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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6)화 (116/167)

116화

한편 가면무도회가 한창인 홀.

무도회는 평소와 같이 활발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가면무도회가 다른 연회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다른 연회에 비해 서로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반 연회에선 높은 귀족과 말 한마디 나눌 기회도 못 가졌던 약소 귀족이, 가면무도회에서 높은 귀족과 친해져서 말도 안 되는 연줄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가면무도회에 권세 있는 귀족이 참여하게 되면, 그만큼 첨예한 눈치 싸움이 이루어졌다.

평소에는 감히 눈길조차 줄 수 없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였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높은 귀족에게 대놓고 들이대면, ‘속 보인다’며 뒷이야기를 들으니 눈치를 잘 봐야 했다.

그리고 그 눈치 싸움의 한가운데에 이는 건 당연히, 디란타 대공 부부였다.

아니, 정확히는 디란타 대공 부부인 척하는 감찰기사 레오와 그림자 미엘이었다.

“오늘따라 들뜨네요, 시스.”

미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물론 레오가 시스테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는 제가 손잡고 있는 사람이 대공비 리벨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대공비 전하께서 이렇게 연기를 잘하신단 말인가?’

감찰기사 신입들이 연기를 이분의 반만큼이라도 하면 스트레스로 머리카락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레오는 거듭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귀부인인 리벨이 연회를 즐기는 게 연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의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자신을 에스코트하는 상대가 진짜 자신의 남편이 아님을 알면서도.

덕분에 ‘연회장에서 대공 부부가 시선을 끄는 사이, 저택을 조사한다’는 계획은 정말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제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에도 능숙해 보였다.

“와, 푸른 공작 부인이네요?”

화려한 공작의 깃털로 장식된 가면을 쓴 부인을, 리벨은 그렇게 불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대공비는 디란타 대공과 말하고 싶어 하며 다가온 자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로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디란타 대공 역을 맡은 레오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배려했다.

무엇보다, 시스테인 폰 디란타는 연회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실은 사교계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공 부부가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리벨이 그의 몫까지 연회를 즐겨 주어야 했다.

그리고 레오가 보기에, 제가 에스코트하는 대공비 리벨은 그 역할을 정말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부인!”

“물론이에요!”

푸른 공작 부인이 물러가고 나자, 리벨은 기지개를 켰다.

귀부인이면서도 은근히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리벨 폰 디란타다웠다.

그런 그녀에게서 귀족들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피곤하십니까?”

완벽한 연기를 하는 대공비 전하.

그런 분께서 기지개를 켠다는 건 한 가지 뜻밖에 없다.

“조금요.”

그렇게 말하는 대공비를 보며 레오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리벨 자신은 들떴지만, 시스테인은 이런 연회를 즐기지 않아 난감해하면서도 리벨을 챙겨 준다’는 컨셉을 리벨 쪽에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춤도 잔뜩 췄는데 좀 쉴까요?”

대공비가 손을 펴 보이며 물었다. 레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낮게 내리깐 목소리는 레오의 장기, 시스테인 흉내 내기였다.

물론 평소엔 쓸모없는 장기였지만 시스테인 폰 디란타의 역을 해야 하는 지금은 매우 쓸모 있었다.

가끔 감찰기사들조차 속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감쪽같았으니까.

―또각, 또각.

레오는 대공비를 조심스럽게 에스코트해 구석의 테이블로 향했다.

그녀의 어깨를 감쌀 때, 손이 살짝 떨렸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대공 전하께서 돌아오셔서 이 모습을 보시면 또 무섭게 쏘아보시겠지!

하지만 전하, 어쩔 수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연기입니다!

그는 속으로 절규 아닌 절규를 하며 리벨을 이끌었다.

“…….”

그리고 그런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미엘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이렇게 어색하게 연기했다간, 들키기 딱 좋은데.

―탁.

미엘은 레오가 빼 준 의자에 앉아 한숨을 폭 내쉬었다.

“고마워요.”

레오는 그런 그녀의 옆, 테이블에 살짝 기대어 섰다.

그렇게 쉬는 척할 때였다.

“?”

레오는 먼 곳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이쪽으로 사인하는 건 다름 아닌 감찰기사 젠이었다.

아, 수색이 끝나셨나?

그렇게 생각할 때, 레오는 젠 옆에 다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

순간 놀랐지만, 그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저자는 대공비 전하의 기사인데?

그녀 역시 이쪽으로 사인을 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레오 자신의 옆, 대공비 전하에게.

대공비 전하께서 저런 수신호를 알아들으실 리가―

“아무래도 룸에 들어가서 쉬어야겠어요.”

그때 대공비가 일어나며 말했다.

알아들으시네?

레오는 순간 연기를 잊을 뻔했다.

“그럼, 이쪽으로.”

말도 더듬을 뻔했다.

하지만 그의 프로 정신은 끝내 시스테인의 목소리를 유지해 냈다.

어차피 쉬러 테이블 구석으로 빠졌던 참이니, 아예 룸으로 들어가 쉰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기는 자는 없을 터였다.

―달칵.

레오의 조심스러운 에스코트와 함께,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몇 시간 전, 레오와 시스테인이 바꿔치기(?)됐을 때 썼던 그 방이었다.

방문이 닫히기 전까지 나는 시스테인 폰 디란타다.

