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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7)화 (117/167)

117화

시스테인과 리벨은 가면무도회가 끝나고 무사히 디란타 저택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돌아오자마자 얻은 정보를 정리해야 했다.

특히 시스테인은 감찰기사단으로서 조사를 나갔던 만큼, 그 정보를 반드시 기록해야 했다.

―달칵.

시스테인은 감찰기사단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마력으로 특정 인물만 열어 볼 수 있도록 잠겨 있는 서류였다.

그 안에 그의 글씨가 쓰여 나가기 시작했다.


[장소 : 아스테아 가] 

장소부터 오늘 하루 있었던 일까지.

게이트의 존재를 알게 된 것부터 게이트가 어디를 향하는 것이었는지, 무엇보다 그 게이트를 수리한다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

그리고.

“…….”

거침없이 움직이던 펜이 한 곳에서 멎었다.

사실 시스테인은 이 서류철을 펼 때부터 이 부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쓰는 내내, 그리고 쓰기 직전인 지금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필레 공작만이 그들을 부를 수 있다]

리벨이 말해 준 정보를 쓰는 건 좋았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정보 출처]

출처를 써야 했다.

이전 같았으면 고민 없이 썼을 것이다.

‘조력자’라고.

하지만 그는 리벨을 생각하면서, 쉽게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조력자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껏 리벨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그녀가 거짓말했다기보다는 제 쪽에서 오해했다는 쪽이 맞을 터였다.

그렇다고 증거 출처에 ‘디란타 대공비’라고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시스테인의 펜이 움직였다.

[정보 출처 : 조력자]

원래 그는 이렇게 허술하게 서류를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서류는 빈 공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야 당연하다.

숨길 것 없이 모든 것을 써야 하는 감찰기사단 내부 서류인데, 리벨의 능력에 대해 쓰지 않으려고 하니 빈칸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그녀의 변신 능력을 감찰기사단 서류에 써 봐야, 그녀의 능력을 알리기만 하는 꼴이다.

그녀를 ‘조력자’로 보고 처리한다고 해도, 그녀가 가진 능력은 비밀로 해 주는 것이 관례에 맞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빈 공간이 많다.

무엇보다 잠입한 인력 규모를 생각해 볼 때, 너무나도 빈약한 정보만을 얻은 꼴이 되었다.

특히 침입한 자들을 어떻게 추적했는지.

리벨이 얻은 정보를 쓰려면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다.

아니면, 보다 확실한 정보를 쓰거나.

가령, 사진이라든지.

“…….”

서류의 빈칸을 보던 시스테인은 그녀가 변신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파앗!

전신에서 살짝 빛을 발하면서, 모습이 순식간에 바뀌는 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특히 저를 올려다보는 자줏빛 눈동자만큼은 전혀 변치 않는다는 점이.

키도, 머리칼도, 피부도, 이목구비도 변하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그 눈만큼은 그대로였다.

어떻게 첫눈에 리벨임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눈은 변하지 않았다.

“…….”

그리고 시스테인은, 그 눈을 어제 아스테아 저택이 아니라 다른 저택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탁.

서류를 내려다보던 그는 결국 서류철을 덮었다.

그리고 집무실에 서 있던 집사 헬리아를 돌아보았다.

“리벨은?”

“오늘은 일찍 업무를 끝내시고 침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로 들어갔다면 보통 잠드셨다는 뜻이지만…….

시스테인은 확신했다.

그녀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나도 이만 쉬지.”

시스테인이 몸을 일으켰다.

업무를 하다 말고 자리를 벗어나는 건, 시스테인 폰 디란타를 긴 시간 모신 헬리아도 자주 본 모습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헬리아는 조금 놀란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시스테인의 머릿속은 바빴다.

*  *  *

시스테인은 잠시 후, 평소와는 새삼 다른 기분으로 침실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리벨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어서 와요.”

리벨은 그가 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에 발을 흔들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한 사람처럼.

“…….”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를 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달칵.

문이 닫히면서, 침실에는 온전히 두 사람만이 남았다.

조명은 침대가의 조명 하나뿐이었다. 천이 덮이지 않아 침대가만큼은 환했다.

시스테인은 리벨 앞에 다가가 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침묵 끝에 리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많으실 것 같아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리벨의 능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스테아 저택을 떠나 자료를 정리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눈앞에서,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그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틸라 저택에서 본 하인에 대해서도.

시스테인은 뒷말을 굳이 잇진 않았다.

그런 그에게 리벨이 입을 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능력이에요. 두 시간 동안 변할 수 있는데…….”

리벨은 제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뭐든 알고 있는 리엔 황태후조차도 이 능력이 정확히 어떤 제약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터였다.

“변신할 수 있는 모습은 세 가지고, 어떤 모습이든 눈동자 색은 변하지 않아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틸라 저택의 그 하인이 다시 생각나서.

“세 가지 모습이라 하셨습니까.”

시스테인이 뇌까렸다.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금 심장이 두방망이질치는 기분이었다. 한 가지 모습은 이미 들켰다.

검은 머리 여자의 모습.

하지만 두 번째 모습 역시 이미 들켰을지 모른다.

