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시스테인과 리벨의 예상이 확실하다는 게 곧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디란타령에서는 실제로 게이트가 확인되었다.
문제는.
“……너무 몬스터가 많아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몇 가지 후보를 추렸습니다만, 이 이상 조사하기 위해서는 마물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감찰기사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시스테인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굳이 가만히 있는 마물 무리를 건드릴 필요는 없지.”
게다가 번성기보다 수가 네 배는 많은 상태라면 더더욱.
“그럼 후보지 중에 게이트가 있는 건 확실한가?”
시스테인이 디란타령의 지도를 받아 들었다. 기사가 표시해온 위치는 일곱 개 정도였다.
“예. 적어도 세 개 이상의 수색조가 게이트와 비슷한 현상을 목격했다는 곳만 추렸습니다.”
“저 게이트로 마물이 넘어가고 있지는 않고?”
리벨이 물었다. 분명 살롱에 열린 건 쌍방향 게이트였다.
마물들 한가운데에 있는 게이트 역시 쌍방향 게이트일 것이다. 외부인이 오간 흔적이 확인되었으니까.
그럼 왜 마물은 넘어가지 않는 거지?
육상대회 준비하니? 하나 둘 셋 땅 하면 튀어나오는 거야?
“예. 게이트 너머로 넘어가진 않고 있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기사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게이트가 아예 닫혀 있는 것 같습니다.”
“아하…….”
요컨대 적절한 때가 되면 열겠다는 거네?
리벨이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때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야 마물을 제국에 풀기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근래 제국에 무슨 큰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리벨이 고개를 기울였을 때였다. 시스테인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마물을 쓰는 건 필레 공작에게도 위험한 방법입니다. 마물에게는 필레 공작도 똑같은 인간……, 먹잇감으로 보일 테니.”
그야 마물 입장에선 우리가 다 알록달록한 밥알로 보일 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리벨은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럼 마물을 조종할 방법을 찾으려는 거겠네요?”
그렇네!
마물한테 밥 취급 안 당하려면 뭔가 퇴치법 내지는 조종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스테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 방법을 이미 찾았으니 마물을 사용하기로 했을 겁니다.”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작하지 않은 건, 그 방법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고요.”
시스테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모든 일의 윤곽이 드러난 이상, 확실한 것을 알아볼 때였다.
“살롱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리벨은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스가 직접요?”
설마 그 놀라운 연기력으로?
리벨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그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저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제가 마주할 상황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웃음 짓고 있는 얼굴은 시스테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같았다.
시스테인 폰 디란타가 이런 은근한 미소를 짓고,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누가 생각할까?
“어…….”
덕분에 그 화사한 미소와 마주한 리벨은 본의 아니게 멍해져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찰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리벨?”
그래서 리벨은 제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그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시스테인은 저를 걱정하는지, 제 발연기(...)를 걱정하는지 묻고 있는 거였다.
뒤늦게 웃음이 터졌다.
“둘 다요, 둘 다!”
결론적으로 시스를 걱정하는 거잖아요!
리벨이 눈을 가늘게 뜨자, 시스테인이 마주 웃음을 터뜨렸다.
―쪽.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돌아섰다.
“!”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의 감찰기사에게 그가 손짓했다.
“연기에 능한 자들을 선별해 살롱에 파견해. 살롱 주변에 인기척이 많아지는 날, 그들이 살롱을 쓰는 날에. 그 게이트들이 모두 어디로 통하는 것인지 확인한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저들은 더 이상 푸른 글씨가 쓰인 초대장을 날리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게이트들은 주요 인물들의 가문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
“단장님께서도 직접…… 움직이십니까?”
그 말에 시스테인은 리벨을 돌아보았다.
살짝 입술이 닿은 이마를 문지르다가, 얼굴이 펑 터질 듯 달아오른 리벨을 본 시스테인이 낮게 웃었다.
“걱정되신다 하니, 돌발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면 직접 갈 필요는 없겠지.”
시스테인의 웃는 얼굴은 감찰기사 인생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저택에 돌아다니는 괴담 아닌 괴담이 슬슬 현실이란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근 1년 사이에 그들의 단장님이자 가주님은 다른 사람처럼 바뀌고 있었다.
그 변화를 일으킨 것은 당연히 눈앞에 있는 마님이었다.
“……알겠습니다.”
다소 풀린 분위기를 느끼면서 기사가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낯설지만 좋은 변화였다.
* * *
살롱이 활성화되는 날을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시스테인의 예상대로 푸른 글씨의 초대장이 필요가 없어진 필레 공작과 귀족들은, 보다 자주 모여 회합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다 자주 모여 계획을 논했다.
물론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회합이었다.
애초에 그 살롱에 대해 아는 자들이 없으니 살롱은 완전히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이제 바깥의 사람들도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어린 황제의 폭군 놀음과, 황태후의 치맛자락에 놀아날 수는 없지요.”
