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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26)화 (126/167)

126화

저번 아스테아 백작가 잠입 이후, 디란타 기사들, 다시 말해 감찰기사들이 리벨을 대하는 태도는 한층 더 친근하게 바뀌었다.

그녀를 조력자에서 완전한 내부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에는 역시 리벨이 시스테인의 정체를 알게 된 탓이 컸다.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리벨 없는 리벨 팀이었다.

‘?’

리벨은 왜 감찰기사들이 날이 갈수록 제게 친절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감찰기사단의 보고가 있을 때에 절정을 찍었다.

감찰기사단의 일은 외부에는 알려져서는 안 된다.

덕분에 리벨이 있을 때 감찰기사의 보고가 올라오면, 그건 디란타 대공가의 일로 처리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시스테인을 부르는 호칭도 ‘단장님’이 아니라 ‘가주님’ 내지는 ‘전하’였다.

그런데.

“단장님!”

리벨 앞에서 그렇게 우렁차게 외친 감찰기사는 곧바로 보고했다.

그녀가 들어도 된다는 듯이.

물론 시스테인 역시 당연히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저기, 나 새로 취직한 거?

나 감찰기사단 된 거?

“말씀하신 곳에 파견된 기사들이 지하로 연결된 거대한 석조 구조물을 찾았습니다. 마법적인 장치가 되어 있어 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리벨이 당황할 틈은 없었다.

그러면서 감찰기사가 그곳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라며 보여 준 뱀 문양 그림 때문이었다.

“이건…….”

그놈들 로브에 있던 뱀 문양이잖아!

감찰기사단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말이 맞았는지 그림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했다.

덕분에 리벨은 문양에 그려진 뱀 표정이 모두 다르다는 쓸데없는 정보도 알게 되었다.

“마신전의 문양이다.”

시스테인 역시 뱀 문양을 보고 바로 결론 내렸다.

그 정보는 정보를 다루는 데에 있어 제국의 어느 단체에도 뒤처지지 않는 감찰기사단마저 놀라게 했다.

“마신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지하에 감춰진, 마신전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석조 구조물을 달리 무엇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시스테인은 그 길로 감찰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사 인원을 둘로 나눈다. 한쪽은 백여 년 전 마족과 관련된 자들이 모두 처형당했을 때 마신전의 동향에 대해 다시 조사해. 그리고 다른 한쪽은 해당 마신전 근처의 주민들을 조사한다. 수상한 일은 없었는지.”

감찰기사단도 100년 전에 망한 집단을 다시 조사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마신전의 문양이고, 아스테아 백작가며 살롱에 기이한 게이트를 설치한 것들이 정말 마신전의 사제들이라면.

이건 백 년 전 마족에 의한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감찰기사단은 조사에 바로 착수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들고 왔다.

“그 주변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던 아이가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되거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동물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감찰기사단의 보고에 시스테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게 감찰기사단으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지?”

“제보할 자들이 없었습니다.”

제국의 온갖 곳에 손이 뻗쳐 있는 황태후의 그림자와는 달리, 감찰기사단은 양지에 있는 단체인 만큼 파견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덕분에 이런 국지적인 정보를 직접 수집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누군가 떠벌리고 다니지 않고서야.

“몇 년 전부터 없던 병이 생기고 기이한 일이 생겼으면 소문이 날 법도 한데, 왜?”

리벨의 물음에 감찰기사는 간단히 답했다.

“그 주변 상권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상단들이 주민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오.”

왜 여기서 갑자기 집값 떨어질까 봐 나쁜 소문은 쉬쉬하는 한국 사람들이 떠오르지?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리벨이 영혼 없이 감탄할 때였다.

“전하, 급보입니다!”

그때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번에 시스테인을 찾는 자는 ‘전하’라고 하는 걸 보니, 디란타 대공인 그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대공령에 무슨 일이 있나?

두 사람이 동시에 설렁줄을 잡아당겨 문을 연 순간이었다.

“……!”

흙먼지에 뒤덮여 엉망인 몰골로, 주저앉듯 앉은 한쪽 무릎을 꿇은 기사가 보였다.

그의 견갑에는 디란타 대공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방금 디란타 대공령에서 달려온 자가 분명했다.

그가 숨을 채 고르지 못하고 말했다.

“대공령의 마물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뭐?”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얼마 전에 시스가 쓸어 버렸을 텐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였다.

