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시스테인이 발견한 게이트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것은 이 게이트 자체였다.
가끔 귀족가에서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 내는 게이트는 불과 몇 시간 정도만 유지될 뿐이었다.
그야 다른 공간과 이곳을 연결하는 마법에는 천문학적인 마력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게이트는 그렇지 않았다.
한시적으로 열리는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함이 전혀 없었다.
놀랍게도 몇 시간을 넘어 며칠, 아니 몇 달 이상도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게이트라는 의미였다.
“…….”
이건 현재 마법의 수준으로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게이트였다.
시스테인 자신이 넘치는 마력을 쏟아부어 게이트를 만든다고 해도, 며칠 유지하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기존에 봤던 게이트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그때 감찰기사가 게이트를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는 마력은 자세히 못 느꼈지만, 게이트의 주변에 펼쳐진 마법진을 보고 있었다.
그 마법진은 확실히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아예 형식이 달랐다.
“전혀 다른 형식의…… 마법을 쓴 것 같습니다.”
“…….”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게이트는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게이트가 아니야. 적어도 몇 달 이상은 유지될 수 있다.”
그 말에 감찰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마법사가 대륙에 있다는 보고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야 없었을 것이다. 시스테인이 게이트를 쏘아보았다.
“이런…… 게이트를 본 적도 없고요. 이런 건 대륙에 유일할 겁니다.”
실제로 이런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마법사가 만일 필레 공작과 그 살롱과 함께 ‘불미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다면, 감찰기사단에서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해일 같은 마력으로 이쪽을 몰아붙일 테니까.
그가 긴장으로 입술을 깨물 때였다.
시스테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게이트가 이 대륙에 없는 건 아니야.”
“예? 이런 것이 다른 곳에도 존재한단 말씀이십니까?”
감찰기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럼 이런 수준의 마법사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시스테인은 게이트로 손을 뻗어 보았다.
“……대공령에, 있다.”
감찰기사가 멈칫했다. 그 역시 디란타 대공령에서 온 디란타의 기사이기도 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백 년 전 마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마물들에게서 해방된 대륙.
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
그곳이 바로 디란타 대공령이었다. 디란타 대공령은 백 년 전 전쟁 당시 마족들이 마지막으로 물러섰던 전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닫지 않고 간 게이트는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구멍이 되었다.
물론 디란타 대공령의 그 어떤 기사도 그 게이트의 실체를 본 자는 없었다.
그 파도처럼 쏟아지는 마물들을 헤치고 게이트로 갈 수 있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주인인 시스테인은 그 마물 게이트를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감찰기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디란타 대공령에 주기적으로 돌아와 마물들을 쓸어 버리는 이 대공령의 주인은, 자신이 출정할 때에는 그 누구도 대동하지 않았다.
안전 문제로 말렸던 기사들이 먼저 마물들에게 당한 뒤로는, 당연한 관례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그가 마물과 싸우는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그가 반쯤 전설로 취급되는 마물 게이트를 봤다고 해도, 함께 본 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본 적이 있지. 닫을 순 없었지만.”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디란타 대공령의 마물 게이트.
백 년 전, 마족들은 차원을 건너와야 했기 때문에 게이트와 관련된 마법이 발달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게이트를 연결해 대륙을 침공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게이트를 만든다면, 아스테아령에서 수도 북서쪽의 카실라 대장간까지 연결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마족의 방식으로 게이트를 열려고 했다면 산 제물이 필요했을 거라는 점.
“…….”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특히 리벨이 발견한 편지에 드러난 그 세모.
세모는 일반적으로 미완성을 뜻하기도 했다. 만일 이 게이트의 크기가 작은 것이, ‘미완성’이기 때문이라면?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단장님, 사람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택의 사용인도 아닐뿐더러 연회에 참석한 자들도 아닙니다. 게다가 아스테아 백작 부인이 직접 그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시스테인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은 이 게이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마법사들인가?”
그 말에 감찰기사는 신중하게 답했다.
“움직임을 보아 검을 수련한 자들은 확실히 아닙니다. 그런데 마법사라기에는 지나치게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과는 다릅니다.”
시스테인은 보고를 들으며 게이트가 있는 방을 나섰다.
“일단 숨지.”
그가 손짓했다. 다행히도 이 복도에는 숨을 만한 다른 방이 많았다.
그리고 숨죽여 없는 것처럼 기척을 지우는 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 * *
불쌍한 연기파 감찰기사 레오와 리벨은 홀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원래 디란타 대공 부부가 연회를 크게 즐기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았으니, 다른 귀부인들보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활동이 많았다.
오늘 리벨의 컨셉은 이거였다.
“가면무도회는 다른 연회보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요컨대 새로운 이벤트에 들뜬 컨셉! 이러면 설치고 다녀도 눈에 띄지는 않는다.
문제는 상대 연기자(?)가 얼마나 숙달된 연기자냐는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정말 시스테인과 닮아 있었다. 아무리 성대모사를 잘 해도 말을 많이 해서는 들킬 수도 있다.
그래서 레오는 리벨이 말을 걸기 전에는 입도 열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의 연기력은 행동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쨍!
잔을 든 채 서로를 보며 잔을 부딪치는 일상적인 동작이나, 춤을 출 때의 모습 등.
무뚝뚝하면서도 예의는 철저한 것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완벽한 시스테인 그 자체였다.
