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그림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폭은 좁다.
그 주인인 황태후 리엔은, 그림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같은 그림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언제 죽어 사라질지 모르는 자들이 서로를 알아봐야 좋을 일이 없으니.
그 때문에 리벨 옆에 붙여진 나인과 다른 그림자들은 아주 특이한 케이스가 되었다.
최초로 이름을 받은 그림자들이자, 최초로 서로 교류를 한 그림자들이 되었으니까.
그 덕에 황태후 리엔의 정보 통제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버렸다.
리엔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별다른 제재를 하진 않았다.
‘아가를 보호하는 데에 필요하다면, 그리하렴.’
그렇게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 덕에 그림자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했다.
어색하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나인과 그림자들은 그 과정에서 뜻밖이지만 뜻밖이 아닌 정보를 알아냈다.
감찰기사단장의 정체가 디란타 대공 시스테인이라는 것.
그림자들도 물론 리벨과 비슷한 경로로, 비슷한 시기에 알아낸 것이었다.
리엔은 그림자들에게 그런 정보를 말해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리벨을 모시면서 수집한 정보로만 얻어 낸 사실이었다.
‘……감찰기사단장의 정체가 그였다니.’
‘그럼 이전에 틸라 저택에서 돌아다니던 자들도 모두 감찰기사였겠군.’
‘어쩐지…….’
그림자들도 놀랐지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림자들은 리벨보다도 더 이 제국의 황가와 권력 관계에 대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제 주인인 리엔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황태후 리엔이 감찰기사라는 중요한 집단을, 손이 닿지 않는 제3의 인물에게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그림자들이 늦게 알게 된 건 단순한 이유였다.
리엔의 그림자로서 일하던 그들의 평생에, 이런 쓸데없는 결론을 낼 정도로 한가한 고민을 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리엔은 그들에게 긴 생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들에게 뿌리 깊게 박아 놓은 생각이 이러하였으니.
‘어릴 때부터 거두어 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소화하는 고난도의 수련은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데에 차고도 넘쳤다.
나인과 다른 그림자들도 리벨 옆에 긴 시간 파견되었다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감찰기사단장에 대해 알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렇게 그들이 진실(?)에 접근하고, 또 다른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
“…….”
그들이 모시는 리벨은 줄곧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림자들이 보기에 리벨은 마치 암살할 기회라도 노리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건 황당하게도 시스테인이었다.
‘그분을 죽일 생각은 아니실 테고.’
‘그럼 왜 기회만 노리고 계시지?’
‘애초에 무슨 기회를 노리고 계신 거야?’
‘단둘이 있을 기회?’
그림자들이 머리를 모아도 리벨의 머릿속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초 단위로 생각이 바뀌고 있었으니까!
* * *
“요지경이다, 요지경.”
어쩌다 이런 인생을 살게 됐을까요?
역시 사람은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리벨은 자서전이라도 쓰고 싶었다.
자서전 전에 유서 먼저 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뭐든 쓰면! 아주 절절하게 쓸 것이다.
[사람이 거짓말하고 살면 안 됩니다.
거짓 위에 쌓인 관계는 거짓말로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로 시작한 관계가 소중해져서 나중에 되돌리고 싶어도, 이미 그 관계의 주춧돌이 거짓말인 이상 회복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시작부터 제가 구라를 쳤습니다! 제가 사실 댁이 고자란 기사를 썼던 벨입니다! 그동안 속여서 죄송했지만 사랑해요!
이러면 시스테인이 얼씨구나 좋아하겠다!
젠장!
전에는 그의 분노만 걱정했다면 이제는 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오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파국……이다…….
이게 리벨이 며칠째 골머리를 앓아 가며 그와 대화할 기회(?)를 노리는 이유였다.
“시스.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그렇게 퇴근한 그를 모처럼 잡으면,
“급전입니다!”
“주인님!”
“마님!”
온갖 연락이 와서 방해하는 바람에 단둘이 남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 단둘이 남는 밤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
“…….”
하지만 밤에만큼은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진실해지는 시간이기에 그랬다.
딱, 기자 벨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고 감찰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말을 받아 주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기자 벨이고 라이아 약초고 모조리 줄줄 불어 버릴 것 같았다.
“며칠 떨어져 있었더니 더하네.”
리벨은 대공비 업무를 처리하다 말고 결국 업무용 책상에 털퍼덕 엎드려 버렸다.