기사가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정리하신 이후 전혀 수가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는 것 같습니다. 마물들의 흔적이 남은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닐뿐더러, 그 규모도 엄청납니다.”

그의 얼굴에선 핏기가 가셔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물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저택의 병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디란타 저택의 병력은 마물을 잡는 데에 특화된 병력이다.

그런 그들조차도 한계가 있다고?

대체 얼마나 수가 불었기에?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저게 진짜면 비상 아닌가?

“움직임은 어떻지?”

시스테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생각은 리벨과 조금 달랐다. 물론 비상 상황은 맞았다.

하지만 그 몬스터들이 저택을 공격하고 있다면 저 기사가 저런 멀쩡한 꼴로 빠져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최소 어디 한두 군데에 상처가 있거나 피 묻은 갑옷을 입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의 갑옷에는 생긴 지 오래된 닳은 흔적뿐이었다.

적어도 최근에 난 스크래치는 아니었다. 마물이 많은 건 확인했어도 전투는 없었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특정한 경로를 계속 반복하여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경로를?”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마물들이 가을 기념 야유회라도 연단 말인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주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흔적에 굳은 피가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인간의 것은 아닙니다. 주변 영지민들의 피해도 없었고요.”

그럼 누가 양몰이를 하듯 먹이라도 주면서 끌고 다닌단 말이야? 리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물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졌는데 공격은 없다…….”

시스테인이 뇌까렸다.

“언제 공격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행동 양상이 다릅니다.”

디란타의 기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시스테인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퇴치보다는 마물들의 위치와 규모를 먼저 파악해. 마물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여라. 그리고.”

시스테인이 서늘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외부인들이 들어왔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해.”

그 말에는 디란타의 기사가 멈칫했다.

“외부인이 들어오기엔 지나치게 깊은 곳입니다.”

애초에 디란타령에는 오는 손님이 적었다.

몬스터에 마물까지 들끓는다는 땅에 뭐 하러 사람들이 온단 말인가?

물론 상인들이 들르고 가끔 영지 주민들의 손님 등이 두려움으로 뒤덮인 얼굴로 들어오긴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게다가 그것도 디란타 대공령의 경계에 가까운 곳에 들르는 게 전부였다.

디란타가의 기사단이 충분히 안전을 확보해 둔 곳까지만 오는 것이다.

마물들이 본격적으로 튀어나오는 대공령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한마디로 몬스터가 불어나는 것과 외부인은 상관이 없을 거라는 의미다.

하지만, 외부인의 짓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결국 디란타의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  *

상황은 바쁘게 돌아갔다.

필레 공작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마신전의 움직임까지 모니터링하기 시작하자 감찰기사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게다가 디란타 대공령의 마물이 폭증했다는 건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마물과 마신전.

딱 봐도 관련 있어 보이잖아!

게다가 무슨 훈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특정한 주기로 대공령을 돌아다니는 마물 무리라니.

그들을 누군가 이끌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니, 누가 양도 아니고 마물 가지고 몰이를 해요? 미치셨습니까, 휴먼?

리벨의 불길한 상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디란타에선 얼마 후 놀라운 소식을 전해 왔다.

“마물의 수는 평소 번성기보다 네 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번성기란 시스테인이 가서 쓸어 버리기 직전, 가장 마물이 많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네 배?”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마물들이 번식력이 좋다고는 해도, 어떻게 갑자기 네 배로 늘어나?

외부의 어떤 ‘도움’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리벨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기사가 보고를 이었다.

“그리고 외부인들이 디란타령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나 마물들과 조우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에 시스테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지금까지, 외부인의 침입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가?”

그건 심각한 일이었다.

특히 마물이 날뛰는 디란타 대공령 안쪽까지 외부인이 들어와 설치는데, 그걸 모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외부인들이 마물이 아니라 디란타 대공저라도 습격했으면 어떻게 하려는 생각이었던 거지?

“죄송합니다.”

리벨조차도 그 보고에는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디란타의 기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지?”

시스테인의 가라앉은 얼굴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들이 들어온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류를 포함해 사람이 지나갔다면 으레 남는 흔적 등도 전혀 없었습니다.”

기사의 다음 말이 이어질 때까지.

“마치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요.”

허공에서…… 나타나?

리벨과 시스테인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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