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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22)화 (122/167)

122화

디란타 고개로 그가 온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그에 대한 소문을 ‘도 넘게’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벌써 수십 명이나 더 죽어 나갔다.

독을 먹어서, 마차 사고로, 몬스터에게 우연히 죽어서 등.

시간 차를 두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그동안 시스테인의 소문은 가라앉아 갔다.

더 이상 시끄럽진 않았지만, 괴물이라는 소문은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 진실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소문은 반반이었다.

그가 ‘괴물같이 강력한 무력을 지닌’ 황자라는 소문과,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소문으로.

「그래서 디란타 고개에서 수련을 하고 계신다지 않소?」

「하긴……. 수련이 끝나시면 돌아오시겠지.」

그러나 후자는 곧 이런 소문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나이든 귀족들은 괴물이라는 둘째 황자의 소문을 분명히 기억했다.

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았다.

[금주 사교계 보고]

몇 년이 지날 때까지도, 시스테인은 매주 그 보고를 받고 있었다.

‘괴물.’

그 보고서를 볼 때마다, 벌써 본 지 몇 년이나 된 형 카리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면서.

그러던 어느 날.

시스테인의 아버지, 황제가 서거하고 시스테인의 형 카리스가 황좌에 앉았다는 소문이 그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전 황제는 별로 정 많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문란한 아버지였고 그는 제국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제 자식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 날아온 편지는 그의 마음을 찢어 놓기에 충분했다.

[K.]

간단한 이니셜과 함께 도착한 편지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형의 필체로 되어 있었다.

그건 시스테인에게 황제의 친서이기 전에, 몇 년 만에 형에게 직접 듣는 그의 소식이자, 그의 말이었다.

들뜬 얼굴로 편지를 펼친 시스테인에게, 편지는 싸늘한 선고를 내렸다.

[내가 황좌에 앉았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뒤로 너에 대한 소문이 더욱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도 알리라 믿는다.

불쾌해.

네가 더 이상 주목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세간이 네 이야기로 떠들썩하구나. 어느 것이든 네 이야기는 나를 불쾌하게 해.

네가 이 상황을 안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알아서 타개해 주었으면 좋겠군.]

불쾌해.

그 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스테인은 마지막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제도로 돌아오지 마.

디란타 고개에 영원히 박혀 있어.

「…….」

시스테인의 시야가 붉어졌다.

*  *  *

그렇게 또 한참을 폭주하기를 반복한 것 같았다.

그게 진정될 즈음에, 제도에서 다시 편지가 날아왔다.

그건 황태후가 된 어머니, 리엔의 편지였다.

[이제 돌아오렴, 아들. 보고 싶어.]

카리스가 편지를 보내온 건 아시는 걸까.

전혀 상반된 내용이었지만 시스테인은 카리스의 말을 보지 못한 것처럼, 홀린 듯 리엔의 편지를 들고 일어섰다.

상의 없이 편지를 보내진 않으셨을 것이다.

디란타 고개에 머물던 둘째 황자의 귀환은, 제도에 큰 소문을 낳을 테니까.

이제는 돌아가도 된다고 판단되어 돌아오라 하시는 것일 터다.

그리고 황성에 닿은 날.

시스테인은 제가 큰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폐하를 뵙습니다.」

알현실, 까마득히 높은 계단 위에 앉은 카리스는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시스테인에게는 느껴졌다.

알현실에 온통 황가 소속의 암살자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

그건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

시스테인이 제도의 어디를 돌아다니든, 그의 뒤로 황가 소속의 암살자들이 따라다녔다.

마치 내쫓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마음이 속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그럼 마치 폭주하기 직전처럼, 눈앞이 붉어지고는 했다.

「여기서는 안 돼.」

그 증상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더 심해졌다. 특히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을 만날 때면.

그때마다 자리를 피하고, 피하면 그 뒤로는 늘 소문이 따라붙었다.

「좀 이상해지신 것 같지 않아?」

「괴물들과 너무 오래 있었던 게지…….」

그럴 때마다 몇 번이나 자신을 억누르고 억누르다가, 시스테인은 이내 제가 해야 할 일을 알아챘다.

「디란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황태후 리엔과 황제 카리스, 그리고 다른 귀족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

「그곳에 처리하지 못한 마물들이 많습니다. 그곳에서 몬스터가 남하하지 않도록, 제국을 지키는 철옹성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다시 디란타로 떠났다.

「소문을 피하려고 디란타 고개로 간 게 아니겠소?」

「그럼 몇 년 전 돌던 소문이 정말로……?」

그가 무엇을 하든 소문은 따라붙었다.

「그런데 제정신이면 디란타 고개에 돌아갈 리가 없잖소?」

「그곳의 마물에게 홀리기라도 한 게지…….」

「괴물에게?」

「그렇지. 괴물에게.」

괴물.

‘괴물.’

그는 어릴 때의 카리스의 목소리에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저를 보던 시선을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가 없었다.

소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괴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정말 괴물인 자신을 억누를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옥죄는 무력감과 분노는 그대로 폭주로 이어졌다.

―쿠콰콰쾅!

