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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3)화 (113/167)

113화

젠은 주변 정리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자화자찬하면서.

비밀 공간 안에 있는 여자는 수상한 자였지만 살의도 없었거니와, 단장님을 해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단장님께서 직접 자리를 비우라 하셨으니.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잠입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자잘한 흔적들을 정리하고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등.

“클리어.”

그는 이 기묘한 복도는 물론이고 바깥에 사람이 없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 기묘한 벽 앞에 섰다.

안의 소리는 바깥으로 하나도 안 새어 나오는 것 같은데, 노크하면 들리려나?

―툭툭.

그는 아주 살짝 벽을 두드렸다.

그리고 벽을 두드리자마자 미닫이문은 소리 없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젠에게 익숙한 사람 1과 익숙한 사람 2가 있었다.

“?”

익숙한 사람 1과 낯선 사람 1이 있어야 하는데?

“????”

젠은 유령이라도 본 표정이 되었다.

“마, 마, 마……”

입을 떠억 벌린 감찰기사 젠의 시선 끝에는 리벨이 있었다.

아까 그 수상한 하녀 차림의 여자…… 아니, 그 여자의 차림을 한 마님이다!

젠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마는 나중에 찾고 일단 들어와.”

그런 그를 리벨은 벽 안으로 잡아끌었다.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 벽은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간 안이 빛 하나 없는 어둠에 잠긴 건 물론이었다.

“정리는?”

그때 시스테인이 물었다. 젠은 당황했던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말했다.

“마쳤습니다. 빠져나가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이제 나가자고 노크한 모양이었다.

괜히 끌고 들어왔네!

리벨이 난감한 얼굴로 눈을 깜빡일 때였다.

“곧 따라 나가지.”

시스테인이 말했다. 먼저 나가 있으란 소리였다.

“예.”

젠의 답에, 리벨은 다시 문에 손을 댔다.

소리 없이 빠르게 미닫이문이 열리고, 젠이 공간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그는 리벨을 보며 유령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렇게 다시 둘만 남은 공간에서, 리벨이 입을 열었다.

굳이 둘만 남은 이유는, 답을 들어야겠다는 그의 의지이리라.

제게 더 숨기는 것이 있는지. 제가 다시 한번 섭섭함을 느껴야 하는지.

“……저택을 빠져나가면 말해 줄게요.”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엔 너무 길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무심코 그에게 상처를 남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이 물었다.

“제가 지금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다 해도?”

그래도 답을 회피할 거냐고 묻는 듯했다. 리벨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섭섭하다 해도?”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

어둠 속이지만 리벨은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분명 담담한 표정일 것이다.

하지만 푸른 눈동자는 다소 흔들리고 있으리라.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시스, 당신이 마음 아파하길 원하지 않아요.

내게 실망하길 원하지도 않아.

하지만 이 만남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됐던 것이었다.

언젠가는 바로잡고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에게 상처를 준 대가를.

“……네.”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답해야 했다.

차라리 내게 섭섭했으면 좋겠어.

리벨이 생각했다.

그가 섭섭하고 섭섭해서 내가 싫어지거든, 그땐 모든 걸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린 시절의 그가 무력하게 손가락질받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살린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당신이 유일하게 마음 놓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말을.

“…….”

시스테인은 그녀의 말에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는 리벨의 말보다도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 닿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요동치는 감정은 시스테인의 마력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그 감정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시간 제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석해 온 그에게, 그 정도는 간단했다.

하지만 그는 그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닿아 와 그를 요동치게 만드는 그녀의 감정은, 슬픔과 닮아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너무 짙은 슬픔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비밀이, 내 마력을 이렇게 뜨겁게 끓어오르게 할 정도로 당신을 고뇌하게 하는지 짐작도 안 가서.

“이번 일부터, 끝내죠.”

그가 말했다. 리벨의 손을 부드럽게 잡은 시스테인이, 그녀의 손을 벽에 대었다.

―…….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복도로 두 사람이 걸음을 내디뎠다.

*  *  *

게이트가 있는 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복도를 나서다 말고, 약속이라도 한 듯 게이트가 있는 방 앞에 섰다.

―달칵.

시스테인의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문고리를 돌렸다.

리벨은 문틈으로 그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고오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전에 봤던 게이트와는 느낌이 새삼 달랐다.

이전에 봤던 것이 냇물에 불과했다면, 눈앞에 있는 건 거대한 강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느껴지는 위압감이 달랐다.

“……저번에,”

그래서 리벨은 무심코, 제가 저번에 필레 공작의 살롱에 갔다는 이야기를 할 뻔했다.

저번에 봤던 게이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지만 시스테인은 제가 직접 그 살롱에 간 걸 몰랐다.

으으, 거짓말투성이야! 리벨이 머리를 싸맬 때였다.