틸라 저택에서 마주쳤을 때의 그 모습을 그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모습은 기자 벨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모습이었다.

리벨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을 때였다.

“그럼 아스테아 저택에서 말고, 변신한 채로 저와 다른 곳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시스테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리벨은 멈칫했다.

부인하고 싶은 질문이지만, 시스테인의 목소리에는 거의 확신이 묻어 있었다.

역시 오늘 밤엔 완전히 들킬 모양이다. 리벨이 살짝 숨을 터뜨렸을 때였다.

시스테인이 그녀의 옆에 걸터앉았다.

폭신한 침대가 출렁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비틀거릴 새도 없이, 시스테인이 말을 이었다.

“전, 만난 적 있는 것 같은데.”

역시나 짙은 확신이 묻은 말이었다.

“…….”

리벨은 짧게 고민했다.

이제 정말 한 발짝이었다.

시스테인이 틸라 저택에서 만난 그 하인이 리벨 자신이라는 걸 완전히 확신하게 된다면.

그는 틸라 상단의 소금값 담합 사건 당시 벨이 그 저택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그는, 내가 벨인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는 괜찮을까.

리벨 자신은 물론 안 괜찮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불안한 그의 상태였다.

시스테인은, 어린 시절 이후 줄곧 찾아 헤맸던 자신의 안식처가 사실은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거짓말투성이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스.”

리벨이 결국 입을 떼었다.

“예.”

시스테인의 답은 바로 돌아왔다. 리벨은 그를 살펴보다가 물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나아요, 뒤통수치는 사람이 나아요?”

기이한 질문이었다. 둘 다 좋은 건 아닌데.

그나마 나은 쪽으로 택하고 싶었다. 그런 이기심이 들었다.

리벨 자신을 위해서보다도, 상처받을지 모르는 시스테인을 위해서.

리벨의 질문에 시스테인은 불쑥 답했다.

“다 좋습니다.”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은 채였다.

너무 답이 빠른 덕에 리벨은 순간 제 질문을 잊을 뻔했다.

“네?”

“거짓말쟁이든, 뒤통수를 치는 배신자든.”

시스테인이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기울여 다가갔다.

―탁.

그의 팔이 리벨의 몸 뒤를 짚었다.

푹신한 침대가 눌리면서, 덕분에 리벨의 몸이 살짝 그의 팔 쪽으로 넘어갔다.

리벨이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그게 리벨, 당신 이야기라면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시스테인이 말을 이었다. 리벨이 살짝 숨을 토해 냈다.

“……아.”

침대 위에서 비틀거리는 그녀를, 시스테인의 단단한 팔이 잡아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곧은 빛으로 리벨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말해 보세요, 리벨.”

우리가 다른 곳에서 또 만난 적이 있는지.

그의 속삭임에, 리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적, 있어요.”

“…….”

시스테인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리벨의 아까 설명에서, 눈동자를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성별을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게다가 그 자줏빛 눈동자는 누가 봐도 리벨의 것이었다.

근처에서 그의 마력을 진정시켜 주는 그 힘도, 분명히 리벨의 것이었다.

진작 의심하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로.

그 모습이 하나, 그리고 아스테아 저택에서 빛을 발하며 변했던 검은 머리칼의 여자 모습이 하나…….

“……당신은.”

시스테인의 머릿속을 유영하던 많은 정보들이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틸라 저택의 남자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그자는 시스테인 자신과 같은 날에 틸라 저택에 침입했다.

그리고 크라이베리 신문에 기자 벨의 이름으로 실린 사진은, 틸라 저택에 그가 갔던 날과 같은 날에 찍힌 것이었다.

그렇다면.

“틸라 저택의 하인.”

그가 말하자,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바로 알아차릴 것 같았다.

“……맞아요, 저였어요.”

“그렇다면,”

시스테인은 그녀의 말을 곧바로 받아 냈다.

그는 기자 벨의 소금값 담합 관련 기사를 재차 떠올렸다.

리벨은 조력자가 아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그날 틸라 저택에서.

감찰기사단이 파악한 바로는 그 거래 현장에 있던 자들 중 둘이 가짜였다.

하나는 검은 가면으로 분장했던 시스테인 자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루이나 상단주였다.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나중에 ‘진짜 루이나 상단주’ 일행이 숲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래 현장에 있던 자는 누구인가 했는데.

“……루이나 상단주이기도 했겠군요.”

시스테인의 말에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스테인. 한 가지 정보를 알게 되자 줄줄이 알아채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것도 맞아요.”

시스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말씀하신 세 모습이, 하인일 때의 남자 모습, 아스테아 저택에서의 검은 머리 여자 모습, 그리고 루이나 상단주로서의 모습, 세 가지겠고요.”

리벨은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부인할 거리가 없는 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리벨은 곧이어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비밀의 문 앞에 열쇠를 든 채 서 있었다.

아니, 잠금쇠는 이미 열어 버렸다. 문을 열어젖혀 진실을 확인하면 그만이다.

내가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건드린, 그 파렴치한 기자라는 사실을.

리벨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문 순간이었다.

“……벨의 수습 기자셨습니까.”

예?

앞에 한 글자는 맞았는데 뒤에 뭐가 더 붙었다?

리벨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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