마치 필레 공작이 이미 황제가 된 것처럼, 살롱에는 완전히 다른 위계질서가 자리하는 듯했다.
그곳에 사용인으로 스며든 감찰기사들은, 그들이 황가를 기만하더라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공은 어떻고요? 권력엔 관심 없는 척, 고고한 척하면서 연회마다 사람을 깔보는 눈빛이 아주 불손하더이다.”
감찰기사들이 아무리 황가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라 해도 그랬다. 심지어 그 주인이 모욕을 들어도 그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게 잠입의 기본이니까.
대신 그들은 속으로 화를 삼켰다.
언젠가는 이자들에게 제 주인들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알아 온 정보는 시스테인과 리벨을 만족시켰다.
“이전 살롱의 ‘붉은 천’ 안쪽으로 오갔던 자들의 목록과, 게이트로 연결된 가문의 목록이 겹칩니다. 그리고 대부분 가문의 비밀 통로나 공터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비밀 통로에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는 가문은 모두, 저택 주변에 공터가 없는 가문들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게이트를 쓰는 건, 공터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거지…….”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보고를 들은 리벨과 시스테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물을 모아 놓은 정황과 그들을 어떻게든 전국 각지에 뿌릴 수 있는 게이트.
필레 공작의 비밀 살롱이 불법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사실만으로도 이미 필레 공작의 반역 사실은 확실해졌다.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을 수가 없다.
적어도 제국 전체에 반역 이상의 피해를 입히려는 게 확실했다.
“결론적으로 계획의 중심은 게이트네요.”
“예.”
시스테인의 답을 들으며, 리벨은 생각에 잠겼다.
살롱의 게이트만 없애도 저들의 계획엔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저들이 양성해 낸 마물이 세트로 사라지진 않는다는 거지.
리벨은 고민하다가, 시스테인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게이트를 일단 없애면 저들을 방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녀가 제 손끝을 가리켰다.
“저번처럼 피로 게이트를 없애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피 내는 건 좀 아프겠지만.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게이트만 십수 개입니다. 그중 몇 개만 없애려고 해도 피가 얼마나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럼 중요한 게이트만 없애면 되죠. 가령 디란타 대공령에서 살롱을 연결하는 게이트라든지.”
그럼 몬스터 자체가 못 넘어올 것 아닌가?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침묵해다.
그가 보기에도 유효한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것에 얼마나 많은 피가 들지 모른다는 거고, 따라서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피를 조금 담아가서 실험해 보는 게 어때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의 신부는,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마침 살롱이 자주 열리고 있다고 했잖아요. 원래 물건은 자주 사용할수록 고장 나는 법이고.”
리벨은 아스테아 백작가에 있던 게이트 마법진을 떠올렸다.
원래 마법은 복잡다단한 것이라 하나만 틀어져도 취소되거나 꼬여 버리기 십상이니, 그 마법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스테인이 결국 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계획이다.
단 하나, 그녀의 몸에 다시 상처를 내야 한다는 것을 제하면.
“음.”
리벨은 살짝 얼굴이 새하얘졌다.
지난번 손끝에 칼날을 대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확실히 아프긴 했다.
하지만…….
“……이 동네엔 주사기 없죠?”
“?”
그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그냐 주사기랑 피 뽑을 전문 의료 인력……이 있으면 좋겠다.
칼에 손대는 건 아무래도 너무 아프단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게 갑자기 길 가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릴 리도 없었다.
결국 리벨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안 아팠으면―”
그렇게 말하던 리벨은 저번에 피를 낼 때를 떠올렸다.
아까처럼 이마에 닿아 오던 말캉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르륵 타올랐다. 그녀가 손을 휘휘휙 내저었다.
“아아아아니, 그것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효과야 제대로 봤지만 차마 이마에 뽀뽀해 달라고 대놓고 말은 못 하겠어!
거듭 손을 내저은 리벨이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였다.
“딱 하나, 딱 하나면 돼요.”
“말씀해 보세요.”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얼굴이다.
리벨은 그 온화해 보이는 얼굴을 보다가 불쑥 물었다.
“‘소원 세 개 들어주세요’ 같은 거 말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산신령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
무슨 령? 금도끼고 은도끼고 알 리가 없는 시스테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말했다.
“소원의 개수는 상관없습니다.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것이길 바랄 뿐.”
예능 다큐로 받지 마!
리벨은 그 진지한 얼굴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맛있는 거.”
눈을 크게 뜨는 시스테인에게 리벨이 당당하게 외쳤다.
“피 뽑는 날엔, 맛있는 거 먹어야죠!”
그건 헌혈하는 날 전통(?) 아니겠습니까? 리벨이 눈을 반짝였다.