한 거예요. 시스는 열자고 한 적 없어요.”

“오.”

카리스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럼 네가 드디어 욕심이 생긴 건가?”

“그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리벨이 바로 답했다. 카리스의 웃음이 더욱 밝아졌다.

“그럼 연회도 싫어하는 네가 이런 규모의 연회를 연 이유가 뭐지?”

“그게…….”

이걸 뭐라고 해야 돼? 리벨은 최대한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일단 권력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가려운 데부터 긁어 주기! 걱정하는 곳부터 털어 주기!

“그렇다면?”

카리스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살인 미소였다.

뭐 때문에 열었다고 하지?

그냥 하고 싶어서요, 같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간 저 얼굴에 빛나는 미소가 지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시스에게 미움받고 싶어서요’, 하고 팩트를 말했다간 더 의심만 받을 게 분명했다.

아니, 근데 진짜라고!

진실을 진실이라 말할 수 없는 리벨은 답답함에 가슴……을 칠 수도 없었다.

대신 리벨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드디어 선전 포고를 할 마음이 들었나?”

그런 그녀에게 카리스가 물었다.

“퍼헙.”

덕분에 리벨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들이마셨던 숨을 뱉어 버렸다.

“절대 아니고요! 아시다시피 제가 연회를 싫어하잖아요?”

긴장한 리벨의 말이 빨라졌다. 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싫어하지.”

그의 시선이 700명이 삼삼오오 모여 하하 호호 대화를 나누고 있는 넓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리벨의 얼굴이 아련해졌다.

그래, 아주 설득력이 없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들어 보세요!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런데 대공비가 되어 연회를 아주 안 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연회를 여러 번 주최하는 것도 정말 싫어서요.”

비록 방금 급조한 이유지만, 진실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냥 한 번에 딱!”

리벨이 검지를 세워 보이며 말했다.

“―크게 하려고 했는데…….”

리벨은 그때까지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웃고 있는 카리스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되나요?”

그 말에 석상 같던 카리스가 손을 펴 보였다.

“안 될 건 없지. 연회를 여는 거야 귀족의 자유이니.”

그의 시선이 연회장 한가운데의 시스테인을 향했다. 그걸 느낀 리벨의 안에서 불길함이 차올랐다.

“다른 의도만 없다면 말이야.”

아, 없다니까 그러네! 그 마음에서 의심을 좀 덜어 두라고요! 의심은 만병의 근원이야!

“전혀 없습니다. 정말로요.”

리벨은 두 손을 다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제 모가지 걸고 보증합니다!”

급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막말이 튀어나왔다. 카리스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네 목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마.”

……아, 예.

리벨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는 달리 비싼 모가지를 가진 카리스가 연회장을 다시 보면서 말했다.

“아무튼 지켜보지. 오늘 연회장에서 뭘 하는지, 그리고,”

그의 손이 테이블 위의 쿠키를 집었다.

“내 동생이 아내 말고 다른 여자랑 뭘 하는지.”

“네?”

다른 여자? 뭔 뜬금없는 소리야?

무심코 연회장을 돌아본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시스테인을, 쥬리 백작 영애가 붙들고 있었다.

“아아아니 저게!”

리벨이 발끈해서 외쳤다. 카리스의 얼굴이 흥미로 물들었다.

“아는 영애인가?”

“이게 참 잘 안다면 알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쥬리 백작 영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리던 리벨이 정신을 차렸다.

아차.

슬그머니 카리스를 돌아보니 그의 눈에선 안광이라도 번뜩이는 듯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해 봐.”

지금 제가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황제를 버리고 뛰쳐나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순식간에 가시방석이 된 소파에서 몸을 들썩이던 리벨이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잠깐.

이쪽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스테인의 형이잖아.

게다가 쥬리 백작 영애는 시스테인을 반역의 도구로 쓰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역이라면 초가삼간도 모자라 잿더미에도 불쏘시개를 한 번 더 쑤실 사람이 앞에 있었다.

“그 불손한 시선은 뭐지?”

“앗.”

카리스의 말에 리벨은 재빨리 눈을 깔았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굴리는 건 잊지 않았다.

현시점에선 쥬리 백작 영애가 반역에 몸담았다는 증거가 없다.

하지만 저렇게 둘이 얘기하는 걸 카리스가 봤는데, 나중에 쥬리 백작 영애가 반역에 관련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면?

카리스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했다.

No…… Nooooooo!

그럴 게 될 바엔 차라리!

“사실!”

리벨은 비장한 얼굴로 카리스를 쳐다보았다.

다시 불손한 시선 운운하려던 카리스가 말을 멈췄다.

눈앞에 있는 동생의 아내는 뭔가 큰 결심을 한 얼굴이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여유롭게 미소 짓는 그의 앞에,

“저 여자가 자꾸 시스한테 연락을 해요!”

“?”

뜻밖의 치정극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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