그에게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도, 그의 얼굴만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게 정말 중증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지나가는 금발의 하인을 보고도 화들짝 놀라 일어나 버렸다.
그와 키도 몸집도 생김새도 다른 하인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냥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으으…….”
리벨은 엎드린 채 머리를 싸맸다.
적어도 나가 있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다시 조사를 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더 수확을 올릴 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덜컥!
리벨은 집무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정신을 깨워 주는 듯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라이아 화원도 그러했다.
그 화원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색 폐허로 발견되어 리벨을 기겁하게 만든 곳이었다.
‘……아무래도, 다소 떨어져 있었던 탓에 그랬던 듯합니다.’
라이아 약초의 집단 폐사에 대해 시스테인은 짧게 평했다.
난감한 미소를 짓는 그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며 리벨은 생각했다.
한동안 저택에서 나가면 안 되겠다.
‘주기적으로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스테인은 그렇게 가볍게 말했지만, 리벨은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가 언제 폭주할지 모르니까.
그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대공령에서 지친 얼굴로 돌아온 시스테인이, 저를 갈급하게 찾았던 날을 기억했다.
그의 손길은 아주 간절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그래서 리벨은 더욱 저택을 나설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가 밤에 선택한 건, 밤에 그를 슬그머니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 오늘은 피곤해서요.”
“그럼, 어서 자요.”
옅은 조명 아래에서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물러났다.
너무 말똥한 얼굴로 말했나? 리벨은 슬그머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고 자는 척하려 했지만,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사락, 그가 움직이는 작은 소리에도 리벨은 움찔거렸다.
그와 당장에라도 깊이 닿고 싶은 건 오히려 그녀였다.
그렇게 그녀는 쿵쿵 뛰는 심장을 붙잡고 선잠이 들었다.
“…….”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잠들지 않았다는 걸, 시스테인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그녀가 잠든 게 아니라, 잠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일부러 그와의 밤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면서도 손을 잡아 주면, 금세 포근하게 잠든다는 것을.
“대체 무엇 때문일까.”
시스테인이 뇌까렸다. 덕분에 그녀보다도 더 늦게 잠드는 것이 그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리벨은 그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 그런가 싶어도, 밤에는 그에게서 점점 멀찍이 떨어지기 바빴다.
“…….”
그렇게 시스테인은 마침내 침대에서 떨어질 듯 구석에 박혀 잠들려고 하는 리벨을 발견했다.
리벨이 제 품으로 안기려면 두 바퀴는 굴러 와야 할 터였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없는 아내의 시위 아닌 시위는 그를 슬슬 미치게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다리려고 했지만, 그는 슬슬 마력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건, 조바심이었다.
혹시 내 무엇이 당신을 거슬리게 했는지.
“…….”
수많은 기사들을 관리하는 시스테인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는 리벨의 컨디션도 판단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며칠째 피곤하다며 그를 밀어내는 리벨은 누가 봐도 피곤한 모습이 아니었다.
진정한답시고 숨을 몰아쉬느라 늦게 잠이 들어서 피곤하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시스테인이 알기로, 그녀는 최근에 낮잠을 자는 버릇도 생겨 버렸다.
밤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일까.
시스테인이 보기에 그건 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심란해 보였다. 그 때문에 일부러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실까.”
그 생각은 밤에 끝나지 않고, 낮까지 이어졌다.
시스테인은 그답지 않게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온갖 시끄럽고 복잡한 환경에서도 업무 시간만큼은 칼처럼 지켰던 그의 생활에, 슬슬 금이 가고 있었다.
“……주인님, 피곤하십니까?”
헬리아가 그의 상태를 알아볼 정도였다. 시스테인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집중하지.”
그는 다시 깃펜을 들었다. 하지만 헬리아는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서류를 거꾸로 드셨습니다.”
“…….”
기사단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
시스테인 자신조차 어이가 없어, 그는 결국 서류를 내려놓았다.
마음을 걸어 잠그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된 이후, 그는 이렇게 흔들릴 일이 없었다.
미동도 없던 세상에 흔들림이 가해지자, 그건 점점 그의 일상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지진을 멈출 열쇠는 리벨만이 갖고 있었다.
“좀 쉬고 오지.”
결국 시스테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번엔 리벨을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생각은 십여 년 만에 처음이란 걸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그는 리벨의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쿵쿵.
“리벨.”
그는 결국 리벨의 집무실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