레오는 프로 연기자다운 생각으로 고개를 쳐들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

그리고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그는…… 유령을 보고 있었다.

“히끅.”

덕분에 딸꾹질까지 했다. 시스테인 폰 디란타고 뭐고 없었다.

왜냐면 방 안에 있는 대공비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대, 대대대대공비전하?”

왜 여기 계십니까?

레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쫘아악 돋았다.

그그그그럼 나랑 지금까지 계시던 분, 아니 있던 사람은?

레오가 고개를 홱 돌렸을 때였다.

그가 대공비라고 믿었던 여자, 미엘이 가면을 벗었다.

“고생했어, 미엘 경.”

리벨의 말에 레오는 입을 떠억 벌렸다.

대공비 전하가 아니었다고……?

그가 멍하니 굳어 있을 때였다. 리벨이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레오 경의 연기가 좀 어색하더라고요.”

“…….”

“…….”

그 말에 시스테인은 레오를 돌아보았다. 같은 감찰기사인 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젠은 믿을 수 없다는 눈이었다.

레오 경이?

연기에 어색하셨다고?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는 기술을 다른 기사들에게 가르쳐 줄 정도로, 레오는 감찰기사 내의 다른 기사들에 비해 연기가 뛰어난 편이었다.

게다가 연기할 수 있는 폭도 넓었다.

길가의 시정잡배 연기가 가능한 건 물론이고, 동서남북부는 물론 중앙 사교계의 모든 매너를 다 익히고 있는 게 레오였다.

한마디로 그가 소화할 수 없는 역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레오 경의…… 연기가…… 어색해……?

젠은 오늘이 마치 꿈 같았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물론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멍한 시선이 마주칠 때였다.

“그가 거슬리게 굴었습니까.”

시스테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아뇨, 그 정도는 아니고요.”

리벨은 고개를 홱홱 저었다. 요즘 ‘우리 시스가 달라졌어요’를 찍고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시스는 황태후 리엔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레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자꾸 에스코트하는데 떨더라고요.”

그거만 어색했어요, 그거만.

그렇게 강조한 리벨이 미엘을 돌아보았다.

“그렇지?”

미엘 역시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다.”

중간에 좀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건 미엘 자신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정도면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자가 아닌 이상, 선방한 셈이다.

미엘은 나름 후한 평가를 내려 주었다. 그러면서 리벨에게 가면을 건네주었다.

“그럼 이것을.”

“좋아, 고생했어.”

리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받아 들었다.

그동안에도 레오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는 기분이었다.

대체 언제 바뀌신 거지?

가면을 벗은 미엘이라는 기사는 철두철미한 프로다운 얼굴로 레오에게 인사해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

레오가 어버버거리는 사이 그녀는 드레스룸으로 쏙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하녀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달칵.

레오는 그녀가 방 밖으로 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중얼거렸다.

“대, 대체 언제……?”

더듬거리는 그의 말에 리벨이 답해 주었다.

“옷 정리할 때.”

레오가 리벨을 돌아보았다. 리벨은 조금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 보러 갈 게 있었거든.”

“아니, 그…….”

레오가 입을 벙긋거렸다.

분명 대공비 전하께서 어디를 돌아다니셨다면, 다른 감찰에게서 연락이 왔을 텐데?

하지만 그런 연락은 전혀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감찰기사단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감지하는 게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따돌리셨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그것도 심지어 레오 자신은 대공비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런…….”

레오가 입을 벙긋거렸다.

그는 심각하게 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은퇴할 때가 됐나?

32세, 창창한 나이의 레오는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달칵.

그러는 사이 하녀복 차림이었던 리벨도 다시 화려한 대공비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그럼 갈까요.”

시스테인은 그런 리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러운 에스코트였다.

“…….”

물론 그러는 사이 서늘한 시선을 레오에게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 레오가 리벨의 어깨에 손을 얹을 때와는 새삼 다른 느낌의 시선이었다.

대충 레오가 감으로 해석한 바는 이러했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

아니, 제대로 했는데요!

억울했지만 레오는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원래 감정 하나 드러내지 않아 모시기 힘들었던 상관이었지만, 지금은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한 번씩 저렇게 드러내시는 날카로운 감정들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감정이 없던 것처럼 조용했던 분이 갑자기 변하시니 맞춰 모시기가 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머릿속을 볶아 댈 때였다.

―탁.

문이 닫혀 버렸다.

“어?”

혹시 호위기사는 필요 없으십니까?

멍해진 레오가 곧 정신을 차렸다.

제가 너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그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그렇게 말하는 듯했던 상관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아니, 아니라고요!

그는 속으로 절규했다.

전 억울합니다!

누가 대공 전하께서 그렇게 죽일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시는데 마님의 어깨에 로맨틱하게 손을 올려놓을 수 있겠느냐고요!

“으으!”

멍하니 있는 사이에 제복 베스트와 겉옷, 가면은 언제 가져가셨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레오가 하인 복장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번 임무는 대차게 망한 것 같다!

그는 감찰기사단 본부로 돌아갈 생각에 머릿속이 까마득해졌다.

그곳에서 마주친 단장님이 뭐라고 하실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오로지 그 말만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레오가 절망스러운 미래를 내다보는 사이, 리벨과 시스테인은 무사히 연회장에 복귀했다.

이번 임무가 사실상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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