방 안으로 들어선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이 게이트는 비싼 값에 마법사들이 잠시 만들곤 하는 게이트와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그는 게이트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가 마력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는 기사이지 마법사가 아닐 텐데?

“게이트에 대해 잘 아세요?”

“……어떤 특정한 게이트에 대해서는, 마법사들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시스테인은 눈을 가늘게 뜬 채였다.

“특정한 게이트?”

리벨이 뇌까렸다.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는 게이트로 손을 뻗었다.

―우우웅!

손끝에 닿아 오는 마력은 시스테인에게조차 짜릿한 파장을 줄 정도로 강력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이트라면 이런 느낌은 없어야 했다.

“이건,”

그리고 시스테인은 이런 형식의 게이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디란타에 있는 게이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디란타령에 게이트가 있었나?

비록 디란타령에 직접 가 본 적도 없는 날림(...) 대공비였지만 서류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봤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알기로는 디란타령에 현재 사용되는 게이트는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게이트를 유지하는 데에 드는 마력석만 천문학적인데 쓸데없이 게이트를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디란타령이 무슨 대규모로 군사를 옮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디란타령은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와 마물을 막는 데에만도 바쁜―

……잠깐, 마물?

마물???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마물이 넘어오는 게이트요?”

똑같은 괴물인 몬스터와 마물이 구분되어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둘의 기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물은 오직 이 대륙에서 디란타 대공령에서만 나타났다.

그곳에 마물을 끊임없이 쏟아 내는 게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예.”

시스테인은 간단하게 그녀의 말에 답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아니, 그건 사람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디란타 대공령의 마물 게이트는 100년 전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

제국의 오랜 골칫거리.

그걸 100년 동안 대륙의 패자로 존재한 제국이 없애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못 해서 못 없앤 거지, 뭐.

100년 전 대륙 전쟁.

저 마물 게이트를 흔적으로 남기고 간 자들은 당연히 마족들이었다.

제국의 군사력에 패퇴한 그들은 게이트 너머 그들의 땅으로 사라지면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를 닫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인간들의 기세에 떠밀려 쫓겨났으니 뒤처리(?)도 못 하고 간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그건 인간들의 영원한 숙제가 되었다.

자신들의 땅이자 다른 차원에서 인간계로 넘어와야 했던 마족들은 게이트 마법을 기가 막히게 발전시켜 왔지만, 인간계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에서 마물을 처리하기도 바쁜데 게이트에 대해 연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게이트에 대해 아는 인간이 100년 전 당시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마족과 손이 닿은 모든 변절자들을 처벌한다.]

있었는데 없어진 게 문제지!

당시 황제의 황명에 따라, 마신전의 사제들은 모조리 목이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 게이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만한 사람은 싹 다 죽어 없어진 셈이었다.

“디란타령의 게이트를 사람이 만든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이 게이트는 모르겠습니다.”

시스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디란타령의 주인인 그가 디란타령의 마물 게이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원래 그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인간 수준의 마력으로는, 심지어 마력이 들끓다 못해 폭주할 정도로 많은 그조차도 게이트를 만들어 긴 시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게이트는 일방통행도 아니고 쌍방향으로 통하는 게이트였다.

마치 마족들이 100년 전 침공 당시에 만들었던 게이트처럼.

“……이것도 사람의 손에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시스테인은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 마력으로도 게이트를 만들어 유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강력한 마력을 쏟아붓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면 넘치는 마력을 게이트를 만들어 유지하는 데에나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것이 아닌 방식으로 게이트를 만든다면 가능할 겁니다. 이것도, 그렇고요.”

리벨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이게 설마, 마족이 만든 게이트라고?

원작에서야 마물 이야기로 계속 마족 떡밥을 던져 주긴 했지만, 100년 전에 사라진 퇴물들 취급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저번에 통과했던 게이트랑 느낌이 다른 건가?

게이트의 끝에 리벨의 손이 닿은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갑자기 게이트가 크게 일렁이며 반응했다.

“!”

놀란 리벨이 손을 떼었다. 하지만 그 반응은 그대로였다.

“이이이거왜이래요?”

리벨이 놀라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을 때였다. 시스테인의 시선은 그녀의 손에 닿아 있었다.

그가 리벨의 손을 붙들었다.

“리벨.”

그가 그녀의 눈에 보일 만큼 그녀의 손을 내려 주었다.

“……!”

무심코 제 손을 내려다본 리벨은 눈을 크게 떴다.

손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아마 아까 작은 공간에서 뭔지 모를 것에 찔린 상처이리라.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상처. 아니, 그 상처에서 난 피.

―우우웅!

그건 연둣빛의 빛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반딧불 같은 빛의 가루들이 향하는 곳은, 게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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