디란타 고개의 몬스터들조차 자취를 감출 정도로, 잦고, 강력한 폭주로.

*  *  *

“으으, 더워.”

리벨은 눈을 떴다.

제대로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그녀가 잠이 깨는 조건이 딱 세 가지 있었다.

더울 때. 배고플 때. 목마를 때.

그리고 리벨은 그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충족됨을 깨달으며 눈을 떴다.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반쯤 잠에 물든 눈을 한 리벨이 깜빡였다.

더우니 땀이 나고, 땀이 나니 목이 마를 수밖에 없었다.

무슨 한여름 열대야도 아니고, 늦가을에 이렇게 더울 일이야?

리벨이 눈을 꽉 감았다 떴다.

혹시 양심이 찔려서 그런가?

확실히 잠들기 전에 시스테인과 나눴던 대화는 숙면하기엔 좋지 못한 대화이기는 했다.

“으.”

결국 더위를 이기지 못한 리벨이 몸을 벌떡 일으킨 순간이었다.

―우우웅!

그녀는 주변에 기묘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주변을 꽉 메우고 있었지만 리벨 주변만을 피해 가고 있었다.

“이게 뭐야?”

저도 모르게 옆을 돌아본 리벨은 기함했다.

“!”

시스테인의 몸이 푸른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 빛은 환하게 빛나다가 금세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주기적인 변화가 아니라 누가 봐도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자, 자자자자잠깐만!”

속삭인 리벨이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뜨뜨.”

그러곤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열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불덩이가 따로 없었다. 마치 인덕션에 손을 올린 것처럼.

“시스?”

사람이 이렇게 뜨거워도 돼?

리벨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쳐도 그의 찌푸린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시스!”

그의 주변에만 있어도 열기가 끓는 것 같았다.

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40도만 넘어도 뇌에 손상이 간다는데, 이건 40도의 선을 아득하게 넘은 것 같았다.

“아…….”

그때 시스테인이 더운 숨을 터뜨렸다. 그는 꿈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시스!”

리벨이 거듭 시스테인을 흔들어 깨웠다.

일단 의식부터 차려야 했다.

주변에 불안정한 마력이 감도는 것이, 누가 봐도 그는 폭주 직전이었다.

“눈 떠 봐요, 시스!”

그가 폭주할 때에는 무의식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만일 잠들어서 무의식일 때 폭주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가 없었다.

“시스!”

리벨이 다시 그의 어깨를 흔들려는 때였다.

―파팟!

마치 용접 불꽃이 튀듯, 그에게서 새하얀 빛이 튕겨 나와 주변에 부딪혔다.

―쨍그랑!

“꺄악!”

마력이 부순 건 침대 머리맡의 조명이었다.

그의 몸에서 일렁이는 푸른빛이 더욱 밝아졌다.

리벨은 그 빛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

언젠가 그가 불안정할 때 눈에서 보였던 푸른빛이다.

그 묘한 푸른빛.

그때였다.

“가주님! 마님!”

“괜찮으십니까!”

바깥에서 사용인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비명을 들은 게 분명했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시스테인의 모습을 보다가 리벨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리벨이 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방금……!”

“자다가 뭘 좀 떨어뜨려서 그래!”

리벨이 다시 외쳤다.

이 상황을 사용인들이 보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시스테인은 제 폭주 사실을 사용인들에게도 숨겼으니까.

“기이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리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쓸데없이 감은 좋아 가지고!

―파박!

그때 다시 한번 시스테인에게서 마력이 튀어 올랐다.

“!”

리벨은 이번엔 신음을 삼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마력이 손등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

피가 터져 나왔다.

“……!”

생각보다 깊은 상처였다.

잘못 스쳐서 손목이나 목의 동맥 같은 데라도 스쳤다간…….

리벨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긴장감에 머릿속이 까매지는 기분이었다.

무섭다.

그녀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그래도, 문을 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님!”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리벨이 애써 침착하게 외쳤다.

“다 물러가도 돼!”

시스테인이 어릴 때부터 지켜오려고 했던 비밀이다. 밝혀지길 원치 않을 것이다.

“……마님!”

“필요하면 부를게!”

리벨이 재차 외치자, 기사들은 결국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바깥이 조용해졌다.

간 거겠지?

리벨은 불안한 마음으로 시스테인을 내려다보았다.

“시스, 일어나 봐요.”

그를 흔들 때마다 마력이 이곳저곳에 마구잡이로 튀었다.

―파바박!

어깨며 볼, 허리에 마력이 가해지면서 따끔한 통증이 리벨을 감쌌다.

하지만 리벨은 멈추지 않았다.

“시스!”

그녀의 손이 닿는 곳만, 마력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리벨은 그의 목을 감싸 주었다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팟!

마력이 튀어 오르던 그의 몸에 리벨이 닿자, 마력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의 옷에 피가 번지는 게 보였다. 물론 시스테인의 피는 아니었다.

리벨의 피였다.

리벨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스테인이 낮게 읊조렸다.

“……아니야.”

“시스?”

리벨이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시스테인이 재차 말했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무의식중에 쏟아지는 목소리가 리벨의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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