아니, 이렇게 연기를 잘 하면서 아까는 왜 그랬지?
―또각, 또각, 또각.
춤을 추며 박자에 따라 걸음을 옮기던 리벨은 가면 안에서 마음껏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연기에 워밍업이 필요한 타입? 몸이 풀려야 연기가 잘되는 타입?
레오가 들었다면 절규했을 생각이었다.
“어?”
그때 리벨의 눈에 불쌍한 감찰기사 레오 너머로, 흥미로운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는 아스테아 백작 부인.
백작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거야 그럴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녀가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데리고 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뭔가 이상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새까만 로브에, 감기라도 걸렸는지 새까만 천으로 입가도 가리고 있었다.
저 생활 방역에 철저한 사람들은 뭐지?
“잠깐만.”
리벨은 레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스텝을 밟으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리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쉬고 와요, 우리.”
그 말에 레오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연회 중간에 쉬는 거야 흔한 일이다. 시선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리벨과 레오는 사람들의 여상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홀 한쪽의 방으로 들어섰다.
“많이 힘드십니까?”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레오가 물었다.
가면을 벗은 그는 돌발 상황을 분석하려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원래 계획에는 두 번의 휴식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아니고.”
리벨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하녀 차림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그녀는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한 미엘이었다.
“나, 옷 좀 정리하려고.”
“……!”
레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연기엔 능하지만, 인생에 여성과의 접점은 제로였던 그는 발을 헛디딜 정도로 당황했다.
물론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하필 가문의 안주인이자 단장님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
아까 단장님은, 마님을 에스코트하느라 어깨에 손 얹은 것만으로도 그렇게 쏘아보지 않으셨던가?
근데 옷매무새를 정리하러 온 방에 눈치도 없이 들어왔다?
이 사실을 단장님께 들켰다간…….
“그, 그, 죄죄송합니다! 나가 있겠습니다!”
불쌍한 감찰기사 레오는 총알같이 방에서 튀어나갔다.
문을 열기 직전에 간신히 직업 정신을 빛내며 가면을 쓴 채였다.
“……너무 당황하네.”
리벨이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연기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방금까지의 연기는 그냥 영혼을 끌어모아서 한 거?
정말 괜찮은 거야?
리벨은 찜찜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가 미엘을 돌아보았다.
“방금 아스테아 백작 부인이 이상한 사람들을 데리고 갔거든.”
“보았습니다.”
그림자 미엘이 깍듯하게 답했다.
“쫓을까요?”
그림자들에게 쫓게 하는 게 안전하고 좋긴 하겠지만……. 리벨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아무래도 수상해. 느낌이 와.”
기자의 감이 온다!
아스테아 백작이 수상한 세력과 손잡고 있다는 증거를 잡아낼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 제가 직접 쫓아 보겠습니다.”
“아니, 내가 쫓을게.”
“예?”
미엘이 멈칫했다. 수상한 자를 쫓는다면 필시 위험할 터였다.
“안전상의 문제가―”
“물론 있지. 그 문제.”
아주 크지. 음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리벨은 풍성한 드레스 사이에 숨겨 온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혹시 넌 이거 쓸 줄 아니?”
“…….”
미엘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는 것 정도는…….”
“그걸론 안 돼.”
너도 나인처럼 혹시 모가지 날리고 몸만 찍으려는 거 아니지?
결정적인 현장을 찍어야 하는데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해선 곤란했다.
“내가 직접 갈게. 대신 저 불쌍한 레오 경 좀 돌봐 줘. 아까 보니까 연기하는 게 영 어색해. 뻣뻣하게 굳었더라.”
리벨은 드레스와 가발과 가면을 벗어 미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미엘은 할 수 없이 그녀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걸 거들어 주었다.
“네 하녀복은 나 주고.”
다행히 두 사람의 체형은 비슷했다. 리벨이 바깥을 흘끗 보다가 미엘을 돌아보았다.
“레오 경보다는 연기 잘할 수 있지?”
그림자가 잠입 전문이 아니라 암살 전문이라고 해도, 연기는 어느 정도 하지 않던가?
게다가 나인은 아예 무슨 버튼 누르면 불 껐다 켜지는 것처럼 사람이 바뀌던데?
“…….”
리벨의 시선에 미엘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고 있었다.
그녀도 아까 삐걱거리던 레오의 모습을 봤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제가 리드하겠습니다.”
“리……드까진 필요 없고.”
얘가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하녀복으로 완전히 갈아입은 리벨이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갈색 머리칼을 가진 평범한 여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바깥을 가리켰다.
“잠깐만 나인 척 부탁할게. 레오 경한테는 쉿. 알지?”
시스테인이 대체 그녀가 무슨 직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잠입 취재에 능숙하다는 사실을 알려 줘서는 곤란했다.
……기자인 건 들켜도, 아직 벨인 건 들키면 안 되니까.
변신 능력까지 있다는 걸 알면 틀림없이 의심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리벨 얼굴로 다닐 수도 없으니.
리벨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새 미엘은 완벽한 리벨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의 발랄한 걸음걸이까지 흉내 내고 있었다.
“와, 누구랑 다르네.”
거울 같네, 완전! 리벨은 크게 만족했다.
미엘은 그녀처럼 가볍게 인사하고는 방을 나섰다. 레오는 의심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디서 시스테인이 보고 있을까, 떨리는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